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상철은 싱긋 웃으며 유원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처음엔 아이를 노리는 듯 말을 했지만 자신이 원하는 건 권태범, 저 자식이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차유원이 죽고, 배 속에 있는 애새끼까지 죽으면 권태범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선물을 안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탕-
상철은 활짝 웃으며 방아쇠를 당겼다가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권태범 때문이었다.
“큭….”
시발, 무슨 사람 몸이…. 꽤 거리가 있는데도 태범이 유원을 보호하듯 감싸 안은 건 순식간의 일이었다. 상철은 유원을 끌어안은 태범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형…?”
“괜, 찮아.”
유원이 아득한 목소리로 태범을 불렀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애달프기 그지없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자신인데, 아무도 저를 봐주지 않은 상황에 상철은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이 새끼들이…!”
상철의 행동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태범은 유원을 제 품으로 끌어당겼다. 유원을 보호하는 그의 움직임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목표물이 사라져서 당황한 상철은 하는 수 없이 태범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두 발의 총알이 태범의 등에 박혔다. 당황해서 그런가, 자꾸만 엉뚱한 곳에 총알이 박혔다.
이를 악문 상철이 태범의 머리를 향해 조준하고 한 번 더 방아쇠를 당기려고 한 순간, 태범의 부하들이 쏟아지듯 유리온실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태범 형님, 형수님!”
“씹-”
한, 두 명이 아닌 듯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오는 발소리에 상철은 급히 몸을 돌려 미리 눈여겨본 뒷문으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아, 하….”
“…혀, 형…?”
유원은 저를 꽉 끌어안은 태범의 품 안에서 눈을 깜빡거렸다. 분명 두 발의 총소리가 들려오긴 했지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잘못… 들은 거겠지?
온실을 가득 메울 듯 울려 퍼지는 총성에 유원은 숨을 멈추었다. 그냥… 또 예전처럼 이상한 상상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면 지금 꿈을 꾸는 건가?
두 눈을 깜빡거리자 정신이 느릿하게 돌아오기 시작했다. 귀를 괴롭히던 이명도 사라지고서야 뜨거운 숨을 몰아쉬는 태범의 등을 감싸안을 수 있었다. 그러자 태범이 속삭였다.
“유원아. 눈 감아.”
“.……형.”
태범의 등을 더듬는 손에서 뜨거운 것이 느껴졌다. 태범의 어깨너머로 본 것은 피였다. 지독할 만큼 검붉은 피….
그것을 목도한 유원이 덜덜 떨기 시작했다. 괜찮은 거냐고. 나를 구하려다 대신 다친 거냐고. 차마 물어보지 못한 말이 눈물에 녹아내렸다.
“흐윽, 어떡… 하윽….”
“제발… 눈 감아, 유원아.”
태범은 애절한 목소리로 유원에게 간청했다. 유원은 핏기없는 손으로 자신의 눈물을 닦아주는 태범의 손길에 더욱 오열을 멈추지 못했다.
“유원아. 울지 마.”
“……흐으, 윽.”
“별로 안 아파, 정말이야.”
유원을 감싸 안은 태범의 거친 숨소리가 그의 목덜미에 닿았다. 화려한 꽃향기 사이로 비릿한 피 냄새가 느껴졌다. 유원은 자신을 감싸 안은 태범이 조금씩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결국 자신 때문에 다치고 말았다. 꽉 감은 두 눈 사이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축축하게 젖은 뺨 아래를 쓱 문지르는 다정한 손길은 이미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유원도 파들거리는 입술로 울음을 삼켰다.
“가지 마….”
“흐읍, 흐….”
“나한테서 떠난다고 하지 마, 유원아.”
태범은 지금 상황에서 유원을 붙잡는 것이 비겁하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유원을 붙잡고 싶었다. 온몸이 작렬하는 고통을 꾹꾹 누르며 유원의 뺨을 어루만졌다.
“나… 버리지 마, 유원아.”
태범은 저보다 한참이나 작은 유원의 손을 매달리듯 쥐곤 간절한 얼굴로 속삭였다. 유원만 있으면 이 정도 고통쯤이야 얼마든 견뎌낼 수 있었다.
“흑, 미안, 흐… 미안해요. 안 그럴게요, 흐윽, 이제 안 그래….”
유원은 푸른 잔디를 점점 적시는 피에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저었다. 태범이 죽을까 봐 너무 무서웠다. 형이 잘못될까 봐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형을 사랑하는데, 죽도록 사랑하는데 그동안 외면했던 일이 모두 후회로 다가왔다.
유원은 제 손을 꽉 쥐는 태범의 손을 마주 잡고 눈물을 쏟아냈다. 떠나지 않겠다는 유원의 대답에 태범은 희미한 미소와 함께 눈을 감았다. 유원이 태범을 끌어안고 소리쳤지만 그의 감긴 눈은 떠지지 않았다.
“형님!”
“흐윽, 아저씨, 흐윽… 아저씨 형 좀, 제발, 우리 형 좀 제발 살려주세요…. 흐윽… 으흐읍….”
“빨리 최 박사님 데리, 아니, 형님부터 옮겨! 최 박사님 병원으로 호출시키고 당장 차 대기해!”
“네!”
유원은 아저씨들의 부축을 받으며 태범을 뒤따라 걸음을 빠르게 옮겼다.
“흐윽, 형, 제발 눈 좀 떠봐요…. 흣, 저 여기 있어요.”
유원은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제 손을 놓지 않는 태범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가지 말라는 듯, 가면 안 된다는 듯 자신을 찾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그런 태범을 향해 유원은 절대 가지 않겠다고 몇 번이고 속삭였다.
***
병원에 도착하자 의료진이 입구에서부터 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형은 수술실로 옮겨졌고, 수술은 장장 12시간이나 이어졌다.
피곤한 얼굴로 수술실을 열고 나오는 의사 선생님에 벌떡 일어나 그 앞으로 다가갔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간절한 마음으로 결과를 기다렸다.
“선생님, 형은 어떻게….”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1cm라도 잘못 맞았으면 위험할 뻔했는데 정말 하늘이 도우셨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의사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는 그 순간마저 영겁처럼 느껴졌다. 긴장이 풀려 다리가 휘청거렸다. 세상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눈물을 쏟으며 몇 번이나 감사를 표했다.
기나긴 수술을 마친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형의 상태를 설명했다. 나를 감싸느라 총상을 입은 형은 각각 어깨와 등에 총알 두 개가 박혔다. 특히 폐 바로 옆에 맞은 총상 때문에 출혈도 심했고 파편 제거를 하느라 수술 시간이 더 길어졌다고 했다.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했음에도 심장이 저 아래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럼 형은 언제, 언제 깨어나는 건가요? 생명에 지장은 없는 건가요, 선생님?”
“다행히 위험한 고비는 넘겼지만, 감염과 패혈증 같은 후유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중환자실에서 상태를 지켜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회복하는 거 보고 일반병실로 옮기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수술은 잘 끝났다고 했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본 건 아니라 마음이 쉬이 놓이진 않았다. 여전히 꽉 닫혀있는 수술실 문을 간절하게 보며 벽에 기대 있자 준석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형수님.”
“아저씨….”
아직 갈아입지 못한 준석 아저씨와 내 옷은 온통 형의 피로 검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선 형을 향한 걱정이 가득했다. 준석 아저씨도 내 걱정을 아는지 어깨 위로 카디건을 걸쳐주며 애써 힘 있게 말했다.
“형님, 강하신 분이잖아요.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났고 이제 깨어나실 일만 남았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오늘은 집으로 가셔서 쉬세요.”
“그래도 형 옆에 제가….”
“이러다 형수님까지 쓰러지시면 저 형님 뵐 면목 없습니다.”
“…….”
하루 종일 먹지도 쉬지도 못한 내가 너무 걱정된다는 말에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아까는 너무 놀란 나머지 눈앞이 하얘지는 바람에 정신을 잠깐 잃기도 했었다.
호빵이한테는 이상이 없었지만 여기서 더 있는 것은 무리인 걸 나도 잘 알았다. 또한 여기서 있어봤자 형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없었다. 결국 아저씨의 말대로 하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잘 생각하셨어요. 어차피 중환자실 면회는 정해져 있으니까, 내일 또 오세요. 그동안 여긴 제가 지키고 있겠습니다.”
“네, 그럼… 부탁드릴게요.”
어렵게 발걸음을 떼어내자 태식 아저씨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을 옮기느라 아저씨의 옷 또한 엉망이 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또다시 울컥했다.
“가시죠, 형수님.”
나를 부축하는 아저씨에게 몸을 기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지금까지 어떻게 버티고 있었는지 모를 만큼 순식간에 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숨을 몰아쉬었다.
아직도 손과 옷은 피로 엉망이었다. 형은 이것의 몇 배로 피를 흘렸다. 창백한 형의 얼굴이 눈앞에 생생했다.
나 때문에 형이 다쳤다. 그 죄책감과, 가지 말라고 나를 붙잡던 형의 외침이 뒤섞여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그래도 이제 그만 할래…. 형을 힘들게 하는 건 싫어.”
형이 총에 맞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죽을 만큼 후회했다. 사랑한다고, 정말 형을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모자란 시간에 형을 외면했다. 그것을 또다시 반복하며 내 마음을 숨기고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기적이고 뻔뻔하다고 손가락질해도… 그래도…. 이제는 형의 옆에 있고 싶었다.
죄책감을 이기지 못한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을 감았다.
“죄송해요….”
울음기를 머금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말 죄송합니다….”
형의 어머니께 닿지 못할 용서를 구하며 파들거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