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78화 (78/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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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에 앉으니 안에 고여 있던 것이 후두둑 떨어졌다.

둔통이 이는 관자놀이를 꽉 누르며 눈을 감는 희완이 앓는 소리를 냈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건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밤새 또 남자에게 시달려진 것 같은데, 기억이 드문드문했다. 다만 미친 것처럼 매달렸었다는 거 하나는 확실하게 기억했다.

침대에서 내려서려다 넘어질 뻔한 걸 마침 안방으로 들어서던 남자가 안아 일으켜 주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안 풀렸는지도 모르고 다니는 거냐는 남자를 빤히 올려다보는데 아랫배가 너무 불편했다. 그 감각과 통증은 너무 익숙한 거라서 굳이 남자에게 묻지 않아도 지난밤의 일을 알 수 있었다. 속이 너무 이상하다는 희완을 거의 안다시피 해서 욕실까지 부축해준 남자는 문을 닫지도 않고 나갔다. 그걸 모르고 변기에 앉다가 활짝 열려 있는 문을 발견한 희완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보다는 앉아 있는 게 힘들 정도로 컨디션이 최악이었다.

힘을 주지 않아도 뭉쳐 후두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적나라하게 들리니 귀밑이 뜨끈해졌다. 남자와의 삽입섹스는 며칠을 했느냐는 사실보다 하룻밤 동안 얼마나 했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였다. 하루를 해도 열흘을 한 것만치의 후유증이 연달아 오니 몸이 너무 힘든 건 사실이었다. 이제 공연 들어가면 정말 컨디션 조절을 해야 하는데, 딱 잘라 싫다고 할 수도 없고, 또 희완도 안 하는 건 싫기도 하고. 뱃속을 간질이며 느른하게 떨어지는 것이 더 없을 때까지 변기에 앉아 숙취가 오르는 이마를 꾹 누르고 있던 희완이 다시 미간을 찌푸린다. 어제 그렇게 마시는 게 아니었는데. 맨정신이기만 했더라도 이렇게까지 남자에게 시달려지지는 않았을, 아니 적어도 미연에 방지라도 할 수, 생각을 멈춘 희완이 다시 낭패스러운 얼굴을 두 손으로 덮었다. 과연 제정신이었더라도 남자를 밀어 내고 제어할 수 있었을까 싶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마셨지.

총괄 팀장 옆에서 주는지 받는지도 모르고 그 언변에 정신이 팔려 있는 동안 저도 모르게 주량을 넘긴 것이었다. 한심하다. 술도 센 편이라 잘 취하지도 않는데, 그런 제 옆에서 그렇게 들이붓고서도 멀쩡했던 총괄 팀장의 주량이 새삼스러울 뿐이었다. 웬만한 술상무보다 더한 인간이라고 누군가 수군대던 것을 이렇게 실감할 줄은 몰랐다. 아직도 쓰린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짧게 호흡을 하던 희완이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치웠다 어느새 남자가 그 앞에 엉덩이를 깔고 앉아 있었다. 술이 덜 깬 건지, 그럴 기운도 없는 건지, 크게 반응을 않는 희완이 이미 찌푸려진 눈가를 더 찌푸리며 말했다.

“배가 너무 아픕니다.”

“관장할 시간 됩니까.”

“모르겠습니다.”

제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본 승도가 아직 눈앞이 흐려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는 희완에게 오전 8시라고 말해주었다.

“안 될 것 같습니다.”

작게 말하는 희완이 다시 제 아랫배를 누른다.

“어제 혹시 콘돔 없이 하셨습니까.”

“아니, 했었습니다.”

“그럼,”

아, 말을 멈춘 희완이 납득했다. 또 하는 도중에 벗겨진 모양이다. 그런 뒤라면 도로 콘돔을 끼우지 않고 계속 관계를 지속하는 남자였다.

“체내 사정 많이 하셔서.”

“못 나가게 했습니다.”

“?”

“밖에서 싸려고 했는데 못 나가게 해서 안에다 쌌습니다.”

기억에 없는 말이었다.

“이리 와.”

당기는 손길에 희완의 상체가 숙여졌다. 엉덩이를 변기에 붙인 채 허리만 숙여 상체를 그의 어깨에 맞붙인 희완이 속이 사르르한 느낌에 눈살을 찌푸렸다. 등 뒤로 뻗어 온 손이 볼기를 잡고 양쪽으로 벌리는 게 느껴졌다. 이젠 이런 건 수치스럽지도 않으니 정말 이상한 기분이 된 희완이 턱이 닿은 어깨에 입술을 문대었다. 남자의 커다란 손이 양쪽 볼기를 잡고 문지르다 바깥쪽으로 크게 잡아당기니 안에 콱 뭉쳐 떨어지지 않던 것이 후두둑 떨어졌다.

“술 먹고 속 안 좋은 건 없습니까.”

그것보다는 남자가 안에다 해 놓은 것 때문에 속이 더 불편했다.

그 속을 읽어낸 승도가 희완을 안은 채로 몸을 일으키며 샤워볼을 끌어와 그 손에 쥐여 주었다. 그러게 왜 필름이 끊길 정도로 술을 먹고 와서. 한숨을 쉬는 희완이 제 머리 위로 물을 뿌렸다.

음 이탈 때문에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먼저 음 이탈을 낸 희완에게서 웃음이 터졌고 그 꼴을 본 우진, 그리고 피아노 반주자, 연출 순이었다.

“어제 너무 과음하셨나 봅니다.”

농을 치는 연출의 말에 소리 내어 웃던 희완이 눈가를 이지러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총괄 팀장님 보통이 아니십니다.”

“아하, 그분 옆에서 여럿 죽었죠. 어째 그 옆에 끼고 놓질 않으시더라니, 먹는 지도 모르게 계속 먹었죠?”

“네, 정신 차리고 보니 아침이더라구요. 형은 어제 몇 시에 가셨습니까.”

연출의 말에 대꾸하던 희완이 이제 생각난 듯이 우진을 돌아보며 물었다. 평소 둘이 있을 땐 편하게 말하다가도 남들 앞이나 공식석상에서는 습관처럼 존대가 붙어 나오는 희완의 목소리에 박하사탕 하나를 입에 넣고 굴리던 우진이 손가락 한 개를 펴 보였다.

“다들, 취해가는 분위기라 일찍 빠져나왔습니다. 있으면서 술 참는 거에도 한계가 있고.”

“어제 술자리 곤욕이었죠? 나도 회의실만 들어가면 미치겠어요.”

아기 아빠 준비로 금연 넉 달째라는 연출이 제일 경계하는 게 헤비 스모커만 모인 총괄팀과의 미팅이라 했다. 거긴 진짜 담배 피우는 사람들한테도 고통스러운 자리라며 진저리를 치던 연출은 차츰 말이 섞이고 얼굴이 익으니 처음의 그 무뚝뚝했던 건 어디 갔나 싶게 친근한 구석이 있었다.

“아, 대관 잡혔습니다.”

보통 대관이야 1년 전에 잡아 놓는 게 관례였지만 기존에 잡아 뒀던 공연장이 화재로 리모델링에 들어가며 대관에 어려움이 있었다. 어디로 잡혔느냐는 반주자의 질문에 내달에 개관하는 신축 건물 6층이라고 말하는 연출은 장소가 자못 맘에 드는지 드물게 기분 좋은 웃음을 보여주었다.

“어, 거기 1년 치 대관 꽉 차 있을 정도라고 했었는데, 어떻게 잡았대요?”

“우리 총괄 팀장께서 좀 능력이 있으십니까. 본인만 믿고 맘 놓고 있으시라더니, 그 말이 빈말은 아니었나 봅니다.”

하며 흉인지 칭찬인지 모호한 말을 늘어놓던 연출이 음 이탈이 있었던 부분을 짚어주며 희완에게 여긴 좀 더 힘을 빼고 가도 좋겠다 했다.

“희완 씨가 중저음까지는 참 잘하시는데, 이렇게 플랫 넘어가는 부분에서는 간혹 흔들리실 때가 있습니다. 매력적이긴 해요. 그 부분이 ‘나’ 의 혼란스러움과 잘 어우러질 때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얼핏, 음정이 불안하게 느껴질 수가 있으니까 그 점 주의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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