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편에 앉아 내내 인터뷰에 귀롤 기울이고 있던 연출이 결국 잠시 흐름을 끊고 들어왔다. 장내는 벌써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잠시 이야기 좀 합시다.”
이미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기자에게 면담 요청을 한 연출이 먼저 문을 열고 대기실을 빠져나갔다. 의자에 앉아 내동 찬웃음을 입에 걸고 있던 우진에게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 옆에서 다소 가라앉아 있던 희완이 그를 돌아보았다.
“공부 단단히 했는데.”
우진의 감탄은 충분히 나올 만도 했다.
처음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눌 때만 해도 호의적이었던 기자는 차츰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그 속내를 드러내는 데 거리낌을 두지 않았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오로지 우진의 복귀와 스캔들에 관한 질문들만 작정하듯이 퍼부어대는 기자를 상대하면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우진이 찬웃음을 건 건 마지막 질문 때문이었다.
-양성애자라는 소문이 있던데, 이 작품을 택한 것에 그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까요?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묻는 질문은 그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서라도 굉장히 무례한 질문이었다. 그만큼 도우진에 대한 평가가 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했다. 보나마나 이 기사가 나가면 제작사도 연출도 한동안 곤욕을 치를 것이었다. 굳이 노이즈 마케팅이 필요 없는 작품을 일부러 논란 속에 노출시켰다고 일부 마니아층의 반발도 클 것이었고 인터넷 찌라시들에 달릴 악성 댓글은 말할 것도 없었다. 비록 무죄방면되긴 하였어도 마약 사건으로 입건되었다 풀려난 경력이 있는 우진은 제대로 재기하기 전에 추락하였기에 사실상 대중에겐 유죄로 기억되었다.
억울할 것은 없다. 물리도록 마약을 한 것은 사실이었기에.
무례한 질문에 찬웃음으로 대응했던 우진의 답은 간결했다.
-관객들이 작품을 택하는 데 있어 배우의 섹스 성향은 고려대상이 아닐 겁니다.
그 답을 듣고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기자를 보다 못한 연출이 인터뷰를 끊고 들어온 것이었다. 의자에 걸터앉아 몸을 뒤로 늘어뜨리던 우진이 피로한 듯 눈가를 문질렀다.
“미안하다. 그래도 첫 인터뷴데.”
“맞습니다. 첫 인터뷴데 이렇게 찬밥 신세라니.”
기자에게 집중포화를 받고 있던 우진의 옆에서 그림같이 앉아만 있던 희완이 농을 걸며 주머니에서 굴러다니던 사탕을 꺼내었다. 의외로 단걸 좋아하는 희완의 입맛을 알고 남자가 챙겨다 준 것이었다. 그걸 하나 까서 물려주니 군말 없이 받아먹는 우진이 닫힌 문을 통해 들려오는 큰 소리에 짜증스럽다는 듯 눈을 감는다.
기자와 이야기를 하던 끝에 언성을 높이는가 하던 연출이 결국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 우진와 희완에게 인터뷰는 없던 걸로 하기로 했다며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다. 이미 조용한 대기실에서 얇은 문을 통해 둘의 설전을 고스란히 듣고 있었기에 별다른 이견은 보이지 않았다. 굳이 우진 때문이 아니라 이전에도 인터뷰 방향이 내내 이랬던 모양으로 그것이 예술가적 감성이 높은 연출의 심기를 호되게 건드린 모양이었다. 다른 꼴은 다 참아줘도 내 배우 모욕하는 꼴은 못 본다며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쓰레기 같은 기자 새끼라 욕을 날렸던 연출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본래의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인터뷰는 다른 날 새로 잡을 겁니다. 초짜도 아니신 분이, 뭐 저런 걸 다 받아주고 있습니까. 아무튼 오늘 욕봤어요. 저런 새끼들 주절거림에 귀 기울일 거 하나 없습니다.”
“뭐, 욕본 건 연출 선생님 같습니다.”
입 발린 말 못 해서 저렇게 퉁명하게 몇 마디 던져 놓는 연출에게 대수롭잖게 반응하는 우진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희완 씨도 첫 인터뷰였을 건데, 미안하게 됐습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괜찮습니다.”
씁쓸한 얼굴로 사과를 하는 연출에게 오히려 정중히 인사를 하는 희완이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거침없고 강단 있는 성정의 실력파 연출가는 그럼에도 수완이 썩 좋은 건 아닌 것 같아 오히려 주변의 걱정을 샀다. 주머니에 든 사탕을 꺼내어 전해 주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받아 들다가 곧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짓는다. 연습 시간에 보자는 연출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 나오니 우진이 복도 끝에 서서 희완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