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53화 (53/123)

풍경 소리를 들으며 창에 상체를 기대고 있던 희완이 비죽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가 오려는지 하늘에 별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시선을 내려 창밖 화단에 화사하게 피어 있는 이름 모를 꽃들을 손끝으로 톡톡 건드리던 희완의 머리칼이 살짝 나부꼈다. 이러고 있으니 졸음이 올 것 같다. 창틀에 건 팔뚝에 뺨을 기대며 눈을 감는다. 아직 내일 읊어야 할 대사도 못 외웠는데. 이번 일정은 꽤 빡빡하게 메워졌다. 일주일에 한 작품씩, 숫제 연기 연습에만 매달려도 모자란 시간들이었다.

가만히 뜬 눈으로 식사 중에 전화를 받고 담배를 빼어 물며 후원으로 나갔던 승도를 좇는다. 등나무에 앉아 전화를 받는 모습이 보였다. 평소 함께 있을 때는 거의 전화를 받지 않았고 오지도 않았었지만 가끔 오는 경우에는 저렇게 자리를 피해 통화를 했다. 바닥에 담뱃재를 터는 그 앞에서 생긋 웃으며 재떨이를 밀어 주는 여자의 얼굴은 여전히 화사했다. 은은한 달빛에 비치니 더 아름다운 것도 같고.

모란꽃 같다며 중얼거리는데 불쑥 위에서 뭐가 말입니까, 하는 목소리가 뱉어졌다. 어느새 성큼 걸어온 승도가 위에서 빤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걸 멍하니 올려다보는데 다가온 손이 바람결에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며 눈가를 문질러 왔다. 피곤이 내려앉기라도 했는지 눈 밑을 부드럽게 문질러주는 손이 꾸준했다. 얼얼하게 문질러지는 살결에 질금 눈물이 날 정도가 되어서야 손을 떼어 내는 그에게서 희미한 니코틴 향이 풍겨졌다. 문득 지펴지는 흡연욕을 알아차리기라도 했는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려 준 남자가 곧 불을 붙여주었다. 그리곤 남자도 화단에 걸터앉으며 담배 하나를 빼어 물었다. 전보다 흡연횟수가 는 것 같다.

학정의 성화가 아니라도 건강관리의 필요를 느끼고 있어 희완은 요즘도 많이 태우는 편은 아니었지만 간혹 이렇게 당길 때가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생각의 끝을 맺지 않은 희완이 어디까지나 남자의 기호에 관한 것이라 판단하며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는 그의 팔을 슬며시 붙잡았다. 잠시 후 그의 얼굴이 가까이 당겨져 왔다. 치익, 서로 맞붙은 담배 끝이 서서히 타들어 갔다. 그걸 깊이 한번 빨아들여 옮겨 붙인 남자에게서 짙은 매혹이 느껴졌다. 별거 하지 않아도 가끔 이렇게 남자는 관능적일 때가 있었다. 굴곡이 짙은 얼굴 면면으로 번져 있는 어둠은 위협적이면서도 사람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고, 희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그걸 아무 가감 없이 넋 놓고 바라보던 희완이 상체를 바깥쪽으로 좀 더 당겼다. 머뭇거림 없이 짧게 정돈되어 있는 남자의 귀밑에 입술을 붙인다. 담배 연기를 길게 뱉어내던 남자의 숨이 잠시 거칠어졌다. 이윽고 목 옆을 길게 핥아 내리던 희완이 다시 귀밑에 입술을 붙이곤 쪽, 소리를 내며 떼어 내었다.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승도가 한참 불어온 바람에 담배 연기가 다 실려 가고서야 희완을 돌아보았다. 방 안의 불에 비쳐 말간 얼굴 곳곳엔 흑심이란 게 없었다. 눈이 마주쳐도 빤한 눈길을 하다 뒤늦게 머쓱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는 귓불이 더디게 반응을 보인다. 흰 것이 붉어진다. 담배꽁초를 눌러 끄고 재떨이를 승도에게 넘겨 그도 끄게 한 희완이 몸을 일으켜 슬그머니 창틀에서 떨어졌다. 아직 식사 중이었고 잠자리 전임에도 푸짐하게 차려 나온 저녁상은 손댄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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