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얼굴이다.
하긴, 희완이 친하게 지낸 게 아니라 그놈이 달라붙은 거니까.
“어차피 불구속 입건이라 나돌아 다니는 데에는 문제가 없을 테니까 그놈이 우울하다고 놀아 달라 불러도 쪼르르 달려가지 말라고.”
“내가 그럴 일이 뭐가 있어.”
룸에서의 일이 불발되어 무시하고 다닌다면 모를까. 게다가 총괄이 주변에 그 많은 사람 놔두고 저를 부를 리도 없다 생각하는 희완이 고무줄 바지를 끌러 올리며 우진 옆에 앉았다.
“그럼 공연은 문제없이 진행되는 거래?”
“제작사만 바뀐 거니까. 이미 표도 다 팔리고 대관도 다 잡아 놨는데 이제 와서 엎을 수는 없지.”
“연출 선생님 또 푹 꺼져 있겠네.”
“안 그래도 아기 때문에 끊는다던 담배 아까 보니까 갑째로 피우더라.”
“흠.”
뭔가 이번 작품은 여러 가지로 일이 많은 것 같다며 미간을 좁히던 희완이 생긋 웃는다.
“형, 오늘 개관하는 건물 가 봤어?”
“아직, 내일 총 리허설 때 갈 건데 뭐 하러. 오늘 개관이라던데, 언제 갔다 왔냐.”
“저번에 쉬면서. 잠깐 들렀다가 구경하고 나왔는데, 진짜 좋더라.”
“그래, 돈 좀 들이부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거기가 여기서도 알짜배기 땅이라고, 웬 갑부가 소일거리 삼아 한다는 말이 꽤 신빙성 있게 돌던데.”
한편에서는 결국은 밑바닥 예술조차 돈 많은 늙은이 수중에 기어 들어가 기생노릇 하게 되는 거 아니냐며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도 했었다. 번지르르한 건물 하나 지어 놓고 쓸 만한 작품 입맛대로 골라 멋대로 공연업계를 사유화시키는 졸부들이 우후죽순으로 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했다. 무엇인들 약자가 아니겠느냐만, 대관 문제에 있어서만은 절대적인 약자에 속하는 극단 줄지어 세워 놓고 맘에 드는 놈 하나 골라 서커스 원숭이 구경하듯 낄낄거리는 꼴이, 과거 유신 시절 반반한 여대생들 매일 밤 줄지어 세워 놓고 애첩 하나 점지해 술자리에서 끼고 놀던 거랑 뭐 다를 거 있느냐는 소리들이다. 때문에 학정이 대관 명단에 이름을 올렸을 때도 한바탕 논란이 있었다.
머리 굳은 인사들, 괜히 그러는 게 아니라 하도 당해 온 게 많은 절대적 약자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그 속사정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일단 좋은 거라면 무작정 색안경 끼고 보는 것이 이 바닥 습성의 가장 큰 폐해였다. 결국 그 논란에 종지부를 찍게 된 건 대관을 관리하는 법무대리인이 계약서를 공개하면서였다. 다른 영세 극장보다 훨씬 싼 가격으로, 그러니까 거의 무료에 가까운 금액으로 대관을 해준 것이 알려지고 난 후 기생질이니 애첩질이니 그런 말은 쏙 들어갔지만 그 껄끄러운 시선은 일부 남아 있었다. 일단 지금은 두고 보지만 아무 까닭 없이 그런 자선에 가까운 짓을 할 리가 없다는 게 지배적이 의견이었다. 그래 놓고선 너도나도 대관신청하려고 줄지어 서는 모습이 모순적인 이 바닥 생리를 가장 잘 드러내는 현상이었다. 돈과 가장 거리가 멀어야 할 게 예술이었지만 돈이 없으면 결코 존속하지 못하는, 돈과 예술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희대의 밀월관계라는 경성의 형편없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소리였다. 이 바닥에 괜히 스폰서란 스폰서들이 몰려드는 게 아니다. 누가 가장 싱싱한 꽃 꺾어다가 많이 부러뜨리나. 일부러 그런 내기들을 하는 졸부들도 허다하잖은가.
“그럼 여긴 어떻게 되는 거래?”
갑작스러운 날벼락에 연습 시간이 되었음에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연습실 한가운데 서서 길게 스트레칭을 하던 희완이 창틀에 기대서서 사탕 하나를 까먹는 우진에게 물었다.
“실질적인 주인은 총괄이라니 뭐 문 닫지 않겠냐. 그리고 또 잠잠해지면 간판만 바꿔서 또 회사 하나 차리겠지.”
“연 기획이면, 저번에 술 취한 다락 올려준 데 맞지? 남극 후원도 해주고.”
성대한 공모전으로 신고식을 치르고 제법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연 기획은 이제 공연업계에서 제법 신뢰받는 제작사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 학정이 올릴 연극도 연 기획에서 후원을 해준다는 소문이 있었다. 노골적인 이름이라는 생각을 했다. 타이밍 좋게 희완과 관련이 있는 극단들을 우선적으로 골라서 척척 후원을 해주는 제작사는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지만 그 이름부터가 그 노력을 배반하고 있다. 네이밍 센스 참. 이번에도 총괄이 망하니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와 낚아채 가는 걸 보면 굳이 숨길 생각도 없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우진이다.
그러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희완을 보곤 쯧, 혀를 찬다.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천연덕스럽기만 한 희완이 팔을 당겨달라며 우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우진의 선견지명은 대단했다. 마지막 리허설을 마치고 아주 뒤늦게 귀가를 한 희완은 제 핸드폰에 속속 들어와 있는 문자를 발견하곤 총괄과 놀지 말라는 우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들어온 문자는 별 내용이 아니었는데, 다만 우진이 예를 들어 주었던 내용들과 거의 흡사해 놀라울 뿐이었다.
[우리 예쁜 배우님. 내가 많이 속상합니다. 나아쁜 놈들. 탈탈 털어도 먼지 하나 안 나오는 나 같은 사람을!]
[너무 속상해서 우리 배우님이 생각났어요. 술 고프다….]
[자니? 안 자면 나랑 술 한잔 어때? 어려울 때 되니까 딴 놈들 다 필요 없이 우리 예쁜이만 생각나네.]
언제부터 이렇게 친했다고. 남들이 보면 오해할 소리들을 줄줄 보내오는 총괄의 문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희완이 화면을 닫고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우진이 봤으면 어디 구 남친이나 할 소릴 줄줄이 늘어놓는 징그러운 늙은이라며 한 소리 뱉었을지도 모르겠지만, 희완은 총괄이 저에게 이러는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저를 불러낸 다음 날 사건에 휘말렸으니 모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도 이러면 뾰족한 수가 나오시나. 하는 희완이 어쨌든 무시하는 게 상책이라는 판단이 들어 핸드폰을 소파 구석에 던져 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얼마 후 아파트 현관문이 열리고 승도가 들어섰다. 욕실 쪽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희완이 씻는가 하며 재킷을 벗고 소파에 앉던 그가 연달아 문자가 들어오는 소리에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던 희완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승도가 손수 장만해 준 최신형 스마트폰은 패턴도 비밀번호도 없이 잠금장치가 해제되어 있었다. 거리낌 없이 그걸 주워다 연달아 들어오는 문자를 확인하는 승도의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그 후로도 쉴 새 없이 들어오는 문자 소리는 불구속 입건으로 충분하다했던 총괄에 대한 승도의 무관심에 불을 지피는 소리와도 같았다.
다음 날 희완은 불구속 입건되었다던 총괄이 구속수사 중이라는 소식을, 이젠 거의 얼굴이 흙빛이 되어 가는 연출을 통해 전해들을 수 있었다.
침대에 엎드려 얼굴을 베개에 파묻는 희완이 힐긋 어깨 너머로 제 아래쪽을 보았다. 넓게 벌어진 다리 사이를 차지하고 앉은 남자가 엉덩이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둔덕이 양쪽으로 벌어지며 파고드는 혀가 항문 주름을 하나하나 새듯이 훑어가고 있었다. 간지러워서 움찔움찔하는 게 희완 본인도 너무 잘 느껴졌다.
노곤히 풀려 벌름거리는 구멍 속으로 끝을 세우는 혀는 능란했다. 원래도 키스를 잘하는 남자였지만 그런 실력이 이런 데서도 발현되는가 하던 희완이 흠칫 어깨를 움츠렸다. 부드러웠던 것이 점점 집요한 것으로 바뀌어가며 희완은 엉덩이가 핥아지는 아찔한 감각에 질끈 눈을 감아야 했다. 가능한 깊숙이 혀를 밀어 넣어 내벽의 여린 살들을 간질이던 남자가 이를 세워 한쪽 둔턱을 물었다.
봉긋한 살점을 꽉 쥐어 잡은 두 손은 찰흙을 주물럭거리기라도 하는 듯 우악스럽게 볼기를 주무르고 있었다. 타협 끝에 남자가 선택을 한 것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게 아니라 흔적이 남아도 남들이 발견하지 못할 곳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었다. 옷 벗고 출연하는 포르노가 아닌 이상 옷을 갈아입을 때도 팬티까진 벗지 않으니 남자는 타당하지 않느냐 했고 그때 한창 남자의 입속에서 음낭이 굴려지며 사정하고 있던 희완은 흐느끼듯 신음을 흘려내며 그러마고 했다.
넓게 부피를 늘린 남자의 음경이 오목하게 벌어진 항문 끝만 살짝 끼워 넣고 삽입을 반복했다. 한 번에 쑤시고 싶은 걸 귀두만으로 참고 있는 승도도 대단했지만 그 끝만 살짝 문 채로 깔짝깔짝 들쑤셔지는 희완도 죽을 맛이었다. 간지러운 걸 못 긁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고 깃털로 주름 부위가 간질간질 간지럽혀지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바로 다음 날이 첫 공인데 삽입을 할 수는 없으니 이를 악물며 꾹 참던 희완이 앓는 듯한 소리를 내었다.
“거기 말고 차라리 입으로.”
하겠다는 희완이 바란 것은 승도의 손가락이었다. 제가 오럴을 해 승도의 것을 빼줄 테니 승도는 손가락으로 밑을 쑤셔 제 전립선을 만져달라는 이야기였다. 그걸 들은 척도 않고 쿡 박았던 귀두를 넣었다 빼고 그 주변을 문지르며 희완의 애간장을 다 녹이던 승도가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위아래 구멍 모두 원하는 대로 쑤셔줄 테니 내 앞에서 자위를 해 보라는 소리에 한참 말이 없던 희완이 숫제 박았던 것을 도로 빼 가는 승도의 압박 아닌 압박에 마구 고개를 끄덕였다.
대기실 거울 앞에 앉아 긴장된 기색이 역력한 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던 희완이 옆을 돌아보았다. 장미호의 등쌀에 영화판과 드라마판을 오가며 정신이 없다던 학정이 더 후줄근해진 모습으로 대기실에 들어서고 있었다. 막 분장을 마치고 쉬고 있던 우진이 눈을 홉뜨는 게 보였다.
“오늘 못 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아, 그렇게 됐다.”
묻는 말에, 무언가 긴 할 말이 있는듯하였으나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맺은 학정이 곱게 분장을 마친 두 배우를 새삼스레 돌아보았다. 길쭉길쭉하고 잘생긴 두 놈을 나란히 세워 놓으니 따로 눈호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놈의 연출 똥고집이 보통이 아니라더니, 기어이 이 두 놈을 한 무대에 세워 놨다면서 속으로 감탄 비슷한 것을 하는 학정이 재킷 주머니에서 초콜릿 두 개를 꺼내 우진과 희완의 손에 각각 던져 주었다.
“자리가 너무 가까워서 뒤로 좀 물렸다. 자리 배정 누가 한 거냐.”
학정도 워낙 덩치가 커서 소극장이 아닌 중극장만 되어도 앞줄에 앉혀 놓으면 다른 관객의 원성을 사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웬만한 단차가 있는 곳이 아니라면 알아서 뒷줄에 앉는 편이었다. 초대권 신청할 때 미리 언질을 해 놨었는데 담당자가 그걸 누락시킨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