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66화 (66/123)

사무소에서 나와 오늘도 술자리에 불려 갔다는 철진을 대신해 클럽을 지키고 있다 희완의 귀가 시간에 맞춰 그 자취 집으로 향하였다. 불이 꺼진 집 안과 잠긴 문을 확인하고 차 안에서 또 시간을 보내다 아파트로 향하였다. 텅 빈 채 고요한 어둠에 잠겨 있던 거실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담배 두어 대를 연거푸 피워내곤 다시 클럽으로 돌아갔다. 희완의 공간엔 함부로 침범하지 않을 것이라 했었다. 그 기분으로 희완을 맞닥뜨렸다간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기도 했다. 부드럽게 안아도 이따금씩 몸을 떨어 오는 희완을 도로 멀리 떨어뜨려 놓고 싶지 않았다. 곁에서 조금이라도 멀어지게 할 계기는 조금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클럽 마감 후 사무소에 들러 쌓인 서류를 대충 정리하고 아파트로 발길을 두었다. 오늘까지 기다렸다가 더 연락이 없으면 그 복잡하고 망중한이 깃든 거리로 낮 동안에 다시 걸음을 할 생각이었다. 제 근간이나 다름없는 공간에서 저를 예고도 없이 맞았을 때 어색해하면서도 묘하게 들떠 있던 희완이 보일 반응을 승도는 가늠하지 않았다. 그때와는 차이가 있으리라. 침범과 방문의 차이쯤은 승도 역시 구분하고 있었고, 이젠 기꺼이 그것들을 배려할 마음이 생겼다. 아니, 단순히 희완을 떨어뜨려 놓고 싶지 않을 뿐인 것이다. 이기에서 비롯된 배려였고, 그것은 사실 깊지도 않았다. 언제든 선회할 수 있는 마음을 다스리고 있는 셈이다.

들고 다니던 핸드폰을 분실했을 것이란 승도의 예상은 적중했다. 가지고 온 소지품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버릇이 있던 희완의 물건에서 그 구형 핸드폰이 보이지 않았다. 전화번호를 외우지 않았으니 연락을 하기도 어려웠을 게다. 화를 낼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기억나지 않는 번호를 매 순간 고심하며 이 흰 얼굴로 무척이나 곤혹스러워했을 것이고, 올 수 없는 사정으로 누구보다 애닳아했을 희완의 모습이 눈에 선하였다. 돌아왔으니 되었다는 생각이다. 황량한 곳을 그 존재 하나만으로 가득 채우는 희완의 둥근 형체를 발견했을 때 승도는 차갑고 매섭게 날 서있던 제 심장을 새삼스럽게 인식했다. 서걱거리던 속은 순식간에 가라앉아 잠재워졌으나 이 흰 것을 향한 승도의 갈증은 여전했다.

들여다보던 것에 가만 상체를 기울인다. 입술이 닿으니 저절로 열리며 습관적으로 혀를 내어 오는 반응이 승도의 서늘한 한 켠을 서서히 채워 왔다. 부드럽고 말캉한 그것은 희완의 살점이라서 달고 좋은 것이었다. 한참 가볍게 그 살덩어리를 물고 건드리던 승도가 입술을 좀 더 깊숙이 덮어 파고들어 갔다. 입 안을 속속들이 핥고 목구멍 깊숙이까지 빨아 당길 것처럼 짙어지는 키스에 잠결에도 한껏 입을 벌리고 응하던 희완이 작게 진저리를 치는 게 느껴졌다. 동시에 강하게 몰아붙이던 것을 조금 뒤로 물리며 재차 가벼운 키스로 입술을 핥아주던 승도의 손이 고무줄 바지 밑으로 뻗어졌다. 열기를 품은 희완의 것이 손에 잡힌다. 작품에 들어간 이후 계속 이어져 온 강행군에 많이 피로했던지 이 와중에도 눈을 뜨지 않는 희완의 것을 손으로 만져주며 계속해서 입술을 맞추는 승도의 눈빛이 짙어졌다.

가끔 위험수위에 다다랐다 싶을 때면 깊고 짙어지는 눈길을 희완은 잘도 짚어내었다. 그러면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면서도, 두려워 물러서는 게 아니라 더 가까이 다가와 승도와 바짝 살갗을 밀착시키며 입술을 붙여 왔다. 영악한 반응이었지만 그것은 의도되지 않은 것으로, 희완의 몸뚱이가 승도를 거부하는 것처럼 그 또한 본능적인 것이었다. 가볍게 간질이기도 하고 강하게 흡착하기도 하며 키스와 손짓만으로 희완의 사정을 이끌어낸 승도가 바지춤에서 축축이 젖은 손을 꺼내었다. 멀겋게 엉겨 붙은 사출액은 더럽다기보다는 기꺼운 것에 가까웠다. 제 손에서 이렇게 절정을 맛보며 가는 것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이었다. 그 사출액을 부러 핥아 먹으면 하얗게 질리는 얼굴 밑으로 붉게 물들어 가는 귓불은 꽉 영근 열매처럼 먹음직스럽기만 했다. 손에 녹아들듯 붙은 것을 혀로 간단히 핥아낸 후 희완의 옷매무새를 정리하여준 승도가 물끄러미 그 흰 얼굴을 들여다본다.

한순간도 제 눈에서 떼어 놓고 싶지 않은 그것을 한참 들여다보다 이번엔 제 바지춤을 풀어 손을 밀어 넣는다. 열심히 빨아 놓아 붉게 부어오른 입술을 혀로 부드럽게 핥으며 이미 반쯤 고개를 든 제 것을 꽉 쥔다. 입술을 빨던 혀가 뺨을 스치며 둥근 귓불로 미끄러진다. 가득 삼킨 것을 쩝쩝 소리가 나도록 빨며 소파에 왼쪽 어깨를 기댄 승도가 제 것을 빠르게 훑어 올리기 시작했다. 쿨쩍쿨쩍 깨끗이 닦아내지 않은 희완의 정액이 승도의 음경에 덧발라지며 질척한 소리를 냈다. 귀를 빨던 입술을 벌려 내민 혀를 고막 깊숙한 곳으로 밀어 넣는다. 움찔 어깨를 떠는 희완이 눈을 뜨는가 하였지만 긴 한숨만 내쉬다 다시 새근새근 숨을 뱉어 놓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희완을 상대로 흥분한 제 것을 거칠게 훑어내던 승도에게서 어느 순간 뜨거운 숨이 왈칵 뱉어졌다. 동시에 번쩍 뜬 눈을 빠르게 깜박인 희완이 제 입술을 덮어 오는 승도를 습관적으로 받아내었다.

잠든 동안 제가 당한 짓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진한 키스로 혼을 쏙 빼놓은 승도가 티슈를 뜯어 젖은 제 손과 음경을 문질러 닦고 지퍼를 올리고서야 입술을 떼어 내었다. 그리곤 계속 자라며 뺨을 부드럽게 문질러주곤 훌쩍 몸을 일으켰다. 그 뜻대로 나른한 몸을 일으키지 않고 더 깊숙이 늘어뜨린 희완이 부어 있는 입술을 한 번 만지고 미간을 좁히다, 불현듯 앞섶을 더듬었다. 곧 새빨개지는 희완이 대본으로 얼굴을 감추며 옆으로 돌아누웠다. 샤워를 하고 나온 승도가 어깨를 당겨 침실로 끌고 갈 때까지도 자느라 사정한 것도 모르고 있던 스스로에게 충격을 받은 희완은 소파 등받이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

땀에 젖은 희완의 목덜미 아래로 딱 붙은 셔츠가 축축했다.

8월 초입, 한창 더워지기 시작한 날씨에 냉방까지 고장 난 연습실은 찜통이었다. 땀에 흠뻑 젖은 반팔 티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 올리고 대본을 들고 서 있던 희완이 맞은편에 선 우진에게 가볍게 부채질을 해주었다.

“선풍기도 고장 났는데 오늘은 어제보다 더 찌는 것 같아.”

“그러게. 영세 극단도 아니면서 냉방 하나 제때제때 안 고치고, 사람 말려 죽일 작정인가.”

그도 더운지 들고 있던 대본으로 희완과 제 얼굴에 번갈아 부채질을 하다 창가쪽으로 걸어간다. 잠시 쉬는 시간을 틈타 피아노 반주자는 더워 죽겠다고 사무실로 피난을 갔고 연출은 연습 시작도 전부터 어딜 갔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활짝 열어 놓은 창을 통해서도 시원한 바람은 불어오지 않았다. 그나마 불어오는 바람이 어디냐 싶어 한쪽을 차지하고 서서 희완을 불러 세우는 우진이 얼음이 다 녹은 생수를 반을 비워 내었다. 둘 다 딱히 더위를 타는 편은 아니었는데 어제 오늘은 유난한 구석이 있었다. 동선이 크거나 따로 안무가 있는 극이 아님에도 치고 빠지는 템포가 굉장히 빠르고 넘버 외에 서로 주고받는 대사량 또한 만만치 않아 컷 없이 한 번에 쭈욱 빠지면 체력소모가 보통이 아니었다.

약 한 달가량 학정의 아파트를 드나들며 합숙 아닌 합숙이 진행되는 동안 제법 체력을 회복한 우진은 성량 또한 본래의 정도로 돌아와 있었다. 희완의 목소리가 바리톤의 탁한 미성이었다면 우진은 높은 음역대에서 힘 있게 뻗어 나가는 목소리가 일품이었다. 강명 선생을 따라다니면서 소리 공부를 한다고 질러댄 게 성대에 자리를 잡아 보컬 레슨을 받으면서도 몇 번 헤매기도 했던 희완은 창법을 바꾸는데 꽤 고생을 했다. 반면 우진은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덕에 약 3주간은 원 샷으로 극을 달리지 못해 중간에 몇 번이나 휘청하기도 했고 약으로 버텨 간신히 끝을 맺기도 했다.

“크로스 페어도 있을 것 같다는 얘기가 있던데.”

“연출이 또 생각보다 실험 정신이 강하니까, 뭐.”

추세이기도 하고, 충분히 그럴 법도 하다 하는 우진이 담배가 당기는지 눈살을 찌푸리며 남은 생수를 마저 비워 내었다. 그걸 보던 희완이 바구니에 담긴 사탕 두 개를 빼 들고 와 하나는 우진의 입에 물려주고 하나는 제 입에 물었다.

아이돌 출신 배우 팬들에게 하사받은 것 중 하나였다. 어찌나 지극정성인지 합동훈련을 하는 날엔 간식부터 후식까지 다른 배우들까지 덩달아 후한 대접을 받곤 했다. 그 대가로 해 주는 거라곤 웃으면서 한 장 찍는 게 다인데 누구도 우진에게 그런 제안을 하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세트로 묶인 희완에게도 그러는 이가 없어 셔터를 누르는 건 항상 희완의 몫이었다. 합동 연습에서도 특별히 두각을 드러내지 않았던 희완은 사이클 자체가 다른 유명 배우들 사이에서는 그저 광고주 한번 잘 만난 볼 것 없는 무병배우라는 타이틀이 적합했고 받는 취급도 그 정도에 그쳤다.

각 파트너가 아닌 상대방의 파트너와 공연을 올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식은 작품의 장르적 특성 때문에 민감한 구석이 있었다. 그러나 연출은 배제하고도 제작사 측은 캐스팅에 공을 들인 만큼 본전을 뽑을 생각인지 크로스 페어까지 적극 찬성하는 티를 팍팍 내며 심심찮게 회식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었다.

중독 증세 때문에 술은 입도 안 대는 우진은 처음 몇 번만 인사치레로 참석한 후 건강상의 이유로 자연히 술자리를 빠지게 됐고 희완은 나름 착실하게 자리마다 참석하며 출석일수를 챙겼다. 그게 또 예뻐 보였는지 언젠가부터 그 옆에 꼭 끼고 앉기 시작한 제작사 측 총괄 팀장이 술자리에서 흘리는 이야기로 몇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로 준비 중인 작품은 국내 창작극으로 제작사 측의 야심작이라는 것과, 이미 투자자 모집이 끝났으며 캐스팅과 세부적인 디렉팅 작업만이 남았다는 것, 그 외 캐스팅 비화에 대한 잡다한 사실 중 희완의 귀를 솔깃하게 한 것은 저와 우진의 캐스팅에 관한 일화였다.

술자리를 마치고 각자 뿔뿔이 흩어진 자리에서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은 희완의 머리칼이 가느다랗게 불어오는 바람에 살짝 나부꼈다. 배역을 위해 기르기 시작한 머리카락이 어느덧 귀 윗부분을 살짝 덮어 가기 시작했다. 날이 더워 연습 도중엔 머리띠를 차거나 대충 핀으로 머리를 고정시키는 것을 임시방편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머리가 짧을 때는 열심히 말리지 않아도 자연건조에 어려움이 없었는데 조금이라도 더 길고 나니 그것도 손이 많이 갔다.

어느 날은 씻고 나와 대본을 본다는 것이 그대로 잠들어 버리고 말았다. 바닥에 이불도 깔지 않고 엎드려서, 잠시 팔뚝에 머리를 대고 있는다는 게 그리 까무룩 잠이 들어 버리고 만 것이다. 무언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뒤척이다 눈을 떴는데 남자가 있었다. 막 잠에서 깨어 초점이 흐렸고 어둠에 눈이 익지도 않았음에도 그임을 알아챌 수 있었던 건 그의 체향 때문이었다. 익숙한 실루엣은 잠결이었던 희완이 도로 눈을 감게 했고, 한참 머리칼을 매만지는 손길에 나른하게 몸을 맡겼다가 입술이 건드려지고 나서야 다시 눈을 뜨게 했다.

붉게 반질반질한 입술을 당겼다 빨며 김학정네 가 있는다더니 왜 여기 있느냐 묻던 남자에게 그럴 만한 이유를 대었다. 요즘 같은 강행군이 계속되는 동안은 꾸준히 학정의 아파트에 신세를 질 생각이었는데 오늘은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고.

극단 사람들이 예고도 없이 들이닥친 데다 학정이 영화판에서 알게 된 스태프들까지 우르르 몰려오는 바람에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어 쫓기듯이 빠져나와야 했다. 우진은 엄연한 동거인 주제에 매번 저를 밖으로 내쫓는 학정이 괘씸했던지 그의 지갑에서 돈을 빼내어 근처 호텔로 향하였고, 희완은 오랫동안 비운 집 정리를 위해 겸사겸사 들렀다는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새 온몸이 만져지고 있었다.

이불 없이도 단번에 희완을 덮어 오는 그의 몸만으로도 새벽기운의 서늘함은 해결이 되었다. 입고 있던 재킷을 벗어 바닥에 깔아 놓은 남자가 희완을 그 위에 눕혔다. 자는 동안 내내 그에게 매만져졌던 머리칼은 비교적 건조되어 있었다. 창을 통해 희미하게 비치는 달빛으로 인해 제 위에서 셔츠를 벗어 던지는 남자의 어깨 근육이 역동하는 것이 선명히 보였다. 손을 뻗어 어깨서부터 팔목까지 가만 쓸어내리니 선연히 만져지는 감각에 저도 모르게 가슴이 떨렸었다. 몸을 부딪쳐 완연히 드러난 남자의 흥분이 희완에게까지 생생히 전해지는 듯했다.

얼마 만이었던가. 날짜를 헤아리던 희완은 끝까지 그 결론을 내지 못했다. 병실에서의 며칠 뒤로 훨씬 더 예민해진 유두를 남자가 입에 담고 굴리는 순간 절로 허리 뒤가 긴장되며 머릿속이 굳었다. 가슴께에 그 거친 손이 닿음과 동시에 빳빳하게 굳었던 유두가 말랑말랑하게 연해질 때까지, 그 작은 살점을 연신 물고 빨며 부드럽게 굴리던 남자에 의해 긴장으로 굳었던 허리 뒤가 다시 노곤히 풀렸다. 뜨겁고 축축한 혀가 하도 우물거려 과육처럼 연해진 유두를 빨아 올릴 때마다 울리는 야한 소리가 희완의 귓가를 빨갛게 물들게 했다. 티셔츠를 가슴까지 끌어 올렸던 손은 희완이 잘 느끼는 미골과 옆구리, 물살에 헤적이는 수초처럼 부드러운 음모가 시작되는 부근을 농밀하게 매만져 왔다.

힘없이 늘어뜨리고 있던 다리를 좀 더 활짝 벌려 남자를 완전히 받아들인 희완이 눈앞에서 툭 튀어나온 그의 목울대를 입에 삼켰다. 건드려지지 않아도 얼얼하게 발기한 마냥 붉게 영글어져 있는 유두에서 입을 떼고 막 티셔츠를 머리 위로 벗기던 남자가 간지러운 듯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에 다시 입을 맞춘 희완이 손바닥을 펼쳐 단단하게 만져지는 가슴을 쓸며 등 뒤로 팔을 감았다. 상체가 바짝 밀착되자 퉁퉁하게 부어오른 유두를 스치는 그 딱딱한 감각에 희완이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이제 적어도 유두를 만질 때만큼은 전처럼 긴장을 하진 않았다. 그간 진득하게 몸장난을 칠 때마다 밑을 건드리는 대신 유두를 애무하여 긴장을 이완시키고 그 입으로 길들이는 데 공을 들였던 남자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언젠가는 이것만으로 사정을 할 수 있겠다 생각하던 희완의 가랑이 사이로 남자의 커다란 손이 덮어졌다. 남자의 입에서 사정을 하고 또 남자의 것을 입에 담고 듬뿍 쏟아 내어진 정액을 삼켰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제 것을 정성스럽게 빨고 제가 쏟아낸 것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는 것을 아까워하며 맛있게 받아 삼키는 남자의 것은 역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 맛에는 이제 너무 익숙해져 거부감도 없었고 그러는 게 당연하게 몸에 배이기도 했다.

남자들 술자리에서 의례히 빠지지 않는 음담패설이 오가는 중에 그러는 건 정말 웬만한 애정이 아니고서야, 몸 파는 여자 아니면 해주지 않는 것이라는 소릴 듣고 내심 놀랐던 기억이 있었다. 정말 술자리 음담패설 철학을 곧이곧대로 믿자면 제가 돈을 주고 남자의 몸을 사는 게 아니니, 남자가 그러는 건 웬만한 애정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희완 역시 돈을 받고 그에게 몸을 파는 게 아니니, 그러는 건 또 웬만한 애정 때문이라는 단순 논리였다. 그저 희완은 제가 이러니 남들도 다 이러는 줄 알았고, 남자가 그러니 남들도 다 관계를 가질 땐 그러는 줄 알았다. 웬만한 남자들은 포르노에서 나오는 사내새끼들 좆 그림자만 봐도 구역질이 올라온다는 소리에 저도 모르게 제 것을 달게 빨아 오던 남자의 음영 짙은 얼굴을 떠올렸다. 심지어는 안달하며 관계 중에 오줌을 지린 희완의 것도 거리낌 없이 빨아 닦아주던 남자를 떠올리자 그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말았다.

동성애가 터부인 걸 모를 정도로 멍청이는 아니었어도 일반적인 연애 관계에 대해서는 무지한 게 사실인 희완이었다. 술자리 음담이 정석은 아니겠지만 저도 모르게 그들의 거친 언변을 들을 때마다 제 경험과 비교를 하게 되었던 희완은 둘 다 남자라는 사실을 차치하고서라도 저와 남자의 잠자리 버릇들이 일반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보다 더 난잡하고 노골적이고 상스러울 정도라는 걸 깨닫긴 했는데 남자가 곧잘 흘리곤 하는 그 적나라한 언어도 그에 한몫하고, 한술 더 떠 그 소리에 완벽하게 반응하여 흥분하는 저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에 귓불을 붉히며 애꿎은 눈가만  쓸어댔었다. 그 사실을 아는 건 저와 남자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는데도 말이다. 꿀맛 같다느니, 맛이 좋다느니, 예쁜 구멍이라느니, 포르노 배우들도 그 정도까지는 립 서비스하지 않는다며 낄낄대는 배우들 틈에서 희완은 연신 찬물만 들이켜댔었다.

그리고 그 밤 이상스럽게 흥분이 되어서 내내 잠을 못 이루다가 학정이 마련해준 작은방 구석에 몸을 붙이고 누워 자위를 했다. 손목이 얼얼하도록 세 번의 사정을 하는 동안 남자만 떠올렸다. 남자의 뜨거운 손길과 상스러운 언변, 그가 제 성기를 빨 때마다 적나라하게 울리던 마찰음과 제 음모에 슬쩍 파묻혀 있던 그 날렵한 콧날을 떠울리는 것 따위로 계속 절정을 맞았다. 몸을 움찔움찔하며 토정을 할 때마다 그 허탈함을 달래듯이 안아오고 따뜻하게 덮어오던 그의 체온이 없어 그 순간만큼은 그리 한탄스러울 수가 없었다. 밑이 너무 뜨거웠었다.

먼저 귀가를 한 우진이 소파에 앉아 뮤지컬 넘버를 듣고 있었다.

오래된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은 오리지널 초연 버전이었고 세 장의 음반 중 우진이 가장 좋아하는 버전이기도 했다. 둘러멘 가방을 내려놓고 재킷을 벗은 희완이 그 옆에 앉으며 피로하게 노곤한 몸을 소파 깊숙이 기대었다. 이것 또한 들여놓은 지 오래되어 쿠션이 많이 빠져 있었으나 안락한 느낌만은 최상급이었다.

“씻고 와. 술 냄새 난다.”

가만히 눈을 감고 한국어 가사를 나직이 읊조리던 우진이 눈살을 찌푸리며 한마디 던졌다. 그에 머쓱하게 웃던 희완이 주머니에서 주전부리들을 가득 꺼내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술집에서 주워 온 사탕도 있었고, 술자리에서 친해진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안겨준 초콜릿 따위들도 있었다. 개중 달콤 쌉싸름한 맛으로 한창 인기열풍이었던 초콜릿 하나를 까서 우진의 입에 넣어준 희완이 순하게 웃었다.

“연출 선생님이, 그렇게 깐깐하시잖아.”

애가 또 이러네, 하는 얼굴로 살짝 술이 올라 주정을 하려는 기미를 보이는 희완을 시큰둥하게 넘겨보던 우진이 입 안 가득 달게 녹아드는 초콜릿을 굴렸다.

“아이돌 출신 배우에 대한 편견이 괜한 것은 아니라, 연출 선생님도 극구 반대 했었는데.”

실력이 검증된 것도 아니고, 이 바닥 출신 배우들보다 훨씬 선택지도 많고 열린 가능성도 많은 배우들을 굳이 기용할 까닭이 없다며, 제작사 측에 몇 번 퇴짜를 놓았더랬다. 그래서 합의를 본 게.

“형을 그렇게 쓰고 싶었다나 봐. 형하고 나를 캐스팅하는 조건으로 제작사 캐스팅에 협조를 했대. 반발이 좀 심했는데, 나는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은 배우이고, 형은 이런저런 구설수가 많았으니까. 반대가 엄청났었다는데, 귓등으로도 안 들었대. 이 작품을 처음 맡았을 때부터 형하고 나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었다고.”

그래서 출신 따위에 별 편견 없는 연출이 그렇게 강하게 반대했을 때 의아했었는데 아무래도 밑밥 깐 거에 보기 좋게 걸려든 것 같다며 껄껄 웃던 총괄 팀장은 젊은 연출을 꽤 신뢰하는 듯했었다.

“몇 번 거절당할 줄 알았는데 형이 흔쾌히 하겠다 했을 때 그렇게 기뻐할 수가 없었대. 그런 거 잘 티도 안 내는 양반이 좋다고 히죽거리는데 그게 그렇게 꼴 보기 싫을 수가 없었다고.”

말을 멈추고 뭐가 그리 웃긴지 키득거리는 희완을 빤히 보던 우진이 검지를 세워 발갛게 술기운이 오른 이마를 툭 밀었다. 이게 정말 취했나. 오뚝이 인형처럼 밀린 대로 끄덕끄덕거리던 희완이 속이 부대끼는지 홀쭉한 뱃가죽을 문지르며 웃던 입가를 살짝 실룩였다. 취했군. 주량이 센 편인 희완이 취한 걸 두어 번 본 기억이 있는 우진이 아예 소파에 팔을 걸고 앉아 본격 관객 모드로 돌입했다.

잘 안 취하는 녀석이 한번 취하면 꽤 재밌는 구석이 있었다.

유난스럽게 넉살이 좋아 여기저기 집적대지 않는 곳이 없는 총괄 팀장을 이 술주정의 원인으로 꼽은 우진이 발갛게 물든 귓불을 습관대로 문지르며 반듯한 눈썹을 찌푸리는 희완을 빤히 쳐다보았다. 색이 더욱 두드러지는 입술이 곧 열렸다.

“형. 형은 연애 많이 해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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