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89화 (89/123)

그 뒤로 일주일이 지나고도 회복을 못 한 희완을 입원시킨 건 결국 승도였다. 집에서도 계속 영양제니 뭐니 할 수 있는 건 다 해도 승도가 옆에 붙어 있으니 말짱 도루묵이었다. 그렇게까지 집착해 오고 욕정해오는 남자를 끊임없이 받아주면서 끝내 실신한 희완이 병실에 누워 주사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었다. 입원해 있는 열흘간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괄약근도 서서히 되돌아왔고 요도도 제 기능을 찾아왔고 퉁퉁 불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핏물이 배이던 유두도 원래 크기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그렇게 몸을 회복시키는 동안 희완의 연휴가 죄다 날아갔다.

딱 5일 남겨 놓고 퇴원해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우진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었다. 수술 경과가 좋긴 했는데. 이 이상 더 회복할 수 있을지는 의사도 장담할 수 없다고 4차 수술을 고심해 보라 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러시냐고, 그러고 사이좋게 앉아 귤을 까먹었다. 남자는 또 무슨 일을 하는지 희완을 입원시켜 놓고 밤에만 와서 옆을 지키다, 하루 종일 나가 있다가, 또 희완의 퇴원 후에는 잠깐 눈만 붙이고 나갔다. 그러면 몸이 편하기는 하였으나 또 맨날 붙어 있다가 떨어지려니 허전하기도 해서 으슬으슬 추운 적도 있었다.

한 달을 거의 꼬박 그렇게 지냈더니 여러모로 느슨해지고 해이해졌다 생각하는 희완이 차츰 제 컨디션을 찾아감에 따라 스케줄도 하나둘 소화해 갔다. 우선적으로 학정에 다시 출입하기 시작했고, 뮤지컬 때문에 받던 레슨도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받기로 했고, 잠시 고민하다 수영장도 끊어 다니기로 하고, 대체로 학정에서 올리는 다음 작품에 맞춰 스케줄을 정했다. 무엇보다 강명 선생을 찾아가야 하는데, 요즘같이 좋은 날이 없다고 또 바람 따라 소리 공부 가시는 바람에 찾아뵐 수가 없었다. 학정은 그래도 반년간 배운 게 있으니 괜찮을 거라 했고, 또 정 안 되겠으면 다른 선생 알아봐 줄 테니 걱정 말고 컨디션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하라 했다. 이번에는 같은 극단원이라고 은근슬쩍 끼워 넣는 일이 없을 거라던 학정은 그새 더 길어 희완의 목덜미를 살짝 덮은 머리칼을 쓸어주곤 다시 영화판으로 나가버렸다. 형 진짜 오랜만이시라며, 그동안 어디 가 계셨느냐며, 형 때문에, 우진이 선배님 때문에, 그간 여기가 얼마나 헬이었는지 아시긴 하느냐며, 그간 자칭 팬들 때문에 들들들들 볶아졌다는 석주는 아닌 게 아니라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어디 아프냐 했더니 피팅 모델 알바 때문에 다이어트 중이란다.

석주가 워낙 뺐다 찌웠다 하는 게 자유로운 고무줄 체형이긴 하지만 마른 체형에 가까워서 이러는 걸 학정이 알면 호되게 혼나기도 할 것이었다. 아니 그보다 경성에게 들켜서,

“너, 너, 너, 너! 너 이 자식! 누가 또 피팅 모델 하래! 저번에 그렇게 혼쭐이! 나고서도,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어!”

고새 이야기를 다 들었는지 어디선가 불쑥 나타난 경성이 엄지와 검지를 귀에 걸어 쭈욱 잡아당기며 석주를 저쪽으로 질질 끌고 갔다. 잘못했다고, 빌면서도 피팅 모델 안 하겠단 소리는 않고 알바비 받으면 그리 좋아하시는 낚시 찌, 사드린다고, 찌! 찌! 찌! 찌! 만 연신 남발하는 석주 덕에 잠시 주저앉아 쉬고 있던 단원들에게서 와하하 박장대소가 터져나왔다.

경성에게 불려 간 희완이 제 앞에 놓여진 유자차를 후루룩 마시며 배 속 깊이 뜨거운 것을 꾹 눌러 담았다. 거의 한 달 내내 밑에 담아 둔 것 때문에 가만히 있다가도 문득 밑이 허전하거나 느른하게 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처음엔 정말 새는 줄 알고 여러 번 놀랐었는데 지금은 감각 상실증 비슷한 것임을 알고 그저 조금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내쉬는 걸로 해결을 보곤 했다. 그러면 상태가 비교적 나아졌다.

“어떻게 할래? 일단 학정 작품 네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들어오는 족족 거절하고 있긴 한데, 솔직히 아까운 기회잖냐. 그래서 말해주는 거야.”

작품 섭외가 심심찮게 들어온다는 소리였다. 예전에 광고 섭외로 몸살을 앓았다면 요즘엔 연극, 뮤지컬은 물론 영화, 드라마 할 것 없이 섭외 전화가 끊이질 않는다는 소리였다. 예전엔 거절하거나 무시하면 그냥 그대로 끝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다른 경로로 은근히 압박을 해 오니 솔직히 경성으로서는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이 정도로 크면 다들 학정을 팽 하기 일쑤여서, 이런 경험도 처음이라 당황스러운 점도 없잖아 있고, 이런 녀석들을 둘이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해서 어렵게 말을 꺼낸 경성이 조금 낭패스러운 얼굴을 했다.

꼭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앉아 이제 다 식어가는 유자차만 뚫어져라 보고 있는 희완이 죄송하다 사과를 해 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뭘 잘못했다고 죄송하다는 건지.

“어이고, 이 자식아 니가 왜 사과를 해. 그냥 이런저런 일이 있었으니 알고 있으라고 하는 소린데?”

“아.”

그제야 푹 숙이고 있던 희완이 하얗게 질린 뺨을 손끝으로 꾹 누르며 긴 속눈썹을 느리게 깜빡였다. 눈매가 여느 사람과는 달리 꼬리가 길게 빠져나와 부드럽게 휘어져 있어 이렇게 깜빡이기라도 하면 나른한 게 미인이라는 수식어가 아깝지도 않을 희완은 요즘 들어 미모가 더 피고 있었다. 풋풋했던 기운이 그윽한 것으로 바뀌어 가며 배우 특유의 색감이 덧입혀지고 있었다.

경성의 말을 더 귀찮게 하지 말고 나가라는 소리로 알아들었던 희완이 곧바로 오해를 풀어주는 그를 올려다보며 눈매를 더 깊게 접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저 아직 연극 더 하고 싶어요.”

일말의 고민 한 자락 없는 산뜻한 답에 외려 놀란 건 경성이었다.

“진짜냐?”

이런 기회가 또 올 거라는 보장 없다는 걸 이 녀석이 알고나 있나.

사람이 살면서 인생 피는 경우가 딱 세 번이 있는데, 그중 한 번이 이번일 수도 있는데 정녕? 나중에 후회 안할 것 같냐? 야, 너 이번 기회 잘 잡으면 제대로 뜰 수 있어. 왕년의 도우진보다 더 대박 날 수도 있다니까?

경성의 유혹 아닌 유혹에도 크게 흔들리는 기색 없이 그 말에는 일일이 다 고개를 끄덕여주던 희완이 그래도 마지막에 뱉은 말은 같은 말이었다.

“네, 그래도 연극 더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내쫓지 말아주세요. 하는 희완이 꽃처럼 웃는다.

이제 막 빛을 보며 꽃을 틔워 가는 해오라기 같은 웃음이었다.

물결에 하릴없이 헤적이는 수초처럼, 바람결에 하릴없이 헤적이는 들풀처럼, 그리 휘청휘청하던 녀석이 이렇게도 웃는구나 싶어 경성은 모처럼만의 걱정 없이 희완을 볼 수 있었다. 물론 앞으로는 학정 부단장이 아니라 연희완 매니저님, 도우진 매니저님으로 불리어질 일이 많게 된 경성의 행복한 비명은 나중 일이었다.

요릿집 대나무 숲을 돌아 나와 담배를 피워 무는 승도의 곁으로 우수수 연기가 흩어졌다. 두 번 약속이 파토 난 뒤에는 그쪽에서 아무 루트도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접근해 왔다. 수행원이나 보좌관 하나 없이 요릿집 심처에 홀로 나타난 그는 약간 노회한 분위기의 학자풍 인사였다. 음식상을 가운데 놓고 시작한 간단한 잡담부터 서서히 범위를 넓혀간 이야기 끝에 남자는 그가 수더분한 인상과는 달리 꽤나 집착적인 강단이 있다는 것을 알아갔다.

요구는 간단했다. 시세에 맞춰 정당한 가격으로 시에 팔아넘기라는 소리였다.

다만 그의 요구는 시와 정부의 정책이 상충되고, 거기에 이권이 얽혀 있는 사업자들의 이익과도 상충되는 문제였다. 이권자는 막무가내였고, 정책자는 강경했다. 결론은 누가 이 노른자위 땅을 더 많이 매입하느냐의 머릿수 싸움인 것이다. 애초에 이 땅 자체를 죽은 땅으로 보고 덤벼든 것부터가 정책의 허술함을 반증하고 있는 셈이었다. 투기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한 순간부터 시작된 압박은 승도가 아닌 철진에게 집중포화되며 시간이 흐를수록 전방위적인 압박 또한 가중되었다. 성매매 알선 혐의는 장난에 불과했고, 세금 포탈이나 뇌물 수수 등, 법적으로 옭아매고 들어가 철진도 당할 재간이 없었다. 불법적인 것이 바탕 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사유, 그리고 승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클럽을 비롯한 음성적인 사업을 위협하는 힘의 줄기를 타고 올라가면 뿌리는 자연히 드러날 터였다. 다만 미세하게 뻗어나간 그 가지까지 깨끗하게 잘라내기 위해서는 좀 더 날뛰도록 놔둬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옭아매겠다는 의지가 엿보이는 집념에 가까운 회유 및 협박을 보고 있자면 이 짓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었다. 그때 그 차체에서 희완을 떨게 했던 것이 시작이었으나 이제는 승도의 싸움이 되어 있었다. 한번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는다. 줄기 끝에 나오는 게 무엇이든 끝장을 볼 생각이었다.

다 태운 담배꽁초를 눌러 끄는 승도의 곁으로 짙은 꽃 내음이 풍겨졌다. 어느새 다가온 여자가 노오란 꽃 보자기에 바리바리 싸 둔 것을 품에 안고 있었다. 전에도 잔뜩 가져갔던 주전부리였다. 잘 먹어서 기억해뒀던 승도가 특별히 여주인에게 언질을 넣은 것이다.

한과를 씹는 소리가 욕실에서도 들려왔다. 물기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오는 승도의 시야로 전경이 넓게 잡혔다. 같이 있으면 계속 벗겨지는 탓에 언젠가부터 하의는 아예 걸치지 않게 된 희완이 위에 와이셔츠 한 장만 걸친 채로 소파에 앉아 영화 책자를 훑어보고 있었다. 승도가 오기 전에 먼저 씻어 충분히 마른 머리칼이 흰 뺨을 덮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 덕에 만지면 서늘할 것 같은 희완은 종종 놀라울 정도로 뜨거울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열기를 품고 파고드는 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승도로 인해 그리되는 몸이었다. 희완에게로 다가가는 승도의 등에서 검게 움틀리는 두 마리의 짐승이 숨을 죽였다.

책자에 집중하고 있던 희완이 제 셔츠 깃을 벌리는 손길에도 다른 반응 없이 습관적으로 목을 뒤로 빼며 더 쉽게 벌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벌어진 셔츠 속으로 남자의 서늘한 손이 밀려들어 갔다. 만지면 손에 쫙쫙 달라붙는듯한 젖꼭지와 살결을 강하게 훑다가 갑자기 쑥 빠져나간다. 그때까지도 책자에 집중하고 있던 희완이 고개를 든 건 남자가 테이블에 걸터앉아 희완을 마주 보았을 때였다. 눈앞의 남자가 뭐 하자는 건지 그 눈빛만으로도 너무 잘 아는 희완이 잠시 주저하는듯하다 결국 접고 있던 다리를 풀어 소파 밑으로 넓게 벌렸다. 입고 있던 셔츠를 머리 위로 벗어내자 검은 머리카락이 가볍게 흩어진다. 승도의 시선이 반듯한 이마에서부터 능선을 타고 아래로 미끄러졌다. 활짝 열린 다리 사이에서 애처롭게 고개를 숙인 살덩이가 훤히 드러난다. 헐었던 것이 이제 겨우 회복되어 본래의 예뻤던 색을 되찾고 있었다. 그건 곧 승도의 커다란 손으로 덮여졌고 얼마 후에는 입속으로 깊이 집어 삼켜졌다.

***

탈고된 극본을 받았다.

수정을 거친 극은 전보다 더 훨씬 가슴 깊은 곳을 때리는 묵직한 것이 있었다. 극을 읽어 내리는 우진의 창백한 얼굴을 들여다보던 희완이 시선을 내렸다. 이것은 학정이 써 내려간 회고록이었다. 학정 스스로에 대한, 그리고 우진과 희완을 관통하여 다시 학정으로 귀결되는, 지극히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글이었다. 그것을 보는 게 결코 편할 리가 없을 것이다. 지독한 놈이라고 낮게 중얼거리는 듯한 목소리는 경성에게서 들려왔다. 극본을 읽은 이라면 누구든 동의할 것이다.

앉은 자리에서 받은 극본을 한 번에 읽어 내린 우진이 가방을 챙겨들었다. 어디 가느냐는 물음에 병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3차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우진의 턱 밑엔 여전히 잔혹한 폭력의 흔적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

연습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석주의 재롱에 가까운 푼수 짓으로 인해 와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녀석은 생긴 건 멀쩡해서 쓸데없이 귀여운 구석이 있다고, 쯧쯧쯧, 혀를 차는 필영은 얼마 전 100부 작이었던 사극이 대장정의 막을 내림과 동시에 여느 때처럼 심심찮게 학정에 출몰하였다. 드라마 중에서도 가장 고되고 발품도 많이 팔아야 하는 사극 현장에서, 생긴 것 마냥 끈질기고 악바리 같은 근성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돌아왔다는 필영은 아주 인기가 그만이었다고 한다. 능력 없고, 체력 없고, 재주 없어도, 책임감 없는 것만은 절대 용납하지 못한다는 드라마 촬영현장에서, 깐깐하기로 말도 못 한다는 드라마 피디에게 절대적인 신임을 얻어 벌써 다음 드라마 계약까지 구두로 마쳤다고 했다. 연기지도뿐 아니라 다음에는 굵직한 조연까지 주기로 했다며 답지 않게 허허 웃던 필영에게 그래 아주 잘했다, 내 새끼, 우쭈쭈쭈, 하는 경성까지, 나이 마흔이 넘어가는 인간들이 징그럽게도 놀았다.

지긋지긋하던 그 드라마 촬영도 끝났겠다 금일봉도 받았으니 또 제가 쏘겠다는 필영에게 브라보가 쏟아졌다. 이야, 역시 세상은 여러 번 살고 볼 일이야. 저번에 이어 우리 구두쇠 이필영이 또, 돈을 쓰는 걸 보게 되는 날이 오다니, 그 기념 삼아 오늘은 소줏집 말고 축산농가 소득 증대를 위해 한우 집으로 가는 게 어떻겠느냐는 경성의 말은 당연한 듯이 무시되었다. 왕년의 정육점 집 아들에게 고기 사랑은 너무 과한 요구이다. 그나마 고기 외의 사이드메뉴 선택권이 방대한 소줏집은 저렴한 가격을 제하고서라도 필영이 사랑해 마지않는 장소였다.

눙치고 받치고 키득거리며 시시껄렁한 잡담으로 한가로운 골목을 일상으로 채워가는 그들 틈에서 아하하 모처럼 편안하게 웃던 희완이 문득 골목 저 끝을 바라보았다. 갔던 길을 되짚어 뒷걸음질을 치던 그의 눈으로 의아한 빛이 스쳤다. 그 의아함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골목 어귀 일부를 검게 차지하고 있는 세단을 완벽하게 알아본 후였다. 희완이 구석으로 기어들어 가 있는 동안 엉망으로 찌그러져 결국 폐차시켜야 했던 세단 대신 남자가 끌고 다니기 시작했던 차는 얼마 전에 희완이 술을 한 그 대신 운전대를 잡기도 했던 것이었다.

연락도 않으시고.

이런 게 처음은 아니었지만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가.

의아함 뒤에 반가움보다는 걱정스러움을 앞세우는 희완이 벌써 저만치 앞서 가는 일행 중 마침 경성이 저를 찾아 두리번거리는 걸 보고 금방 가겠다 손짓을 한다.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는 경성이 또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배꼽을 잡고 자지러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섭외 요청으로 전화가 끊이지 않는 사무실 중앙에 서서 요즘 내가 배우인지 매니저인지 정체성의 혼란이 온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경성은 그럼에도 무척이나 즐거워 보였었다.

그들이 모퉁이 너머로 돌아 나가는 걸 본 희완이 반대쪽 골목 어귀로 향하였다. 그가 저를 발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니더라도 본 이상 외면할 생각은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 짙은 선팅으로 도배되어 있는 차창을 두드리니 창문이 내려간다. 별다른 표정을 드러내고 있지 않은 남자의 옆모습이 드러났다. 왜 안도를 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깊이 한숨을 드러낸 희완이 생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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