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빙의했는데 임신부터 하면 어떡해요 (6)화 (6/136)

#6

“···마이써요!”

긴장했던 것도 잠시,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조금 뜨겁긴 했지만 탱글탱글한 새우의 식감도 좋았고 바삭한 튀김과 소스도 잘 어울렸다.

한참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 권태범이 그런 나를 신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일을 그만하려는 건지 아까 내려놓은 태블릿 화면이 아직도 깜깜했다. 머쓱한 얼굴로 입에 있는 것을 삼킨 나는 다시 크림 새우를 푹 찔러 권태범에게 건네며 말했다.

“태범 씨도 드셔 보세요. 엄청 맛있어요···.”

“······.”

“맛, 맛있는데···?”

나만 혼자 먹는 게 조금 민망해서 권태범에게 새우를 건넸다. 그러자 입술을 꾹 다물고 있던 권태범이 고개만 내밀어 입을 벌렸다.

먹···여 달라는 건가?

참나, 지는 손이 없어, 발이 없어. 하고 우스운 생각을 하던 것도 잠시.

혹시 너무 뜨거워서 권태범이 혀라도 델까, 연기가 폴폴 나는 크림 새우에 입바람을 불어 적당히 식혔다.

“자요.”

“···맛있네.”

내가 건넨 크림 새우를 받아먹은 권태범이 기분 좋은 얼굴을 하며 말했다.

어떻게 입가에 하나도 안 묻히고 먹는지. 주인공 버프를 받으면 모든 게 완벽한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또 만나게 됐네···. 그놈의 지옥에서 온 허기만 아니었으면 만날 일은 없었을 텐데. 아니야, 아직 두 번밖에 안 만났으니까 권태범과 멀어지는 데 시간은 충분해.’

겨우 두 번밖에 안 만났는데 무슨 감정이 생겼겠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더 이상 만나지만 않는다면 이대로 그의 기억 속에서 내가 사라지는 것도 한순간일 것이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일단, 집에 가서 차유원이 뭐 하던 사람인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권태범에게서 최대한 멀리 도망가자.

응응. 그렇게 하면 돼.

혼자 고개까지 열심히 끄덕이다 권태범과 눈이 마주쳤다.

“차유원, 이리 와봐.”

권태범이 손을 까닥이며 내게 말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그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천천히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엄지손가락으로 내 입술 끝에 묻은 소스를 훔쳐냈다.

“아···, 제, 제가 닦아도 되는데···.”

얼굴에 묻은 줄도 모르고 먹었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 서둘러 물러나려는데 내 입술을 꽉 누른 권태범의 손길에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권태범이 입매를 슬쩍 비틀어 웃고는 내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자꾸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거 같아서 하는 말인데.”

“···으으?”

권태범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입술이 화상을 입은 듯 화끈거렸다. 슬쩍 고개를 돌리려 하자 그가 손에 힘을 주어 내 얼굴을 조금 더 세게 잡았다.

“이미 늦었어, 유원아.”

그렇게 말하며 활짝 웃는 권태범의 얼굴이 너무 무서웠다. 내가 자기를 무서워한다는 거나, 도망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권태범은 다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흐··· 끄윽.”

너무 놀란 마음에 딸꾹질이 터져 나왔다. 딸꾹질을 할 때마다 몸이 들썩거려 나도 모르게 입술에 닿은 권태범의 손가락을 입에 쏙 넣고 말았다.

“골 때리네.”

“끅···. 재, 재성해여···.”

“입도 작으면서 뭘 자꾸 더 먹겠다고.”

권태범이 혀를 꾹꾹 누르는 바람에 입 안에 침이 고였다. 힘겹게 침을 꼴깍이며 권태범을 올려다보자 그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으··· 흐윽···.”

이러다 숨이 넘어갈 거 같았다. 나는 서둘러 권태범의 손목을 양손으로 붙잡고 애원했다.

“태, 태벙 씨···, 저, 히, 힘드허여···.”

권태범은 그런 내 손을 내려다보더니 입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 그의 손을 따라 은색 실이 가늘게 이어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얼른 테이블에서 ‘홍백원’이라는 글자가 박힌 휴지를 집어 들어 그에게 건넸다. 권태범은 휴지를 한 번 쓱 보더니 재킷 안쪽에서 손수건을 꺼내 내 침으로 범벅된 손을 닦았다. 민망해진 손을 거두어 괜히 입 주변을 티슈로 닦았다.

“딸꾹질. 그쳤네.”

“어···. 가, 감사합니다.”

하나도 안 감사했다. 딸꾹질이야 숨 한 번 참으면 되는데 굳이 이런 방식이 아니어도 됐다.

역시 권태범은 너무 위험한 남자였다. 하루빨리 도망갈 방법을 생각해야 할 거 같았다. 천천히 음식을 모두 비울 때까지 내 머릿속엔 오로지 그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

“집에 꿀단지라도 숨겨놨어?”

“네?”

“별거 없지 않았었나?”

조용히 혼잣말하듯 웅얼거리는 탓에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자 뭘 그렇게 보냐며 권태범이 내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아!”

씨··· 이 아저씨가! 나는 뾰족한 눈으로 권태범을 바라보았다. 아저씨긴 아저씨인데 환장하게 섹시한 아저씨였다. 한 손으로 핸들을 쥐고 운전하는 모습에 침이 저절로 꿀꺽 넘어갔다.

“더 먹고 싶어?”

“네?”

“나 보는 시선이 끈적하길래 이번엔 내 차례인 줄 알았지.”

“무, 무슨···!”

피식 웃은 권태범은 빨간색 신호에 차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권태범과 두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건 그렇고, 차유원.”

“네?”

“내일 뭐 해.”

“내일요?”

그건 왜 묻지···? ‘혹시 모르니까 그쪽한테서 도망갈 계획을 짤 예정입니다.’라고 말하면 영영 집에 돌아가지 못하겠지?

나는 꽉 잠긴 문고리를 바라보며 머리를 굴렸다.

“그냥···. 집에 있을 예정인데요.”

“그럼 내일 저녁에 데리러 갈 테니까 준비하고 있어.”

“왜요···?”

내일은 왜 또···? 내가 정말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권태범이 고개를 힐끗 돌리며 말했다.

“니. 가. 가라고 해도 절대 안 떨어지겠다면서.”

안 떨어지겠다는 말은 안 했는데. 안 가겠다고 한 거지. 어떻게······. 이 새끼 진짜 나 좋아하나 봐.

저 좋을 대로 기억하는 권태범의 모습에 나는 조금 심각해졌다. 예상대로 나는 너무 귀엽고 사랑스럽고 성격까지 너무도 완벽해서 권태범이 결국 나를 좋아하게 된 거 같았다.

어쩐지, 그렇게 불안하더니···. 나는 짙은 한숨을 내쉬며 권태범에게 말했다.

“저···, 태범 씨, 정말 죄송한데요. 내일은 안 될 거 같아요.”

“왜.”

“제가 그, 고등학교를 안 나와서요. 고, 공부해야···.”

“왜.”

공부를 왜 하냐니···? 공부를 왜 안 하냐고 묻는 말은 들어봤어도 이런 말은 처음이었다.

“그야 고, 공부를 해야 좋은 대학에 가니까···?”

“왜.”

나 이거 알아. 옛날에 키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했을 때도 이런 적 있었는데. 7살 이하 꼬맹이들이 많이 하는 ‘왜’ 놀이 그거 맞지, 지금?

‘왜’를 반복하는 권태범의 말에 7살 꼬맹이들이 떠올랐다.

“그래야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좋은 사람도 만나서 결혼하죠.”

권태범이 또 왜라고 묻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서 줄줄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가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왜?”

“네···? 왜냐뇨?”

“이미 만났잖아.”

“···네?”

그거 설마 너 아니지? 그런 내 생각에 뒤통수를 치듯 그가 되물었다.

“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지?”

시발···. 진짜 못 들은 척 그냥 차 문 열고 뛰쳐나가고 싶다. 정말 간절하게 그러고 싶다···.

창문 밖으로 쌩쌩 달리는 차들을 바라보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어릴 때부터 바쁜 부모님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성격이 소심해서 친구도 몇 없었고. 어린 시절 나는 항상 외로웠다. 아니, 성인이 되고 나서도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그렇게 너무 오랜 시간을 혼자 지내서 그런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알콩달콩 행복하게 평생을 살고 싶었다.

“태, 태범 씨는 남자잖아요···. 저, 저는 애기가 많은 게 좋은데···.”

기억도 나지 않는 오래전부터 남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으니 아이는 핑계였다. 아기는 좋아하긴 하지만 나도, 내 미래의 남편도 낳을 수 없으니 입양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있었다.

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고개를 젓자 권태범이 한쪽 눈썹을 치켜뜨며 말했다.

“차유원, 네가 오메가인데 무슨 걱정이야.”

“네?”

오메가···? 그게 무슨 뭐지?

“오메가···? 아, 혹시 오메가 쓰리요···?”

오메가라는 단어는 오메가 쓰리밖에 모르는데. 또 다른 말이 있는 건가?

내가 눈을 깜빡이며 묻자 권태범이 미간을 구겼다. 주름 잡힌 이마에 지레 겁이 나 눈동자를 굴렸다.

“저번부터 왜 자꾸 이상한 말을 하는 거야.”

권태범이 뭔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나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너 설마···.”

이상하다는 듯 찡그린 모습에 머릿속에 위험 신호가 떠올랐다.

위험했다. 이러다간 내가 진짜 차유원이 아니라는 걸 들키겠어. 이 소설 속이 원래 세상과 뭔가 다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일단은 집에 가서 찾아보자. 나는 서둘러 억지 웃음을 터뜨렸다.

“농담이었어요, 하하, 노, 농담이요···.”

변명에도 권태범은 나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지만, 이내 파란불로 바뀌는 신호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좌불안석 상태로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만큼 전속력으로 뛰었다. 혹시나 뒤따라오진 않을까,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며 차유원의 집에 도착했다. 서둘러 운동화를 벗어 던지고 현관문을 지나 방문을 잠갔다.

“노, 노트북···.”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뭐라도 검색하기 위해 노트북이나 컴퓨터가 있을 만한 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엉망인 책상 위를 살피고 혹시 몰라 이불 안도 들춰보았다. 그럼에도 나오지 않는 노트북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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