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긍정의 대답이 나오니 희완의 어깨가 살짝 굳으며 검게 고인 눈이 그를 가만 들여다본다. 그리고 무어라 입술을 달싹이려 할 때였다.
“연희완 씨한테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연희완을 그렇게 만든 모든 것들에 화가 납니다.”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을 짓고 있던 희완이 왼쪽 눈가를 살짝 찡그렸다.
남자가 가만 문질러 와 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곤 거길 입술로 살짝 훑어준다.
“내가 왜 좋습니까.”
뜻밖의 질문을 들은 듯 가만 눈동자를 굴리는 희완이 시선을 기울였다.
“말했잖습니까. 나는 연희완 씨가 육시가 되고 푸줏간 돼지가 되어 매달리는 걸 보고서도 모른 척 했다고.”
아.
이제 그 기억을 되찾아 오는 희완이 문득 가라앉은 눈으로 남자를 본다.
항상 검게 드리워져 있던 남자의 눈동자에서도 어떤 음울한 기운을 읽는다.
“개 새끼들한테 짓씹혀 똥구멍이 까발려진다 해도 상관 안 할 작정이었습니다.”
말을 뱉는 남자에게서 어떠한 표정도 읽혀지지 않았지만 희완은 어쩐지 그 안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왜 좋습니까.”
후회.
“단순히 내가 찔러 주면 좋고, 빨아 주면 환장하겠고, 또 쑤셔 주면 질질 쌀 것 같아 그럽니까.”
“…….”
천박하고 싸구려 음탕한 단어만 골라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날이 서 있었으나 그것은 희완을 향한 게 아니었다. 양날 중에서는 희완을 향한 쪽은 이미 무뎌져 녹이 슬어 있었고, 다만 날카롭게 날이 선 것만 현재 남자를 향해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희완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다. 남자의 후회를 보면서도, 남자가 후회를 할 일은 없다는 생각이다. 그래도 건져 주었고, 그래도 구해 주었고, 그래도 곁에 있어 주었고, 그래도 추우면 곁에서 항상 문질러 주고 품어 주었다. 그런 사람이 없었다. 희완의 곁에는. 그래도 그렇게 까지 해주어 살게 해준 사람이 없었다.
희완의 곁에는 학정이 있고 우진이 있고 극단이 있고 연기가 있었지만, 눈앞의 남자가 아니었다면, 결코 도로 되찾아 오지 못할 것들이었다. 가슴이 아프다. 남자의 이 깊은 마음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이해하게 되니 희완은 가슴이 아파 온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당신이 아니면 안 됩니다.”
단순히 찔러 줘서 좋고, 빨아 줘서 환장하고, 쑤셔 줘서 질질 싸는 게 아니다.
“당신이라서, 당신이라서 그렇게 좋고 환장하고 질질 싸는 겁니다.”
왜 좋으냐고? 왜.
희완은 너무 슬프다는 생각에 입매를 일그러뜨렸다.
제 마음이 남자에게 하나도 닿지 않았다는 생각, 이 화득한 속이 결국은 남자의 뜨거운 것을 갈취해 받아 마시기만 했지, 무엇도 전해주지 못했다는 생각.
“좋아합니다.”
이걸 어떻게 전해주어야 남자가 전해 받을 수 있을지 감히 가늠이 되지도 않았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 화득하고, 뜨겁고, 목이 꽉 메어 올 정도로 단단한 그것.
붉어진 입술을 꾸욱 깨무는 희완이 두 손으로 남자의 뺨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입술을 붙였다. 검게 짙어진 얼굴 가득 번져 있는, 희완으로서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깊은 것에서 솟아오른 불길의 덩어리를 본다.
“그러니까 나도.”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하고 꾸욱 속엣것을 억눌러 놓는 희완을 바라보는 눈이 짙었다. 그러니까 나도.
“좋아합니다.”
“네.”
“좋아하고 있어.”
“압니다.”
“사랑하고 있다고.”
“저도요, 저도요.”
“희완아, 연희완.”
가만히 저를 끌어안아 오는 남자를 품는 희완이 붉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겨우 웃었다. 제 등 뒤를 쓸어오며 가득 끌어안아 주는 남자의 그 품이 겨우, 돌아온 것 같아서, 희완은 깊숙이 저를 파고드는 것을 가득 마주 안았다.
범인의 부모가 다녀간 사실을 알게 된 희완의 변호사가 길길이 날뛰었다고 한다. 희완은 첫째로, 제게도 변호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고, 둘째로, 그 변호사가 꽤 능력 있는 로펌의 수석 변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놀랐고, 마지막으로, 그 성격의 괴팍함에 놀랐다. 우진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한창때의 우진이 그냥 커피라면, 이 변호사는 티오피였다.
어쨌든 그 티오피 변호사의 괴팍함에 힘입어 희완은 소송이 마무리 지어지는 때까지 단 한 번도 그쪽 관계자와 얼굴 한번 대면하지 않은 채 위자료부터 소송비용까지 죄다 받아낼 수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붙은 변호사가 실은 남자가 붙여준 사람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둔하지는 않아서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날마다 밑이 다 젖도록 봉사를 했고, 봉사를 받았고, 또 들어온 돈으로 맛있는 걸 사 먹기도 했다. 남은 돈은 학정의 통장에 넣어주기도 했는데, 혼날까 봐 익명으로 넣었다.
첫 공연을 무사히 마친 후 공연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어졌다. 깁스를 생각보다 일찍 풀게 되어 약 일주일간만 석주의 도움을 받고 남은 기간 동안에는 희완이 직접 모든 걸 소화해가며 무대를 책임졌다. 우진도 그놈이 악덕 변호사에게 들들 볶이고 또 위자료까지 왕창 물어줬다니 겨우 마음이 풀린 모양인지 그때처럼 날 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 총 9번 공연에 월요일은 공연이 없는 날이었다. 때문에 작품이 진행되는 동안 희완은 일주일 치를 일요일 밤에 한꺼번에 몰아 받느라 월요일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남자만의 욕망이 아니라 제 것의 욕망까지 섞이니 그리 더 곤죽이 되는 것이었다. 일단 정말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하니 희완은 전보다 더 거침이 없어졌다. 남자야 원체 그런 쪽으로 거칠고 말도 그런 말밖에 할 줄 모르고, 또 딱히 그런 것에 대한 터부도 없으니 크게 변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희완은 달랐다. 가끔은 제가 깜짝깜짝 놀랄 정도로 대담하고 스스럼이 없고 뻔뻔스럽기까지 할 정도였다. 좀 전에만 해도,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내내 남자가 앞을 쥐고 놔주지 않아 거의 실금을 할 정도로 시달려진 상태에서 화장실까지 엉금엉금 기어가야 했다. 남자의 손 안에서, 혹은 입 안에서 실컷 사정을 했음에도 시원한 기운이 없어 오줌을 누려고 변기를 열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빨아 달라고 했고, 기꺼이 남자가 빨아줘서 볼일을 볼 수 있었다.
또 밥을 먹다가도 욕구가 동하면 먼저 하자고 졸랐다. 식탁에 그대로 올려져서 바로 쑤셔 박혀져도, 이미 풀어져 있는 밑을 제 손으로 벌리며 더 깊이 들어와 달라고 나직한 목소리로 졸라대었다. 이제는 입으로 하는 것도 많이 늘어 정말 입만으로도 남자를 가게 만들 수 있는 지경에까지 올랐다. 너무 커서 잘 들어가지도 않고, 또 들어가더라도 구역질이 올라올 정도로 힘에 부쳤던 그의 것을 부드럽게 집어넣고 스스로 목구멍 속으로 찔러 넣기까지 했다. 그래도 구역질을 올리기는커녕, 그가 쌀 때까지 넣고 있다가 싸며는 그대로 받아 마셨다. 그런 것들이 역하지 않은 건 최근 일이 아니긴 했지만 요 근래엔 좀 더 적극적이 되었다고나 할까. 희완은 그와 하는 모든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특히 입과 손과 아래로 하는 것들, 몸이 정말 그에게 딱 맞게 변화해 가는 동안 입으로 하는 대화도 많이 늘었다. 그게 제일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었다. 예전에는 대화를 해도 음담패설이나, 간단한 이야기나, 또 화내거나 그러는 게 전부였는데 요즘에는 이런 저런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게 되었다.
목덜미에 떡하니 붙은 걸 본 석주는 짐짓 모른 척을 하려 했으나 그 붉어지는 볼이 주인의 마음을 배반했다. 완전 무섭게 헐어, 그것 때문에 입원까지 하게 된 석주는 아직도 제가 본 그, 거기 모습이 선명했지만 그런 것에 편견을 심지 않으려고 했다. 소문은 소문이었고, 석주가 아는 희완은 누구보다 똑바르고 심성이 곧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었지, 남들 떠들어대는 말처럼 그런 몹쓸 놈이 아니었다.
뭐 사실 정말 희완이 소문대로 몸을 팔았다면 정말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 편하게 살기 위해 그랬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학정이나 경성들이 희완을 그리 놔두지도 않을 것 같고. 그런데, 딱 한 가지, 희완의 잠자리 상대와, 그 성적 취향이 과격한 거는 석주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샤워실에서의 그 광경을 본 후론 희완이 이성애자라는 생각은 절대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렇다고 동성애자라고 규정지으니 뭔가 또 굉장히 이상한 것 같고 해서 그냥 석주는 간단히 희완을, 굉장히 과격하고 대담한 잠자리 상대를 둔 사람으로 대충 일반화를 시켜 버렸다. 뭔가 굉장히 비겁한 것 같았지만 그래야 속이 편했고 희완의 얼굴을 보는 게 편해졌다. 어차피 성적 취향이라는 거는 다 사생활이고, 남들이 참견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이고, 뭐. 그런 것이니까. 하고 납득을 했는데. 요즘 들어 심심찮게 발견되는 저런 흔적들 때문에 석주는 저도 모르게 혼돈의 소용돌이 속을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이었다. 희완 형이 목에 쪼가리를 달고 오든 잇자국을 달고 오든 저와는 하등 상관이 없는 일임에도 말이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게 워낙 동물적 감각을 기반으로 태생된 또 다른 동물. 희완에게 그런 거 피해 주시면 안 되나요, 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 못 할 석주였기에 차라리 제 눈을 파버리거나, 파버리기, 또는 파버릴까 이런 충동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석주의 고민은 그의 오래된 피앙새 주경에 의해 단숨에 해결되어 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모든 일이 그러해 왔듯이 말이다.
너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의 또 친구의 아는 형이 맨날 맨날 몸에 쪼가리를 달고 오고 잇자국을 달고 오고 또 거기가 헐도록 당해진다는 말이지?
주경이 차게 웃었다.
“그래서, 너는 나한테 어떻게 하는데?”
***
드라마 제작팀과의 미팅이 있었다. 장미호의 주선으로 시작된 것으로 한창 학정의 작품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들을 눈여겨보던 제작사에서 본격적으로 발을 담가 보기로 한 것이다. 장미호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희완을 제일 마음에 들어 했다. 도우진과는 둘 다 강성이라 잘 맞지 않았는지 우진이 한창 이름을 날릴 때에도 일적인 관계, 데면데면한 관계에 불과했는데, 이상하게 희완한테는 호감인지 비호감인지 모를 묘한 관심을 기울였다. 저보다 더 예쁘다는 소릴 지껄인 주여욱은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이면서 그 당사자인 희완은 더 눈여겨보고 훔쳐보고 그런 것이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혹시 장미호가 연희완에게 반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돌기도 했지만, 장미호의 성격을 아는 사람이면 백이면 백, 그거 라이벌을 향한 견제구, 혹은 지피지기 백전백승 술에 불과한 것이라고 장담에 장담을 거듭했다. 그런 장미호의 기묘한 관심을 희완은 크게 느끼지도 않았고, 느꼈다 해도 크게 개의치 않았을 것이었다. 현재 연희완의 머릿속은 오로지, 연기, 학정, 그리고 남자, 백승도가 전부였다. 나머지는 꽉 막혀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장미호의 견제를 불편해할 이유가 없고 그녀의 호감을 부담스러워할 이유가 없었다. 오늘 자리도 학정이 아니었다면 희완은 아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흥.”
자리에 참석한 내내 예의 바르게 관계자들을 응대하면서도 결국 혼자 앉게 되면 달리 사색에 잠겨 있는 희완을 보는 눈이 심드렁했다.
저게 어떻게 나보다 더 예쁘다는 거야, 저게.
물론, 객관적으로 보기에 연희완은 잘생겼다. 잘생기기만 했나, 예쁘기도 하다는 말도 딱이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중성적이기도 한데 또 어떻게 보면 굉장히 남성적이기도 한 이중적인 매력이 있었다. 그러나 장미호는 요즘 들어 연희완이 남성적이기보다는 중성적인 매력이 더 도드라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물론 연희완에 관한 소문 따위, 오히려 그런 가십들에 씹혀지는 본인이기에 거의 99%는 믿지 않지만, 연희완을 보다 보면 그런 소문들이 오히려 이해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조폭 깔이라느니, 엄청난 자산가의 첩이라느니, 어느 유수 사업가의 정부라느니. 모아 놓고 하는 말만 보면 죄다 스폰서, 그러니까 남자 스폰서를 두고 있다는 것만이 공통점이 있었다. 중구난방,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소문들 중에서 유일한 공통점이 있다는 것은, 그거 하나만은 정말 사실일 수도 있다는 것이 이 바닥 정론이었다. 고로 장미호는 현재 연희완이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남자 스폰서를 가지고 있다. 고 거의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마련한 자리였고, 비싼 돈 들여 어렵게 구한 약이었다.
“요즘 작품 무척 잘보고 있어요, 연장 계획은 없대요?”
한쪽에서는 아가씨를 옆에다 끼고 앉아 하하호호 젖가슴에 화대 끼워 주며 즐거운 술자리를 만끽하고 있는데 이쪽에서는 쓸쓸하게 혼자 앉아 붙여주는 여자도 마다하고 고독을 씹고 있는 게 마음이 걸린다는 장미호가 희완의 잔을 툭툭 건드렸다.
“여태 한 잔도 안 하셨네? 에이, 이거는 좀 예의가 아니다. 그쵸? 사장님?”
부러 목소리를 간드러지게 높이는 장미호가 지 딸뻘인 여자애 가슴을 주무르고 있던 제작사 사장의 주의를 끌며 희완에게도 재차 술을 권했다.
“나랑 한잔해요. 이런 자리 와서 한 잔도 안 마시면 무슨 추태에요. 이것도 다 예의라고요, 예의.”
하며 장미호가 먼저 툭, 가볍게 술을 털어 넣는다.
장미호가 앞에서 그러는 동안 내내 남자가 제 안에 싸 놓은 것만 생각하고 있던 희완은 마지막의 예의라는 말만 듣고 아, 멍한 눈의 초점을 잡았다. 예의, 술을 마시라는 소린가 보다. 학정의 이름을 팔아 희완을 불러낸 장미호가 아니었더라면 여기까지 올 이유가 없는 희완이었고 또 제작사 측에 잘 보여야 할 필요가 없는 희완은 굳이 좋아하지도 않는 술을 마셔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내내 잔을 비우지도 않고 권해도 마시는 척을 하지도 않았는데, 막상 웃는 면전 앞에 대고 무안을 줄 정도로 매몰찬 면도 없었다.
술, 특히나 지금은 별로 들이키고 싶지 않았는데. 문득, 술을 들이키면 이 느낌이 덜할까 싶어 생각을 바꾸는 희완이었다. 그러니까, 희완은 이 자리에 나오기 직전에 남자와 관계를 가졌었다. 그것도 아무 사전 준비 없이, 매우 급하게, 차에서.
남자는 약속이 있다는 희완을 데려다 주러 온 것뿐인데, 어디서 욕정이 동했는지 몰라도 갑자기 내리려는 희완의 목덜미를 붙잡고 가까이 숨결을 붙여 오며 얼마나 시간이 있는지를 물었다. 20분 남짓 남았을까, 남자는 충분하다 했고 그대로 희완의 하의만 벗겨 운전대로 끌고 와 삽입을 했다. 요즘같이 몸도 마음도 벌어져 있을 때는 따로 공을 들이지 않아도 몸이 알아서 쉬이 열린다는 걸 희완은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렇게 길거리에 잠깐 세워 둔 차 안에서 남자의 목덜미를 껴안고 희완은 찰박찰박,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리도록 엉덩이를 흔들었었다.
아마, 희완이 부디펌프를 받았더라면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지만 해 본 경험 없고, 남자와의 관계를 그런 것과 결부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했던 스스로를 더욱 다그치듯이 하체를 붙여 안에 가득 들어찬 남자의 것을 꽉꽉 조이며 흔들어대다 결국 제 안에서 싸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사정에 남자 역시 약간 당황한 듯했다. 너무 흥분한 희완이 정말 강하게 승도의 것을 꽉꽉 조여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당황한 건 희완이었다. 주륵 제 안에서 흐르는 남자의 것을 치울 겨를도 없이 후다닥 옷을 꿰어 입고, 정말 추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소리를 지르며 창부처럼 흔들어댄 제 모습이 느닷없이 민망하여, 남자의 무릎에서 내려와 놓고서도. 내리기 직전, 고개를 숙여 제 것과 그의 것으로 범벅이 된 남자의 음경을 입으로 깨끗이 빨아 닦아주고서 마지막으로는 쪽 입술을 붙이고서야 급하게 차 문을 열었다.
“와우, 술 잘하시네요. 한 잔 더 하실래요?”
장미호가 준 술을 결국 단번에 털어 넣은 희완은 뜨끈한 것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안에 깊숙이 남은 남자의 흔적을 희석시키는 것도 같아 흔쾌히 다음 잔을 받았다. 제가 다른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장미호가 애써 구한 약을 술잔에 타 넣은 것도 모르고 말이다.
“고맙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제가 주는 잔을 감사히 받으며 또 단숨에 털어 넣는 희완을 본 장미호가 화사하게 웃으며 입에 레몬을 물려 주었다.
“맛이 어때요, 좋죠?”
“아, 좋은 술인가요? 저는 잘 몰라서.”
하며 수더분하게 웃는 희완의 잘생긴 얼굴을 보던 장미호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갔다. 뭐,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거지. 범죄를 저지르려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자기 합리화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