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런두런 굵은 목소리 두개가 반쯤 열린 안방 문을 통해 흘러들었다. 침대에 엎드려 매트리스에 코를 박고 있던 희완이 눈을 뜬 건 남자가 몸을 뒤집어 똑바로 눕혔을 때였다. 별다른 기미가 없어 오늘은 안 하는가 하고 멍하니 그를 올려다보던 희완이 그대로 까무룩 잠들었다.
“석주가?”
“네, 많이 아픈가 봐요. 새벽에 토하고 난리도 아니어서 병원 갔더니 세상에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래요.”
“스트레스? 요즘도 피팅 모델 하나?”
“아니요오, 그거 끝낸 지가 언젠데요. 부단장님한테 걸리면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나요.”
그래도 돈 궁하면 자연히 하게 되는 거라 다들 알면서도 쉬쉬하는 거다. 피팅 모델 하는 거야 크게 문제 될게 없지만 사이즈 맞춘다고 벼락 다이어트 하느라 연습 때마다 힘을 못 쓰니 경성이 그리 화를 내는 것이다. 젊을 때 몸 관리 안하면 니네 진짜 늙어서 골병든다고, 그 잔소리가 말도 못할 정도였다.
“그래서 퇴원은 했고?”
“네. 오늘 아침까지 링거 맞고 바로 퇴원시키더래요. 젊은 놈이 이런 걸로 병원 와서 드러누웠다고 엉덩이 한 대 까이면서요.”
하며 낄낄낄 웃는 주경은 과연 연애 경력 3년 차의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턱까지 올라오는 목 티를 이젠 거의 습관처럼 끌어올리는 희완이 그랬느냐며 고개를 주억거리다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난밤 샤워실 앞을 휙 지나갔던 검은 것을 떠올린다. 석주였다. 그런 게 아니고서야, 멀쩡히 잘 다니던 녀석이 어제 갑자기 그리 탈이 날 일이 없다.
꾹 다물어질수록 입매가 선연해지며 색스러워 지는 희완의 입술은 요즘 들어 더욱 색이 짙어지며 살짝씩 부어 있어, 보는 사람들을 괜히 심란스럽게 했다. 심심찮게 어린 단원들 사이에서도 목에 붙어 있는 쪼가리를 봤다느니, 안 봤다느니, 지들끼리 실랑이 하다 정통으로 걸려 석주경하고 광민한테 호되게 까이고, 그런데 며칠 전에는 주경도 흘러내린 목 티 밑으로 슬쩍 드러난 걸 우연히 본 것 같기도 하고, 유난히 창백한 뺨을 넋 놓고 보고 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오지랖이다. 오지랖. 그나저나 석주 이노무 자식은 무슨 남자애가 그렇게 신경이 약해, 고깟 스트레스 때문에 병원신세 까지 지고. 그렇게 부실해서야 어따 써먹겠느냐며 투덜거리는 주경이 커플 폰을 꺼내 석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입에 들어 찬 걸 꿀꺽 삼킨 희완이 부은 입술을 혀로 핥으며 고개를 들었다. 남자의 정액도 초반과는 달리 비교적 묽어졌다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아침이면 도로 걸쭉해지는 그것은 점성 짙은 치즈 같기도 하고 흰자를 섞어 놓은 것 같기도 했다. 가끔 입으로 받은 것을 뱉게 하고 그걸 도로 핥아 먹게 하는 경우도 있는데, 아무리 먹는 게 익숙해졌다 하더라도 그런 건 좀 껄끄러웠다. 그래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남자가 손만 뻗으면 언제든 희완에게 쑤셔 박을 수 있다는 사실은 희완보다 남자가 더 잘 알고 있을 터였다. 그건 그 뜻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게 전부였다.
“오늘도 출근 안 하십니까.”
두 달쯤 된 것 같다.
그사이 얼굴이 더 짙어지고 그 박력이 두드러진 남자가 고개를 젓는다.
“형님.”
묵묵히 서류를 들여다보던 남자가 시선을 든다. 상대하기 귀찮아하는 눈빛이었다. 심경이 불편한 그를 굳이 건드릴 이유는 없었으나 지금 남자가 진행하는 일은 상당히 위험도가 높은 일이었다. 이권에 개입되어 있는 인물들 면면이 죄다 정재계에서 한 가닥씩 한다는 인물들이다. 클럽 세워 놓고 그 밑에서 음성적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철진은 물론이고 주석 그룹에도 영향이 갈 소지가 있었다.
“그냥 적당한 값을 받고 파시는 게.”
“누가 내 머릴 깨면 목이라도 베어 와야 직성이 풀립니다.”
누이가 죽었을 때부터 그러했고, 아마 앞으로도 평생 그럴 것이다.
새삼, 희완을 안으며 눅진하게 변해 가던 일부분이 다시 검게 굳어져 가는 기분에 눈매를 굳히는 승도다. 버티면 버틸수록, 승도는 더욱 지독해져 갔다. 속이 알알해 살짝만 건드려도 울 것처럼 자지러지면서도 독하게 버티는 희완에겐 과연 매일같이 몽둥이찜질을 당하면서도 쉽게 업자들의 손에 떨어지지 않던 강단이 남아 있었다. 그때는 그리 짐승같이 살기 싫어 버텼다는 이유를 납득이나 하지. 도우진에게서 끌어온 날부터 그리 고집스럽게 변해버린 희완을 떠올리는 승도의 눈매로 짙은 어둠이 드리워졌다. 이불 속에 기어들어 가 벌거벗은 놈과 주둥이를 붙이고 있던 희완을 그대로 씹어 먹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시위를 해.
서류를 내려놓은 승도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다. 행위로만 따진다면 이런 게 강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희완은 그것조차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몸 섞는 건 몸 섞는 거라고, 분리하여 사고하는 그 시꺼먼 머릿속을 뻔히 들여다보며 승도는 종종 불쾌감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의도대로라면 결국 승도도 화대를 받고 몸을 팔게 되는 것이다. 연희완의 몸뚱이라는 화대.
“그럼 내일까지 정리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끝내 아쉬운 기색을 접지 못하면서도 꾸벅 고개를 숙여 나가는 철진을 보던 승도가 곧 담배를 빼어 물었다. 긴 장초를 평소보다 좀 더 느긋하게 피워내며 데스크에 걸터앉았던 그가 담배꽁초를 눌러 껐다. 손목시계를 풀어 놓고 소매를 걷어 올리며 데스크를 빙 돌아간다. 의자 안쪽 책상 밑 빈 공간에 벌거벗은 몸뚱이 하나가 웅크려 있는 것이 보였다. 희완이었다.
모로 세운 몸을 고슴도치처럼 웅크리고 있는 희완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철진이 방문한 지 이제 사십분이 지났을까. 그가 방문하기 직전 카데터를 통해 1리터의 관장액을 막 다 받아내었던 희완은 진작부터 터질 것 같은 배를 붙잡고 사십분을 참은 것이었다. 십분 견디기도 힘든 것을 그리 오래 버텼으니 저리 사지가 바들바들 떨리는 것도 이해는 될 터였다. 왜, 그것도 평소처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며 철진 앞에서 추태를 보이라지. 심사는 뒤틀렸으나 승도는 누구에게도 연희완의 속살을 보이는 걸 질색해했다. 반쯤 나와 있는 의자를 발로 치워주니 책상 모서리 쪽에 머리를 박고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희완이 주춤주춤 몸을 움직였다.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에서 벌써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행여 못 참고 소리라도 흘려낼까 작정하고 짓씹은 지경이다. 도움의 손길 없이 스스로 책상 밑에서 기어 나온 희완은 당연히 걷지도 못했고 제대로 기지도 못했다. 엉금엉금 수준도 못 되는 꼴로 바닥을 기어가던 희완이 갑자기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다 흐으으으, 목이 긁어지는 소리를 내었다. 쿵. 이마를 바닥에 박는다. 더는 견딜 수 없는지 엎드려 있는 희완의 항문이 움찔움찔 아슬아슬하게 풀어지려는 게 눈에 띄었다. 화장실까지 가는 길이 천리만리 같은 것이다. 그걸 데스크에 걸터앉아 지켜보는 승도는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희완 스스로 도움을 요청 할 때까지는. 일부러 욕실이 아닌 서재에서 판을 벌인 까닭이었다.
파득파득, 발가락까지 오므라들 정도로 살인적인 변의에 시달리던 희완이 다시 바닥을 기었다. 한참을 그렇게 굼벵이처럼 기어가다 겨우 욕실로 들어가 문도 잠그지 못한 채 변기에 웅크려 앉는다. 곧 희완에게서 흐느낌 비슷한 소리가 쉼 없이 새어 나왔다. 담배를 더 태우며 그것을 고스란히 듣고 있던 승도의 눈매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그러나 곧 마지막 담배 연기를 뱉어 놓으며 티도 안 나는 한숨을 섞어 내기도 한다. 욕실 안쪽에서 간헐적으로 쏟아지는 흐느낌이 신경을 긁었다. 오늘은 이쯤에서 끝내야 겠다 하며 일어선 그가 욕실로 향하였다. 막 몸을 씻고 나오는 희완의 얼굴이 파리해져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피한다. 연이어 머쓱하게 붉어지는 귓불을 보고 희완은 확신했다. 해서 더 말을 건네지 않고 연습실을 나오는데 뒤따라오는 석주의 시선이 느껴졌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희완은 알 수 없었고, 별로 추측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음부 꼴이었는데, 그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었겠나.
요새는 몸에 흔적을 남기기보다 희완의 인내심을 측정하는 것에 공을 들이는 남자는 하도 박아댄 탓인지 별로 삽입에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는 자제하는 것이었으나 희완은 그게 자제하는 거라고 납득할 수 없을 지경이고, 몸이 피로해 살짝 정신이 메말라 있는 상태였다. 가끔 한계에 치달으면 도대체 제가 왜 이러고 있는지조차 의아해졌다. 별거 아닌 걸로 이러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남자한테 이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하고, 스스로를 이렇게 학대할 필요가 있는가 싶기도 하고, 반면 남자에게 느끼는 감정 역시 비슷했다.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남자에게도 과연 있을까 하는.
역시 심신이 피로하니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해진다.
하긴, 처음 이 일이 시작됐을 때조차 제대로 된 사고가 불가능하기는 했다.
키스, 고작 그 키스 한 번이 뭐라고.
오늘따라 집에 들어가는 게 주저되어 한참 극단에서 시간을 보내다 학정이 온다는 소식에 슬그머니 연습실을 빠져나왔다. 발길 닿는 대로 대학로 구석을 어슬렁거리다 자정을 넘겨서야 귀가했다. 남자는 무슨 바쁜 일이 있는지 최근 사나흘 잠깐 옷만 갈아입고 나가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몸은 한결 편해져 있었고 잠도 며칠 편히 자고 나니 공연히 심란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희완은 제 발치를 잡고 있었다.
물이 닿기만 하면 쓰라리던 정도는 가셔서 오랜만에 시간을 들여 깨끗이 샤워를 하고 나온 희완이 셔츠를 한 장 뒤집어썼을 때였다. 핸드폰 벨소리가 들려 찾아보니 학정이었다. 주저하다 전화를 받는다.
-잠깐 보자.
미처 인사를 하기도 전에 뱉어지는 말에 도로 입을 꾹 다무는 희완이 제 발치를 보았다.
-나와. 집 앞이다.
통화를 마친 희완이 한참 우두커니 서 있다 겨우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향하였다. 2월 말이라도 부는 바람이 차가웠는데, 그 바람이 쌩쌩 들이치는 아파트 놀이터 벤치에 앉은 학정의 덩치가 눈에 보였다. 구석에 서서 머뭇거리다가 다가서니 먼저 말을 걸기도 전에 돌아본다.
불쑥- 몸을 일으키자 늘어나는 덩치가 희완에겐 익숙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