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똑똑-
“유원 님, 들어가도 될까요?”
꽉 닫힌 문 너머로 준석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네! 들어오세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앞으로 다가가니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웃으며 내게 말했다.
“준비 다 됐습니다.”
“옷만 갈아입고 나갈게요. 감사합니다.”
오늘은 할머니가 제천으로 내려가는 날이었다. 가게를 정리한 할머니는 몇 년 전 친구분이 먼저 자리를 잡은 제천으로 내려가신다고 했다. 그동안 고생을 많이 했으니 그곳에서 편하게 노후를 보내는 게 할머니에겐 더 좋은 일이었는데 왜 이렇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몰랐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로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버린 거 같아 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
“우리 똥강아지 왔누?”
집로 들어가자 할머니는 조그맣게 짐을 꾸리고 계셨다. 할머니가 주름진 얼굴로 활짝 웃으며 내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우리 강아지, 몸은 괜찮은 겨?”
“이제 다 나았어요. 죄송해요. 더 자주 왔어야 했는데….”
할머니가 내려가기 전까지 매일매일 오겠다고 했는데 권태범과 그 일도 있었고, 그 이후로 아프기도 해서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권태범이 돌아오면 같이 제천으로 내려가기로 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쓰이는 건 사실이었다.
“이 할미는 우리 유원이만 괜찮으면 암것도 상관없어.”
“…할머니.”
“아가, 할미가 말했제? 할미의 행복은 우리 유원이라고.”
할머니의 다정한 목소리에 목이 막혀왔다. ‘저는 진짜 차유원이 아닌데요….’ 나를 진짜 차유원이라고 알고 있는 할머니가 해주는 말이 너무도 따뜻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할머니께 너무 죄송스러웠다.
“아가. 우리 똥강아지.”
“네….”
“행복하게 잘 살아야 뎌.”
여기서 울음을 보이면 할머니께서 걱정하실까 입 안쪽 살을 깨물며 울음을 삼켰다.
“네, 그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
“그래. 우리 유원이 할미가 함 안아보자.”
할머니는 두꺼운 손으로 내 뺨을 하염없이 매만지더니 나를 끌어안았다. 할머니의 품에 안겨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 손길에 결국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할머니는 그런 나를 아무 말도 없이 꽉 안아주었다.
“하, 할머니 저도 같이 간다고 했잖아요!”
할머니와 점심을 먹고 당연한 발걸음으로 뒷좌석에 올라타려는데 할머니가 나를 밀어냈다.
“니는 공부해야지 어딜 따라온다고 그려.”
“오늘 토요일인데요?”
“학생이 주말이 어디 있간? 퍼뜩 들어가서 공부혀.”
“하, 할머니 그래도-”
쓰읍. 하고 단호하게 꾸짖는 표정은 차유원의 몸에 빙의된 첫날 할머니를 마주했을 때 같았다.
“…할머니.”
“다음에 그놈이랑 같이 내려오든가.”
“그놈이라니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할머니가 혹시 뭔가를 알고 계신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어 놨다.
“하고…. 유원아. 할미 눈치가 백 단이여. 아무튼! 어여 들어가. 할미도 더 늦기 전에 내려가야 하니께.”
진짜 눈치가 백 단이신 게 분명했다. 딸꾹질이 터진 나를 향해 할머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놈이 하자는 대로 하지 말고 밀 땐 밀고, 당길 땐 당겨야 하는 겨.”
“하, 할머니….”
이런 얘기를 할머니한테 들을 줄은 몰랐다. 낯부끄러워 얼굴을 손으로 가리자 할머니께서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그놈이 널 보는 눈빛이 아주 꿀이 뚝뚝 떨어지긴 하던디. 좋을 때다….”
진짜 이러다 얼굴이 터져버릴 거 같았다. 내가 울상을 지으며 어쩔 줄을 몰라 하자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내 손에 쌈짓돈을 쥐여 주며 말하셨다.
“할미가 가진 게 이것밖에 없어서 미안허다. 그래도 잘 지내고 있는 거 같아서… 할미가 마음이 놓여.”
“저 돈 안 주셔도 돼요, 이건 할머니 쓰세요.”
“할미가 주는 거니까 받어, 이놈아.”
내가 이걸 받지 않으면 할머니가 서운해하실 것 같았다. 결국 주름진 손을 밀어내지 못하고 할머니가 주는 돈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려 내 새끼. 공부 열심히 하고. 아프지 말고, 항상 건강하게. 알것지?”
“네, 할머니도 건강 조심하시고 저 다음 주에 내려갈 거니까 보고 싶어도 조금만 참으세요.”
이렇게 헤어진다는 사실에 눈물이 차올랐다. 할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입술을 꽉 깨물고 할머니의 손을 맞잡았다.
“사랑해요, 할머니.”
“그려, 할미도 우리 유원이 사랑해.”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탄 차가 조금씩 움직였다. 점점 멀어지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았다. 할머니도 점이 될 때까지 뒤를 돌아보시며 손을 흔들었다.
울적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온 나는 침대에 누워 할머니를 떠올렸다. 차유원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할머니. 그리고 그런 할머니를 사랑하는 차유원.
이들 사이에 자신이라는 오점이 끼어 그들의 인생을 망쳐놓으면 안 됐다. 더 늦기 전에, 되돌리지 못하기 전에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놔야 했다. 복잡한 마음을 모두 비워내고 냉정하게 생각하자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더 정들기 전에 그냥 지우자. 원래대로 돌아가야 해. 그게 모두를 위해 맞는 거야….”
차유원이 돌아왔을 때 그에게 원래 삶을 돌려주는 게 맞았다. 차유원을 위해서, 그리고 이곳의 모든 사람을 위해서 그게 옳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머릿속은 정리되었지만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가야, 미안해…. 내가 정말 미안해….”
손가락을 따라 흐르던 눈물이 베갯잇을 적셨다. 죄책감에 죽을 것 같았다.
***
오늘도 똑같은 시간에 걸려오는 전화를 받은 준석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네, 형님.”
-유원이는.
매일 똑같은 질문이 지겹지도 않은지 태범은 처음 물어보는 사람처럼 질문을 던졌다.
“할머님이랑 헤어지고 난 후 조금 울적하신 모양입니다. 저녁도 죽 몇 숟가락 드신 게 전부이시고 그렇게 좋아하시는 간식에는 손도 안 대셨습니다.”
-그래. 일단은 내버려 두고 늦게라도 뭐 좀 먹고 싶다고 하면 챙겨줘.
“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 그래도 본채 전담 주방장에게 푸딩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한 뒤였다. 준석은 푸딩이 만들질 시간을 대충 계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할머님은 제천 댁에 잘 모셔다드렸고 형식이와 애들이 당분간 제천에 머무를 예정입니다.”
-신경 쓰지 않으시게 해. 최대한 눈에 띄지 말고, 수상한 사람이 접근하면 바로 보고하고.
“네, 알겠습니다.”
-김상철은 어떻게 됐어.
태범의 목소리에 날이 서 있었다. 김상철은 유원이 재학 당시 학교폭력의 주 가해자이자 태범에겐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람이기도 했다. 애써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 태범의 턱 아래가 단단히 굳었다.
“2년 전에 김상철 본인 카드로 울산의 한 편의점 ATM기를 이용해 현금 5만 원을 인출한 내역 말고는 나오는 게 없습니다.”
-출국 이력은.
“그것도 전혀 나오질 않습니다.”
그날 이후 계속해서 김상철의 뒤를 쫓고 있지만 그의 자취를 그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김상철은 유원이 자퇴를 한 지 얼마 지나지지 않아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현재는 무단결석으로 퇴학 처리되었다.
또한 김상철과 함께 몰려다니며 유원을 괴롭힌 놈들에게 들은 바로는 김상철은 유독 유원에게 집착했다고 했다. 김상철이 잠적한 이후로는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유원이 오메가로 발현한 이후부터 집착이 더 심해졌다고….
그리고 그 이후 일어난 일은 태범이 가장 잘 아는 일이었다. 지난 일을 떠올린 태범은 그걸 안 이상 김상철을 가만히 내버려 둘 수 없었다. 유원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혀를 찬 태범이 준석에게 지시했다.
-문 검사하고 저녁 식사 잡아놔.
“알겠습니다.”
일에 진척이 없자, 최후의 수단인 검찰까지 끌어들일 생각인 것 같았다. 준석은 익숙한 얼굴로 메모장에 일정을 적어두며 빼곡하게 적힌 태범의 스케줄 표를 살폈다.
***
“호랑아….”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아기 백호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끼잉, 낑-”
아기 백호는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서럽게도 울고 있었다. 내가 손을 뻗었지만 백호는 내게서 한 걸음 물러서며 고개를 돌렸다.
“아가…!”
나는 그동안 내 꿈에 찾아왔던 아기 백호가 내 배 속에 자리 잡은 콩알이인 것을 깨달았다. 내게서 멀어지는 백호의 뒷모습을 보자 누군가가 내 심장을 움켜쥐는 듯한 고통이 일었다.
“흑, 아가….”
가슴을 붙잡으며 숨을 헐떡이는 사이, 백호는 내게서 한 발자국 더 멀어져 있었다.
“가, 흐으, 가지 마.”
점점 멀어져가는 아기 백호를 부르며 나는 한없이 눈물을 쏟았다. 자꾸만 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보는 아기 백호의 눈망울이 떠올랐다. 내가 아이를 포기하기로 마음먹은 사실을 아이가 모를 리가 없었다. 그 생각을 하자 심장을 옥죄이던 통증이 더 심하게 일었다. 아기에게 너무 미안했다.
“미안해…. 흑, 미안해 아가야….”
그 순간이었다. 멀어져가는 아기 백호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며 금방이라도 백호가 사라질 거 같았다. 심장이 아래로 쿵, 하고 떨어졌다. 손도 덜덜 떨리고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