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제야 제일 중요한 걸 두루뭉술 넘긴 의사가 생긋 웃으며 답한다.
“해도 좋습니다만, 적당히, 걸러서 하시라는 거죠. 저번에 진료 기록 보니까 환자 분 항문 상태가 썩 좋지 않았었거든요. 계속 그 상태로 행위를 지속하시면 마흔도 안 돼서 환자 분은 정말로 기저귀 신세 져야 할지도 몰라요. 또, 소변 안 나온다고 자꾸 카데터로 빼는 버릇 들이셔도 안되구요. 진료 기록 보니까 가끔씩은 입으로 빨아서 나오게도 했다던데, 나쁘지 않은 방법입니다. 전립선 마사지도 있지만 그건 항문으로 뭘 집어넣어야 하고 또 찾기가 쉽지도 않으니까, 가장 좋은 건 입으로 빨아주는 거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그건 위생상.”
도대체가 결론을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게다가 한번 입을 열 때마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 의사가 에, 또- 에, 또- 할 때마다 점점 밑으로 떨어지는 희완의 목덜미가 빨개지는 걸 보던 승도가 결국 그 팔뚝을 잡고 끌어 올린다.
윤 박사의 입김이 들어간 걸 거의 확신하는 승도였다. 아파트로 부를 때마다 이러고저러고 그렇게 잔소리가 많더니 그 아바타도 하등 다를 게 없다. 결론은 해도 된다는 소리였으니 오랜 금욕 끝에 거미줄 치게 생겼던 좆부리 해방시켜도 된다는 말이다. 의사 선생님 말이라고 그걸 또 다 듣고 있으려던 희완을 끌고 진료실을 나온 승도가 빨갛게 물들어 있는 희완의 목덜미를 덮어 열을 식혀 주었다.
“나한테 별말을 다 하면서 의사한테 그 말 좀 듣는 게 그리 부끄럽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반박하지 않고 저도 제가 그럴 줄은 몰랐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희완이 머쓱한 얼굴을 하였다. 당분간은 삽입섹스를 자중하라는 윤 박의 진중한 경고를 무시했다가 한번 정말 거하게 둘이 몸을 부딪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희완이 거의 실신을 해서 난리가 났던 적이 있었다.
너무 흥분해서 마구 엉덩이를 흔들어대다가 딱 필름이 끊겼었는데 승도의 말로는 잠깐 기절을 했더랬다. 애널섹스의 문제가 아니라 공황장애가 민감 체질로 이어져 너무 극도로 흥분하게 되면 그런 증상의 일종으로 호흡곤란이나 일시적인 페이드아웃상태로 돌입하게 된다는 말이었다. 결론은 정신적인 문제라는 건데, 과거의 망령이 꽤 오래도록 남아 있다는 생각을 아주 잠시 했었다.
그래서 타협을 본 게,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삽입섹스를 자중하자는 거였다. 둘이 워낙 처음부터 과격한 섹스에 길들여져서 일단 눈이 맞으면 끝을 보고 마니 승도야 그렇다 쳐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입장인 희완은 무리가 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어쨌든 그리 합의를 보고 건강검진 예약 날짜를 받고 또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약 한 달간을 서로의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
물론 정말 손가락만 빤 건 아니고 삽입만 빼고 모든 짓은 죄 했고 그러는 과정에서 안달이 난 희완이 별별 소리를 다 내뱉곤 했던 것이다. 쑤셔달라는 기본이고, 평소라면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승도의 앞이라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뱉어냈던 것이다.
“결과가 좋다니 다행입니다.”
“네.”
진짜,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다.
병원에서 나와 향한 곳은 요릿집이었다.
예의 모란꽃처럼 화사한 여주인이 둘을 맞았는데 요즘은 드물게 희완과 말을 섞기도 했다.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눠 본 바로 사별했고, 장성한 아들이 둘이 있고, 과거 승도에게 신세 진 일이 있다던 그녀는 놀랍게도 불혹이 훌쩍 넘어 있었다.
굳이 안 해줘도 될 이야기까지 간간이 웃음을 섞어가며 이야기해준 여주인이 자리를 비운 후 희완은 뜨끈해진 목덜미를 덮어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제 속을 들킨 것 같아서, 민망해 그러고 있는 희완의 목덜미로 메마른 입술이 내려앉았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합니까.”
“항상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굳이 앞뒤 설명 없이도 잘 알아들은 승도가 창틀에 기댄 몸을 희완쪽으로 살짝 틀어 앉으며 귀를 기울인다.
“또 두 분이 서 계시면 간혹 그런 분위기도 들어서, 과거 몇 번 관계가 있지 않았겠는가, 그렇게까지 생각이 진행됐었는데.”
찡그린 눈가를 문지르는 희완이 덧붙이며 말을 맺는다.
“그분께 실례되는 짓이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헤프다고 남들까지 다 그런 건 아닐진대 말이다.
“무슨 생각 합니까.”
“너무 헤픈 것 같다는 생각이요.”
“누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드는 희완이 눈으로 답을 한다.
“뭐 또 나 말고 몸 팔러 다닌 적 있습니까.”
“아니요.”
“나 없을 때 딴 놈이라도 끌어들입니까.”
“아닙니다.”
“그럼, 나한테만 발정하는 그 몸이 그리 헤프다는 건데.”
별로 그렇게 부정적으로 사용한 단어가 아닌데 남자의 입을 통해 나오니 굉장히 잘못했다는 생각이 든 희완이 주춤 어깨를 젖히며 살짝 벌어진 입술을 핥았다. 빤히 희완을 응시해 오는 남자의 시선은 매번 늘 그렇듯 희완과 단둘이 있거나 아니거나, 상황과 여건에 상관없이 짙은 욕망이 도사린 눈길을 보내오곤 했었다. 지금 역시 그 위험수위에 다다라 있는 것을 감지하고도, 이런 미련스러운 이야길 한 거다.
“집에서 해요.”
“여기서도 여러 번 했습니다.”
“병원에서 막 나온 건데.”
“뭐, 이상 없으니 행복한 성생활을 영유하라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고 싶으십니까?”
“그렇게 하기 싫습니까.”
“아니, 저도 좋습니다. 단지 여기서는.”
“뭐, 상관없습니다.”
그렇다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남자가 순순히 물러나 준다.
“느긋하게 즐기는 것도 좋습니다.”
덧붙이는 말에 안도하던 희완이 저도 모르게 살짝 어깨를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