소설리스트

빙의했는데 임신부터 하면 어떡해요-123화 (123/136)

외전 7

“곧 본식 시작하겠습니다. 신랑님, 준비해 주세요~”

“아, 네…!”

“도련님은 저희가 잘 보겠습니다. 결혼식 파이팅 하시고 이따 봬요.”

“감사합니다!”

“파파, 안녕! 핫티~”

곧 식이 시작된다는 말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버릇처럼 입술을 깨물려다 피라도 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손을 꽉 쥐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가!”

“할머니….”

“좋은 날에 할미가 울까 봐서 안 왔는디, 그래도 우리 손주랑 사진은 찍어야 할 거 같아서.”

안 그래도 보이지 않는 할머니에 연락을 해보려 했었다. 할머니도 하나밖에 없는 손주의 결혼식을 준비하려 아침부터 많이 바빴을 거였다. 예쁘게 화장을 하고 형이 보낸 옷으로 한껏 치장을 한 할머니는 곱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권 서방이 잘해 주지? 우리 유원이 후회 없지?”

“네, 형이라면 앞으로도 잘 살 수 있을 거 같아요. 저 행복해요, 할머니.”

“그려. 지금도 잘 살고 있지만, 앞으로는 더 행복하게 잘 살어.”

“네, 그럴게요. 저 더 행복하게 살게요.”

할머니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앞으로의 일도 확신하는 내 얼굴을 조용히 바라보던 할머니도 이젠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니와 사진을 찍고 이후에도 늦게 온 하객들과 서둘러 사진을 찍고 나니 예식 시간이 다가왔다.

문을 똑똑 두드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형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나를 데리러 온 건지 말끔하게 차려입은 형은 오늘 결혼식의 주인공답게 멋있었다.

“유원아.”

“형….”

“이제 갈까?”

내게 손을 뻗는 형의 손을 마주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도 그랬지만, 앞으로 내가 믿을 사람은 형밖에 없었다. 그의 손을 꽉 잡고 함께 식장으로 향했다.

“멋있는 두 신랑, 행진!”

사회를 보는 준석 아저씨의 목소리와 함께 하객들의 열렬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심장이 터질 듯 떨리는 기분으로 형의 손을 꽉 잡았다. 형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내 손을 세게 잡아 주었다.

천천히 버진 로드를 걷는데 그동안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외롭고 힘들었던 내 삶에 구원자처럼 나타난 형과, 힘들었던 일, 그리고 다시 그와 만나 사랑을 깨달은 순간까지. 추억을 회상하자 가슴이 뭉클했다. 울음을 참으려 볼 안쪽 살을 깨물었다. 울컥한 내 마음을 알았는지 형이 작게 속삭였다.

“사랑해. 행복하게 살자, 유원아.”

진심 어린 말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눈가에 고여 있던 눈물이 기어이 흘러내렸다. 형과 평생을 함께할 수 있음에 행복이 밀려왔다.

“결혼 축하드립니다!”

“두 분, 행복하게 사십시오!”

우리를 축복해 주는 환호성에 하객들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복싱장 식구들부터 운언동 식구들, 윤설아 선생님, 그리고 아버님과 할머니, 형과 나의 전부인 유범이까지.

가족과 친한 지인만 부른 자리라 하객은 많지 않았지만 가슴은 꽉 찬 기분이었다. 우리의 행복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향해 활짝 웃으며 형의 손을 꽉 잡고 행복하게 버진 로드를 걸어갔다.

모두가 축복해 주는 가운데 우리의 결혼식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웨딩 사진을 위해 나란히 선 형과 내게 유범이가 소리쳤다.

“유버미도 가치 찍을 고야!”

우리를 향해 손을 뻗은 유범이를 보며 형과 나는 동시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결국 형과 내 사이를 차지한 유범이는 그제야 만족한다는 얼굴로 작게 난 이를 드러내어 웃었다.

“그럼 찍겠습니다. 하나, 둘, 셋-”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터졌다. 행복한 우리의 순간이 영원히 사진 속에 담겼다.

***

유범이를 떼어 놓고 해외로 나가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아 형과 나의 신혼여행지는 국내로 정해졌다. 굳이 해외로 나가지 않더라도 국내에 예쁜 곳도 많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찾아보다, 유범이가 태어나는 바람에 무산되었던 부산 여행을 다시 하기로 했다.

“유범이 잘 있겠죠…? 그냥 데려올 걸 그랬나 봐요….”

“아버지가 잘 봐 주시겠지. 애들도 있고.”

“그래도, 이렇게 오래 떨어진 적은 처음인 거 같은데.”

겨우 2박 3일뿐인 신혼여행이지만 유범이를 두고 가는 게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지난번에 이곳을 왔을 땐 유범이가 배 속에 있었는데 이렇게 형과 둘이 오게 되자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마음이 이상했다.

“유범이가 우리 찾고 그러면 다시 올라와도 되니까 일단 가자. 저번에도 아버지랑 할머님이랑 잘 놀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형은 계속해서 유범이를 걱정하는 나를 달래며 캐리어를 들었다. 결혼식 일주일 전부터 미리 싸 놨던 캐리어는 2박 3일뿐인 여행이었는데도 꽤 묵직했다. 한 번도 이렇게 떨어진 적이 없었던 유범이라 오히려 내가 불안한 마음이었다. 유범이가 여기 있는 것도 아닌데 계속 뒤를 돌아보며 걱정되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막상 부산에 도착하자 날씨도 좋고 바다도 너무 예뻐 오지 않았으면 후회했을 만큼 너무 좋았다. 화창한 날씨에 형의 손을 잡고 청사에서 빠져나오니 부산 지사의 직원들이 형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사장님, 오셨습니까. 처음 뵙겠습니다, 사모님.”

“아…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들어 보는 사모님이라는 단어에 움찔했다.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호칭이었다. 그가 바짝 긴장한 직원에게 말했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습니다. 여기서부턴 제가 직접 운전할 테니까 이만 들어가 보셔도 됩니다.”

자신이 운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듯 직원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지만, 형은 직원에게 차 키를 건네받아 나를 데리고 자리를 벗어났다. 뻥 뚫린 오픈카를 타고 도심을 벗어나자 청량한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손을 살짝 내밀어 손가락 사이를 간질거리며 빠져나가는 바람을 느꼈다.

“헤헤, 좋긴 하네요.”

“위험하니까 고개 내밀지는 말고.”

아직도 나를 어린애라고 생각하는지 형은 계속해서 나를 살폈다. 그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나와 창밖으로 팔을 뻗는 대신 형의 손을 잡았다. 간질간질한 마음으로 형과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호텔 근처의 한 식당이었다.

부산에 왔으면 돼지 국밥을 먹어야 한다는 내 말에 형이 찾은 곳이었다. 엄청나게 고급스러운 곳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이런 곳이 좋았다. 평범한 데이트를 한 게 언제인지. 이것도 색다른 기분이었다.

돼지 국밥 두 개와 수육을 시키고 반찬으로 나온 섞박지를 이로 베어 물고 있을 때였다.

“팍팍 좀 먹어, 시팔. 침으로 녹여 먹는 것도 아니고.”

“죄, 죄송해요, 선장님….”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의 대화 소리에 시선이 힐끔 그들에게 향했다. 몸집이 크고 한쪽 팔에 기다란 상처가 있는 남자는 서울에서도 보기 드문 우성 알파였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앉아 있는 남자는 조금… 많이 왜소해 보였다. 나이도 어린 거 같은데.

“하….”

“죄, 죄송-”

“죄송하단 소리 한 번만 더 해 봐.”

날 선 남자의 목소리에 파득 떠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몸집이 작은 남자는 알파의 페로몬을 덕지덕지 묻히고 있어 그의 형질이 뭔지는 알기 어려웠다. 다만 남자의 목에 수놓아져 있는 자국을 보니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어 내고 내 맞은편에 앉은 형을 보자 나도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요즘 들어 형도 내 몸에 그의 페로몬을 잔뜩 묻혀 놓았다. 이젠 내가 다른 사람의 페로몬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고 난 이후로 그가 매일같이 하는 일이었다. 앞으로 학원도 다녀야 하고, 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이 우성 알파의 본능적인 집착욕을 누그러뜨릴 수 있을까 고민되었다.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한국의 패스트푸드는 국밥이라는 말처럼 순식간에 돼지 국밥이 형과 내 앞에 놓였다. 처음 보는 음식이었지만 냄새가 고소하니 맛있어 보였다. 형을 따라 국밥에 부추 무침도 넣고 양념장도 조금 넣어 밥과 말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을 후후 불어 한입에 넣으니 이래서 부산에 오면 돼지 국밥을 먹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렇지만 평생을 귀공자처럼 살았던 형이다. 나는 20년이 넘도록 이렇게 살아서 돼지 국밥이 맛있었지만, 형의 입맛엔 맞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내 걱정이 무색하게도 형은 잘 먹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뭘 먹든 잘 먹는 형이었다. 잘 먹는 모습에 기분이 좋아 물끄러미 응시하는 내 시선을 느낀 형이 고개를 들었다.

“맛있다.”

“네, 맛있어요, 엄청.”

내가 맞장구치자 형이 빙그레 웃었다. 요즘 들어 잘 웃는 형의 얼굴을 보는 건 너무 행복한 일이었다. 형과 함께할 때면 평범한 일상도 평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예전에는 이런 평범한 일상조차 버거울 때가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니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고 앞으로의 우리가 기대되었다.

“형이랑 먹으니까 더.”

그와 함께 먹으니 더 맛있게 느껴지는 국밥을 한입에 넣으며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국밥에 수육까지 배가 빵빵해지도록 배를 채운 뒤 호텔로 이동했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숍에서 머리와 메이크업을 하고 결혼식에 가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더니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기절할 것처럼 피곤했다. 하는 수 없이 관광은 내일로 미루기로 하고 호텔로 들어서자 아까 그 식당에서 봤던 남자가 있었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