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55화 (55/123)

푹신한 침대에 반쯤 엎드려 누운 희완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승도가 손을 뻗었다. 자느라 흐트러진 머리칼을 건드리니 눈가를 이지러뜨린다. 전에는 이보다 작은 기척에도 눈을 뜨기 일쑤였는데, 그래도 눈을 뜨지 않는 것이 요즘 들어 많이 바뀐 버릇 중 하나였다.

욕실에서 나오다 소파에 앉은 그대로 잠들어 있는 희완을 발견했다. 승도가 통화를 하는 중에 먼저 샤워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 있던 희완은 극본을 보다 잠든 모습이 역력했다. 한 번에 잡아끌면 쑥 미끄러지는 추리닝 바지에 얇은 면 티 한 장만 걸친 희완의 비스듬히 누여진 얼굴 밑으로 도드라지는 울대와 움푹 파인 빗장뼈가 고스란했다. 때때로 열기를 품는 몸은 입을 꾹 다물면 다소 서늘하게 느껴지는 인상과는 달리 남자의 밑에서 쉽게 달아오르곤 했다. 농밀한 키스를 끌어내면 순순히 따라오며 성실하게 절정을 맞기도 했다 손 안에서 질척하게 번지는 사출액을 문지르면 매번 부끄럽다는 듯이 붉어지는 귓불을 그렇게 물어 삼키고 싶었다.

잠든 희완을 들어 안아 침대에 눕히고 승도도 이불 속에 들었다. 처음엔 바르게 누워 자다 몸이 부대끼는지 끙끙대며 비틀어 눕다가 종반에는 이렇게 엎드려 새근새근 진 숨을 뱉어내는 희완은 많이 피곤했는지 간간이 낮게 코를 골기도 했다. 그걸 머리를 받치고 누워 내내 감상하던 승도도 늦게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입을 맞추면 거의 삽입만 남기고 모든 단계를 섭렵한다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다만 아직은 삽입에 무의식적인 불안을 느끼는 희완이 바짝 흥분을 하고 있는 중에도 뒤에 손을 대기만 하면 얼어붙는 통에 완전히 끝까지 가지는 못했다. 병실에서의 그 며칠이 또 다른 트라우마가 되어 있던 셈이다.

그렇게 짓씹어 놨던 몸은 수월히 회복해 그때의 흔적을 남기고 있지 않았다. 늘어졌던 유두도 살점이 붙어 제 크기를 되찾았고 굳이 넓히지 않아도 느슨하게 풀어져 있던 항문은 한 번도 무엇을 담아 놓지 않은 것처럼 꽉 오므려져 있었다.

작정을 하고 굴렸기에 그 정도쯤은 별스럽게 생각지도 않았다. 이십대의 어둔 터널을 헤치고 오는 동안 손에 닿는 사람의 감촉이란 건 깨부수고 으깨어야 할 것 들이 전부였다. 품 안에서도 그렇게 쉽게 이지러지는 것을 잡았을 때 지키고 싶고 아끼고 싶다는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의 광풍하여 부는 파괴적인 성정은 거친 목정밭을 쉼 없이 헤치고 오는 동안 더욱 삭막하고 사나워져만 갔다.

바란다면 그리 굴려주겠다는 마음은 그가 환멸하여 증오를 퍼붓던 검은 것들에게서 뻗어 나온 가지였다. 썩어 문드러진 그것은, 그러나 질기고 강하여 좀처럼 승도의 깊은 곳을 차지하고 앉아 떨어져 나가지 못했고, 지금 역시 저 깊은 곳에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이 변명이 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그때의 야수성은 승도 스스로 풀어 놓은 것이었다. 제게서 그렇게 떨어져 나가겠다 발악을 하던 희완에게, 단 한 번도 진심인 적 없다 그리 악에 받쳐 외치던 희완에게, 분노하여 억눌러 놓았던 것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지 않았다. 지켜야 할 것을 이미 한 번 잃었기에 두 번 잃는다 하여 문제 될 게 없다는 마음은 짐승의 것이었다.

목을 물어 죽여 놓으면 결국엔 잃지 않는 것이다.

그리 거칠게 불어닥치던 광풍이 그 희미한 울음 앞에서 뚝 그쳤다. 속절없이 밀려 나가며 바람 한 점 불지 않는 황량한 폐허만 남겨 두었다.

나는 얼마나 또 너를 갈등하였던가. 제 손으로 보내놓고 며칠 밤 웅크려 짐승처럼, 물어뜯고, 아예 삼켜버리길, 갈망하며, 다시 뒤쫓아 채어 오길 원하였던가. 그때마다 콰득 굳어 메마른 가슴을 흥건히 적셨던 그 뜨거운 눈물이, 붉게 충혈하여 번득이던 야만을 잠재우며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대로 잃는다 해도 희완을 다신 찾아올 수 없다는 깨달음은 뒤늦게 승도의 심장을 물어 저 밑으로 떨어뜨렸다. 억지로 꺼내 오면 이번엔 정말 잃을 것이다. 그것이 승도를 발밑에 묶어 놓았다.

또 긴 한숨을 뱉어 놓으며 뒤척이던 희완이 다시 몸을 뒤집었다. 등을 돌려 반대쪽을 향해 눕는 걸 보던 승도가 목 밑에 팔을 밀어 넣어 어깨를 끌어다 놓으니 알아서 품으로 굴러 들어온다. 어깨를 문지르고 허리 밑까지 밀려 내려간 이불을 끌어 올리며 승도 역시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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