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95화 (95/123)

씻고 나오니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우진이 안녕히 주무시라는 말을 끝으로 수화기를 내려놓고 있었다. 젖은 머리를 마른 수건으로 문지르던 희완이 지척에 다가서고서야 기척을 느낀 우진이 시선을 들었다. 마주쳐 오는 눈에 아아- 더딘 반응을 보이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다. 상의를 벗으며 욕실로 향하는 그의 모습이 문 뒤로 사라지자 수화기를 들어 걸려온 전화번호를 확인한 희완이 눈썹을 들었다. 눈에 익은 지역 번호에 연달아 찍힌 번호는 학정의 시골집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는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간에 어르신들의 주무시지도 않고 무슨 일인가 하는 희완이 곧 소파에 몸을 기대며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었다.

씻고 나와서도 바로 잠자리에 들지 않고 새벽 세 시까지 거실 소파에 앉아 티브이 리모컨을 돌리던 우진의 곁에서 깜빡 잠이 든 건 아주 잠깐이었다.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물소리에 눈을 뜬 희완이 잠시 멍하니 누워있었다. 소파에서 잠이 든 것 같은데 어떻게 옮겨 왔는지 안방 침대였다. 귓가로 연신 들이치는 물소리에 이번엔 비가 내리는가 하여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던 희완의 두 눈이 느리게 깜박여졌다. 안방의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는 창문 밖은 짙은 어둠이 내린 채로 고요하기만 했다. 순간 몽롱한 눈동자로 선명한 빛이 스며들었다. 이불을 걷고 일어난 희완이 곁에 우진이 없음을 재차 확인하곤 안방 문을 열고 나갔다. 싸늘한 정적만 내려앉은 거실 역시 텅 비어있었고, 끊이지 않는 물소리는 굳게 닫힌 욕실 안쪽에서 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호텔에서의 한 장면이 희완의 뇌리를 스침과 동시에 욕실 문이 벌컥 열렸다. 거센 물소리와 함께 지독한 한기가 열린 문을 통해 왈칵 밀려들어 왔다.

핸드폰을 만지는 손이 붉게 젖어 있었다. 미세하게 떨리기까지 하는 그 손을 몇 번이나 미끄러뜨려 가며 간신히 119를 누르는 데 성공한 희완이 신호가 걸리기 전에 정지 버튼을 눌렀다. 안 돼, 안 돼. 소란이 커질 것이다.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니 흰 피부에도 붉은 자국이 남는다. 다시 액정을 켜 다이얼을 불러온 희완이 이번엔 다른 번호를 눌렀다. 이윽고 낮게 가라앉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입술을 여는 희완의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떨려 나왔다.

간단히 상태를 물은 후 그쪽으로 먼저 윤 박사를 보내겠다는 남자가 계속 통화가 가능하겠느냐 물었다.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으려는데 우진이 눈을 뜨는 것이 보였다. 희완의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지며 발신이 끊겼다. 통화하는 중에도 우진의 왼 팔뚝을 놓지 않고 있던 희완이 상체를 숙였다. 느리게 떠 올려진 속눈썹이 도로 감기며 창백한 얼굴에 짙은 음영을 남겼다. 그걸 본 희완의 숨이 콱 멈추었다.

“형.”

머릿속이 뜨거워졌다.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우진을 보자니 숨을 쉬는 것도 버거워졌다. 차가운 욕조 물이 넘치는 욕조 바닥에 앉아 깨진 컵 조각으로 제 팔뚝을 긁던 우진에게 달려들었다. 그 손에서 유리 조각을 빼앗느라 희완의 손에도 상처가 생겼다. 우진의 몸이 얼음장이었다. 수건을 끌어다 갈라진 팔뚝에서 줄줄 새는 피를 막아 눌렀다. 가볍게 진저리를 치는 우진의 몸짓이 느껴졌다. 달리 저항도 않고 희완에게 몸을 맡기고 있던 우진을 끌어다 침대 위에 눕혔다. 보일러를 최대로 올리고, 젖은 옷을 벗겨 던져 내고, 이불이란 이불은 죄다 끌어다 그 위에 덮어주었다. 꽉 압박을 시켜도 좀처럼 지혈이 되지 않는 팔뚝을 세게 붙든 상태로 핸드폰을 주워들었다. 그 정신에도 119 보다는 남자가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과거 마약 사범으로 스캔들이 터졌을 때 모든 포털 사이트와 신문 일면을 장식한 것은 의식을 잃은 채로 병원으로 실려 가던 우진의 모습이었다.

더 눈을 뜨지 않는 우진의 얼굴을 굳은 듯이 내려다보던 희완이 그 팔뚝을 꽉 누르고 있던 수건을 치웠다. 남자가 말한 대로 상처를 다시 살폈다. 동정맥을 건드린 것 같으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지혈을 해도 피가 멈추질 않는 다고 했더니 피가 나오는 모양을 물었었다. 울컥울컥 쏟아져 오는 건 아니었으나 멎지 않는 피는 갈라진 곳을 적시며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주요 혈관을 건드린 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이렇게 피가. 더 말을 잇지 못하는 희완의 이름을 남자가 불러왔었다. 곧 가겠다고 했고, 윤 박사를 그쪽으로 보내겠다고 했다. 그 다음에 또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새 수건으로 팔뚝을 칭칭 감아 최대한 압박을 시킨 희완이 파리하게 질린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이해할 수가 없다. 아마도 평생 희완은 우진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었다. 견디지 못해 제 몸에 상처를 내는 행위. 그 진창을 구를 때조차 희완은 제 손으로 제 목 한번 조르지 못했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로 온 신경을 건드려 오는 고통은 상대적인 것이어서, 스스로 불을 당겨 제 몸에 불을 질렀던 누이와 얼음장 같은 몸을 깨뜨리기라도 하듯 뭉툭한 유리 조각으로 제 살을 긁어대던 우진의 모습이 겹쳐졌다.

빛 내리는 낡은 아파트 복도 난간에 기대어 헤적이는 노랫말을 읊조리던 우진의 옆모습을 떠올린다. 눈이 그친 거리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우진의 옆모습을 떠올린다.

그래서 형,

형은 거기서 무얼 보고 있었어.

소리 내어 묻질 못하는 희완의 뺨으로 차갑게 식은 눈물이 떨어졌다.

흠뻑 젖은 속눈썹을 바르르 떨며 밀어 올리던 우진이 가만 희완을 끌었다. 순순히 다가가는 희완의 입술위로 한기에 가까운 우진의 숨결이 떠밀려졌다.

“춥다, 희완아.”

“…….”

“추워, 여긴 너무.”

속이 쩍쩍 얼어붙은 듯한 소리가 우진의 입을 통해 나왔다.

아무리 따뜻한 것을 입혀주고 떠 넣어 주고 덥혀 주어도 저 뱃속 깊이 들어찬 얼음덩어리는 쉽게 녹아 없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엄동설한에 벌거벗겨져 내쫒긴 것마냥 우들우들 전신으로 번져가는 우진의 떨림이 희완에게도 전해졌다. 이것은 무엇으로도 해갈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빈한하여 고통스레 얼어붙은 마음으로는 무엇을 덮어도 식혀지지 않는 것이었다. 저를 향해 뻗어 오는 손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희완의 턱 끝으로 맺힌 것이 뚝 떨어졌다.

희게 식은 얼굴로, 왜 이리 속이 시린지 모르겠다 하는 우진이 입술을 떨었다. 더듬어 오는 손이 희완의 등을 끌어안으며 얼음장 같은 몸을 바짝 붙여왔다. 전신을 덜덜 떨고 있었다. 시린 한기에 진저리를 치며, 제게로 떨어지는 가느다란 불씨를 붙들기라도 하듯 희완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려 왔다. 붙여지는 입술이 짓이겨 졌다. 밀어 내지 않고 제 입술을 열어주는 희완이 한기가 뚝뚝 떨어지는 우진의 몸을 마주 안아주었다. 이불을 걷어 그 안으로 몸을 들이며 우진의 등을 끌어안는다. 제가 이리 춥게 몸을 떨면 남자가 저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뜨거운 것을 찾아 허겁지겁 제 입속을 파고드는 우진을 꽉 끌어안아 주며 차갑게 식은 등과 어깨를 계속해서 문질러 주었다. 너무 추워서 속이 쑥 꺼지는 것 같다는 우진의 등을 연신 쓸어주며 할 수만 있다면 제 체온을 다 전해주기라도 하듯 전신을 붙이던 희완의 몸이 거칠게 당겨졌다. 놀랄 겨를도 없이 이불채로 들쳐 업혀진 희완의 몸이 문짝에 거의 던져지다시피 내려졌다. 크게 벌어지는 희완의 눈으로 남자의 검은 얼굴이 들이찼다.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희완의 입술이 굳었다. 무섭게 얼어붙은 남자의 눈이 희완을 쏘아보고 있었다. 일절 변명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희완을 꼼짝없이 세워놓고 침대로 향하는 남자의 손이 우진에게로 뻗어 갔다. 그대로 목이라고 부러뜨리는가 하였다. 벌거벗은 몸이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듯 떠는 걸 남자가 너덜너덜한 팔뚝을 우악스럽게 틀어쥐었다. 우진에게서 낮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달려 나간 희완이 남자의 팔을 붙들었다. 싸늘한 시선이 희완에게로 쏟아졌다. 선뜩한 감각이 배 속을 가르듯 파고든다. 가볍게 희완을 떨쳐내는 남자가 거칠게 우진을 끌어 올렸다. 그 손에 잡힌 팔뚝에서 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걸 본 희완이 남자에게 매달렸다.

“그만.”

“비켜.”

“왜.”

혼란스러운 얼굴로 저를 올려다보는 희완을 담은 눈이 일순 사납게 일렁였다. 왜? 굳게 턱을 닫는 남자가 붙잡고 있던 우진의 팔을 내팽개치듯 떨쳐내며 이번엔 희완의 팔뚝을 잡아왔다. 침대에서 떨어져 나온 우진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그에게로 향하려던 희완의 몸이 덜컥 멈추었다. 방을 빠져나가는 남자에 의해 질질 끌려 나가는 희완이 몸을 뒤로 빼며 버텼다. 돌아보지 않는 남자의 팔을 붙든다.

“피가 안 멈춥니다.”

거의 사색이 되어 있는 음성이었다. 이대로 우진을 버려두고 가려는 남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제 눈으로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던 희완이 제 팔을 붙들고 있는 남자의 손을 떼어 내었다. 순순히 떨어지는가 하였던 악력이 도로 팔뚝을 콱 잡아 온다. 뼈가 부러질 정도로 거센 압력에 이를 악 무는 희완의 몸이 문밖으로 끌려 나갔다.

턱- 문간을 잡은 희완의 몸이 덜컹거리며 중간에서 걸렸다. 냉담한 눈초리로 저를 돌아보는 남자를 마주한 희완이 멈칫 뒷걸음질을 치려는 순간 그대로 몸이 들려졌다. 어깨에 들쳐 메진 희완의 시선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우진의 모습이 비쳤다. 볼썽사나웠고 처참했다. 팔뚝에서부터 줄줄 새는 핏물로 흥건히 젖은 몸이 꾸무럭거리는가 싶은 순간 우둑 희완이 입술이 깨물려졌다.

남자가 거실을 가로지름과 동시에 벌컥 열리는 현관문을 통해 들어선 윤 박사가 안방으로 향하는 것이 보였다. 문밖을 나선 뒤 내려달라 하니 순순히 내려주는 남자가 앞장서 걸어갔다. 점점 멀어지는 그의 등을 올려다보던 희완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훑었다. 차게 식은 것들이 밑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이윽고 걸음을 옮기는 희완의 시선이 굳게 닫혀 있는 현관문에 닿았다 멀리 떨어져 나갔다.

남자는 따로 병원에 들르지 않았다. 곧장 아파트로 직행하여 그 넓고, 때때론 황량한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다. 재킷을 벗고 와이셔츠 소매를 걷으며 희완을 돌아본다. 넥타이에 이어 손목에 걸친 메탈 시계를 풀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남자가 한마디 말도 없이 돌아서 욕실로 향하였다. 그 뒤를 희완도 따라 들어갔다. 변기 위에 앉혀져 그 앞에 손을 내밀어야 했다. 그제야 제 손에 박힌 유리 조각을 발견한 희완이 통증을 자각하기도 전에 박힌 것이 빠져나갔다. 왈칵 게워져 나오는 핏물이 손바닥을 흠뻑 적시며 바닥으로 넘쳐흘렀다. 갈라진 곳이 타는 듯했다. 불에 데기라도 한 것처럼 화끈거리는 환부에 약이 부어지자 검지에서부터 반대쪽 손목까지 길게 이어진 상처가 드러났다. 눈으로 목격 하고서도 실감이 나지 않는 상처는 치료가 되어 갈수록 통증을 호소하며 열을 올렸다.

그러나 희완은 내내 그 구석에서 쓰레기처럼 처박혀 있던 우진을 떠올리고 있었다. 지워내지 못했다. 남자가 그렇게 무참히 내던져 버린 것은 희완이나 다름이 없었다. 새삼스러운 감정이다. 인간적이지 않은 남자의 일면을 안다 생각했으면서, 희완은 그를 야속하게 여기고 주춤하는 마음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몰랐던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마음이 서늘해지는 건지 모르겠다.

“형한테 가야겠습니다.”

남자에게선 어떠한 대꾸도 없었다. 쓰임을 마친 도구들을 한데 쓸어 모아 쓰레기통에 던져 넣고 검게 그늘이 진 눈으로 희완을 내려다보던 그가 다시 팔뚝을 잡아왔다. 이미 시커멓게 멍이 든 자국으로 다시 그 악력이 죄어졌다. 몸이 일으켜진다. 손쉽게 희완을 모조리 벗겨낸 남자가 다리를 벌리게 했다. 세면대에 가슴을 받치고 엎드려 입을 꾹 다무는 희완의 미간으로 주름이 졌다. 스스로 벌리고도, 남자에게 의해 또 벌어진 항문으로 차가운 것이 밀려들고 있었다. 배 속으로 선뜩하게 번지는 것은 관장액이었다. 하나가 더 들어왔다. 그리고 세 개째 들어왔을 때 희완은 더 참지 못하고 무릎을 떨며 엉덩이를 내렸다. 금방이라도 밑을 통해 쏟아져 나올 것들을 참으며 세면대에 겨우 매달리던 희완이 그대로 몸을 늘어뜨렸다.

욕실 바닥으로 누여지는 희완의 시야로 굵게 타고 올라가 세면대 구멍을 꽉 틀어막고 있는 파이프관이 잡혔다. 옆으로 누워 변의를 참는 동안 남자는 샤워볼을 끌어다 몸을 적셔주었다. 그 몸에 참아줄 수 없는 것들이 붙어있기라고 한 마냥, 오래도록 물을 뿌렸다. 붕대를 감은 환부로도 물이 튀었으나 남자는 희완의 몸을 씻어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따뜻한 물이 몸을 나른하게 적셔오니 더 견디기가 힘들었다. 거의 한계에 미친 감각으로 몸을 떨려 하면 화끈거리는 손바닥의 환부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파왔다. 그제야 통증을 자각하는 희완의 눈초리를 타고 식은 눈물이 툭 떨어졌다. 어느 정도 시간을 채웠다 싶을 때 여지없이 팔뚝을 잡힌 채로 끌어 올려진 희완이 다시 변기에 앉혀졌다. 입술을 깨문다. 너덜너덜한 살점에서 쇠 맛이 올라왔지만 그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앉혀지자 하중이 밑으로 기울며 겨우 버티고 있던 아래의 근육이 풀어진다. 그 주름들이 벌어지고 싶다고 아우성을 치며 바들바들 떨어대는걸 희완은 매우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다. 흐느끼듯 입술을 깨물던 희완이 두 손으로 제 얼굴을 덮었다. 결국 남자의 앞에서 속의 걸 다 비워내고서야 겨우 욕실 밖으로 끌어 내어질 수 있었다.

똑바로 누우면 허리가 무너져 자꾸만 몸이 옆으로 기울어졌다. 그래서 희완은 차라리 지금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얼굴을 침대에 처박고 엉덩이만 불쑥 들어 올린 채로 제 손으로 제 밑을 벌리고 있었다. 이렇게 까지 말이 없는 남자는 첫 정사 이후 희완으로서도 처음이었고, 이렇게까지 순종적인 희완은 병실에서의 이후 남자로서도 처음이었다. 아무리 수치스러운 짓을 시키고 아무리 모욕적인 짓을 시켜도 희완은 얼굴을 고통스레 일그러뜨리거나 싫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엄지 두개를 구멍에 쑤셔 넣고 옆으로 넓게 벌리고 있던 희완이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직 완전히 발기 전인 그의 것이 슬쩍 벌어진 곳을 푹 박는가 싶더니 곧 주욱 밀고 들어온다. 쑤셔 넣었던 엄지가 같이 밀려들어 갔다.

“으윽.”

손바닥의 환부가 당기며 진한 통증이 느껴졌다. 남자의 것과 제 뜨거운 내벽 사이에 끼어 붙은 손가락을 빼고 싶었으나 희완은 그냥 제 밑을 계속 벌리고 있었다. 반쯤 들어왔던 게 쑤욱 나갔다. 그러고 다시 엄지를 누르며 안을 파고든다. 그렇게 반쯤만 들어찼다 나가는 그의 것에 내벽이 익숙해졌을 때까지도 같이 딸려 나갔다 밀리길 반복하던 엄지가 쑥 뽑혀져 나온 것은, 남자가 희완의 양 팔목을 잡아 단단한 매트리스에 눌렀을 때였다. 바로 눕혀진 희완의 흐린 시야로 환히 밝혀진 천장이 머물렀다. 위에서 남자의 음영이 흔들린 순간 콘돔을 끼우지 않은 살덩이가 단번에, 끝까지 밀려들어왔다. 좁은 직장이 더 늘어날 수 없을 만큼 확장 되며 목구멍으로 욕지기가 치밀어 오른다. 바닥에 대고 있던 양손을 더듬어 구부러진 제 오금을 당겨 안는 희완이 몸을 바르륵 떨었다.

규칙적인 속도로 남자의 것이 속을 들락날락 하였다. 읏, 읏, 처박아질 때마다 숨을 토해내는 희완의 이마로 축축해진 머리칼이 수초처럼 엉겨 붙었다. 흰 얼굴이 일그러진다. 쉼 없이 흔들려지며, 말갛게 얼어붙은 얼굴로 제게 매달려 오던 우진을 꽁꽁 얼어붙게 했던 그 한기가 제 뱃속에도 스며들었음을 인식한다. 뜨거운 것이 안을 거침없이 찌르고 들어올 때마다 그것은 더욱더 차가워져만 갔고 시리게 번져만 갔다. 매달리던 우진의 그 문드러진 손끝을 본다. 갈라진 상처를 비집고 나와 우진의 맨 몸을 흥건히 적셔가던 핏물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크게 희완의 입이 벌어졌다. 퍽, 뿌리까지, 세게 밑을 붙여 올린 남자가 한계까지 벌어진 밑을 더 벌리려는 게 느껴졌다. 와드득 힘이 들어간 손바닥에서 무언가 주룩 흐르는 것도 같았다.

“아!”

기어이 희완에게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제 것을 다 밀어붙인 것으로도 모자라 빠듯하게 엉겨 붙어있는 것을 억지로 벌린 남자가 손가락으로 안쪽의 살점들을 훑어내듯 닦아냈다. 동시에 그에게서도 짧은 숨이 뱉어진다. 경직된 엉덩이로 파들파들 새파란 경련이 달렸다. 더 늘리면 찢어질 것 같은 희완의 밑을 보던 남자가 안쪽을 돌려 훑어내던 손가락을 빼내고 시트를 끌어다 손 밑으로 흐르는 핏물을 닦아 주었다. 그것은 금세 축축하게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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