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시발, 진짜! 하지 말라고, 차유원!”
“하지 마, 내, 내 몸에 손대지 마!”
김상철만 보면 그때 끌려갔던 노래방이 떠올라 머리가 아득해졌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겨우 김상철을 밀어내자 그가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바닥에 침을 뱉으며 한 걸음 물러났다.
“시팔….”
서둘러 몸을 돌려 기어가듯 골목길을 빠져나가려는데 뒤에서 악, 하고 성질을 부리던 김상철이 소리쳤다.
“병신 새끼, 지 엄마를 죽인 게 너네 부모인 걸 알고도 그 새끼가 널 만나줄 거 같아?”
“……뭐?”
누가… 누굴 죽였…다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김상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비틀린 입매를 문지른 김상철이 한 걸음씩 다가와 내 앞에 걸음을 멈추었다.
“권태범이라고 했었나? 니가 좋아하는 새끼가.”
김상철의 입에서 나오는 형의 이름에 내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왜… 그 이름이 저런 더러운 곳에서 나오는 거지?
달달 떨리는 손을 꽉 쥐어 감추고 김상철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려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가만 보면 진짜 주제도 모른다니까. 우성 알파에 태호 그룹 후계자랑 너랑 가당키나 하냐?”
김상철이 한마디, 한마디를 내뱉을 때마다 가슴이 후벼 파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다른 사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미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관계라는 건 알고 있었다. 권태범은 어차피 나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기껏해야 아는 동생이라는 위치가 권태범의 인생에서 내가 발을 걸칠 수 있는 전부였다. 나만 정리하면 되는 상황에 그의 이름을 들먹이며 김상철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었다.
“그 사람… 안 좋아해.”
“지랄. 오늘도 거기 다녀온 거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야. 또, 뒤를 따라다닌 건가.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내 뒤를 밟았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오싹해졌다.
나도 모르게 주춤 물러서자 김상철도 한 걸음 다가왔다. 그때 바람을 타고 김상철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느껴졌다.
뭐지…?
어디서 맡아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도 같은 냄새에 미간을 찌푸리자 김상철이 내 어깨를 잡으며 시선을 마주했다.
“너도 참 웃긴 놈이라니까. 권태범, 그 자식이 미쳤냐? 지 에미 죽게 한 사람의 자식을 만나게?”
“아까부터 계속…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김상철의 손길을 밀어내다가 멈칫 몸을 굳히며 고개를 들었다. 형의 어머니…를 죽게 했다니?
“병-신. 진짜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
“뭔데… 누굴… 죽였다고?”
“큭큭. 아, 시발. 존나 웃겨.”
김상철은 허리까지 숙여 끅끅 웃더니 눈물에 젖은 눈가를 닦았다. 실컷 웃은 그는 순간, 입가에 남은 미소를 지워내며 눈을 번뜩거렸다.
“그 새끼가 그래서 너 버린 거잖아. 여태 몰랐냐?”
“아, 아니야… 아니야….”
또다시 세 치 혀를 놀려 나를 괴롭히려는 게 분명한데 어쩐지 가슴에 통증이 일었다.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서는 나를 따라 김상철도 다가오더니 내 어깨를 꽉 눌러 잡았다.
“태호 그룹, 권태범. 그리고 권태범의 친모 이현정. 네 부모가 사고 내서 죽은 피해자 이름이야.”
“아니, 흑, 아니야. 다 거, 거짓말, 흡… 거짓말하지 마!”
귀를 막고 고개를 내저었지만 김상철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깨질 듯한 두통과 함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늘 바빠서 나를 방치했던 부모님, 그리고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린 그들의 자리. 그리고….
“흣…. 대체 나한테… 이러는 이유가 뭐야.”
까맣게 잊고 있었던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새까만 옷을 입고 차갑고, 쓸쓸한 부모님의 장례식장에 갔던 그때를. 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누군가가.
아니야. 그래도 아닐 거야…. 또 나를 괴롭히려고 하는 거짓말일 거야….
“이유는 뭐, 딱히 없고.”
“그럼 왜….”
힘겹게 벽을 짚어 휘청거리는 다리를 힘겹게 버티고 김상철에게 물었다. 대체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길래 이러는지. 그리고 대체 뭘 어떻게 하고 싶은 건지 말이다. 시야를 뿌옇게 가리는 눈물을 닦고 그를 노려보자 김상철이 삐딱하게 고개를 기울이곤 담배를 하나 꺼내 들었다.
“후우… 시발, 빡치잖아. 내가 몇 년 동안 어떻게 기다렸는데 한순간 다른 놈한테 가버리는 게.”
“김상철….”
“너를 좋아하냐고? 시발, 그래. 좋아해 차유원.”
숨을 내뱉으며 그가 말을 할 때마다 눈앞에 하얀 연기가 시야를 가렸다, 사라졌다.
“처음부터 좋아했어. 근데 시발, 니가 나 볼 때마다 덜덜 떠니까. 좆같이 안 하면 쳐다보지도 않으니까!”
충혈된 눈으로 윽박지르는 김상철의 얼굴이 분노로 가득했다. 그러나 나 또한 그 말에 울화가 차오르고 눈앞이 시뻘개졌다. 시커멓게 물든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숨이 터져 나왔다.
“하으…”
“차유원.”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기억이 있다. 오메가 같다며 경멸어린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던 김상철의 눈빛을. 울고불고 소리치고 발끝에 머리를 조아리며 빌어도 그 검은 구렁텅이로 나를 밀어내면 김상철의 단단한 손을.
“이젠 잘해줄 테니까-”
“그래… 네 말대로 나, 형 좋아해.”
“이 씹- 차유원. 내가 한 말 못 들었어?”
가래침을 뱉은 김상철이 내 턱을 쥐었다. 욕설과 함께 턱을 부술 듯 가해지는 힘에 저절로 인상이 써졌다.
“안 믿어.”
더 이상 속지 않을 거다. 김상철의 말 한마디 따위에 또 속고 눈물을 흘리며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않을 거다.
김상철의 손을 잡아당기며 그의 명치를 팔꿈치로 세게 내리쳤다. 그러자 윽-하는 소리와 함께 김상철이 미간을 찌푸리며 숨을 작게 내뱉었다.
“이거 하나만은 고마워.”
“…….”
“너 때문에 형을 만나서 얘기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으니까.”
“아니, 차유원!”
“형 만나서 직접 물어볼 거야.”
***
태범은 아주 오랫동안 유원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주었던 터라 조금은 어려웠지만 시간이 그것을 해결해주었다. 아니, 해결해주었다고 생각했다.
“형님, 요즘은 운동 안 가십니- 윽!”
준석은 눈치 없는 부하직원의 말에 그의 종아리를 발로 걷어찼다. 소란스러움에 태범은 아주 오랜만에 유원을 떠올렸다.
몸은 괜찮아졌으려나.
아파서 약을 먹는다던 할머니의 말도 떠올랐다.
됐다. 이제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태범은 투닥거리는 부하들을 지나치며 갑갑한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담배를 꺼내 달칵 소리와 함께 불을 붙였다. 담배를 빨아들이는 호흡은 그의 복잡한 마음만큼 깊었다.
일에 집중하려 해도, 한번 유원에 대해 생각하니 멈출 수가 없었다. 서류를 넘기는 손이 거칠어졌을 때, 문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안 됩니다- 아니 할머니.]
[자, 잠깐만이면 돼, 응? 잠깐-]
[안 됩니다, 당장 돌아가세요.]
태범이 시선을 돌리자 준석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바로 알아보고 오겠습니다.”
“아니, 들어오시라고 해.”
“형님?”
태범은 조용히 담배를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원의 할머니 목소리가 분명했다.
태범의 말에 조금 당황했던 준석은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 잠시 대화가 이어지더니 이내 준석과 유원의 할머니가 들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때 그 학생이… 자네였는가…?”
“…….”
맥락 없는 질문이었지만 태범은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11년 전, 장례식장에서 할머니와 어린 유원을 마주한 적이 있었다. 그때처럼 모든 것을 알게 된 할머니는 처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혹시 유원이도 알게 된 건가. 눈물 진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유원이에 대한 걱정이었다.
“미안해…. 미안하네. 정말… 이렇게 자네를 볼 면목도 없어…”
“다 지나간 일입니다. 이미 11년 전에 끝에 끝난 일로 더 이상 왈가왈부할 생각 없습니다.”
태범은 그만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뒤에 선 준석을 바라보았다. 준석은 “이만 나가시죠.”하고 할머니의 팔을 잡았다.
하아…. 태범은 피곤한 얼굴을 쓸어내리며 익숙한 손길로 담배를 찾았다. 오늘따라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그는 깜깜해진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이렇게 눈을 감으면 여전히 유원이 떠올랐다. 하얗게 떠는 얼굴로 눈물을 쏟아내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정말 면목이 없지만 한 번만…. 흑, 한 번만 도와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울먹이는 목소리에 태범은 감은 눈을 떴다. 고개를 돌리자 무릎을 굽히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할머니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도움을 청할 사람이 자네밖에 없어….”
겁에 질린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할머니의 애원에 태범은 미간을 찌푸렸다. 기분 나쁜 불안감이 조금씩 똬리를 틀고 심장을 움켜쥐었다. 잠시의 망설임 끝에 입을 열려는 찰나, 할머니가 먼저 말했다.
“우리, 유원이 좀 찾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