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는 딴 놈이랑 잘하는데 말이지.”
“그건.”
“키스는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하는 거라고 하지 않았나.”
“?”
대답을 하려던 희완이 눈썹을 크게 들어 올리며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그런 말은 언제, 하는 얼굴에 가만 그 눈을 들여다보던 승도가 뺨을 안아 그쪽으로 당겨 왔다. 입술이 붙는다.
“술주정 보는 거 꽤 귀여웠습니다. 건방지고.”
아.
그날 결국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가 보다.
“이것저것 좋은 말 많이 들었습니다.”
“…….”
“ ‘자지’ 라는 말도 들어보고.”
희완이 나른한 눈매를 천천히 들어 올린다.
“꽤 신선했습니다.”
자기가 그런 단어를 썼다는 말이 조금 믿겨지지 않아 미간을 좁히던 희완이 입술을 벌렸다. 가볍게 혀가 들어왔다가 나간다.
“이 입으로 자지를 빨아달라고 많이 졸랐습니다.”
“제가요?”
“자지도 빨아주고, 항문도 빨아주고, 아아- 그때 다 말했었군. 그런 거 다 좋아한다고.”
“…….”
말문이 막힌 듯한 얼굴의 희완이 곧 빨갛게 물드는 귓가를 문지르며 시선을 내렸다. 아무래도 믿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이렇게 맨정신으로 이런 이야기는 잘도 나누면서.
“또 뭐가 좋습니까.”
말만 해주면 다 해주겠다는 기세라 빤히 슬쩍 내린 눈으로 괜히 저 발치 끝에 있는 백일홍 꽃잎만 쳐다보던 희완의 목이 빨갛게 물들었다.
“백, 승도.”
“…….”
제가 잘못 들었는가 하여 달리 반응을 못 보이던 승도가 시선을 바꾸며 가만 희완을 들여다보았다. 말이 헛나온 건 아닌가 보다. 저 몸뚱이가 저리 새빨개진 걸 보면.
“압니다.”
희완이 시선을 올린다.
“나도 좋아합니다.”
담백하게 말하는 남자의 표정은 여느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실컷 음담패설을 나누다가 던지는 이런 고백이라니, 무드가 없다 싶으면서도 크게 대수롭지 않아 하는 희완이다. 제 속에 든 것들에 비하자면 그런 것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제 슬슬 밥 먹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몸을 일으키는 승도를 따라 시선을 올리던 희완이 천천히 상체를 일으켰다. 그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서 바닥에 깔아 뒀던 그의 재킷을 들고 묻은 것들을 탁탁 털어낸다. 그걸 가져가 대충 팔에 끼우는 승도가 제 옷에 묻은 것들도 털어내는 희완을 끌어다 등나무 의자에 앉힌다.
“아, 사과는 확실하게 했습니다.”
“…네?”
손수 희완의 옷가지에 묻은 풀잎 같은 것들을 떼어 내 주는 승도의 말을 아주 늦게 이해한다. 정말 그럴 줄은 몰랐는데, 조금 놀란 눈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니 툭툭 볼을 두드린다. 거기에 제 입술을 가져가는 희완이 어쩐지 낯부끄럽다는 생각을 했다.
남자의 방문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오전 일정을 마치고 상담 치료 전에 잠시 휴식시간을 가졌던 우진은 저를 찾아 온 손님이 있다는 소리에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스스로 자처하여 들어온 요양원의 보안은 최고 수준이었다, 그 보안 방침에 의하여 입원하여 있는 동안은 가족이나 친지의 면회도 허락되지 않았었다. 애초 찾아올 가족도 없었고, 학정 등에게도 찾아오지 말라 못을 박고 들어온 곳이었다. 그런데 면회라니, 이상한 일이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휴게실에서 남자를 발견했을 때 우진은 제 눈을 의심해야 했다.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등 뒤에서 문이 닫혔고 창틀에 기대앉아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던 남자가 우진을 돌아보았다. 확실히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동안 몸을 일으킨 남자가 휴게실을 가로질러 빈 의자에 앉았다. 머릿속에서 오만 가지 생각이 제멋대로 오가는 걸 방치하고 있던 우진이 정신을 차린 건 그가 발끝으로 빈 의자를 툭 건드렸을 때였다. 앉으라는 소리였다 그 무례한 행동에 잠시 혼란스러워하던 우진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그쪽이 날 찾을 이유가 없을 텐데요.”
싸늘하게 말을 뱉는 우진이 의자를 끌어다 앉으며 남자를 똑바로 응시했다.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의 눈은 짙고 검었는데 그 밑에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잔혹하고 흉악한 괴물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하준우를 비롯해 우진이 거쳐 갔던 몇몇은 차라리 인두겁을 쓴 괴물이라 해도 좋을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던 권 회장과 파워게임을 할 수 있는 종자라면, 그 성정에 대해 논하는 건 시간낭비일 따름이었다.
“좋았습니까.”
“뭐라고요?”
“연희완과 주둥이를 맞추고 알몸을 부비니 좋더냐, 이 말입니다.”
불쑥 뱉어진 한마디에 무슨 소린가 하여 대꾸하던 우진은 연이어 던져진 말에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멀끔하게 잘 차려입고 멀쩡하게 생긴 얼굴로 무심히 우진을 쏘아보는 남자가 뱉는 말들은 저속하기 그지없었다.
“그 자리에서 목을 부러뜨려 죽여 버릴까 했습니다.”
그 말이 진심이란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언성을 높이는 것도, 눈을 부라리며 윽박지르는 것도 아니었으나, 남자의 전신에서 은연중에 배어 나오는 악기는 절로 우진을 긴장케 하였다.
“그 알량한 목줄이라도 부지하고 싶다면 6년간 깔개 노릇하며 갈고닦은 몸뚱이 간수 잘하는 게 좋을 겁니다.”
고저 없는 음색 덕분에 남자의 협박을 실감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겁을 집어먹고 위축되는 대신 눈을 치켜뜨는 우진의 눈빛이 싸늘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