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
“끼아…!”
갑작스러운 내 울음에 덩달아서 울먹이던 유범이가 무지개를 발견하고 꺄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는 마치 나보고 더는 울지 말라는 듯 작은 손으로 눈물로 젖은 내 뺨을 문질러 주었다.
“응, 알겠어…. 안 울게, 이제.”
나를 똑바로 바라보는 호빵이를 향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안심한 얼굴로 형과 나를 번갈아보던 아이가 작은 입술을 움직였다. 그리고 이내,
“으…부아! …아부아!”
처음으로 ‘아빠’라는 말을 내뱉었다. 아직 서툰 발음이지만 분명 ‘아빠’라고 하는 게 맞았다. 원래도 남성체 오메가의 아이들은 성장이 빠르다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일찍 듣게 된 아이의 부름에 눈시울이 뜨거워질 만큼 이 순간이 감격스러웠다.
“유범아, 할아비, 할아비라고도 불러 보렴. 응?”
“아직 백일 조금 지난 애한테 욕심이세요. 저는 ‘아빠’니까 다르지만요.”
형은 아버님께 단호한 목소리로 고개를 저으면서도 본인은 아빠 소리를 들었다는 티를 팍팍 내기 바빴다. 또다시 티격태격하기 바쁜 부자지간에 내가 입을 열려던 순간, 호빵이가 아버님의 엄지손가락을 감싸 안고 옹알이를 내뱉었다.
“하부아!”
잠깐의 정적이 흐르고 우리 모두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얽히며 가장 먼저 아버님이 입을 열었다.
“우리 유범이… 천재가 아닐까 싶다.”
“모처럼 아버지 말에 동의합니다. 역시 저와 유원이를 닮았어요.”
유범이를 향한 아들 바보, 손자 바보 같은 말이 오고 가고 나는 한 뼘 더 성장한 호빵이를 품에 안고 뺨을 맞추었다. 코끝에 보송보송한 향과 함께 고소한 분유 냄새가 흘러 들어왔다. 내 입맞춤에 방긋방긋 웃음을 짓던 유범이가 갑자기 눈꼬리를 아래로 내리더니 입술 사이로 서글픈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으으에….”
“아이고, 아가!”
갑작스러운 울음소리에 놀란 아버님이 눈을 크게 뜨고 유범이를 바라보았다. 어디 아픈 곳이 있을까 살피는 주름진 얼굴에 걱정스러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 울음소리는 아이가 배고프다는 뜻이었다. 형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하고 아버님께 말했다.
“유범이 분유 먹일 시간입니다. 아직 2분 정도 남았으니 차에서 먹이고 가면 됩니다.”
“그래, 어서 가자꾸나.”
아버님은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고개를 돌려 어머님의 사진을 보고 조용히 혼잣말을 속삭였다. 그들을 따라 나도 납골당을 빠져나가기 전 어머님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혼잣말을 내뱉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어머니. 그리고 제가 형 꼭 행복하게 해 줄게요. 어머님의 몫까지.”
반드시 그렇게 하겠다는 내 다짐이 어머님께 전해진 것인지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미소에 온기가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
“으응….”
“잘 잤어?”
눈을 뜨자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가까이 다가온 얼굴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다 일어난 것이든 밤이든 낮이든 형은 너무 잘생겼다. 계속해서 허물어지는 입꼬리에 결국 푸흐, 하고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손을 뻗어 형의 목을 끌어안자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를 감싸 안았다. 넓은 형의 품에 안겨있으니 오늘따라 유독 짙은 페로몬 향이 느껴졌다.
기분 좋은 평화로움에 형의 품에 안겨 그의 어깨 너머로 방을 둘러보았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온통 검은색이라 놀랐는데, 이젠 검은색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방이 제법 많이 바뀌어 있었다.
“쪽-”
갑자기 목덜미를 간지럽히는 입맞춤에 몸을 작게 비틀었다. 태범이 형은 그에 지치지 않고 몇 번 더 내 목에 입을 맞추었다. 그의 어깨를 밀어내는데 그는 내 등을 꽉 끌어안고 장난스러운 입맞춤을 이어 갔다.
“아, 간지- 흣.”
처음엔 장난스럽게 시작했던 입맞춤이 점점 야릇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등을 감싸 안은 손도 어느새 잠옷 안으로 들어가 등줄기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으, 흣, 혀…엉.”
점점 뜨거워지는 열기에 여러 의미가 담긴 목소리로 형을 불렀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떼어 내고 나를 짙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형의 뜨겁고 단단한 혀가 내 입 안을 파고들었다. 입 안에 순식간에 혀가 들어차 질척한 소리가 귓가를 적셨다. 혀를 빨아당기는 힘에 나도 모르게 축축한 신음을 흘렸다.
“으, 으응….”
등줄기를 따라 내려온 그의 손이 물 흐르듯이 바지 안으로 들어와 내 엉덩이를 쥐었다. 빠듯하게 닿아 오는 그의 아래가 아침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열기에 흥분하였는지 남다른 존재감을 나타내며 나를 자극했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서서히 벌어지고 유혹하는 페로몬 향에 몸이 달아올랐다.
“아, 형….”
눈가에 뜨거운 열이 몰렸다. 겨우 입을 떼어 내 그를 불렀다. 재촉이 밴 내 목소리에 형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며 말했다.
“괜찮겠어?”
“으응… 괜찮아요, 빨리…….”
이미 그의 페로몬에 내 몸이 반응했다. 엉덩이 사이가 미끌미끌했고 형의 것 못지않게 내 성기도 단단하게 고개를 들었다. 형도 그런 내 상태를 아는지 작게 웃으며 내 바지 끝을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으엥-”
옆방에서 들려오는 호빵이, 아니 유범이의 울음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마 익숙하지 않은 형의 페로몬에 유범이가 놀란 모양이었다. 서둘러 형의 가슴팍을 퍽 밀어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형이 나를 말리며 먼저 침대에서 일어나 의자에 올려 두었던 가운을 걸치고 옆방으로 향했다.
“하아….”
옆방으로 사라진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쩐지 오늘 일이 잘 풀린다, 싶었다. 아쉬운 마음으로 형의 섹시한 상반신을 떠올리며 침을 삼켰다. 그렇다, 유범이를 낳은 지 일 년이 조금 안 된 지금. 나는 욕구불만이었다.
“아이고 우리 유범이 잘 잤어?”
“꺄아- 아부아! 우으… 아!”
한숨을 삼키고 형을 따라 옆방으로 왔는데, 꺄르르 잘도 웃는 얼굴에 아쉽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다. 내가 낳은 내 자식이었지만 유범이는 너무 귀여웠다. 통통한 볼에 입을 맞추고 분유 냄새가 나는 아기를 꽉 끌어안았다.
형의 이름과 내 이름을 한자씩 따서 지은 유범이는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일주일 정도 있었다. 출산 예정일보다 이르게 나왔지만, 조산이 아니었던 데다가 유범이는 형을 닮은 건지 다른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몸무게도 많이 나가고 건강했다. 때문에 빨리 회복해 금방 인큐베이터에서 나왔고, 아주 무럭무럭 잘 자라 지금은 상위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 유범이 맘마 먹을까?”
“우으, 맘마!”
배가 고픈지 손가락을 물고 빠는 모습에 유범이를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성체 오메가는 체질상 약간의 모유가 나온다고 하지만 나는 체질이 아닌지 잘 나오지 않았다. 게다가 어차피 양도 별로 없어 다른 여성체 오메가이나 베타처럼 직접 수유를 해 줄 순 없었다. 하지만 유범이의 분유 수유는 직접 해 주고 싶었다. 때마침 분유를 타서 안방으로 들어오는 형을 보며 작게 웃었다.
“아빠가 호빵이 맘마 가져오셨다.”
“맘마, 맘마!”
“그래그래, 얼른 먹자.”
유범이도 젖병을 본 건지 손발을 흔들며 입을 벌렸다. 형에게 젖병을 받아 아이의 입에 넣어 주곤 쪽쪽 잘도 먹는 유범이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리 봐도 유범이는 형과 똑 닮았다. 마치 형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처럼. 가끔 그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아직 어린 아기의 얼굴은 자라면서 몇 번 바뀐다고 들었는데, 개인적인 마음으론 형을 닮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유를 다 먹은 호빵이를 안고 등을 토닥토닥 두들기자 금방 꺼억- 하고 작게 트림을 했다. 그 목소리도 어찌나 귀여운지. 호빵이는 정말 내 전부였다. 사랑스러운 작은 생명체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형에게 물었다.
“형, 아버님은 언제 오신대요?”
“글쎄. 퇴근하시고 바로 오시지 않을까 싶은데.”
“헤헤, 그래도 오늘은 저녁에 오시네요.”
그날 이후로 아버님은 편하게 우리 집을 찾으셨다. 물론 나도 아버님을 자주 뵙는 게 좋았다. 하지만 일주일 연속으로 찾아오는 탓에 형과는 이미 한번 싸운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번번이 무시하는 아버님의 태도에 형은 질렸다는 듯 문을 잠그려 했지만, 현관문을 활짝 열어 주는 사람은 나였다.
“힘들면 오시지 말라고 할까?”
“에이, 뭐가 힘들어요. 아버님이 오시면 저야 좋죠. 그치, 호빵아?”
정작 힘든 건 형인 것 같았다. 힘든 것보단 피곤한 거겠지만. 나야 힘든 건 아니고 아버님이 걱정되는 거였다. 형이 육아휴직을 내면서 아버님은 하는 수 없이 회사로 복귀하셨다. 때문에 회사에 출근도 하면서 운언동과 가현동을 왔다 갔다 하는 게 너무 무리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형, 그 아버님 차라리-”
“안 돼.”
“피…. 그래도 아버님 매일 집이랑 회사랑 여기 왔다 갔다 하시면 엄청 힘드실 거 같은데요.”
“힘들면 안 오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