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8/23)

# 17. 아를의 태양과 광풍에 이지러진 호수의 색

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마음을 정리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한 점의 여백이. 하지만 

마음을 수습하기에 빠리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 녀석과의 추억으로 빈틈없이 꽉 채워진 도

시에선 숨 쉬는 것조차도 버거운 일이었다. 때마침 스키방학이 시작되고 아를에 있는 친척

집에 초대받게 된 것은 한동안 제멋대로 날뛰던 인생을 길들일 기회가 주어진 것이나 마찬

가지였다. 아를이 쥴리앙의 형, 미쉘이 사는 곳이라 해서 일부러 이 기회를 피할 이유는 없

었다. 내가 찾아가지 않는 이상 그쪽과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다. 혹여나 운명의 장난으로 

마주친다 해도 내 쪽에서 무시하면 그만인 일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할 자신이 있었다.

다음날 나는 아를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다. 빠리에서 아를로 바로 가는 기차 편은 

없었기에 아비뇽 행 *떼제베TGV PSE를 탔다. 레일 위를 미끄러지듯 소리 없이 달리는 떼

제베 열차는 빨랐다. 너무 빨라서 마치 먼 과거로부터 삽시간에 현실로 빠져나오는 기분

이 들게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순식간에 과거로 변해버리는 잔상들을 응시하며 생각했

다. 가슴에 새겨진 내 상처도 그렇게 덧없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잔영처럼 지워져 버렸으

면 좋겠다고. 그것이 조금 슬픈 일일지라도 지우지 않으려 애쓰는 것보단 훨씬 현명한 바

람이었다. 스르르 눈이 감겨왔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뭔가가 달라져 있겠지. 그래, 난 그런 

맹목적인 바람을 안고 빠리를 떠나는 것이다. 더 이상은 지나버린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내가 바라는 대로 삶을 이끌어 가기 위해서. 예전의 나처럼.

아비뇽 역에서 할머니 댁에 곧 도착할 것이라고 미리 전화를 해두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바로 아를 행 기차에 올라탔다. 아를은 빈센트 반 고흐가 잠시 머무르면서 대표작 ‘해바라

기’와 ‘별이 빛나는 밤에’, ‘야간 카페’ 등을 완성 시켜 유명해진 곳이었다. 또한, 기원전의 

로마의 원형 극장이나 중세 교회 등 그 땅이 지나온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그것만

으로도 존재가치를 가진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내게 있어 그런 것들은 아무런 의미

가 없었다. 빠리가 아닌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었으니까. 쥴리앙을 깨끗이 지울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그렇게 조바심을 내면서 바쁘게 도착한 아를이었다. 같은 프랑스였지만 빠리와는 상당히 

다른 곳이었다. 빠리는 서울에 비하면 상당히 따뜻한 편이었지만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었

다. 게다가 온종일 낮게 깔린 먹구름 아래에서 조금만 더 혼자 남겨 있었다면 그 우울함에 

압사 당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긋지긋한 비. 틈만 나면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비

는 내 기억의 상흔을 더욱 곪게 했다. 하지만 아를은 달랐다.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

저 느낀 것은 겨울이라기엔 너무나 강렬한 태양이었다. 그리고 그 태양과 어울리지 않는 

거센 바람. 고흐가 어째서 이곳에서 지내면서 요동치는 별빛 하늘을 그렸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나는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태양과 함

께 마시는 맑은 바람은 그동안 가녀리게 헐떡이던 숨을 단번에 뚫어주는 것 같았다. 조급

했던 마음이 한결 가라앉았다.

역의 광장에서 나와 곧바로 택시를 타려고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무심코 꺼내든 아를 

지도를 보니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론 강이 있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론 강의 

물줄기를 따라 조금 걸었다. 아를은 정말 고풍스러운 도시였다. 수천 년의 과거를 고스란

히 담아낸 로마형의 마을도, 가득 차있는 남프랑스 특유의 붉은색 페인트칠을 한 건물들

도 모두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그 매력 때문인지 작은 도시임에도 불

구하고 관광객처럼 보이는 자들이 속속들이 눈에 띄었다.

아득히 계속 이어질 것만 같던 걸음이 문득 멈추었다. 화원의 꽃들이 나를 붙잡은 것이

다. 그러고 보니 이리저리 정신을 놓고 있던 차에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빈손으로 가기 

뭐해서 나는 꽃을 사가기로 했다. 프로방스의 온화한 날씨 때문인지 꽃들도 더욱 생기 있

어 보였다. 그중 유독 흰 장미꽃이 탐스럽게 피어올라 있어서 그것을 골랐다. 시골스러운 

투박한 포장지에 감싸진 백색의 꽃다발을 들고 시계를 보니 제법 시간이 흘러있었다. 택시

를 잡아 그을린 피부에 인심 좋게 생긴 택시운전기사에게 주소가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택시의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아를의 풍경은 무척 평화로워보였지만 그것만은 아니었

다. 눈에 익지 않은 붉은 건물들이 빼곡하게 들어선 좁은 골목에 샛노랗게 내리쬐는 태양, 

그리고 바람. 그것들은 내 속에 숨겨져 있는 광적본능을 표출시킬 것 같았다. 고흐의 그림

처럼.

택시는 작은 도시인 아를 중에서도 남쪽의 외곽까지 내려가서야 겨우 멈춰 섰다. 쪽지에 

적혀있는 주소는 하얀 철제 울타리와 그 너머로 정원과 벽돌색 지붕의 2층 주택이 자리 잡

은 곳이었다. 내가 문 앞에 다가서자 콜리종의 개 한 마리가 다가와 호기심 어린 눈빛을 내

보였다. 나는 그 개를 향해 한 번 웃어 보이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벨이 울리고 곧 한 여자

가 살박살박 조심성 있게 달려 나왔다. 삼십여 년 전, 자칫하다 한국의 저수지에서 목숨을 

잃을 뻔한 숙부의 아내, 마르트였다.

“지노, 이제야 왔군요! 생각보다 늦어서 걱정했어요. 마중 나가지 못해 미안해요.”

“아뇨, 그래도 쉽게 찾아왔는걸요. 그동안 잘 지내셨죠?”

“그럼요.”

숙모지만 나보다 어린 마르트는 반갑게 포옹과 비쥬를 나누며 나를 반겼다. 몇 년 전 한국

으로 신혼여행을 왔을 때 처음 본 뒤 두 번째 보는 것이었다. 이전에도 생각했지만 그녀는 

서양인 치고 상당히 아담한 게 인상도 동양적인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보고 있으

면 어딘가 모르게 할머니와 이미지가 겹쳐졌다.

“이거 별거 아니지만 받으세요.”

“어머, 백장미네. 예쁘기도 해라. 정말 고마워요!”

그녀는 손에 받아든 하얀 장미보다 아름답게 미소지어보였다. 안색이 좋아 보이진 않았지

만 얼굴은 예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다. 그녀를 따라 정원에 들어서자 잘 가꾸어진 난대

림 식물들이 공간을 풍요롭게 하고 있었다. 한쪽엔 워낙 태양이 강렬해서인지 겨울인데도 

수많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 둘레엔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돌담이 아슬아슬하게 쌓아

져 있었다. 작은할머니의 솜씨 같았다. 나는 앞서 걷는 마르트의 손에 안겨진 하얀 장미꽃

다발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선물을 잘못 고른 것 같다. 물론 내가 사온 하얀 장미는 화단

의 어느 꽃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웠지만 저 살아있는 꽃들과는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아

름다움이란 그런 것이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찬란한 꽃봉오리의 순간적인 빛깔에서가 아

니라 소박하더라도 풍파에 스러지지 않고 땅에 옹골차게 뿌리를 심고 지력을 빨아들이고 

있다는 것 자체, 그 생의 의지와 더욱 밀접한 것이다.

“이지도르- 이리 나와보세요, 지노가 왔어요-!”

“아, 지금 가~!”

그 소리에 한쪽에서 소란스럽게 음식을 준비하는 소리가 일순 멈추더니 숙부인 이지도르 

루베가 앞치마로 손에 남겨진 물기를 닦으며 달려왔다.

“지노!”

“안녕하셨어요? 루베 숙부.”

그는 반가운 웃음과 함께 나를 뼈가 으스러질 듯 세게 껴안았다.

“이게 얼마만이야? 정말 오랜만이다!”

“하하, 2년도 채 안 됐잖아요. 잘 지내셨죠?”

“음, 그런가? 그러고 보니 내가 마르트와 결혼한 지 햇수로 3년이 지났군. 감사인사가 늦

었지만 신혼여행 갔을 땐 덕분에 편하게 한국의 멋진 곳들을 둘러볼 수 있었어. 고마워.”

“별말씀을요. 그때만 해도 프랑스어가 많이 서툴러서 제 설명 들으면서 많이 혼돈스러우

셨을 텐데.”

내가 한국에서 유학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숙부는 마르트와 결혼했고 한국으로 신혼여

행을 왔었다. 가족 중에는 그나마 내가 프랑스어가 가능했기 때문에 직접 여행지 코스나 

위치 등을 알려줘야 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프랑스어가 지금보다도 능숙치 않았던 데다

가 그의 강한 남부 프랑스 억양을 알아듣기가 힘들어서 굉장히 애를 먹었었다. 

“그러고 보니 이젠 프랑스어 실력이 제법 현지인다워졌는걸? 나보다도 빠리의 표준어 구

사를 잘하다니, 역시 지노는 대단해.”

그는 대견해하듯 등을 툭툭 쳤다.

“그리고 이전부터 거슬렸는데 숙부tonton라니,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는데. 그냥 이지도

르라고 불러.”

“그럴게요. 그런데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선 어디 계세요?”

“두 분이서 같이 제과점에서 케이크를 직접 골라 오시겠다며 나가셨어.”

“아아. 여전히 사이가 좋으시네요.”

“뭐, 요즘은 그게 보기 좋은 것만은 아니야. 예전엔 아버지나 어머니 모두 병원 일로 바쁘

셔서 그랬는지 몰라도 다투시거나 하시는 일은 거의 없었거든. 그런데 두 분 다 병원 정리

하시고 나선 종종 큰소리도 내시더라고.”

“예?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안 좋은 일은 무슨. 그냥 서로 쓸데없는 일로 꼬투리잡고 늘어지시는 거야. 맨 처음엔 나

도 왜 그러시나 했는데 지금 보니까 그게 아마 일종의 지루함을 해소하는 방식인 것 같아. 

얼마 전에 나까지 직장 때문에 마르세유로 이사를 했으니 더욱 적적하시겠지.”

“하하. 멋진데요.”

“그나저나 마르트가 너 온다는 소식을 깜빡하고 말씀 안 드렸다가 오늘에서야 네 전화 받

고 말씀드렸더니 얼마나 혼났는지 알아? 하여튼 어머니든 아버지든 널 특별히 예뻐하시

는 것 같더라. 아무튼 잘 왔어. 피곤하지? 우선 내가 2층의 손님방을 안내해 줄 테니 저녁

식사가 준비되면 부르기 전까진 편히 쉬고 있어.”

“네, 고맙습니다.”

“아아, 잠깐 마르트! 부엌에 들어가지 마! 오늘은 내가 다 할 거니까. 무리하다가 우리 로

렌에게 지장이라도 주면 어떻게 해.”

내 어깨에 손을 얹고 2층 계단을 올라가려던 숙부 이지도르는 부엌에서 앞치마를 두르려

는 마르트를 보며 나무랐다. 그런데 로렌이라니?

“제발, 이지도르. 유난떨지 좀 말아요. 이제 겨우 3개월이잖아요. 게다가 아무 활동도 안

하고 있으면 태아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거 몰라요? 오랜만에 온 당신 조카에게 

내줄 요리를 준비하는 걸 조금이라도 돕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마르트는 질렸다는 듯 양손을 허리춤에 걸친 채 불평을 늘어놓았다.

“…저, 마르트, 아이를 가진 거예요?”

“맞아. 그녀와 나의 사랑스런 로렌이 뱃속에서 자라고 있지.”

마르트에게 물었는데 이지도르 숙부는 그 질문을 가로채며 자랑스럽다는 듯이 어깨를 폈

다. 벌써 이름을 정한 건지 그는 자꾸 아이를 로렌이라고 불렀다. 숙부는 한쪽 팔을 내 어

깨에 두른 채 새끼손가락을 펴보이며 소곤거렸다.

“로렌은 이제 겨우 11주째라 아직 요만할 거야. 요렇게 작은 게 사람이 된다니, 정말 신기

하지 않아?”

마르트가 말했다.

“아이 참, 아직 딸인지 아들인지도 모르잖아요, 이지도르. 그렇게 매번 딸이라고 생각하

면서 로렌이라고 부르다가 아들이 태어나도 로렌이라고 부를 거예요?”

“아냐, 당신 뱃속에 자라고 있는 로렌은 분명 딸이야! 내가 그날 태몽을 꿨는데 분명 우거

진 계수나무 한 그루였단 말이야. 신혼여행 때 갔던 서울의 궁 이름이……경복궁이던가? 

아무튼 그 곳에서 봤던 그 계수나무였어. 어머니께서 말씀하시길 한국에선 일반적으로 식

물에 대한 태몽은 여자아이고, 동물에 대한 태몽은 남자아이라고 하셨다구!”

“그 당신의 알 수 없는 태몽이 맞다면 좋겠지만, 제가 태어났을 때 태몽은 하얀 망아지였

다고 저희 부모님께서 말씀하셨어요.”

마르트는 어린애를 놀리는 것처럼 짓궂게 들렸다.

“어디 두고 보라지. 로렌이 태어나면 내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 밝혀질 테니.”

“네네, 기대하죠-”

“흥, 가자, 지노!”

이지도르는 내 등을 떠밀며 2층으로 올라갔고 마르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싱긋 미소를 

지으며 윙크를 했다. 그 미소는 내 얼굴에도 비슷한 표정을 번지게 했다. 숙부는 올라가면

서도 마르트 숙모에게 절대 부엌에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둘의 애정 가득한 

대화에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가족’이라는 따스한 관계를 떠올릴 수 있었다. 가족이

란 이런 거였다.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고, 투정부릴 수 있는.

“지노야, 이리 내려와 봐. 부모님 오셨어.”

“아, 네에-!”

오는 길이 곤했는지 포근한 가정집의 온기에 잠이 들려던 차에 숙부가 부르는 소리가 들

렸다. 나는 곧장 몸을 일으키고 아래로 내려갔다.

“어이구- 진호야!”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작은할머니, 작은할아버지.”

할머니는 어찌나 반가우셨던지 보자마자 한국말로 나를 부르시며 부둥켜안으셨다. 할아

버지께선 프랑스인이지만 할머니와 오래 사시다 보니 내 한국어로 된 인사도 알아들으시

곤 미소로 화답해주셨다. 사실 할머니라고 해봤자 나의 외할아버지와는 거의 부녀 뻘의 나

이 차이가 나서 그리 나이 많으신 분은 아니셨다. 나의 어머니와도 나이차이가 크지 않은

데다가 이지도르 숙부도 나의 친형보다 세 살 더 많은 정도였기 때문에 할머니라기 보단 

큰이모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잘 지냈고말고. 어디 보자- 이 녀석, 커갈수록 지 할애비를 꼭 닮아가는 구나. 꼭 

계집애처럼 곱상하게 생겨서는.”

“제가 외할아버지를 닮았다고요?”

“그럼- 우리 오라버니 젊었을 때를 똑 빼닮았어. 그쵸, 여보?”

“…음, 그런 것 같군.”

할아버지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셨다. 나의 외할아버지에 대해선 사실 많은 기억

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동생

이 나를 보면서 고인이 된 할아버지를 떠올린다는 건 묘한 기분이었다. 할머니께서 말씀하

셨다.

“앨범에 우리 오라버니 젊었을 적 사진이 있는데, 저녁 먹고 같이 보자꾸나.”

“그래요, 저도 궁금하네요.”

“정말 잘 왔어, 우리 예쁜 손자…. 근데 왜 이렇게 마른 거니! 몇 년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에도 마르긴 했었지만 이렇게 피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마냥 곯진 않았잖아!”

“아…,”

“유학생활이 힘든가 보구나. 안 되겠다. 내가 신경 써서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줄 테니 여

기서 잠깐이라도 있으면서 체력 좀 보충하고 가렴.”

나는 할머니의 의지가 굳게 새겨진 눈동자를 보면서 뇌리를 스치는 불안감을 느꼈다. 잘

못하다간 일주일 내내 배탈이 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절로 들었다. 초대받은 사람으로

서 음식을 남긴다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는 게 보통의 프랑스의 초대문화이기 때문이다. 

사실 집에 올 때부터 맛있는 음식냄새를 맡긴 했지만 식당에 들어서자 그야말로 침이 고

이지 않고서는 못 배길 정도로 맛있는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커다란 프로방스 식 양고

기 로스와 옆에 놓인 포도주, 갓 구운 피자와 루이으rouille를 바른 빵, 해물 파스타 등 프

로방스 전통 음식이 한상 가득 차려졌다. 냄비에선 프로방스의 대표적인 음식인 부이야베

스bouillabaisse가 한가득 준비되어 있었고, 한쪽에는 프랑스에선 후식으로 빼놓을 수 없

는 다양한 종류의 치즈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걸 과연 다섯 명이서 다 먹을 수 있을까 싶

은 엄청난 양이었다. 이 음식들은 거의 다 마르세유의 유명한 식당에서 일하고 있는 이지

도르 숙부가 만든 거라고 했다. 직업이 요리사다 보니 평소엔 집에서도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데 내가 온다기에 하루 휴가를 내고 직접 팔을 걷어붙이신 것이다. 프로방스 지방의 

전통음식들을 요리사의 손을 통해 맛본다는 것은 물론 기쁜 일이었지만, 솔직히 말해 그것

보다 더 반가웠던 음식은 바로 잡채였다. 할머니께선 그 음식에 또렷하게 박힌 내 시선을 

발견하시곤 흐뭇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한국 음식을 먹고 싶어 할 것 같아서 만들어 봤다. 입에 맞았으면 좋겠구나.”

“고마워요, 할머니. 정말 먹고 싶었던 건데. 잘 먹을게요.”

“내가 내일 한국 음식을 따로 준비하자고 했더니, 그건 그거고 첫날엔 반드시 한국 음식 

하나라도 내놔야 진짜 가족의 집에 놀러 온 것처럼 느낄 거라며 고집을 피우시더라구. 사

실 프랑스 음식과는 잘 안 어울릴 텐데.”

마르트 숙모가 어쩔 수 없다는 웃음을 지어보였다. 할머니께서 꺼낸 커다란 케이크 위엔 

초콜릿 시럽으로「Bienvenue, 진호!」라고 쓰여 있었다. 그걸 보시더니 이지도르숙부가 

말씀하셨다.

“이 한글이 지노 네 이름이니? 어머니, 이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제빵사 뱅상한테 한글로 글씨를 써서 요대-로 써달라고 부탁했지. 거 참, 되게도 못 쓰더

구나.”

할머니께선 야무져 보이는 손으로 직접 뱅상이라는 사람의 어눌한 손놀림을 따라하셨다.

“이 글씨를 예쁘게 써야 한다고 종이 위에 몇 번이나 연습을 시키더구나. 하도 까탈을 부

려서 케이크 사오는 것도 늦은 거야. 글씨가 조금만 비뚤어져도 다시 하라고 성질을 부리

더라니까.”

할머니의 남편이자 내 작은 할아버지이신 르네 루베는 할머니께 또 영 못마땅하다는 듯

이 팔짱을 끼시며 핀잔을 주었다.

“아니, 여보. 처음으로 오라버니의 손주가 우리 집으로 찾아왔는데, 케이크 위에 자기 한

글 이름이 엉망으로 써져 있는 걸 보면 기분이 좋겠어요?”

“그럼 한글이 아니라 프랑스어로 대신 음만 따서 적으면 되잖아. 지-노, 이렇게 말야.”

“한국 사람이름을 한글로 적어야지, 프랑스어로 적으면 자기 이름 같겠어요? 또 타국에 

와서 보는 한글로 된 이름은 감회가 새롭다구요. 당신은 뭘 알지도 못하면서 만날 나만 잘

못 했다지.”

“자자, 그만들 다투시고 음식이나 드십시다- 지노를 위해 애써 준비한 음식이 다 식겠어

요.”

이지도르 숙부가 이러다간 끝이 없겠다고 생각하셨는지 할아버지께서 또 뭐라고 반박하

시려고 입을 여는 순간 말을 가로막고 상황을 정리했다. 이지도르 숙부가 개인 접시에 음

식을 나눠주는 동안 할아버지께선 손수 모든 가족들의 와인 잔에 포도주를 채워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지노야, 이 포도주가 어떤 술인 줄 아니?”

“네…?”

“이 술은 내가 해영과 결혼했을 때 영근 포도로 가족끼리 빚었던 술이야. 나의 형이 론 지

방에서 가업을 이어받아 작은 포도 농장을 경영하고 있거든. …우리 집안은 경조사가 생겼

을 때 가족끼리 모여 직접 와인을 담그는 가풍을 가지고 있단다.”

“……그거 멋지네요. 정말.”

“그래. 이건 겉보기에만 멋진 게 아니야. 이 전통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 그날의 기

억을 담아 술을 담그고 남은 인생동안 살면서 천천히 삶과 함께 익어가는 기억을 맛본다

는 점에서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결혼기념으로 빚은 이 포도주는 우리 가족의 역사

를 의미하기도 하지. 그래서인지 맛이 아주 좋단다.”

“그러고 보니 벌써 당신과 함께 한지 36년이나 흘렀네요…….”

할머니께선 포도주가 담긴 잔을 아련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목소리에 섞인 깊

은 숨결엔 그간 쌓인 세월의 기억과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할아버지

와의 결혼은 인생의 큰 전환점이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대신 조국과 자신

의 가족에 대한 향수를 평생 동안 지고 가야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으니. 그녀의 전환점과 

함께 익어가기 시작한 포도주를 마시는 기분은 분명 색다르리라 생각했다. 어렸을 땐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는 참으로 용기 있는 여자였던 것 같다.

“왜, 36년이나 나 같은 남자에게 묶여 산 게 후회돼?”

눈가가 촉촉이 젖어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에 혀를 차며 말씀하셨다.

“어디 후회뿐이겠어요? 일자리까지 같아서 만날 얼굴붙이고 살았더니 이젠 지겨워 죽겠

어. 나도 지금부터라도 좀 가꾸고 다니면 젊은 남자친구도 사귈 수 있을 텐데.”

“얼씨구, 나니까 데리고 살지 누가 당신 같이 고집 센 여자랑 사귄대? 능력 있음 어디 한 

번 해보지그래?”

“흥! 당신 때문에 드세진 거지 난 어릴 때부터 하도 순하고 착해서 어른들이 걱정할 정도

였다고요!”

두 노부부의 말싸움은 진지해 보였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자식 내외와 어린 외손자

의 눈빛엔 어딘가 모르게 동경이 배어있었다. 저런 대화야말로 30여 년 동안 쌓은 믿음으

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우리는 식전 기도를 올렸다. 할아버지의 가족 역

시 프랑스의 여느 다를 바 없는 천주교집안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께선 오늘 내가 온 것

을 환영하는 말과 함께 오늘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한 것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했

다. 그리고 이런 말로 기도의 마지막을 맺었다.

“……혈연 상으론 먼 친척에 불과하지만 지노가 이곳에서 지내면서 저 멀리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것처럼 마음의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소서. 아멘.”

그 기도가 끝나자 나는 천주교 신자도 아니면서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아멘이라고 말해버

렸다. 조금 숙연해진 분위기로 기도를 마치고 식사를 막 하려는데 마르트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갑자기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참, 지노가 온 것을 환영하기 위해 건배 한 번 해야죠. 우리, 지노의 훌륭한 유학 생활

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건배해요!”

“좋아, 그러자구.”

행복으로 충만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36년이라는 이 가족의 역사가 담긴 와인을 들며 외

쳤다.

“자, 우리의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가족, 지노의 밝은 미래를 위하여!”

“상떼sante!”

이지도르 숙부의 요리는 정말 훌륭했다. 평소에도 과식을 하지 않는데다 최근 입이 짧아

져서 잘 먹을 수 있을지 내심 걱정했지만, 어찌나 맛이 있는지 배가 부른데도 자꾸 이것저

것 집어먹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잘 먹고 있는데도 더 먹어야 한다며 계속 음식을 한가득 

퍼주셨다. 결국 나는 아까 예상했던 대로 목구멍 밖으로 넘어올 정도로 음식을 집어넣어

야 했다. 

거나하게 식사를 마친 후 설거지를 도우려 했으나 다들 한사코 만류하는 탓에 할아버지

와 함께 가벼운 담소를 나누며 무료하게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곧 할머니께서 커피를 내오

시며 옆에 앉으셨다. 한 손에는 낡은 책자와 돋보기안경이 들려있었다. 외할아버지 사진

이 있는 앨범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께선 바로 할아버지를 보여주시지 않고 첫 장부

터 펼쳐 낡은 흑백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겨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할머니는 얼마 만에 꺼

내보는 앨범인지 모르겠다며 사진을 보시면서 눈시울을 붉히셨다.

“자, 나왔구나. 이걸 보렴. 이게 네 젊었을 적 외할아버지시란다.”

할머니께선 격양된 목소리로 사진을 가리켰다. 거기엔 대학 교복을 차려입은 청년이 어

린 여자아이를 안고 웃고 있는 모습이 남겨져 있었다. 서너 살 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

는 할머니 본인이라고 하셨다. 시간이 흘러 빛까지 노랗게 바래버린 사진이었지만 얼굴에

서 비치는 섬세하고 단정한 성품은 사진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네 할아버지는 날 무척이나 아끼셨어. 실은 해영이란 내 이름도 오라버니가 고등학생 

때 지어주신 거야.”

“어엇, 이게 지노의 할아버지신가요? 정말 어딘가 모르게 지노랑 닮았네요.”

이지도르 숙부가 소파 뒤에서 사진을 넘겨보다가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얼핏 보면 나와 

인상이 조금 닮은 것 같기도 했다. 할머니가 나의 외할아버지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갖는 

이유는 또 있었다. 지금의 할아버지와 결혼하고 이지도르 숙부를 낳아서 처음으로 한국에 

찾아갔을 때 가족 중 유일하게 감싸준 분이 바로 외할아버지셨다고 한다. 나의 증조부에

게 차디찬 박대를 받은 할머니 가족을 위해 외할아버지는 자비를 털어 몰래 전통혼례복 차

림의 사진촬영을 준비하셨다고 한다. 그때 할머니는 자신의 큰오빠의 마음씀씀이에 얼마

나 우셨는지 앨범에 있는 사진에도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그런 이유에선지 할머니께선 외

할아버지와 닮은 나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계신 것 같았다.

“오라버니는 가족이란 것을 소중히 할 줄 아시는 분이셨어. 네 어머니도 많은 애정을 받

고 자라서 그렇게 지금도 정이 많은 거란다. 너는 외가의 핏줄을 강하게 이어받았으니 너

도 좋은 아버지가 될 게 분명해.”

할머니는 다정한 눈빛으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 애정 어린 시선을 보며 문득 잊을 

뻔 했던 어렸을 때의 기억이 떠올렸다.

“…실은요, 제가 어렸을 때 가졌던 장래희망중 하나가 훌륭한 가장이 되는 거였어요.”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나는 되고 싶은 게 참으로 많았다. 우주비행사, 아이스하키 선수, 

기타리스트, 판검사 같이 전혀 연관성 없는 직업들을 하루에도 수없이 바꿔가면서 미래의 

나를 상상해보는 것이 내 취미였다. 하지만 그런 터무니없는 꿈을 꾸면서도 그것과 동시

에 항상 변치 않고 바라던 게 있었는데 그게 바로 훌륭한 가장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

이들이 본받고 싶어하는 아버지이자 존경받는 남편. 아버지는 내게 어릴 적부터 그런 것

에 대한 동경심을 심어주셨다. 너도 남자니 사회적 명예를 얻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궁극

적인 인생의 목표는 훌륭한 가장이 되어 자식을 잘 키워내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언

제나 말씀하셨다. 어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 가닥의 의심 없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

였었다.

시간이 흐르자 그 꿈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란 나의 열렬한 희망 때문에 거의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래, 나는 잊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것이 내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

를. 프랑스로 온 이후 가족들이 더 많이 생각나고 더 많이 그리웠지만 나는 일부러라도 냉

정하고 태연한 척했다. 그것에 감상적으로 마음을 뺏겼다가는 이곳에서 혼자와의 외로운 

싸움을 버텨내기 힘들 거라고 생각으니까. 하지만 이곳 아를의 가족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

소 깨달았다. 그런 생각이야말로 어리석은 오기였다는 것을 말이다. 가족은 내가 힘들 때 

유일하게 배신하지 않고 지탱해주는 버팀목이었다. 그리고 언젠간 다시 돌아가야 할 자리

이기도 하다. 지우고 싶어도 결코 지울 수 없는 것이 자신의 뿌리, 그것은 어지럽혀진 내 

마음을 단단하게 붙잡아주는 동아줄이 되어주었다. 나는 내 미래와 가족에 대해 상상해보

았다. 상냥한 아내와 나를 닮은 아이를 가진 가장이자 인정받는 애니메이션 감독. 명절이

면 형의 가족과 부모님을 모시고 단란하게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 덕담을 주고받

을 것이다. 그건 눈물이 날만큼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였다. 하지만 내게 있어 그것만큼 현

실적으로 느껴지는 미래는 없었다. 나는 우유가 든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반드시 그 

미래가 내 것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때가 되면 지금의 내가 안고 있는 번민과 고통에 대

해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을 테니까.

“훌륭한 가장이라, 그거 참 멋진 꿈이구나. 사실 남자의 인생에서 그것을 이루면 모든 것

을 얻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지.”

옆에서 내 말을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흐뭇하게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 꿈, 꼭 이루도록 하려무나.”

“……네.”

할아버지의 진심어린 격려 앞에서 나는 쑥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이지 그렇

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으로.

이지도르 숙부와 마르트 숙모는 그날 밤 다시 마르세유로 떠났고 나는 금슬 좋은 노부부

와 함께 남은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아를에서 지내는 며칠 동안 나는 정말 천국에 온 기분

이었다. 유학생으로서 당연할 수밖에 없던 빈곤한 아침식사 대신 할머니의 한식이 매일 차

려졌고, 그동안 언제나 과제와 다른 일에 쫓겨 정신없이 살았던 유학생활 대신 아를의 느

적한 분위기 속에서 여유롭게 내 주변의 것들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돌아다닐 때마

다 정신마저 날려버릴 것 같은 성난 바람은 한결같이 성가신 존재였지만 그래도 견딜 만했

다. 눈부시도록 내리쬐는 태양 때문이다. 겨울 내내 빠리에서 제대로 된 햇빛 한 줌 취하

지 못한 탓인지 한국에선 그리도 기피하던 태양광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고흐

가 어째서 빠리에서 해를 찾아 이곳까지 내려왔는지 그 까닭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이왕 이렇게 오게 된 거 하루하루 테마를 잡아 아를이란 도시를 즐기기로 했다. 하루

는 로마의 유적지와 유물들을 찾아다녔고, 하루는 관광객들을 위해 길 군데군데에 세워놓

은 빈센트 반 고흐의 노란 표석을 따라 그의 발자취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할아버지의 자

전거를 빌려 타고 아를 주변에 있는 고흐의 정신병동과 그 주변의 로마 유적지도 다녀오기

도 했다. 불우하게 살다 간 한 예술가의 흔적을 좇아가면서 수많은 영감을 얻었다.

나는 평소 반 고흐에 대해 ‘정신병을 앓고 있던 우울한 천재화가’ 라는 일반적인 통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를에서 인간 고흐에 대해 돌아보게 되면서 그에게 묘한 친밀감

과 존경심을 동시에 느꼈다. 그것은 반 고흐와 그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신임 

받는 목사였던 아버지는 고흐에게 있어 동경의 대상이자 동시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

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목사수련을 했지만 결국 그 기대를 저버리고 진짜 가난한 사람들

을 돕기 위해 탄광촌으로 선교하러 떠났다. 비록 그의 불같은 성격으로 그곳에서조차 쫓겨

나긴 했지만 말이다. 화가의 길을 걸을 때 아버지는 쓰레기 같은 그림이나 그린다며 그만

두라고 호통을 쳤지만 그는 뜻을 꺾지 않았다. 그 모습이 마치 나와 내 아버지와의 관계와 

미묘하게 맞물리는 것 같아 안타깝고, 한편으로는 존경스러웠다. 반 고흐는 자기가 갈 길

을 스스로 선택하고 문제와 맞부딪칠 줄 아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림을 그릴 때에도, 사랑을 할 때에도, 그는 평생 동안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이었다. 그

는 인생을 살면서 네 명의 여인에게 마음을 열정적으로 내어주었지만 그 누구도 그의 사랑

을 받아주지 않았다. 환각과 가난, 고독과 싸워가면서 그려낸 수많은 명화들 중에 그가 생

전에 팔았던 그림은 단 한 점뿐이었다. 고흐의 일생을 돌이켜보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안일한 생각으로 살았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내 꿈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위

협과 맞부딪치게 되면 그것에 얽매여 꿈 자체에 몇 번이고 회의를 해왔다. 이 길이 정말 나

에게 맞는 것일까, 집착 때문에 이 길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그런 나약한 생

각들의 연속이었다. 그랬다. 나는 여전히 내 꿈을 부정하는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완전하

게 벗어나지 못했다. 인간관계 역시 그러했다. 나는 고흐와는 달리 주변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알량한 이기심과 비겁함은 그것들에게 상처를 주고,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혔다. 

반 고흐의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르고 그 모습을 그린 자화상이

다. 귀를 잘라낸 데에는 여러 가지 추측이 있지만 자신의 동료 화가인 고갱과 틀어져 크게 

다투고 난 뒤 그를 죽일 생각으로 칼을 들었다가 결국 자신의 귀를 잘라냈다는 일화가 통

설이다. 화가 났다고 친구를 죽일 생각을 한 것이든 결국 자신의 귀를 자른 것이든 매한가

지 정신 나간 행동으로 보이겠지만, 나는 그 일화에서 반 고흐가 그만큼 자기희생적이고 

순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상처를 입는 것보단 남을 상처 입히

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언제나 상처받기가 두려워 비겁하게 도망치던 나는 그의 순수함

이 부러웠다. 그리고 나도 역시, 언젠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비록 스스로의 머리에 총

을 겨누게 될지라도.

“할아버지, 시작해요.”

“좋아. 오늘도 열심히 분발해봐라.”

매일 저녁 나는 할아버지와 체스를 두었다. 겉보기엔 시간 때우기처럼 보일지 모르겠지

만 할아버지와의 체스대결은 상당히 유구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한국은 일반적으로 체

스가 보편화 되어 있지 않은데도 내가 이 게임을 제법 잘하는 이유는 바로 할아버지 때문

이다. 언젠가 할아버지의 가족이 크리스마스 연휴에 한국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할아버지께선 크리스마스선물로 형과 나에게 수제 체스도구를 주시곤 어떻게 두는지에 대

해 밤새 가르쳐 주셨다. 그 이후로 나는 그 게임에 재미를 붙이고 한때 체스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그리고 10여년. 나는 나름대로 꾸준히 실력을 쌓아왔다고 생각하며 나를 키워

낸 스승을 놀라게 해주겠다는 마음으로 할아버지와의 게임에 임했다. 하지만 승패는 언제

나 같았다. 할아버지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나는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결국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하루 두세 판. 할아버지의 승리로 게임을 끝내고 나면 우리는 1층 테라스에서 할머니께

서 내주신 *뱅쇼vin choud와 생강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할아버지와는 예전

부터 알아왔지만 이렇게 차분히 앉아 단둘이 대화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사회문제, 정치, 

문화적 차이 등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느낀 것은 할아버지는 무척 책임

감 있고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나라나 그렇듯 인생에 단맛쓴맛

을 전부 맛본 노인들이란 어쩔 수 없이 완고하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루베 할아

버지 역시 대화하는 사이사이 그런 느낌을 갖게 만들게 했다. 그 융통성 없는 태도는 분명 

나의 아버지와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아버지처럼 반감이 든다거나 반항심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으면 나의 미숙한 가치관과 관념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좋았다. 올바른 사고방식으로 오래 세

상을 살아온 사람만이 가진 현명함과 완숙함을 존경했다. 할아버지께서 의사로서 수십 년

을 살아오면서 겪은 고뇌와 가치관들은 그 인간미를 더해주었다. 나는 그렇게 점차 프랑스

로 오기 이전의 내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정신을 놓고 여유로운 생활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떠날 날을 하루 앞두고 있었다. 과제준

비를 위해 일부러 연휴기간을 하루 남겨두고 떠나기로 한 것이다. 주말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인근 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다. 특별히 종교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나는 처음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절대적 

존재를 믿고 싶어졌다. 생전 처음 참여한 가톨릭교회의 미사는 생각보다 엄숙한 분위기에

서 진행되었다. 조금 적응이 안 되기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그 분위기가 무척 편안하게 느

껴졌다. 나는 마음속으로 내가 가진 바람들을 하나하나 털어놓았다. 부모님, 형, 아를의 가

족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미사에게도 용서를 빌었다. 내가 그녀

에게 지은 죄는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닌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나는 그래

도 속죄하고 싶었다. 의도적으로 저지른 것은 아니나 결과적으로 나는 그녀의 마음에 깊

은 상처를 남겼다. 그녀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었다. 앞으로 나보다 훨씬 낫고 멋진 사람이 

그녀 앞에 나타나기를. 그 남자는 미사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줘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랐다.

하지만 만약 정말 신이 내 기도를 들어준다면 무엇보다도 바라는 게 하나 있었다. 나는 조

금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고백했다. 이젠 그를 놓아줄 수 있게 해달라고. 내가 기

억하고 있는 남자의 망령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리고 이젠 온전히 내가 가야할 

길만을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를 알기 이전처럼. 그에 의해 새겨진 상흔이 조금씩 아물

어 가는 시간 속에, 가장 절실하게 원하는 것은 그게 전부였다. 

성당에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루베 할아버지께서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마지막 밤인데 이대로 떠나보내기는 좀 아쉽구나. 내가 낚시하러 자주 가는 인근 호수

가 있는데 오늘 둘이서 함께 밤낚시 하러 가는 건 어떠냐.”

밤낚시라는 말에 나는 예전에 아버지와 형과 함께 낚시를 갔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땐 내

가 꽤 어려서 밤을 새지 못하고 그냥 차에서 곯아떨어지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그래도 낚시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만 해도 나는 그를 무척이나 잘 따랐으니까 말이

다. 누구나 그렇듯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이자 우상이었던 사람도 역시 다름 아닌 아버지였

다. 비록 지금은 세상을 알게 되면서 그 영웅의 허상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 되었

지만 말이다. 어쨌든 나는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함께하겠노라고 했다.

우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낚시도구와 캠프도구, 간편한 요깃거리를 챙겨 아를 근처의 

생 크루아라는 호수로 향했다. 겨울이었지만 주말이라 그런지 주변에 캠핑 온 사람들이 제

법 보였다. 할아버지는 함께 낚시하러 온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익숙하게 자리를 잡고 

낚시 장비를 설치했다. 해가 지자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우리는 작은 모닥불을 피우고 

통조림 수프와 소시지, 데운 포도주로 배를 덥혔다. 할아버지는 혼자 생각할 시간이 필요

할 때 종종 이곳을 찾는다고 했다.

루베 할아버지는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찔러 넣으면서 말씀하셨다. 

“너희 할아버지는 좋은 분이셨어.”

“…….”

“결혼하고 나서 내가 한국에 있는 그녀의 집으로 인사드리러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었어. 

네 할머니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이렇게 말하더구나. 사실은 아직 결혼 사실도 알리

지 않았다고. 그때 나는 그 말을 듣고 무척 화를 냈었단다. 마치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

도, 결혼하는 것도 치부로 여기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그녀의 설명을 들어도 이해할 수가 

없었어.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식이 선택한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반대한다니, 

아무리 부모라도 자식의 인생에 그런 식으로 참견한다는 건 정말 비인격적으로 보였거든. 

그런 점에서 네 할아버지는 깨어있는 분이셨지. 유일하게 자기 동생의 선택과 나를 믿어주

셨으니.”

그는 내게 친근한 미소를 한 번 보이시고는 마저 말을 이었다.

“이지도르를 낳고 난 뒤에 비로소 한국에 찾아갔을 때에서야 왜 그리도 할머니가 프러포

즈를 받고도 결정을 많이 망설였는지 알게 됐단다. 세상에, 그녀의 아버지가 보통 한국인

들 중에서도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정말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 진심이

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나와 네 할아버지가 말리지 않았으면 정말 아이를 물에 던져

버릴 것 같았거든. ……뭐, 그래도 종국엔 장인도 우리 사이를 인정하셨지. 역시 사람이란 

건 고난을 겪고 나서 변화하고 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는 것 같아.”

사람은 난관을 극복하면서 변한다. 자신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퇴화하기도 하고, 

진화하기도 한다. 우리는 진화할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을 걸고 계속해서 힘든 현실을 살아

갈 수 있다.

할아버지의 말씀은 하나하나 소중하게 내 마음 속에 새겨졌다. 그 말을 새기며 생각했다. 

살다 보면 나도 변할 수 있을까. 그 아픈 기억들을 발판삼아 좀 더 성숙해질 수 있을까 하

고.

깊은 밤이었다. 어둠이 깔린 호숫가엔 아른한 모닥불만이 듬성듬성하게 떨어진 채 피어오

르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호수의 수면을 쓸고 지나가자 그 위에 비춰지던 그믐달이 이

지러졌다. 그 달빛을 보며 나는 또다시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연상시킬 뻔했다. 그러나 다

행히 내 깨어있는 의식이 더 빨랐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그것을 무의식 속으로 봉인시

켜버렸다. 호수를 망연하게 바라보며 한참이나 생각에 잠겨있던 할아버지께서 문득 입을 

여셨다.

“포도주, 낚시, 그리고 인생의 공통점이 뭔 줄 아니?”

“흐음, 글쎄요. 즐길 수 있다는 것?”

“음…, 정답은 아니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과 근접해있다고 봐야겠구나. 거기엔 모두 적당

한 시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미학이 숨어있어. 포도주는 시간이 지나야만 진정한 맛을 품

게 되지만 그렇다고 오래된 것만이 좋은 게 아니야. 대부분 70년 이상 지나면 그 질이 떨어

지기 시작하거든. 낚시 역시 물고기가 언제 온다는 보장 없이 기다리다 물고기가 갈고리

를 물었을 때를 놓치지 않고 낚싯줄을 당겨야 성공할 수 있단다.”

할아버지께선 잠시 말을 멈추시고 다시 주석 술병에 든 코냑을 몇 모금 들이키셨다. 할아

버지는 곧 내게 병을 내미셨고 나는 그것을 받아 목을 축였다. 순간 겨울날씨에 사늘했던 

몸이 따뜻하게 데워지는 것 같았다.

“…인생도 마찬가지야. 기회란 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찾아올지 모른단다. 그렇기 때문

에 우리는 기다림을 즐기며 언제나 주변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해. 그래야 자신에게 찾아온 

운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 지루한 기다림을 즐기기 위해 난 젊었을 때부터 밤낚시를 즐겨

왔어. 마음이 조급해지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마음을 비우고 낚싯대를 담가놓으면 한

층 여유로워지거든. 깜깜하고 고요한 곳에서 혼자 있으면 지금까지의 일을 담담하게 돌아

볼 수도 있게 되고, 또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지.”

포도주, 낚시, 인생. 나는 그동안 할아버지께서 언급했던 것들을 되새김질하며 그의 생각

을 소화시키고 있었다. 기다림의 미학. 생각해보면 그것은 그 세 가지뿐만이 아니라 세상

의 만물에 적용시킬 수 있는 일종의 인생철학이었다. 사과가 가장 맛있게 익을 때까지 기

다렸다가 수확하는 농부처럼, 자신의 그림이 최상의 상태가 될 때까지 붓질을 멈추지 않

는 화가처럼.

“……운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특히나 기다리고 붙잡는 타이밍이 중요한 것 같아. 너

무 서둘러서, 혹은 너무 늦어버려서 한 번 놓치고 나면 다시 돌이키기가 거의 불가능하단

다. 사람의 가장 예민한 감정들이 오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주의해서 다루지 않으면 서

로 평생 안고 가게 될지도 모르는 상처를 입게 되거든. 아무리 운명으로 이어진 사이라도 

말이야.”

“…….”

“하지만 그럴 때 필요한 것 역시 기다림이지. 시간에 의해 감정과 고통이 잦아들기를 기

다리는 것. 그리고 그 고통을 감내하고 나면 스스로 좀 더 성숙해지겠지. 쉽게 망각하도록 

만들어진 불완전한 기억체계와 자아가 성장하는 방식은 모두 그렇게 남은 생을 계속 살아

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란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한 점 티끌만큼의 의심도 가지지 않았다. 의심을 갖지 못한다는 

게 슬플 정도로 모두 옳은 말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노년의 녹록한 관조가 묻은 인

생론은 그렇게 아무런 여과 없이 내 안으로 그대로 흡수되었다. 사실 할아버지가 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아를에서 지내는 동안 내 모습이 조금은 무리

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은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는 조

금 무리하고 있었다. 아를에 온 이유는 내 안에 새겨진 남자의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서였

으니까. 하지만 점차 이 도시의 시간에 마음의 속도를 늦추게 되자, 억지로 잊으려 노력할 

필요가 없었다. 어쩌면 정말 할아버지의 말씀대로 이 시간의 흐름에 고통을 전부 덜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아를의 론강에 남자의 그림자를 한 줌

씩 놓아버리며 먼 곳으로 흘려보내려 하고 있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할아버지께선 노곤하셨는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셨

다. 나는 할아버지를 깨워 편히 주무시라고 차 안으로 모셔다 드렸다. 나는 호숫가에 혼자 

남아 잠시 뜬구름 같은 상념에 잠겼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나도 모르게 살짝 졸았나 보

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주변은 이미 시린 새벽빛으로 밝아지고 있었다. 겨울이었지만 

아를르의 태양은 추위에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다. 꽤 이른 시각이었지만 붉은빛이 산등성

이 너머로 벌써부터 살금살금 피어오르고 있었다. 새로운 태양이다. 인간이 존재하기 전부

터 매일같이 나고 죽는 태양. 나는 오늘 이 호수에 비친 태양에 남아있는 찌꺼기마저 태워

버릴 것이다. 과거의 감정도, 기억도, 전부 다. 그리고 이젠 그것에 대해 더 이상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희뿌연 재만 남은 모닥불을 정리하려고 보니 마지막 불티 한 점이 조

용히 스러져가고 있었다. 잿더미 사이로 발그스름하게 타들어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

니 이상하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마치 한줌의 잿더미 속을 파헤쳐보면 다 못 탄 사진 몇 장

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아서. 

어제 PC카페에 가서 인터넷으로 기차표를 예매해두었다. 일정에 맞추려면 할머니 댁으

로 돌아가 아침식사를 하고 곧바로 이곳을 떠나야 한다. 서두르지 않기 위해 천천히 주변

을 정리를 하고 있는데 때마침 할아버지께서 차에서 나오셨다. 잠이 덜 깬 발걸음은 곧바

로 물고기가 담긴 양동이 쪽으로 향했다. 밤새도록 잡은 것은 겨우 민물고기 두어 마리였

다. 할아버지께선 그것을 할머니에게 가져다주면 피곤함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매운탕을 

해줄 거라며 좋아하셨다. 이곳에서의 휴가도 이것으로 끝이었지만 아쉽지만은 않았다. 그

동안 힘겹게 끌어안고 있었던 것들을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모두 깨끗하게 털어버릴 수 있

었으니 오히려 개운했다.

정리를 끝내고 차에 타려던 무렵이었다. 갑자기 옆 캠핑카에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

렸다. 할아버지와 나는 자동적으로 그 소리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곧 그 목소리의 주인인 

듯한 남자가 깔깔대며 밖으로 튀어나왔고 곧이어 덩치가 좀 더 큰 남자가 따라 나왔다. 겨

울인데도 둘 다 반라의 차림이었다. 덩치 큰 남자는 여전히 배를 쥐며 웃고 있는 남자를 뒤

에서 장난스럽게 간질이다가 덥석 껴안았다. 그리고 이어진 키스. 보통의 키스가 아닌 연

인들 간의 깊고 진한 키스였다.

“지노야, 가자!”

그것을 멍청하게 쳐다보다 할아버지의 부름에 고개를 돌리자 그는 어느새 모르게 시동을 

걸어놓고 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강력한 명령에 얼떨결에 빠르게 차에 몸을 실었다. 할

아버지는 내가 타자마자 차를 몰고 호숫가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한참이나 속도를 내며 달리던 중이었다. 할아버지는 한숨을 푹 쉬시곤 말을 꺼내

시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는 차분했던 평소의 것과 달리 다소 격양되어 있었다. 

“나는 60년 가까이 살면서 쭉 스스로가 보수적이라고 생각하고 살았단다. 그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에 마음을 열고 이해하려고 무던히 노

력해왔지. 하지만 내가 여태껏 유일하게 받아들이지 못한 게 뭔 줄 아니?”

“…….”

“바로 저 부류들이야. 동성애자들. 세상은 점점 이들을 보통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추세지만 나는 아직도 저 사람들이 정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구나. 동성애는 불과 십

여 년 전에서야 정신병 진단 목록에서 겨우 빠진 증상이야. 수십 년 전만 해도 정신병원에 

다녀야 할 사람들이 지금은 마치 그게 무슨 자랑이라는 듯 축제를 열고 거리를 활보고 다

니는 것이 나는 도무지 좋은 눈으로 봐지지가 않더구나.”

“…….”

“말이 나와서 말이지, 사실 저자들이 정상이 아닌 건 사실 아니냐? 저런 자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적 윤리체계와 균형에 혼란을 빚을 게 분명해. 성윤리도 문란해질 게 뻔하

지. 그렇게 되면 현재의 이상적인 가족구조는 점차 사라지고 자기 성적 욕구만 채우기 위

해 함께 살다가 상대방에게 싫증이 나면 쉽게 헤어지는 관계로 변질되겠지. 만약 하나밖

에 없는 자식인 이지도르가 남자와 살겠다고 했다면 그땐 정말……아아,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구나.”

“너무……세요.”

“…뭐?”

“너무 하시다고요……!”

“…….”

“이지도르 숙부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어쩌시려고 했는데요? 자식이 같은 동성을 좋아한

다는 게 그렇게 받아들이기 힘든 건가요? 저들이라고 해서 남자를 일부러 좋아하게 된 것

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포기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요……!” 

“…….”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결국 금기를 깨부수고 말았다. 이미 전부 타버렸다고 생각했던 

사진 조각이 아직도 잿더미 속에 온전히 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사진

은 아무리 거센 불길에도, 아를의 강렬한 태양에도 타지 않은 내 심장을 담고 있었다. 진심

을 알리며 여전히 격동하고 있는 붉은 심장. 나는 더 이상은 말을 잇지 못했다. 감당할 수 

없는 심장에 도발되어, 나도 모르게 여과 없이 튀어나와버린 진심에 스스로 놀라고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내 말에 조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셨다.

“…난 그냥 그렇게 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하는 것뿐이다. 저들이야 우리와는 평생가

도 관계없을 사람들일 텐데 뭘 그리 격하게 반응하고 그러냐.”

“…….”

나는 그때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앞에서, 타인 앞에서 당당하게 ‘나 역시 

남자에게 끌리고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감정표현

의 묵살. 그것만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잠재웠던 심장이 다시 뚜렷하게 격하

게 뛰고 있었음에도 나는 온전히 그것에만 의지해 자기변호를 할 수가 없었다. 내 감정이 

어떤 것인지는 이전부터 확실히 인정해온 것이었지만 여전히 용기는 부재되어 있었다. 내 

감정을 완벽하게 감당할 용기가. 내 안에 깊이 찍혀 있는 낙인을 지우기 위해 다시 인두를 

가져다 댈 용기가. 그렇게 내 안에선 언제나 모순적인 자아들이 모여 혼란과 갈등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

“조심해서 가거라. 도착해서 연락하는 거 꼭 잊지 말고.”

“네, 덕분에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정말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에고…, 머무른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정이 붙어서 어쩌나……. 당분간은 마음이 허전

해서 잠도 제대로 못 자겠구나.”

할머니는 메마른 손으로 나를 꼬옥 부여잡고 놓을 줄을 모르셨다. 친자식이라도 타지로 

떠나보내는 것처럼 안타까워하시는 그녀는 내 어머니를 생각나게 했다. 나는 할머니를 안

아드리며 위로해드렸다.

“나중에 또 올게요.”

“그래, 여름 방학 때 꼭 다시 찾아오려무나. 그땐 내 형님이 경영하는 포도농장에도 함께 

가자꾸나.”

할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네.”

나는 할아버지와도 포옹을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이미 오늘 아침의 대화를 잊은 듯 평소

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도 수월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있었다.

“나중에 네 부인 될 사람이랑도 꼭 찾아 오거라. 그럼 그때 너희 결혼을 축복하는 기념으

로 함께 와인을 만들어줄 테니.”

“…….”

나는 대답 대신 소리 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것이 억지웃음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우

러나오는 웃음인지는 나조차도 구분할 수 없었다.

노부부는 내가 열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까지 지켜보며 손을 흔들어주셨다. 나는 할아버

지 할머니에게 애틋한 마음으로 손을 흔들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돌아가는 발걸음엔 

망설임이 섞여있었다. 분명 어젯밤 하나도 빼먹지 않고 짐을 다 챙겼는데 무엇인가 두고 

온 채 빠리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건 물질적인 게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일출을 

볼 때까지만 해도 이곳에서의 생활엔 일말의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떠

나려고 하는 지금, 자꾸 무언가가 마음에 걸리고 있었다. 찝찝한 기분이다.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로 20분이면 아비뇽 역을 경유해 그곳에서 빠리 행 열차를 타야 했

다. 유유하게 아비뇽으로 향하는 기차는 떼제베의 엄청난 속도를 생각해 본다면 꼭 아를

의 느직한 시간관념에 휩쓸린 것만 같았다. 혹은, 무언가를 미해결된 채 아를에서 떠나는 

것 같은 기분에 붙들려서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문득 오늘 아침 격렬하게 치밀었던 감정이 떠올랐다. 가족. 나는 아를에서 내가 본래 있어

야 할 곳을 찾았다고 생각했었다. 이대로 아를의 느슨한 시간 사이사이에 잊어야 할 감정

들을 심어 흘려보내면, 어렸을 적 평범한 가정을 꿈꾸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녀석에 대한 감정은 그렇게 쉽게 단념되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내가 아직 그와 끝장을 보지 못해서일 것이다. 사실은 예전부터 너를 좋아했었다

는, 지금도 그 마음을 잊기가 너무 힘들다는 진실을 말하지 못했다.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

다. 녀석에게 또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서. 녀석의 진심, 과거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 호기심을 억눌러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쥴리앙에

게 진심을 고백하지 못했다는 것. 그 가늘지만 끈질긴 한 가닥 미련은 지속적으로 내 안에

서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 미련 위로 그에 대한 애증과 그리움이 자꾸만 축적되어서 매

번 털어내야 하는 고통 역시 괴로운 일이었다. 이젠, 정말 도망치지 말고 완전히 끝내버릴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행복해진 나르시스를 보면서 생각했어. 사람들에게 전부 다 밝혀버리면, 

나도 나르시스처럼 더 이상 외롭지 않을까. ……내가 용기를 내어 고백하면, …어쩌면 그 

소녀도 날 좋아하고 있었다고 말해주진 않을까……. ’

예전에 쥴리앙이 미쉘이라는 이름을 버리기 직전에 했던 고백이 떠올랐다. 나와는 전혀 

다른 동기였겠지만 적어도 그때 그가 고백할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는 지금 이 순간 완벽하

게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욱신거리며 제멋대로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분히 눈

을 감았다. 그리고 물었다. 심장에게.

‘…어떨 것 같아…? 이번에는…….’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내가 서 있는 곳은 다시 아를 역이었다. 방금 전에 무언가를 잊고 

온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아비뇽 역에서 빠리 행 열차로 향하던 발걸

음은 불현듯 다시 왔던 길로 돌아섰다. 아를에서 떠날 때부터 줄곧 마음에 걸렸던 것이 생

각났던 것이다. 이 도시를 떠나려는 발목을 자꾸 붙잡던 것. 그것은 미쉘 오르로제 씨와의 

재회였다. 다급한 발걸음은 공중전화부스 앞에서 멈췄다. 나는 아를르에서 지내는 내내 줄

곧 주머니에 구겨 넣어 뒀던 종이를 꺼내 펴 보았다. 한 번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침착하게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수신음을 기다린 끝에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알려주세요.”

[……네?]

“미쉘 오르로제 씨, 알려주세요. 알고 싶어요. 쥴리앙에 대한 모든 것을.”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목소리는 이미 확연하게 떨리며 두서없는 문장들

을 뱉어내고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자의 음성에서 유독 그의 그림자가 강하

게 느껴져서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자꾸 튀어나오려는 격렬한 감정을 인위적으로라도 막

기 위해 손아귀로 목을 단단하게 쥐어 눌렀다. 손가락 끝에서 경동맥이 집혔다. 혈류가 뿜

어져 나오는 소리는 미친 폭풍과도 같았다. 나의 충동적인 결심을 실은 조각배는 그 폭풍

속의 노도 끝에 아찔하게 걸려있었다.

주) TGV : 떼제베는 TGV의 불어식 알파벳발음, 1981년 개통되었으며 최고 시속 270km에

서 300km인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초고속열차이다. 그 중 PSE는 주로 파리의 남동부 지역

을 운행한다.

주) tonton : ‘통통’ 이라고 읽으며 삼촌, 아저씨란 뜻. 프랑스도 여느 서구문화권과 다를 

바 없이 우리나라처럼 세부적인 가계 내 호칭이 없습니다. 물론 숙부란 특별한 호칭도 없

지요. 그래서 진호도 그냥 이지도르를 통통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사족으로 모회사 제품

인 ‘몽쉘통통(Mon Cher Tonton)’은 ‘나의 친애하는 아저씨’ 뭐 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

니다.

주) 루이으 : 마늘이 가미된 마요네즈

주) 부이야베스 : 프랑스의 어패류 요리 중에서 보편적으로 알려진 것으

로, 난류의 작은 생선과 조개류 등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나, 비린내가 적게 나는 흰 살 

생선도 사용된다. 토마토소스로 만든 생선 수프의 일종인데 보통 세 종류 이상의 생선이 

들어가며 보통 루이으를 바른 토스트와 함께 먹는다.

주)  뱅쇼 : 따뜻하게 데워 먹는 포도주.

덧 이야기) 프랑스에선 가족끼린 누구에게든 경어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편한 

사이라는 거죠. 하지만 소설 상에선 분위기조성을 위해 경어로 해석을 했으므로, 참고해주

세요.

덧 이야기) 아를은 프로방스지방에 속한 도시입니다. 프로방스는 프랑스 내에서도 좋은 

재료와 맛난 음식으로 유명한 곳으로, 프로방스 음식의 특징은 새로운 요리법에 의해 변형

되거나 변질됨이 없이 시골의 넉넉한 인심과 정성스러움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다는 것

입니다. 스튜 요리, 양고기나 오리고기 로스트, 생선 수프와 같은 프로방스의 음식들에는 

허브, 와인, 올리브, 마늘, 양파, 토마토 등의 맛이 고루 배어 있죠. 또한, 프로방스의 피자

는 이탈리아 피자 못지않게 굉장히 맛이 좋답니다.

덧붙여 이 지역의 인심을 설명하자면, 프로방스 지역에서는 근심 걱정이 어울리지 않는다

고 합니다. 프로방스 인들은 어떤 걱정거리가 있더라도 어깨를 으쓱하거나 ‘Poof’ 혹은 

‘Putain’이라고 외칩니다. 이는 대략적으로 “긴장을 풀고 여유를 가져라”, “무엇이 그리 급

한가”라는 의미입니다. 마을의 작은 커뮤니티에는 사소한 말다툼이나 가십거리가 난무하

게 마련이지만, 프로방스는 여행하기에도 또 살기에도 아주 즐거운 곳이라고 합니다.

사랑은 사랑을 기다린다. 

태양이 져도, 

별이 뜨고, 

밤이슬이 대지를 적시며, 

비바람이 웅성거려도.

-월터 스미스 Walter Sm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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