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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이 허전해 눈을 뜬 남자가 빈자리를 확인하곤 휙 이불을 젖히며 침대에서 내려섰다. 안방 문을 열고 나가니 식탁 앞에 등을 돌리고 앉은 희완의 모습이 한눈에 들었다. 말도 없이 어딜 갔나 했더니, 의자 위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아마도 극본일 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희완은 아까부터 계속해서 턱을 우물거리며 무언갈 씹고 있었다. 이마 위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대충 쓸어 넘기며 다가간 승도가 의자를 끌어다 그 앞에 앉았다. 극본에서 시선을 떼어 그를 보는 희완이 손에 들고 있던 걸 내밀어 준다. 여주인이 챙겨 준 약과였다.
“눈뜨자마자, 안 들어갑니다.”
말은 그러면서도 내민 손을 통째로 쥐어 약과를 받아먹는 남자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진다. 단걸 질색할 정도는 아니지만 딱히 즐겨 찾지도 않기에 가끔 요릿집에서 다과로 내오는 것들은 대게 희완의 입맛에 더 맞는 것이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희완이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상 내가는 재미가 늘었다는 여주인은 그 즐거움을 색색의 다과상으로 여과 없이 드러내었다.
“이제 들어갑니까.”
“며칠 동안 살살 하셨잖아요.”
말 한마디 않고 독하게 버티다 종종 실신하듯 잠들기도 하는 걸 품에 안고 얼러주기도 했었다. 이불 속에서 주둥이를 붙이고 있는 걸 보고 이성이 날아갔지만 끌어낸 희완을 차에 내던졌을 때 하얗게 질린 그 얼굴을 본 순간 어이없게도 화는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 다만 고집을 부리는 희완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그러던 중에 뻔히 들여다보이던 그 속을 보자니 심사가 뒤틀리기도 했었다. 희완이 먼저 굽히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정말 승도는 끝까지 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오늘도 나갑니까.”
테이블에 팔을 걸치고 감상이라도 하듯 희완을 담아내는 눈으로 반듯한 이목구비가 들어찬다. 재능이 없더라도 그 재능에 비견할 만한 외모였다. 성격이 유연했다면 진즉에 이름 날리고도 남았을 희완은 그래서 더 희소한 구석이 있었다.
“오늘 종일 연습 있습니다.”
“몇 시에 끝납니까.”
“그건 잘-”
대본에서 눈을 떼는 희완이 손끝으로 턱을 눌렀다. 그리고 난감한 듯 눈살을 찌푸린다.
“안 하셔도.”
“일은 잘 봅니까.”
앞뒤 다 잘 못 보는 편이었다. 그래도 기구를 이용해서 빼야 했을 때보다는 낫다. 아직도 피부는 민감해서 웬만하면 벌거벗고 있는 희완은 현재도 셔츠 한 장만 걸친 채였다. 의자 위에 양반다리를 하고 있으니 가랑이가 훤히 벌어져 있었는데 그걸 덮고 있던 셔츠를 승도가 걷어 올렸다. 발기 전임에도 부어올라 축 늘어져 있는 성기를 가만 만져준다. 헐었던 것이 많이 좋아져 만져도 간지러운 감각만 올라왔다.
“비는 시간이 몇 십니까.”
“오후 연습 시작 전에 12시부터 2시까지 시간 빕니다.”
“병원 들렀다가 점심 먹읍시다.”
“아.”
병원을 가자 하니 눈매가 조금 흐려진다. 승도에게는 부끄러운 게 하나도 없다는 듯이 굴면서, 아무리 의사라도 밑 내보이는 건 싫은 모양이었다. 얼굴을 익힌 윤 박사가 보자 할 때도 이따금씩 눈살을 찌푸리곤 했던 희완이었다.
“괜찮을 것도 같은데요.”
한번 봅시다.
하는 승도가 희완을 끌어다 테이블에 눌렀다. 엉겁결에 끌려가 가슴을 차가운 테이블에 바짝 붙이게 된 희완이 절로 허벅지를 굳히다 결국 힘을 빼고 만다.
병원만 안 간다면.
또 희완이 혼자 살펴보기에 위치적으로 뒤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손가락이 밑을 벌리는 느낌이 선연했다. 아프지는 않고 그냥 조금 간지러웠다. 아직도 벌어져 있나 싶어 물었더니 꽉 오므려져 있단다. 며칠 삽입 없이 요도나 다른 방식으로 괴롭혀졌던 게 그나마 도움이 되었나 싶었다. 화가 나거나 열이 받으면 지나치게 냉정해지는 구석이 있는 남자는 정말 비참하다 싶을 정도로 희완을 굴릴 때도 있었는데 이젠 그런 것도 괜찮았다. 매번 귀를 파고드는 음담패설도 들으면 낯이 뜨거워지긴 하지만 동시에 밑이 뜨거워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손가락 하나가 밑을 파고 들어와 안을 훑고 나갔다. 내벽은 아직 얼얼한 부분이 있어 낮게 신음을 흘렸더니, 약을 바르자 한다. 가지러 가는 동안 따로 움직이기도 귀찮아서 내내 식탁에 엎드려 있었더니 배가 차가워졌다. 그렇게 계속 대고 있으니 알알하게 아파와 허리를 펴는 희완의 아랫배로 남자의 손이 둘러졌다. 열이 많은 그의 손이 배를 문질러주니 그나마 좀 나아졌다.
“날 잡아서 건강진단 받읍시다.”
남자한테 시달려지는 것만 아니라면 건강에 큰 이상은 없을 것 같았지만 희완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침대 위에 엎드려져 다시 밑이 벌려짐과 동시에 차가운 것이 안을 부드럽게 훑으며 들어왔다. 축축한 것이 닿으니 화끈거리면서도 시원한 감각에 아래가 찌릿해져 왔다. 그 때문에 나른히 호흡을 하던 희완이 눈을 감았다.
가운데 서서 발성 연습을 하던 석주가 눈이 마주치니 한참 뜸을 들이다 어색하게 웃어왔다. 그걸 본 희완도 간단히 웃는 것으로 화답하며 탈의실로 들어갔다. 누가 들어오기 전에 서둘러 연습복으로 갈아입고 나오는데 오랜만에 연습실에 모습을 드러낸 학정이 극본을 넘겨보고 있었다. 곧 들어갈 작품이었고 그가 쓴 글이기도 했으나 우진의 입원으로 오디션이 두달 뒤로 미뤄졌다 그 사이 받아 온 작품 하나가 새로 공고에 걸렸다.
“오디션은 다음 주 월요일, 오후 2시. 극단 화랑. 지원 자격 없고, 배역 결정되면 바로 연습 들어간다니까, 스케줄 조정 다들 해 두고. 오늘은 용인 갈 건데 다섯 명만 붙어.”
으아 용인이라니, 누군가 중얼거린 소리에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지원자 없으면 차출해 간다는 소리에 눈치만 보던 단원들 중 결국 제일 막내들이 손을 들었다. 대기 시간도 보통 촬영보다 훨씬 길고 나눠 찍는 테이크도 많은 데다 보통 야외 촬영이 많아 사극 촬영 지원은 다들 꺼려하는 구석이 이었다. 필영이 있었다면 학정처럼 의견 물을 것도 없이 수염 기른 놈들 우선으로 착착착 동의도 없이 골라서 갔을 텐데 학정은 그런 데서 무른 구석이 있었다. 하긴 필영이 아니더라도 극단에서 가장 무른 사람을 꼽는다면 학정이 압도적일 것이었다. 제일 무섭게 생겼는데 제일 만만한 것도 사실이었다.
“석주 이리 와 봐.”
“넵!”
“희완이도 이리 오고.”
“네.”
알림 사항을 마친 후 해산하는 중에 둘을 불러 세운 학정이 사무실로 쑥 들어갔다. 필영은 촬영 지원 나갔고 마누라가 감기 몸살로 몸져눕는 바람에 애들 등교시키느라 늦는다던 경성은 아직이었다.
“석주 이번에 영화 하나 들어가라. 희완이는 오디션 준비하는 틈틈이 석주 준비도 도와주고.”
“영화 말입니까?”
뜬금없는 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뜨는 석주에게 시나리오 한 부가 날아갔다.
“어?”
제목을 보자마자 석주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입봉작부터 가장 최근작까지 개봉하는 영화마다 초대박을 터트리며 일대 반열에 들게 된 감독의 신작이었다. 벌써부터 톱스타들이 줄을 대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석주의 손에 든 것이었다. 감격스러워하는 석주가 눈을 그렁그렁거리기도 전에 별 볼일 없는 역이라고 못을 박은 학정이 시계를 들여다본다. 본인은 매번 메이크업이다 마사지다 뭐다 한 두 시간은 기본적으로 늦는 주제에 학정이 1분만 늦어도 쌍심지를 켜는 장미호와의 약속시간이 촉박했다.
“오디션은 따로 안 봐도 되는 거니까 긴장할 건 없는데, 카메라 테스트 정도는 들어가니까 뭣하면 스튜디오 한번 가 보든가.”
경성이 그리 치를 떠는 피팅 모델 알바를 눈치껏 밀어 넣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는데 바로 학정이 말하는 스튜디오 주인이었다. 대학 때 취미로 시작한 사진에 의외로 소질을 보여 국외 유학까지 갔다가 중간에 풍운을 접고 스튜디오로 노선 변경을 한 홍영은 낭만파인 동시에 지독한 현실주의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자기가 성공을 못한 거라고, 호탕하게 웃던 그는 빛을 쓰는 데는 웬만한 막눈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감각이 뛰어났다.
그 유쾌하고도 괴팍한 성격 탓에 맘에 드는 배우가 피사체 한번 되어주면 심심찮게 스튜디오도 빌려주곤 하는 홍영의 단골손님은 예의 우진이었고, 희완이었고, 도연이었다가 요즘엔 광민과 석주에게도 기울어지는 듯 했다. 지조도 없는 놈이라고 구시렁구시렁 대는 필영은 애초 그 입에서 거론된 적조차 없었다. 홍영은 철저한 외모지상주의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