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완은 억지로 밥을 먹여지는 동안에도 밑에는 남자의 것을 담고 있어야했다.
허벅지 위에 앉혀져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그의 것을 담고 있는 내내 입으로 여러 가지 것들이 밀어 넣어 졌다. 그것은 뜨거운 죽일 때도 있고, 물에 밥을 갠 것일 때도 있고, 빵일 때도 있고, 과일일 때도 있고, 초콜릿이나 사탕 따위일 때도 있었다. 어쨌거나 그런 것들을 받아먹을 때도 희완은 남자가 흔들라 하면 흔들면서 먹을 것을 씹었다.
3주 정도 입원해 있던 우진이 퇴원을 하는 날 희완도 병실을 찾아갔다.
남자가 보내준 차에 태워져 병원에 도착하고서도 한참 공원 벤치에 멍하니 앉았던 희완은 온몸이 싸늘하게 식은 뒤에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럼에도 속 깊은 곳은 뜨겁기도 하고 시리기도 해서, 영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니 그때의 그 백치처럼 애처로웠던 모습은 간데없이 말끔한 얼굴의 우진이 희완을 맞았다. 희완이 그렇게 끌려가고 우진도 응급치료를 받은 즉시 병원으로 옮겨졌다 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촬영을 마치고 귀가한 학정에게 우진의 소재를 알린 건 남자였다. 핸드폰을 학정의 아파트에 두고 와 남자에게 붙잡혀 있던 이틀간은 누구에게도 연락하기가 어려웠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 육체적, 정신적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남자와의 관계로 인해 간신히 구축해 온 일상을 흩뜨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억지로 몸을 추슬러 엿새째부터는 극단에 출근하면서 남자를 받았다. 힘들었지만 버티자면 버티지 못할 까닭도 없었다.
엿새 만에 극단에 발을 들이면서 많이 혼날 각오를 했었는데 경성을 비롯한 단원들은 웃으며 희완을 반겼다. 사무실에 앉아 경성에게 핸드폰을 전해 받으며 제가 엿새간 지방촬영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학정이 댄 핑계였으리라. 핸드폰을 확인하니 우진이 입원한 날 학정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가 서른 통이 넘어 서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아마 입원해 있다는 우진의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병원으로 향하면서 희완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받지 않는 전화를 계속 걸으며 그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 갔을 것이다. 부재중 전화는 같은 날 오후 이후론 들어온 게 없었는데, 아마 제 집 안방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발견하고 더 연락을 넣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희완은 내내 남자의 곁에 있었고, 학정 역시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으리라.
“손은 괜찮냐.”
“어, 말짱해.”
우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는 희완이 가볍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말 그대로 멀쩡한 건 아니었지만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보기보다 깊게 파였던 환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남자가 약을 발라주고 붕대를 갈아주어 덧나지 않고 깨끗이 나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몸을 섞는 대신 대화는 눈에 띄게 줄었는데 무심히 희완을 챙겨주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역시 남자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실질적으로 남자가 희완을 해하여 오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희완은 그에게서 여지껏 받아본 적 없는 보살핌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리 싸늘하게 저를 짓쳐 오는 남자를 이해하는 건 새삼 어려운 일이었다.
몸을 섞는 건 별개의 일이다. 큰 것이 밀고 들어오면 괴롭고, 힘들고, 이따금 찢어져 아플 때도 있지만, 때때로 희완도 흥분하여 쌀 것은 싸고 빨아들일 것은 빨아들인다. 생각하기에 몸의 그런 반응은 마음과는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남자를 생각하면 속은 이렇게 시고 쓰린데, 몸은 그렇게 뜨겁고 흥분하여 안달을 했다. 육체라는 것은 사실 마음의 뒤채임과는 크게 관계가 없지 않을까 하는 희완의 눈이 음울하게 가라앉는다. 이젠 정말 남자가 무슨 짓을 해도 희완은 수치심 같은걸 느낄 수가 없어졌다. 심지어는 하는 도중에 누가 들어와도 크게 놀랄 것 같지 않았다. 그건 관성에 가까운 것이라 몸을 들이밀면 열고, 싸면 마시고, 쏟아내게 하면 쏟아내는 것과 다름없다. 이렇게 제 안의 무엇을 하나하나 파괴해 가는 남자는 그러면서도 그런 것들에 크게 만족해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아.”
건조하게 흘러나오는 음성에 우진을 빤히 들여다보던 희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누이와 성환도 약에 취해 저지른 일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였다. 희완 역시 스스로에게 공황증세가 있다는 걸 남자에게 들어 알게 되었다. 발작이나 환각 상태는 의식이 길을 잃어 분실되는 현상이라는 것에서 공통분모가 있었다. 머리를 쓸어 올리는 우진의 소매 아래로 단단히 감겨져 있는 붕대가 비쳐졌다. 그리 추워 몸을 떨면서 허덕이던 우진이 겹쳐진다. 괜찮아지지 않는 것이다. 원하는 대로는, 결코 쉬이 좋아지지 않는 것이다.
“다시 약 처방받으면서 재활받기로 했다.”
“어, 얘기 들었어.”
“미안하다.”
그럴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그날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 건 희완 역시 마찬가지였다. 드물게 해사한 얼굴과 끊임없이 연이어졌던 대화는 꼭 스무 살의 연희완과 스물여섯의 도우진이 마주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시간이 그리운 만큼 그 잠시간의 회귀가 기꺼웠었다. 몽중을 헤매는 것 같기도 한 그 나른한 시간을, 희완 역시 만끽하였다.
“이렇게 했어야 했어?”
“…….”
답이 없는 우진이 해를 받아 더욱 창백해진 얼굴로 희완을 보았다.
모를 거라 생각했었던가. 아니, 모르길 바랐던 거다.
“다른 방법이, 이거 말고는 다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는 우진이 손바닥으로 입술을 덮는다.
견디는 것으로 약을 잠시 잊었던 것뿐이다. 그 바닥에서 학정으로 돌아온 이후로도 우진은 조금도 나아진 게 없었다. 그걸 인정해야 했다. 학정도, 희완도, 우진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해야했다. 우진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속에서부터 서서히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과거의 잔해였다. 다 불태우지 못한 불씨가 속에서부터 타들어 가 우진을 좀먹어 가고 있었다. 약은 촉진제에 불과한 것이었다. 인정해야 했다. 우진은 쓰레기였고, 약물 중독자였고, 섹스 중독자였으며, 더러운 밑바닥에서도 가장 하찮은 버러지였다. 톱스타 도우진은 허상에 불과했고, 배우 도우진은 말라비틀어진 고목나무였다. 육체에 기생하여 숙주를 집어삼키는 독처럼, 우진 역시 학정과 희완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것을, 인정해야 했다. 우진 혼자만이 아니라, 학정도, 희완도,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어떤 것은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나아지지 않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전화하셔서, 속상하셨는지 많이 우시더라.”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원하는 길만 걸어간 강성이었다. 그 고집과 근성이 어디 처음부터 그랬겠는가. 남들 다 쉽게 가는 길을, 옳지 않다 하여 휘어지지 않고 똑바로 걸어간 길을, 그 역시 돌아보면 굽이져 있음을 깨닫기 까지, 학정 역시 아집과 오기로 똘똘 뭉쳐 있던 날들이 있었을 테다.
“남 때문에 제 부모 가슴에 못 박는 못난 놈인데.”
평생 아들 일에 간섭 한번 하지 않고 묵묵히 뒷바라지 해 오신 부모 가슴에 못 박을 일은 감히 우진이 되어선 안 되었다. 학정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졌다며, 무뚝뚝한 그놈 자식 같지 않게 살갑고 예뻐서 주책을 떨었다고, 그간 미안했다고, 자려고 누웠는데 하도 마음에 걸리고 신경이 쓰여 잠이 오질 않아, 혹시나 하고 전화 한번 걸어 보았다는 노모의 음성은 몹시도 가라앉아 있었다. 안 될 말이었다. 우진은 학정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 부채감은, 실체조차 없는 그 부채감에 발목 잡혀 기우뚱 기울어져 있는 학정은 안 될 말이었다.
“뭐 잘났다고.”
말을 맺지 못하는 우진이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집을 나가겠다고 하니, 순순히 받아들이지 못한 거다. 나아졌다면서도, 학정에게 우진은 아직 멀쩡하지 못한 놈이었다. 그런 놈이 혼자 떨어져 나가 살겠다니, 그 역시도 겁을 집어먹은 거다. 얼마나 많은 걸 상실하며 살았겠는가. 미련스럽게 제 자리에 우뚝 서서 버텨 오며 그 역시 얼마나 많이 상실하며 살았겠는가.
제 어미에게 전화해 괜한 분풀이를 할 만큼 학정 역시 불안했을 것이다. 그에게도 무언갈 잃음으로 인해서 얻게 된 트라우마가 감지하지 못한 곳에 깊이 남아 그리 그를 휘두르는 것이리라. 꼴같잖은 일이다. 누군가 누구를 평생 책임져 준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고, 가능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선택은 우진이 했다. 그걸 왜 같이 나누겠다고 그 미련을 떠는 것인지, 우진은 알기 때문에 입을 닫았다.
이 역시 부채감이다.
학정으로서는 죽었다 깨나도 결코 되돌려주지 못할 것에 대한 부채감이다.
그로서는 받겠다 한 적 없는 것에 대한 부채감.
그것은 우진을 비참하게도 했고, 서럽게도 했고, 고통스럽게도 했다.
깨어진 것이라고 선언을 해야 했다.
네가 괜찮겠다고, 다시 붙이면 쓸 수 있다 호언한 것은, 아직도 깨어져 있다고. 언제 다시 붙을지, 방치하면 영영 깨어진 채로 살아야 하는 것이라는 걸, 그 눈으로 똑똑히 보게 만들어야 했다. 너는 나에게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한동안 얼굴 보기 힘들 거다.”
너에게는 정말 면목이 없다며 그리 말하는 우진의 등 뒤로 한겨울의 맑은 햇살이 녹아들고 있었다. 학정의 곁에도, 희완의 곁에도, 다른 누구의 곁에도 있을 수 없고, 혼자서도 살아갈 수 없다면, 우진의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장기간 전문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우진이 든 게 별로 없는 가방을 훌쩍 둘러매었다. 차라리 홀가분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그걸 물끄러미 마주하던 희완도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병실을 나섰다. 적당한 소음이 활기차게 울려 퍼지는 복도를 걸어 나가는데 뒤에서 우뚝 멈춘 우진이 의아한 얼굴을 하였다.
“너 걸음걸이가 왜 그래?”
아.
덩달아 걸음을 멈춘 희완이 순순히 답을 했다.
“너무 많이 해서.”
“뭐?”
제가 잘못 들은 것인가 하여 되묻던 우진이 곧 그 뜻을 알아차리곤 급격히 얼굴을 굳혔다.
“너 강제로 당하는 거냐.”
환자 두엇이 오가는 복도에서 희완에게 바짝 붙은 우진이 낮게 말을 씹어뱉었다. 그러나 희완은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반응한다. 아니라고, 저도 좋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희완의 창백한 낯빛을 본다. 요즘 들어 어딘가 멍해지고 나사 한둘은 풀린 것처럼 돌아다닌다는 말을 병문안 온 석주경에게 번갈아 들었다. 여전히 예쁘고 잘생기긴 하셨는데요, 뭔가 좀 이상하세요. 그게 또, 말끝을 흐리며 결국 입을 꾹 다무는 석주는 약간 혼란스럽고 당황한 눈치였었다.
설마 싶은 우진이 희완을 끌어다 비어있는 병실 아무 곳을 찾아 문을 걸어 잠갔다. 옷을 벗기는데 아무런 저항을 하지 않는 희완 때문에 우진은 기분이 가라앉는다. 반절도 벗겨내지 않았음에도 희완의 몸을 죄다 덮고 있는 자국들을 보고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입술을 바르르 떨며 그걸 참아내던 우진이 결국 화장실로 뛰어가 구역질을 하고 만다. 빈 병실 가운데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고 있던 희완이 훌렁 벗겨졌던 옷을 다시 뒤집어 입으며 우진에게 다가갔다. 등을 두드려주니 역하게 올리던 구역질을 차츰 잦혀간다.
“너 때문에 한 거 아니다.”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