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하게 젖은 손이 살덩이 대신 차창 위에 바짝 눌러졌다. 깨끗한 유리 위에 선명하게 찍힌 손자국이 주룩 미끄러진 건 꼿꼿하게 선 성기 밑둥을 부드러운 천이 세게 감아 왔을 때였다. 헉. 풀어낸 넥타이로 예민하게 발기한 것을 둘둘 감아 꽉 묶자 그 압력에 헐떡이는 희완의 단정한 얼굴이 일그러졌다. 상체를 숙여 그 관자놀이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남자가 나직이 속삭였다.
“도착할 때까지 참으면.”
네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해주겠다는 남자의 뜨거운 숨이 귓바퀴를 타고 전신을 훑고 들어갔다. 오싹해진 몸을 가느다랗게 떠는 희완이 흐읍, 터지려는 신음을 참았다. 잠자리에서 희완이 좋아하는 것들, 남자가 만져주면 좋아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들, 건드려주면 좋아서 외려 괴로워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속삭여 흘려 넣은 남자가 곧 기어를 바꾸며 차를 출발시켰다. 옆에서 열기에 들떠 바르작거리는 희완의 숨소리, 몸짓 하나하나까지, 남자의 신경을 자극시키지 않는 것이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기 전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멈칫하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 초인종을 누르는 걸 망설이던 희완이 미처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벌컥 문이 열리며 학정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형.”
“어. 왔냐.”
놀라는 듯하던 학정이 곧 안색을 바꾸며 희완을 맞았다.
“들어가 봐라. 우진이 안에 있다.”
“네. 어디 가십니까.”
“양평.”
무뚝뚝하게 대꾸를 하던 학정이 무슨 생각인지 가던 길을 멈추고 희완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너도 알고 있었냐.”
“네?”
영문을 몰라 되묻는 희완을 한참 내려다보다 꾹 닫고 있던 입을 연다.
“오늘 자고 가라.”
“여기서 말입니까?”
“그래. 난 내일 아침에나 들어올 거다.”
“또 밤샘 촬영이십니까.”
“끼니 거르지 말고. 너나 우진이나 요즘 살 내린 거 보면.”
말을 하다 말고 인상을 찌푸리던 학정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쯧. 혀 차는 소리를 낸 그가 희완의 등을 떠밀어 안에 들여 주고는 전화를 받는 소리가 닫히는 문 너머로 들렸다.
“김학정입니다.”
그 이후의 목소리는 닫힌 문에 잘려 나가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저벅저벅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안쪽에서부터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무심코 뒤를 돌아보던 희완이 제 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썹을 들어 올렸다. 문밖에서 들었던 큰 소리는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싸움이라도 한바탕 한 건지 번잡한 거실 한 켠으로 깨진 화분이 우르르 쏟아져 있었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서는 희완의 시선이 베란다로 향했다. 활짝 열린 유리문을 통해 불어오는 바람으로 철지난 여름용 커튼이 펄럭이고 있었고, 그 너머엔 등을 돌리고 선 우진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이 어쩐지 아슬아슬하게 보여 그리로 향하는 희완이다. 기척을 내기도 전에 우진이 뒤를 돌아보았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웬일이야.”
“오늘 같이 연극 보러 가기로,”
“아아-.”
잊고 있었던 듯 그제야 기억이 난다는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던 우진이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찬바람이 불어 흩어진 머리칼을 대충 쓸어 넘기며 베란다 안으로 들어선 그가 깨어진 화분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
“놔둬.”
치우려는 희완의 팔을 잡아끌어 소파에 앉힌다.
“누가 깼어?”
머리끝까지 화가 나면, 사람을 때릴 순 없으니 가끔 물건에 화풀이를 하는 학정의 전적은 극단 문짝을 갈은 것만으로도 화려했다. 혹시 이것도 그런 건가 하여 묻는 희완을 잠시 멍한 눈으로 쳐다보던 우진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내가.”
“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지껄이잖아.”
떠오르니 또 열이 받는 듯 인상을 쓰던 우진이 원래 화분이 있었어야 할 장식장을 한번 보고는 곧장 안방으로 향하였다.
“아직 시간 남았어.”
“알아.”
짧게 답하며 재킷을 걸쳐 입은 우진이 지갑을 챙겨 현관을 먼저 나섰다. 그걸 멀뚱히 보던 희완도 곧 신발을 챙겨 신으며 문밖을 나서니 12월의 매서운 바람이 휭 하니 난간을 타고 넘어왔다. 올해는 눈 소식이 적다는 일기예보를 듣고 나왔는데 검게 흐려진 하늘은 금방이라도 무언갈 쏟아낼 것 같았다.
“어디 가, 형.”
희완의 부름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간 우진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춰 섰다. 1층에서부터 끌어 올려지는 엘리베이터를 올려다보고 있는 우진의 목 밑이 훤히 드러나 보였다. 3차 수술 후에도 크게 차도가 없는 흉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이고 있던 우진이 뒤늦게 재킷 지퍼를 목 끝까지 끌어 올렸다.
“기다려. 머플러 챙겨 올게.”
짙은 갈색 눈이 따라온다.
“춥잖아.”
대수롭잖게 덧붙인 희완이 긴 다리로 모퉁이를 돌아 빠르게 복도를 오갔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전에 머플러를 챙겨 가지고 온 희완이 그걸 우진의 목에 감아주었다. 그런데 정작 희완의 목엔 아무것도 감겨 있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던 우진이 먼저 열리는 문 사이로 올라탔다.
“넌 안 춥냐.”
“답답해서.”
“감기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