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길 쑤시는 좆이, 내 것이 아니라도 상관없겠냐고 물었습니다.”
“지금, 말입니까.”
아마 과거라면 누구든 상관없었을 것이었다. 이 아래를 쑤시고 들어오는 게 누구든, 남자가 희완에게 해주었던 반의반만이라도 해주겠다 조건을 제시했다면 희완은 아마 스스로 다리를 벌렸을 것이다. 절박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또 틀린 말 같기도 했다. 낡은 병실 휴게실을 열고 들어선 순간 저를 향해 짙은 담배 연기를 날리던 남자의 얼굴은 희완의 뇌리 속에 깊이 남아있었다. 객석에 앉아 무심한 얼굴로 저를 응시하던 남자는 드물게 기립하여 박수를 치기도 했었는데, 그 검은 눈은 때때로 극 속의 연희완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연희완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대사를 읊으며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기도 했었다.
업자가 내민 종잇장에 지장을 찍어 짐승이 되는 것과 남자에게 몸을 열어 짐승이 될 유예기간을 버는 것.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짐승이 되어 갈가리 찢겨질 것이라 믿었던 희완에게 큰 차이가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 상대가 남자라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남자라서, 그 제안을 수락한 것이라 말할 정도의 영악함도 융통성도 없는 희완은 굳이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설명할 이유도 없는 것들이었고, 희완 역시 그에 대한 답은 확신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원래부터가 그 머릿속은 편리하게 구조된 머릿속이 아니었다. 때문에 남자가 묻는다면 이실직고할 것이다. 당신이 아니었어도 그런 제안을 해 왔다면 그게 누구이든 수락했을 것이라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에 대한 건 한마디 언급도 없이, 자신이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사실만 털어놓았을 것이었다. 나는 그랬을 것이라고.
“당신 것이 아니라면 밑을 열 이유가 없습니다.”
“지금이 아니라면?”
기어이 그 말을 내뱉는 남자를 말없이 응시하던 희완이 차가운 손끝으로 그의 어깨 어딘가를 문질렀다. 아마도 이쯤에 검은 짐승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사납게 새겨져 있을 것이었다.
“지금쯤이면 밑이 헐다 못해 살아 있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하며 가볍게 입을 맞춰 오는 희완의 눈빛이 우울했다.
과거의 희완에겐 밑을 열고 말고 할 선택권 자체가 없었다. 제 몸인데도 그랬었다. 운이 좋았다는 생각은 진심이었다. 남자가 저에게 이렇게 욕정을 하고 제 심장에 집착하는 것이 기적 같은 일이라는 것 또한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내가 고마워서 당신 곁에 있는 것 같습니까.”
“고마워하는 사람이 두 번이나 달아납니까.”
“아시면서 왜 그런 걸 묻습니까.”
“나는 처음부터 네가 좋았거든.”
“…….”
제 귀로 똑똑히 들어 놓고서도 빠르게 이해 못 해 조용히 두 눈을 깜빡이던 희완의 눈동자가 서서히 벌어졌다.
“아아. 굳이 따지자면 연희완이 내 첫사랑일 겁니다.”
“그, 그, …….”
“물론, 첫 동정 따윈 누구에게 줘버렸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어디서부터 놀라야 할지 가늠을 하지 못해 몇 번이고 말을 더듬던 희완이 기어이 입술을 닫으며 남자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어, 어떻게 그걸.
주정으로 죄다 실토해 놓은 걸 기억할 리 없는 희완에게로 마지막 한마디가 덧붙여졌다.
“첫 키스도 연희완이 처음입니다.”
믿기 어려웠지만 남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희완처럼 승도 역시 연애라는 건 그 범주 내에 없었다. 본디 학업과 제 목표 외에는 흥미가 없는 성정이었고, 좋다고 들러붙는 여자들을 단순 성욕 처리기 취급할 정도의 말종도 아니었다.
누이와 부모의 장례를 연달아 치르고 변변한 유산 없이 계속 학업을 지속해야했던 승도의 뒤를 봐준 건 그 가족을 풍비박산 낸 조직이었다. 적극적인 후원을 받아 무리 없이 사시 패스까지 마친 승도가 법조계 입성 후 적을 둔 곳은 조직 산하의 로펌이었다. 접근하는 여자들은 끊임이 없었고 승도에겐 그들을 물리칠 이유가 없었다. 여자를 정복하는 것으로 남성성을 과시하는 쓰레기들과 다를 거 없이, 그보다 더 더럽게 뒹굴었다. 누군가 선물로 던져준 여자를 가랑이만 벌리게 한 채 쑤셔 박았던 것이 첫 경험이었을 것이다. 제 밑에 깔린 여자를 볼 때마다 누이의 얼굴이 겹쳐진다는 걸 자각한 순간부터는 얼굴을 바닥에 처박아 놓고 뒤에서부터 치고 들어갔다. 로펌 간판을 달고 있어도 실제로 하는 짓은 삼류 깡패보다 저열한 조직 틈에 섞이며 승도의 성정은 더욱 거칠고 사나워져만 갔다.
남성성이란 것은 다시 회복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깨부수어야만 뒤탈이 없다는 사실을 배운 후론 섹스 역시 상대를 굴종시키는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엎어 놓고 뒤부터 뚫어 놓으면 날뛰던 놈들도 고분고분해지고 지켜보는 놈들도 입을 다문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으면 돼지우리에 처박아 놓고 울고불고 애원할 때까지 암캐 노릇을 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효과적이었고, 조직 내에서 더 이상의 남성성을 과시하지 않아도 될 때까지 승도는 기꺼이 짐승을 자처했다. 그에게 섹스란 그저 본능과 폭력의 연장선, 그 외엔 아무 의미도 없었다.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여자들도 섹스에 관한 그의 사고방식을 겪은 후부터는 감히 두려워 얼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돈이란 것은 때때로 사고의 영역을 뛰어넘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남색을 한다는 말이 돈 뒤부터는 심심찮게 뒤를 대주겠다는 놈들도 많았으나, 그땐 이미 승도에게 남성성을 과시해야 할 필요도, 조직에 더 남아 있어야 할 이유도 남지 않은 후였다. 제 손으로 조직의 윗선을 모두 처리하고 조직에 줄을 대고 있던 정재계 인사 둘을 말 그대로 도륙을 낸 후 살인죄로 잡혀 들어갔다.
단 3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쑤시고 싶습니다.”
무미건조하게 흘러나오는 음성에 물끄러미 그를 내려다보고 있던 희완이 계속해서 그의 어깨를 쓸던 손을 거두며 옆 좌석으로 내려앉았다. 안전벨트를 끌어다 매는 희완이 시선을 피하며 입을 열었다.
“집에서.”
“수영은 관두는 겁니까.”
도통 갈 여건을 만들어주지 않으면서 천연덕스럽게 묻는 말에 희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깝지만, 다른 걸 알아보는 수밖,”
“자위해봐.”
“…….”
“사정하는 거 보고 싶습니다.”
쑤시고 싶다며, 운전대는 잡을 생각도 않고 저를 빤히 들여다보는 남자의 시선에 짐짓 난감한 얼굴을 하던 희완이 힐긋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짙은 선팅이 되어 밖에선 안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테지만, 어차피 장대비가 쏟아지는 거리는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흥이 안 나서 못 하겠다는 말은 맙시다.”
난처해하던 희완이 잠자코 남자를 응시했다.
“내 생각 하면서 싸잖아.”
음영이 짙어지는 기다란 눈매에서 눈을 떼지 않는 남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상상보단 실물이 더 낫잖겠습니까.”
조용한 실내로 뭉툭하게 쏟아지는 세찬 빗소리가 밖에서부터 스며들었다.
큰 눈을 느리게 내려뜨다 곧 기다란 속눈썹을 들어 올리는 희완의 손끝에서 지익 하고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가 울렸다.
흰 볼이 귀밑에서부터 상기되어 갔다. 작게 벌어진 붉은 입술에서는 연신 잦혀지는 숨소리가 새어 나왔고 하얗고 기다란 손가락에 감싸져 있는 살덩이에서는 쿨쩍쿨쩍 젖은 마찰음이 쉼 없이 울렸다. 어깨를 구부린 희완의 머리가 창 쪽으로 기울어지며 푸른 혈관이 도드라지는 목선이 창백하게 드러났다. 한 손으론 제 성기를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바지자락을 꽉 쥐고 있던 희완의 목울대가 파르르 떨며 일렁인다. 흐읏. 차츰 속도를 높여가는 손놀림이 고조될수록 희완에게서 짙게 새어 나오는 소리와 열기를 직접 제 눈으로 확인하던 남자가 넥타이를 툭 잡아당겼다.
“아아!”
빠르게 성기를 훑어 올리던 희완이 크게 움찔하며 짧게 소리를 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