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44화 (44/123)

별이 머무는 계절 (Just Stay)

병실 하나를 빌려 희완을 욕조 난간에 앉힌 승도가 수도를 열어 제 손을 적신다. 이윽고 흥건히 젖은 손바닥으로 부어오른 희완의 얼굴을 문대는 그의 머리 위에서 밝은 형광등이 역으로 휘어졌다.

잠시간 멍하니 승도의 손에 제 얼굴을 맡겨 놓고 있던 희완이 문득 시선을 들었다. 올라오는 내내 성의준의 웃음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사실 남자의 등장을 실감하지 못한 채 당겨오는 손에 무기력하게 끌려오기만 했었다.

쓰레기 같은 말들이다. 하등 귀담아 들을 것 없는 말들이다.

그러나 희완은 다시금 제 얼굴에 닿는 남자의 손에서 화드득 물러나고 말았다. 덕분에 휘청하는 몸이 균형을 잃어 욕조 뒤로 넘어갔고 뻗어 나온 손이 마른 등을 감아 감아올린다. 바르르 떨리는 감각이 등을 휘감은 팔로 선명히 전해져 온다. 그걸 가만 두고 보던 승도의 키가 낮아지며 한쪽 무릎이 꿇려졌다. 눈높이가 바뀐 희완의 시선 안에 남자의 진한 얼굴이 선명하게 들어온다.

순간 울 것 같이 일그러지는 얼굴이 도로 흐려지며 희게 가라앉는다.

무어라 말을 않는 남자에게 뱉을 말이 없었다.

성의준이 뱉어낸 말들은 모두가 독 같은 것일 뿐이다. 고작 그런 것에 영향을 받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남자의 잘못이 아니다. 희완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된 건, 잘못된 건.

다가오는 남자의 손을 공포스러운 것이라도 보듯 크게 벌어지는 두 눈이 정처 없이 흔들린다. 뺨에 닿았고 아직도 화끈거리는 살갗을 부드럽게 쓸며 목덜미를 감싸 안는다. 희완은 고개를 숙였다. 먼저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대고 안쪽으로 혀를 밀었다. 뜨거운 것이 감긴다. 녹아내릴 듯한 입맞춤이었다.

입술을 떼어 낸 희완이 욕조 난간 밖으로 몸을 미끄러뜨렸다. 한쪽 무릎을 대고 앉은 남자와 마주보고 앉아 뻗은 손으로 그의 바지춤을 건드린다. 달각, 벨트가 풀렸고, 버클이 풀리고, 지익- 지퍼가 열렸다. 근육이 도드라지는 아랫배 밑으로 차가운 손을 쑥 집어넣은 희완이 다시 남자의 입술을 찾았다. 농밀한 키스를 원하며 다른 손으로는 제 바지를 끌어내렸다. 욕조 바닥을 더듬어 축축해진 손가락을 미끄러뜨려 둔부에 감춰진 비부를 문지른다. 어려움 없이 찾은 구멍으로 푹 손가락 하나가 박혀 들었다.

제 손으로 제 밑을 넓히며 남자의 입술과 혀를 빠는 희완의 속눈썹이 들렸다. 아직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남자의 입술을 쪽쪽 빨다 고개를 늘어뜨려 그의 목덜미를 빨고 제 비부를 찌르던 손으로 꽉 조여 있는 그의 넥타이를 당기고 단추 서너 개를 차례차례 풀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다시 입술을 미끄러뜨린다.

축 늘어져 있던 남자의 것은 희완의 손에 주물러지는 사이 형태를 갖춰가고 있었다. 이대로 삽입을 해도 괜찮을 경도였지만 아직 희완의 구멍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입으로 빨기라도 할까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취하지 않는 남자가 희완을 조급하게 했다. 남자를 밀어 앉히고 그 위에 올라타는 희완의 허벅지가 넓게 벌어졌다. 이미 바지 한쪽이 벗겨져 허연 살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허벅지가 벌어지며 길게 늘어져 있는 셔츠 밑으로 음경의 실루엣이 엿보인다.

손을 뻗어 비누를 문지른 희완이 가득 묻어난 거품으로 항문 주위를 넓게 펴 발랐다. 그 손으로 점점 더 단단해져가는 승도의 음경을 두어 번 훑어 비누칠을 한 후 귀두를 입구에 맞춘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내리는데 들어가지 못하고 희완의 음낭을 치며 미끄러진다. 억눌린 신음이 새었다. 울음 같기도 하고 한탄 같기도 하고 설움 같기도 한 그 소리를 들은 승도가 그제야 반응을 보였다.

커다랗고 거칠한 손이 희완의 볼기를 잡고 양쪽으로 벌렸다. 몸을 추스르는 희완이 승도의 것을 잡아 세우고 귀두를 맞췄다. 푹- 주름이 꽉 맞물려있는 항문으로 귀두가 파고들며 주우욱- 늘어나는 삽입부로 아직 덜 자란 음경이 반도 못 되게 삼켜졌다.

눈가를 찡그리며 짧게 호흡을 하는 희완의 관자놀이를 타고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고개를 숙이느라 앞으로 쏟아진 머리칼이 흔들리며 희완의 초점도 같이 흔들렸다. 결국 호흡을 길게 내뱉으며 하반신에 힘을 빼는 희완이 엉덩이를 내렸다.

살이 찢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극극 입구와 내벽을 날카롭게 긁듯이 비좁은 곳을 뚫고 박아지는 음경은 뜨거운 불쏘시개 같기도 했고 못 담을 것을 기어이 담아낸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하염없이 일그러지는 희완의 얼굴을 응시하던 승도가 볼기를 벌리던 손으로 쏟아진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드러나는 얼굴은 엉망이었다. 땀으로 흥건한 이마와는 대조적으로 메마른 눈가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꾸역꾸역 뿌리까지 승도의 것을 삼켜낸 희완이 몸을 떨었다. 꽉 악물린 입술 틈으로 새어 나오는 건 성대를 긁어 나오는 것 같은 괴이한 신음뿐이었다. 젖은 이마가 승도의 어깨 위로 와 박혔다. 힘겹게 문질러졌다. 비좁은 구멍으로 억지로 구겨 넣은 성기가 엄청난 압박감에 비명을 지른다. 그럼에도 희완을 덜어 보내지 않는 승도가 머리칼을 넘긴 손가락으로 이지러져 있는 눈가를 문지른다. 고통에 절어지고 있었다. 밑이 축축한 것으로 보아 피가 묻어나는 것도 같다. 겨우 세우고 있는 무릎과 허벅지는 희게 질린 채 애처로울 만큼 떨리고 있었다.

승도의 팔이 굽어져 있는 희완의 허리를 감는다. 제 배에 바짝 붙이며 하체를 들썩이니 윽. 참아내지 못한 비명이 짧게 터졌다. 그러고도 벗어날 생각을 않는 희완이 두 팔로 승도의 등을 감았다. 바르르 떨리는 감각이 빈틈없이 맞닿은 살결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꼭 붙은 채로 움직이지 않는 희완의 숨이 어깨 너머로 쉼 없이 넘어간다. 입술을 깨물며 남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다.  

연결을 원하는 것이다. 떨어져 나갈 것 같으니 이렇게라도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삽입한 채로 희완을 꽉 끌어안아주는 승도의 입술이 떨어져나갈 것처럼 희게 질린 귓불을 크게 삼켰다. 차가운 것이 입안에 들어찬다. 열이 오를 때까지 빨아주는 승도의 등 뒤에 매달린 손가락마디가 굽어지며 보다 헐거워진 신음이 간헐적으로 새어진다. 사타구니 안쪽에서부터 돌아 나온 붉은 피가 흰 허벅지를 타고 주륵 흘렀다.    

사무실 소파에 넓게 다리를 벌리고 앉아 담배를 태우고 있는 성의준의 입가로 날카로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 맞은편에 서서 그런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철진의 인상이 절로 찌푸려진다. 한결 여유 있는 척 각을 잡고 있는 성의준의 의도를 덜덜덜 떨어대는 그 왼다리가 완벽하게 배반하고 있었다. 초조해할수록 인상이 더 싸늘해지고 신경질적이 되어가는 성의준의 불안감은 사실 현재 최고치였다. 담배꽁초를 눌러 끄는 손이 가만 떨린다. 그걸 매몰차게 걷어내는 성의준이 철진을 쏘아 보았다. 이동 중에 웃음을 그치지 않는 바람에 철진에게 한 대 갈겨진 왼쪽 뺨이 시퍼렇게 멍들어 있었다.

“어쩔 건데.”

“…….”

“날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 고작 그거 하나 건드렸다고?”

성의준이 쏘아 본 것은 철진이 아닌 기척도 없이 모습을 드러낸 승도였다. 뒤늦게 승도의 등장을 감지하고 돌아서는 철진이 고개를 숙인다. 어둑어둑 어둠이 내린 창틀에 기대선 승도는 등 뒤에서 쏟아지는 네온사인으로 괴이하게 뒤덮여 있었다.

“날 건드리는 즉시 그 영상은 인터넷에 쫙 깔리게 될 거다. 삭제?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계정에 올라가 있다고 생각하면 돼. 손끝 하나 건드려봐, 그 즉시 재밌는 꼴을 구경하게 될 테니까.”

그 협박에 인상을 구긴 건 철진이었다. 벌벌 떨면서 하는 말 치고는 제법 패악스러운 데가 있었으며 신경 쓰자면 한없이 신경 쓰이는 내용이기도 했다.

치익- 잠시간 흐른 정적 사이로 담배 끝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낮게 들리는 듯했다. 환청에 가까운 것이었다. 담뱃불을 붙인 승도가 깊이 빨아들인 연기를 길게 뱉어내며 성의준을 응시한다. 색이 전혀 없는 시선이었다.

“원하는 바가 무엇입니까.”

같은 말이다.

엉덩이가 벌어져 양키들이 갈겨 놓은 오줌을 줄줄 흘리고 있던 성의준에게 물을 때도 저랬었다. 원하는 바가 무엇이냐.

“영상 원본을 내놔. 복제본까지 모두.”

“그것뿐입니까.”

“네게 양도한 모든 권리를 내게 넘겨.”

“그리고.”

“네 명의로 되어 있는 것 또한 다 넘겨. 빠짐없이.”

“또.”

“그 늙은이들, 내가 온갖 오물이 들이부어지는 변기통이 되어 벌어지는 동안 내 것을 긁어모으며 배를 불리던 그 교활하고 돼지 같은 늙은이들.”

그러고도 아직도 내 그룹의 이사라고 간부라도 떵떵거리며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그 역겨운 고깃덩어리들.

“내가 원한 건 그것들 전부였어.”

섬뜩한 살기마저 내비치는 성의준의 눈을 말없이 마주하던 승도가 담뱃불을 꺼뜨린다.

“알겠습니다.”

철진의 시선이 그에게로 가 닿는다. 만류하고 싶었으나 외려 입을 꾹 닫는 철진이 인상을 더욱 구긴다. 그러는 동안 창틀에서 떨어져 나와 뚜벅뚜벅 걸어오는 승도가 그 앞에 섰다. 그리고 마지막 딜을 한다.

“하준우.”

성의준의 입매가 비틀리며 가벼운 웃음이 터졌다.

“하준우?”

그깟 잡놈도 못되는 쓰레기가 겨우 요구조건이라니. 가소롭고 기가 찰 따름이다.

“손 댈 가치도 없어서 내게 맡긴 거였잖아. 정말 중요했다면 내가 아닌 저 충직한 개새끼한테 맡겼겠지.”

“하준우.”

툭 뱉어지는 마지막 음성에 성의준의 표정이 싸늘해진다.

“왜, 그 새끼가 연희완을 건드린 게 그렇게 애틋하신가? 이제와 잡아 뭣하게. 그 걸레질 하는 영상과 하준우 육시를 세트로 안기기라도 하시게?”

번득이는 눈에 악의와 살기가 가득했다.

“명심하라고 백승도. 내게서 빼어갈 수 있는 건 그 좆걸레의 영상이 전부다. 더는 아무것도 못 빼어줘. 하준우? 쓸모도 없는 개씹이지만 너한테 주기엔 아깝지. 지금 당장, 내가 말한 걸 죄다 넘겨.”

발끈하려는 철진을 눈짓으로 만류한 승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자산에 관한 권리는 전문가 필요 없이 승도 본인이 관리하고 있었다. 달리 사람을 부를 필요가 없고 때문에 샐 구석 없이 보안이 철저하다. 승도가 거래의 성사를 확인해준 순간 벌떡 일어선 성의준이 테이블을 뛰어 넘어 철진에게 달려들었다. 주먹으로 그 얼굴을 갈겼고 구둣발로 배를 걷어차며 욕지거리를 뱉어내었다.

“씹새끼.”

그 끔찍한 지옥에서 성의준이 이를 갈았던 건 그의 구멍을 하수 처리장 취급하던 양키들이 아니라 버러지만도 못한 놈으로 경멸하던 철진 같은 놈들이었다. 네 번째 발차기에 바닥으로 나동그라진 철진을 발작적으로 밟아대는 성의준을 묵묵히 쳐다보던 승도가 시계를 내려다본다. 지금쯤이면 희완이 깨어날 법한 시간이었다. 새벽 5시였다.

산에 갔더니 강명 선생이 안 계셨다. 산사 스님께 여쭈니 말도 없이 훌쩍 떠났다 한다. 아마도 소리 수행 아니겠는가 하는 소리에 꾸벅 고개를 숙이고 마루에 앉아 멀리 보이는 능선을 한참 올려보다 풍경소리에 깨어 다시 산을 내려왔다.

버스에 올라타 빈좌석에 앉은 희완이 창밖을 보았다. 푸릇푸릇한 잎이 올라오기 시작한 논두렁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한적한 시골길이 길게 이어졌다. 육중한 버스가 덜컹거리며 오른쪽으로 휘 돌자 햇빛이 정면으로 비추어져 희완이 눈살을 찌푸린다. 한 손으로 눈을 덮고 그대로 고개를 숙인다.

병실 침대에 엎어져 남자에게 항문을 보인 채 치료를 받았다. 바로 옆 병실에서는 우진이 산소 호흡기를 달고 있었고, 학정이 허물어져 있는 동안 희완은 치부를 보이며 무기력하게 벌어져 있었다.

내내 눈을 감고 있었고 피가 멎고 연고를 다 바른 후 이불을 덮어준 남자가 병실을 나간 후 눈을 떴다. 창밖으로 새벽이 밝아오는 걸 보다 몸을 추슬러 일찍 병실을 나섰다. 우진의 병실을 찾아 조용히 밀어낸 문틈으로 우두커니 앉은 학정의 등을 쳐다보다 도로 병원을 나왔다. 인적이 드문 언덕길을 빠른 걸음을 내려오다 멈춰 서서 바닥을 뚫어져라 쏘아보고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지하철 역사로 기어들어갔다. 두 번 환승을 하고 버스로 갈아타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산을 오르는 동안도, 강명 선생을 기다리는 동안도, 또 극단으로 향해 하나 둘 밀려드는 단원들을 맞이하는 동안도, 희완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희완아.”

연습을 마치고 맨 마지막으로 극단을 나서던 희완을 붙잡은 건 경성이었다. 순간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것까지 막지는 못했다. 우진의 일을 알았는가 하여, 빠듯하게 메마른 눈으로 그를 돌아보던 희완이 미간을 좁혔다. 경성의 시선이 아래쪽을 향해 있었다.

“…아.”

돌아보니 청바지에 핏자국이 눌러 붙어 있었다. 청바지임에도 확연히 눈에 띌 정도였다. 정신없이 연습에 임하던 동안 상처가 또 벌어진 모양이다. 별 말 않는 경성이 사무실 캐비닛을 뒤져 남아 뒹구는 바지 하나를 꺼내 던져 주었다.

“학정이 놈은 며칠 산에 오른다니 없다고 찾지 말고, 조심히 들어가라.”

휘휘 돌아보지도 않고 손을 흔들며 앞장 서 극단을 나서는 경성을 보던 희완이 제 손에 쥐어진 낡은 청바지를 내려다보았다. 입술을 깨문다. 한참 그러고 있다 입고 있던 바지를 벗으니 팬티 뒤쪽이 붉게 젖어 있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팬티를 벗어 뭉쳐 놓은 것을 구석을 뒹굴던 검은 봉지에 담아 버리고 서랍에서 연고와 거즈를 꺼내 혼자 상처를 돌봤다. 비좁고 퀴퀴한 사무실에 혼자 다리를 벌리고 서서 거울에 찢어진 항문을 들이대고 연고를 바르는 꼴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었다.

피는 멎었지만 통증은 상당했다. 무리해 마구잡이로 밀어 넣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연고가 깨끗이 스밀 때까지 항문 주위를 문지르고 피가 묻어나오지 않는 것까지 확인한 희완이 바지를 꿰어 입었다. 사이즈가 좀 컸지만 못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젖은 청바지도 돌돌 말아 검은 봉지에 담아 묶은 희완이 사무실 불을 끄고 나왔다.  

버스 정류장에 서서 한참을 망설였다. 병원으로 가야할지 남자의 집으로 가야할지 판단을 내릴 수 없어 몇 대의 버스를 보낸 희완이 복작복작한 정류장을 벗어난 건 저녁 공연이 막이 내린 후 우르르 몰려나온 관객들이 몰려든 시각이었다.  

학정의 아파트로 가는 길은 익숙했고 구불구불했고 적막했다. 높은 난간을 넘어드는 스산한 바람이 목덜미를 스치는 순간 도어락을 해제한 희완이 아파트 안으로 들어섰다. 학정이 드나든 그 모습 그대로였다. 정도 되어 있지 않아 어수선한 아파트 내부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희완이 작은 방에서 큰 가방을 꺼내어 물건들을 챙겼다.

세면도구, 속옷, 수건, 갈아입을 옷가지, 병원에서 필요할 것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챙기던 희완이 불현듯 안방 내부를 돌아보았다. 깨끗했다. 학정이 쓰던 방 같지 않게, 학정이 드나들던 거실 같지 않게, 안방만큼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우진이 나간 후에도 손 한번 대지 않은 것처럼 그랬다.

가방 지퍼를 올리다 말고 방안 어딘가를 빤히 응시하던 희완은 성의준이 다녀간 후 엉망진창으로 으깨어져 있던 그 풍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피처럼 흩뿌려져 있던 장미꽃잎과 돌아서서 가쁜 숨을 힘겹게 토해내던 우진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고개를 젓는다. 달아나듯 묵직한 가방을 울러 메고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현관문을 여니 거센 바람이 정면으로 덮쳐왔다. 난간 너머로 넓게 펼쳐져 있는 도시의 불빛들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었다. 희완의 숨이 잠시 멎었다.

“점심에 잠깐 깨었다가 도로 잠들었다. 간간이 눈을 뜨긴 하는데 약 기운 때문인지 깨어 있는 시간이 얼마 없어.”

병실에 들어서니 학정은 망부석이라도 된 듯 같은 자리에 계속 앉아 있었다. 실제로 급한 용무 아니면 제대로 밥도 챙겨먹지 않은 듯 학정의 얼굴은 거칠었고 음색 또한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인상을 쓰는 학정을 올려보던 희완이 가방을 내려놓으며 우진을 돌아보았다.

새벽까지만 해도 얼굴을 덮고 있던 산소 호흡기가 떼어져 있었고 주렁주렁 달려 있던 링거액도 단 두 개로 줄어 있었다. 퉁퉁 부어 있는 얼굴과 오른쪽 옆면을 길게 덮고 있는 두꺼운 거즈 뭉치는 위중한 우진의 상세를 단면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회복하기 힘들 거라 했다. 너무 깊게 그어져서 꿰매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했다. 후에 성형을 한다 해도 그 흉터는 남을 것이라고. 환자가 배우 도우진이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의사는 경찰 신고를 한 번 권하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 통제가 되었는지는 몰라도, 우진의 병실은 처음부터 특실이었고, 찾아오는 기자 하나 없이 그 주변은 조용했다. 이렇게 목숨을 붙여 놓은 것도 토끼몰이의 한 과정이리라는 생각이다.

“…….”

저를 향한 시선에 학정을 돌아본 희완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다녀오세요. 씻고, 눈도 좀 붙이고 오구요.”

고작 이틀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학정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연습 도중 바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와 입고 있는 옷도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이었다. 제게서 나는 냄새를 킁킁 맡던 학정이 눈살을 찌푸린다. 그리곤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 그리 하겠다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던 희완이 가까이 다가가 구겨져 있는 옷깃을 펴주었다. 바람결에 뒤집어진 희완의 뒷머리를 내려다보던 학정 역시 손을 뻗어 그것을 정돈해 주었다.

“안 오는 줄 알았다.”

멈칫, 입술을 짓씹던 희완이 고개를 젓는다.

“와야 했습니다.”

알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러나 학정은 더 다그치지 않고 피곤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눈가를 문지르며 병실을 돌아 나왔다. 그러다 뒤를 돌아보는데 닫히는 문틈으로 침대에 누운 우진과 그 옆에 우두커니 선 희완의 뒷모습이 한데 잡혔다. 불현듯 둘만 두고 가기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곧 머릿속에서 지워버린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둘 다 불안하고 휘청스럽기만 한 녀석들이라 두고 보기가 힘든 것이다. 유난한 녀석들이라, 사는 것도 그리 쉬운 녀석들이 아니라 드는 노파임이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학정의 등이 암전 속 등불처럼 외떨어져 있는 것과 같았다.

“환자분께서 깨어나시면 재우시지 마시고 계속 말을 시키셔야 해요. 환자분을 말씀하기 힘드시니까 보호자분께서 계속 말을 거셔야 하는 거예요. 아직 물은 안 되고, 거즈를 적셔서 입술에 붙여주세요. 또 갑자기 통증을 호소하시면 호출하시구요.”

설명을 마친 간호사가 링거액을 살펴보곤 병실을 나갔다. 한 켠에 서서 간호사의 설명을 들으며 파랗게 부어오른 우진의 눈두덩과 꺼멓게 죽은 콧대를 내려다보던 희완이 시선을 더욱 내렸다. 서른 개의 동영상 중에서 가장 최근 것 중 한 장면이 떠올린다. 칼을 쥔 손이 그것을 우진에게 드밀었고, 동시에 이어지던 절규, 발악, 비명. 그런 것들.

목 아래가 차가워진다. 우진의 창백한 손등으로 죽죽 그어져 있는 생채기와 얼룩진 핏자국들을 내려다본다. 수술 후 한 번도 씻지 못한 우진의 몸은 여전히 그 흔적이 우물처럼 고여 있었다. 의자를 끌어다 그 옆에 앉는 희완의 눈이 깜박여지지 않았다. 까만 물이 든 손톱 중 두 개가 빠져나가 있었다. 마지막 동영상에서 끊이지 않던 우진의 비명이 뇌리를 관통한다. 희완이 남자와 관계를 맺으며 희락에 젖어 있는 동안 우진은 자근자근 으깨어지고 있었다. 학정에게 모진 말을 쏟아 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겨우 손에 쥔 티끌 같은 일상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달하는 동안 우진은 쓰레기처럼 버려졌다.

마른 핏자국이 선연하게 남은 손가락 마디마디를 굽어보던 희완이 덜컹,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방을 뒤져 수건을 찾아 들고 병실에 딸려 있는 욕실로 향하였다. 쏴아 쏟아지는 수돗물에 마른 수건을 적셔 꾸욱 짜냈다. 그것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마지막으로 꾹 짜낸 것을 들고 욕실을 나오니 우진을 눈을 뜨고 있었다.

“…….”

잘못 본 것이 아니라, 정말 우진이 눈을 뜨고 있었다.

멍하니 서있던 희완이 다급히 걸음을 옮긴 건 우진의 눈가가 찌푸리지는 걸 본 직후였다.

“형.”

“…….”

“형.”

부름에 반응하는 우진의 눈은 흐렸다. 아직 제대로 정신이 들지 않은 것이다. 초점이 흐린 그 눈을 들여다보니 의식이 없는 듯하였다. 덜컥 겁에 질린 희완이 우진의 손을 잡았다. 링거 바늘이 꽂히지 않은 손이었다. 느낌이 이상해 내려다보곤 할 말을 잃는다. 손등을 덮은 붕대가 떨어지며 드러난 것은 흰 뼈가 보이도록 도려내어진 살이었다. 신음을 삼키는 희완에게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일그러지는 얼굴을 간신히 다스리며 우진을 올려보니 도로 두 눈이 감겨있다. 숨을 참는다.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잠깐 눈을 떴었습니다.”

“그런 경우 있어요. 완전히 정신이 든 건 아니고요. 음, 아직 약이 다 되려면 시간이 있어야 해요. 그냥 관성적인 반응이라 생각하시면 되구요. 말씀 하실 수 있을 정도로 정신이 들면 다시 호출 주세요.”

“네, 고맙습니다.”

간호사가 나간 후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던 희완이 숨을 느리게 뱉어내며 겨우 의자에 앉았다. 손가락 마디로 피가 몰리도록 입술을 짓누르다 질끈 눈을 감았다 뜬다. 아무렇게나 내던져뒀던 젖은 수건을 쥐고 다시 욕실로 들어가 쏟아지는 물에 든 것을 헹궈냈다. 그리고 우진의 손을 계속 닦아주었다.  

“뭡니까.”

손에 쥔 것을 움켜쥐고 있던 희완이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남자였다. 찬 공기가 물씬 풍겨지는 그를 올려보던 희완이 손에 쥐었던 것을 서랍에 도로 넣으려는데 손목이 잡혀졌다. 그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펴지는 손에 든 것을 빼어간다. 통장이었다. 안을 펴본다. 희완의 이름으로 50억이 든 것이었다. 승도가 돌려준 사채 빚이었다.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액수였다. 그래서 희완은 처음에 그 통장을 보고 화대라고 생각했다.

“돈, 필요합니까.”

“…….”

필요했다. 남자가 짐작하는 것과는 다른 이유로 희완은 돈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고개를 젓는다. 아니, 다시 고개를 끄덕인다.

“치료비 걱정은 할 이유가 없습니다.”

“고맙, 습니다.”

흘러나오는 음성이 건조하다. 그 질감을 모를 리 없는 남자는 조용했다.

통장을 접어 제 손으로 서랍에 넣는 승도가 그 팔을 감아 희완을 당겨 안는다. 순순히 끌려오는 희완 스스로 입을 열었다. 키스를 하고 자연스레 서로의 옷을 벗긴다. 등골에 손이 닿을 때 흠칫, 몸을 움츠리긴 하였으나 희완은 스스럼없이 남자를 받았다. 삽입 없이 유사행위만으로도 충분히 절정에 달았다. 눈앞이 흐리고 열기가 팽창하였을 때 사정을 한 희완의 관자놀이로 뚝,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다. 위에서 거친 숨을 짧게 토해내며 느른히 사정을 하는 남자의 검어진 얼굴을 올려본다. 다섯의 남자에게 둘러싸여 짐승처럼 엎어져 있던 우진의 바르작거리던 손짓을 떠올린다. 결국 눈을 감고 말았다.

“안 들어오고 뭐해.”

학정의 채근에 멀거니 서 있던 희완이 곧 병실 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우진이 눈꺼풀을 들었다. 붓기가 제법 가라 앉아 있었으나 색은 더 꺼멓게 변해 있었고 항생제의 부작용으로 실핏줄이 터져 붉게 충혈 되어 있는 눈은 선명하였다.

“이제 슬슬 움직여줘야 한단다.”

학정의 말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희완이 그러시냐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다시 우진을 보지 못하고 물수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 협탁 등을 둘러보았다.

“그 버릇 어디 안 가지.”

“아- 그거 나름 정리해둔 거다.”

“몇 년째 같은 뻥을 치시는 겁니까.”

면박을 주던 우진이 이맛살을 찌푸린다. 턱뼈가 나가 있던 걸 맞춰 놓아 발음은 아직 부자연스러웠으나 깁스를 할 정도는 아니어서 말을 하는 데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그런 우진에게 얼음 팩을 건네주는 학정이 희완도 끌어다 자리에 앉혔다.

“그래 연습은 잘 돼 가냐.”

“네, 다음 달 첫 공 잡혔답니다.”

“무슨 배역 주더냐.”

“단역입니다.”

“장오 그 양반이 좀스러운 구석이 있다.”

“톡 까놓고 지 새끼들 두고 좋은 배역 줄 놈이 어딨냐, 단장도 말해보쇼. 얘랑 주여욱이랑 붙여 놓으면 누굴 뽑겠습니까?”

일말의 장고도 없이 희완이 이름을 들먹이는 학정을 비웃던 우진이 이번엔 왈칵 얼굴을 구긴다. 주저앉았던 코를 세우느라 붙여 놓은 반창고에 눌린 뺨이 이상하게 이지러졌다. 욕지기가 나올듯한 얼굴로 확 인상을 쓰던 우진의 목덜미를 감싸 베개에 도로 누여주는 학정이 많이 아프냐고 묻는다. 대답은 않고 인상만 작게 욕지거리만 뱉는 우진의 앙상한 손가락 마디를 쳐다본다. 손톱이 빠진 자리는 여전히 살갗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얼마간 시간이 흐르니 통증이 가라앉은 건지 후 한숨을 내쉬는 우진이 목이 마르다 한다.

“드셔도 됩니까.”

“어, 이젠 최대한 많이 마시라더,”

“와 봤어야 알지.”

툭 내던진 말에 분위기가 경직되었다.

“하긴, 이 꼴 보러 오려면 비위가 좀 강하긴 해야 할 거다. 연희완이 마음 약한 건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야.”

“도우진.”

“뭐라 하는 거 아닙니다. 그래도 연락 듣자마자 달려와 줬다니, 그런 미련한 인간들이 둘씩이나 있다니, 인생 헛산 건 아닌 것 같다는, 씹.”

입가로 주룩 흐르는 핏물을 본 학정이 손을 뻗어 능숙하게 피를 받아 주었다.

“말 그만해라.”

종이컵으로 쉴 새 없이 뚝뚝 떨어지는 붉은 피를 보던 희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희완이 가서 물 좀 적셔와.”

“네…, 네.”

엉거주춤 일어난 희완이 협탁에 늘어져 있던 수건을 잡아채고 서둘러 욕실로 향하였다.

수건을 헹구는 동안 밖에서 학정이 무어라 잔소리를 하는 게 들려왔다. 대체로 조심성 없이 말을 계속 내뱉는 것에 대한 내용이었다. 말문 튼 지 이제 겨우 이틀인 놈이,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아 주절주절, 됐으니까 계속 흐르게 놔두라며 우진의 턱을 받쳐주는 학정의 등을 보던 희완이 걸음을 옮겼다.

일주일 만에 찾아온 병실이었다. 이틀 동안 남자와 있었고 그 후엔 극단과 남자의 아파트를 계속 오갔다. 중간에 산사에 한 번 오르긴 하였으나 강명 선생은 여전히 부재중이었고 희완은 그 풍경 소리가 듣기 싫어 도망치듯이 그 산사를 빠져나왔었다. 아직도 몸에는 남자가 남긴 흔적들로 말도 못할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은 헐렁한 환자복 사이로 선명히 비치는 우진의 흔적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들이었다. 남자에게 안기며 더한 걸 원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받쳐지고서도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처럼 매달렸다. 사흘 째 경성에게 연락이 와서 극단으로 향했다. 이틀의 무단이탈로 원래 배정 받았던 조연에서 밀려 단역을 맡게 된 것이다.

손을 내미는 학정에게 수건을 내민 희완의 시선이 우진의 빠진 손톱에 고정되어 있었다.

“왜, 아파 보이냐.”

목소리가 들려 시선을 드니 우진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입 다물어라.”

한마디 찍어 누르는 학정이 피가 멎어 종이컵을 치우며 수건으로 입가와 목덜미를 닦아주었다.

“놀라 거 없다. 수술 한 거 아무느라 쏟아지는 거다. 입 좀 닫고 있으면 더 수월할 것을.”

낮게 혀를 차는 학정이 빨갛게 물든 수건을 들고 걸터앉았던 침대에서 내려선다.

“빨래 돌리고 올 테니, 놀고 있어. 우진이 말 좀 못하게 하고.”

“네, 알겠습니다.”

당부를 하는 학정에게 코웃음을 치는 우진이 등 밑에 고여 놓은 털썩 베개에 몸을 기댄다.

문이 닫히고 둘만 남은 공간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 겨우 의자에 앉는 희완의 시선이 조금 헤매어졌다. 부어서 눈두덩이 내려앉은 눈에도,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코에도, 길게 칼집이 난 귀 옆으로도 시선을 둘 데가 없었다. 그럼에도 다른 곳으로는 눈을 돌리지 않는 희완의 흔들림을 본 우진이 비죽 웃었다.

“보기 흉하지?”

“아닙니다.”

“잘 됐다. 이제 그 바닥에 미련 따위 안 져도 되고.”

그러나 희완은 그 영상에서 죽을 듯이 비명을 지르던 우진을 기억했다. 매일 밤, 매 순간, 희완의 머리를 꽉 채우고 있는 소리였다. 저를 덮어오는 남자가 우진을 발라내던 짐승들로 보였고, 연습 중에 나오는 고함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우진의 절규를 들었다. 대수롭잖게 말하는 우진이 마른침을 삼킨다.

“언제 가냐.”

“…….”

“얼굴만 보러 온 것 같은데, 피곤할 텐데 학정 오면 가라.”

내용에 비해 퉁명스런 음색은 아니었으나 희완은 정곡을 찔린 마냥 아무 말도 못했다. 사실 무거운 걸음을 억지로 끌고 온 것이기도 했다. 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고, 우진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그러다 그렇게 느끼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자각하며 채찍질을 하듯 자신을 다그쳤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찾아오기가 어려웠다. 남자의 품에서 빠져나오기 싫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남자의 밑에서 다리를 벌리고 있을 때가 제일 편했다. 거칠게 몰아붙일 때에는 정말 원하던 것처럼 아무런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오로지 고통에 가까운 쾌락에만 매달리며 모든 걸 잊을 수 있었다. 물론, 그 짧은 한 순간 만이었다. 그 순간이 끝나면 되돌아오는 것은 더한 공포증과 혐오증이었다.

“자고,”

“…….”

“자고 갈 생각으로 왔습니다.”

“너까지 비빌 자리 없다.”

“학정 선배도 쉬셔야,”

“그놈의 학정, 학정.”

“……형.”

“멋대로 해.”

하며 눈을 감는 우진의 목울대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목옆으로도 꿰맨 자국이 선연했다. 희완은 그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학정이 돌아올 때까지 그 상처를 응시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경성의 성화에 내일쯤 학정에 들를 생각이었다던 학정은 흔쾌히 귀가를 하마 했다. 그 속내야, 밤을 같이 보내는 동안 병실에 뜸했던 희완에 대한 우진의 서운함도 털고 우진에 대한 희완의 걱정도 털고 잘 해보라는 뜻으로 그런 것이었겠지만 우진은 시큰둥했고, 희완은 조용히 말이 없었다. 배웅 나오겠다는 희완을 안에 밀어 넣고 병실을 나서는 학정이 피곤한 듯 목을 돌리며 짧게 기침을 했다. 모퉁이 너머로 돌아서는 걸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돌아서니 우진이 티브이 리모컨을 돌리고 있었다. 음악 방송에서 멈췄던 채널이 영화, 드라마, 애니, 다큐, 뉴스 순으로 돌아가더니 곧 정규 방송의 시사 채널에서 고정되어졌다. 그 후로 말이 없었다. 희완 역시 그 옆에 앉아 어눌하게 들려오는 피디 출신 아나운서의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 음성이 뚝 끊겼다. 동시에 리모컨을 툭 내던지는 우진의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는 게 곤욕이지.”

“…….”

답을 못하는 희완을 빤히 보던 우진이 가볍게 웃으며 드러누우며 눈을 감는다. 한참 쌕쌕거리던 숨이 점차 고르게 바뀌는 걸 듣고서야 가만히 상체를 숙이는 희완이 심하게 망가진 우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숨이 턱 막히는 것 같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 스스로를 원망하는 것도 남자를 원망하는 것도 안 된다. 그렇다면 그건 성의준의 뱉은 독들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우진을 원망하겠는가, 우진을 이렇게 만든 짐승들을 원망하겠는가. 원망해도 어찌 못할 것들이었다. 할 수 있다한들 어찌해야 이 가슴에 서린 것들이 풀릴지 가늠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니 차라리 생각하지 않는 것이 낫다. 잊는 것이 낫다. 헌데, 우진을 보는 것은, 그 자체를 직면하는 것과 같았다. 상해 입은 당사자를 두고도 희완은 스스로의 상처를 먼저 살피고 겁에 질려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였다. 그 모든 걸 자각하고서도 그랬다. 생각하지 않는다. 잊는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진의 비명에 눈을 떴다. 왈칵 핏물을 뱉어내는 우진을 보고만 있던 희완이 다시 한 번 게워지는 핏물을 보고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형.”

의자에서 벌떡 일어난 희완이 급하게 서랍을 뒤졌다. 수건을 꺼내 우진의 턱을 받쳐주고 침대 상단을 더듬어 호출기를 누르는 그 손이 떨리고 있었다.

“쿨럭. 괘, 괜찮아.”

“…….”

그러나 이미 수건은 쏟아진 것으로 흥건하였다. 불이 환하게 밝혀지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희완의 자리를 차지한 간호사가 우진의 이름을 부르며 먼저 상태확인을 한다. 호흡과 통증, 그리고 열과 자상들을 살피는 동안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 했던 희완이 탁 뒤꿈치로 바닥을 쳤다. 손으로 가린 입에서 신음이 샐 것 같다. 백지장이 되어 서 있는 희완에게로 대수롭지 않은 표정의 간호사가 다가왔다.

“악몽을 꿨다는군요. 갑자기 크게 비명을 지르면 이번처럼 왈칵 넘어오는 경우가 있어요. 아시다시피 코하고 턱 그리고 얼굴 옆 자상 중 하단은 기관지와 거의 밀접해 있어서 회복 중에는 피가 넘어오기도 할 거구요. 잘 하셨어요. 다음에도 혹시 이런 일이 있으시면 당황하지 마시고 호출해주세요.”

“그게 답니까.”

“네?”

“그러니까, 저렇게 피를 쏟는데, 그게 당연한 거라고요?”

“아, 네. 의사 선생님께 설명 안 들으셨구나. 전에 계시던 보호자분께서 잘 알고 계세요. 말 너무 많이 하게 하지 마시고, 미지근한 물을 조금씩 자주 마시게 하시고, 또.”

무어라 무어라 기본적인 매뉴얼만 읊어주는 간호사의 피로로 허옇게 뜬 얼굴을 내려다보던 희완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괜한 화풀이였다. 이제껏 제대로 한 번 찾아오지도 않고 외면만 한 주제에 괜한 시비였다. 인정하는 희완이 정중히 간호사를 내보낸 뒤 병실 문을 닫았다. 기진맥진해 축 늘어져 있는 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그새 잠이 든 건지 거친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려왔다. 회복이야 하겠지만…. 하며 말꼬리를 늘이던 의사의 안경 너머의 눈빛을 기억한다. 꼴이 좋지 않았다. 윤간, 하다못해 우진이 일반인이었다면 이런 꼴을 당하고도 온전한 동정을 받았을 것이었다. 질 나쁜 스폰서에게 맞아 입원하는 스타들은 별처럼 많았다. 그 중 우진이 특히 심하게 당한 축이었지만 이런 일이 드문 것도 아니다. 쉬쉬하면서도 우진에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내부 관계자들의 수근 대는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것 같았다. 편견이란 것은, 사실관계와는 상관없이, 이리 처참하게 당해지고서도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다.

핏자국이 남아있는 우진의 턱 주변을 응시하던 희완이 무심코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피로 젖어 있었고 셔츠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용히 가방을 열어 학정의 여분 옷으로 가져왔던 티를 꺼내 들고 욕실로 향하였다. 훌렁 웃옷을 벗으니 남자의 흔적으로 빈곳을 찾아볼 수 없는 상체가 훤히 드러난다. 그것엔 눈길도 주지 않는 희완이 벗은 옷을 적셔 제 배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그리고 핏물이 빠질 때까지 흐르는 물에 티를 담가 놓고 새것으로 갈아입었다. 학정의 것이라 크기는 하였으나 크게 지장은 없었다. 세면대에 담가 놓았던 것을 가만히 내버려두다 곧 두 손으로 꾹꾹 짜내며 핏물을 빼낸다. 내일 학정이 오면 간호사에게 따로 이야기를 듣겠지만 실제 쏟아낸 피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과는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다를 것이다.

손이 빨갛게 변하도록 제 티를 북북 문지르던 희완이 문득 떠오른 생각에 아직 물이 빠지지도 않은 것을 꾹 짜냈다. 욕실에서 나와 곤히 잠들어 있는 우진을 확인하고 병실을 나왔다. 희미하게 불을 밝힌 복도는 적막하여 희완이 걸음 소리가 크게 울렸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환히 밝혀진 데스크에서 간호사 셋이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거나 전화를 하는 등으로 늦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복도 맞은편에서 탕비실을 보았다. 그리로 들어서니 커다란 바구니에 쓰레기 분류를 해놓은 것이 보였다. 그 중 마지막 바구니에 젖은 옷을 던져 넣고 다시 병실로 되돌아간다. 살갗이 젖을 정도로 흥건하여 물만으로는 핏물을 빼기가 어려웠다. 아니, 그 핏물이 든 것을 더 손으로 만질 수가 없었다.

차갑게 식은 손으로 입가를 꾹 누르던 희완이 병실 문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섰다. 시선을 들었고 막 창문으로 넘어가려는 우진의 뒷모습을 보았다.

“…….”

멍하니 서 있던 희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간 건 활짝 열린 창문 너머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으로 우진의 옷깃이 휘날리는 걸 본 뒤였다. 거의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우진의 허리에 두 팔이 감기며 밑으로 쑥 꺼졌다. 불분명한 비명이 우진에게서 질러졌다. 안 된다고 거의 몸부림을 치듯 발악을 하는 우진을 붙든 팔을 놓지 않고 그 등에 가슴을 붙이는 희완이 그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울음이 터져 나왔다. 차라리 오열이었다. 한스러운 그 울림에 가까스로 메어지는 우진 역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흐느끼는 우진의 등 뒤로 아이처럼 목 놓아 우는 희완의 울음이 흠뻑 젖어 들어갔다.

아니야, 형.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바닥을 긁으며 서럽게 휘청휘청 하는 우진을 놓칠 새라 그 허리를 꽉 끌어안는 희완은 좀처럼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아니 점점 더 그 설움과 한은 둑 터진 것처럼 밀려들어와 그들을 휩쓸었다. 달아날 곳이 없었다. 서 있을 곳이 없었다. 숨 쉴 곳이 없었다. 살아있을 수가 없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안으로 뛰어든 희완이 제 방이라고 알려준 그곳으로 뛰어 들어가 벌컥 서랍을 열었다. 오래 뒤지지 않아도 안에 던져 넣었던 것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장에 넣어두었던 가방에서 신분증을 꺼내어 통장과 함께 손에 꽉 쥐고 그 넓은 아파트를 빠져나오면서 희완은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희완이 귀가 하지 않은 아파트에는 누구의 기척도 없었고, 남자의 흔적 역시 없었으나 희완은 정말 단 순간도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그 황량한 공간을 빠져나오면서도 남자를 떠올리지 않았다. 달아나야 했다. 하지 못했던 것. 누이와는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우진과 함께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숨이 차도록 병원 로비를 가로질러 비상계단을 뛰어오르는 희완이 복도를 돌아 병실 문을 벌컥 열었다. 수면제 처방을 받고 깊이 잠들어 있는 우진의 모습이 보였다.

형….

턱까지 차오른 숨을 급하게 뱉어내며 터벅터벅 침대로 다가서는 희완이 허물어지듯 그 옆에 앉았다.

형…….

턱 밑으로 줄줄 흐르는 땀과 눈물을 몇 번이고 닦아내며 흐느끼던 희완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

덜컹 의자가 넘어지며 불쑥 솟아오르는 희완의 상체로 검은 손이 뻗어 온다. 도망가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그 손에 붙잡힌 희완의 숨이 멎었다. 동시에 어둠 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의 검은 얼굴이 희완의 눈으로 가득 쏟아졌다.

“…….”

팔뚝을 잡고 있던 손이 미끄러져 통장을 쥔 손을 붙든다. 세게 힘을 주니 벌어지는 손에서 툭 통장과 신분증이 떨어졌다. 그걸 본 남자가 천천히 허리를 굽혀 떨어진 것을 주워들었다. 펼쳐 보지 않았도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음에도 굳이 그것을 펼쳐보는 남자가 희완을 본다. 그리고, 물었다.

“어딜, 갈 겁니까.”

평소와 같은 음색이었다. 그러나 희완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다. 남자는 지금도 역시 참아주고 있는 것이었다.

왜, 왜? 왜!

“갈 겁니다.”

“어딜.”

“어디든.”

남자를 덮고 있는 어둔 기운이 단숨에 부피를 키워가며 희완을 덮어온다.      

“내가 보내줍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왜.”

음산하기까지 한 그 음성에 바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며 동공을 팽창시키던 희완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뭘.”

“남자한테 다리 벌리고, 구멍에 좆 물고, 수캐도 아닌 암캐처럼 흔들어대는 짓, 그만하고 싶습니다.”

싸늘하게 식은 희완의 눈이 남자에게로 향한다.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입니까? 그래, 그동안 사람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못할 짓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싫다고. 하기 싫다고. 나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다고.”

“그게 화대 들고 튀는 이윱니까.”

“…….”

성큼 다가오는 남자와 상체가 맞붙으며 팔목이 꺾일 것처럼 쥐어졌다.

“화대라고 생각해서 구석에 처박아 두고 거들떠도 안 본 거 아닙니까. 사람답게 살고 싶다면서, 그 치 떨리게 경멸스러워하던 돈으로 도망갈 궁리를 해.”

가까이 붙은 눈으로 남자의 어둔 심해가 펼쳐졌다. 그걸 최초로 감지하는 희완이 파득 몸을 떨었다.

“내가 보내주는 대로 며칠 다녀와. 몇 주든 몇 달이든, 내가 보내주는 곳으로.”

후드득 떨며 입술을 깨무는 희완이 고개를 젓는다. 제 팔뚝을 붙잡은 손을 매몰차게 뿌리쳐보려하지만 좀처럼 떨쳐지지 않는 악력이었다.

“놔줘요.”

“그러겠다고 해.”

“싫습니다.”

“그럼.”

“싫어. 어디든 당신하고 상관없는 곳으로 가고 싶어. 쫓아오지 마. 붙잡지 마. 끌어내리지 마. 왜 항상, 왜 항상!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다신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그럴 수 없어. 그럴 수 없어요. 그러니까,”

“입 닫어.”

“부탁입니다.”

“입,”

“제발, 보내주세요.”

“닥쳐.”

팔뚝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는 남자가 그대로 희완을 끌고 나가려했다. 버티는 희완의 몸이 왈칵 딸려나가며 남자의 등에 부딪쳤다. 툭 튀어나온 벽을 붙잡는 희완이 소리쳤다.

“제발!”

아랑곳 않고 희완을 끌어내는 남자의 팔로 주먹이 쏟아졌다.

“놔요! 놔! 안 가! 안 간다고 했잖아! 싫어, 싫어, 싫어!”

“연희완.”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희완을 돌아보는 남자의 팔을 있는 힘껏 뿌리친 희완이 화드득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구명줄이라도 되는 양 창틀을 꽉 붙잡았다.

“이제 지긋지긋해.”

한 발 다가서는 남자에 의해 희완의 몸이 창과 더욱 바짝 붙었다. 창틀을 붙잡고 있던 손 하나가 뒤로 돌아가 굳게 닫혀 있는 창을 열려는 것을 본 승도의 눈이 차게 번뜩였다.

“거기로 뛰어내리기라도 할 셈인가.”

“이대로 짐승처럼 질질 끌려가는 것보단 낫습니다.”

“짐승?”

“짐승만도 못합니다. 그것들도 비역질은 안합니다. 최소한 돈 받아가며 사내새끼 좆 물겠다고 똥구멍을 벌름거리진 않는단 말입니다.”

“그래서, 거기서 뛰겠다고.”

부들부들 떨면서도 창문을 잡은 손을 떼어내지 않는 희완을 무섭게 노려보던 승도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우진의 목덜미를 쥐로 꺾으려는 것을 본 희완이 그대로 창틀에서 떨어져 승도에게로 달려들었다.

“안 돼!!!”

철썩, 제 팔에 매달리는 희완의 뺨을 가볍게 쳐 정신을 차리게 한 승도가 제 말을 똑바로 듣게 만들었다.

“그래서. 어쩌겠다고?”

“…….”

두 눈을 크게 뜨는 희완의 눈동자 주변으로 메마른 습기가 번졌다. 이윽고 서서히 일그러지는 얼굴이 참혹했다.

“죽을 겁니다. 우진이 형이든 학정이 형이든 손가락 하나라도 대면, 콱 죽어버릴 겁니다.”

“고작 몸이나 파는 주제에 뭐.”

“고작 몸이나 파는 놈한테 이럴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게 내 몸이 좋습니까. 그렇게 박아 놓고서도 내 구멍이 질리지도 않아, 이렇게까지 내 목을 죄는 겁니까. 사랑?”

희완의 얼굴 만면으로 허망한 웃음이 번진다.

“날 원하는 당신의 마음은 검은 마음입니다. 내 몸만이 아닌 내 모든 것을 원한다는 당신의 마음은 가증스럽고 역겨울 정도로 추악한 마음입니다! 그렇게 짓밟아 놓고서, 그렇게 내가 통째로 씹혀져 가는 걸 방관만 해 놓고서, 완전히 으스러져 허물어져 가는 날 고작 이거 하나 쥐어 보내놓고서, 사랑? 맞습니다. 당신은 내게 사랑이란 말도 안 했습니다. 좋습니다. 나도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이 박아주는 그 좆 맛이 끝내주고, 당신이 먹여주는 그 좆물은 산해진미가 따로 없고, 무엇보다 당신이 안겨준 그 돈 맛이 가장 달콤하고 환상적입니다. 나도 당신이 좋습니다. 가랑이가 찢어질 때까지 붙어먹으려고 했습니다. 그거 말고 당신이 좋을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모든 걸 원한다는 내가 진창을 뒹굴 때도 두 손 놓고 있었던 당신이, 피붙이가 매달려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던 당신이! 좋을 이유가. 내가 당신을 좋아할 이유가! 왜! 왜!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놔 둔 겁니까! 이렇게까지 망가질 걸 알고 있었으면서! 당신은 알고 있었잖아! 내가 싫다 할 땐 이 더러운 돈을 덥석 덥석 안겨 주고 원하지도 않는 것들을 안겨주면서 왜! 그런 괴물이 내 곁을 맴돌게 놔뒀어! 그런 짐승이 물어뜯게 놔뒀어! 언제부터 그렇게 내 말에 귀를 기울여서! 당신의 그 마음은 사랑 따위가 아니야. 가당치도 않지. 그건 고작 소유욕이고 집착이고 추악한 욕망일 뿐이라고!”

완전히 이성을 잃어가는 희완을 응시하던 남자가 그 팔을 잡았다.

“놔!!”

“연희완!”

“그렇게 부르지 마!”

두 손으로 귀를 막으며 소리를 지르는 희완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그리고 남자를 노려보며 무섭게 쏘아붙였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단 한 번도 진심이었던 적이 없어! 단 한 번도!! 날 가질 거면 몸뚱이만 가져! 날 원한다면 이 빌어먹을 몸뚱이나 끌어안고 그 가증스런 거짓들을 퍼부어대란 말이야!! 천 번이고 만 번이고 벌려줄 수 있어! 갈기갈기 찢어서 개새끼들한테 물려야 한다면 기꺼이 그럴 수 있어! 이걸 달라고는 하지 마!”

퍽! 피멍이 들도록 제 가슴을 치는 희완의 관자놀이로 차가운 눈물이 주룩 흘렀다.

“이딴 게 뭔지도 모르면서, 욕심 내지 마. 내가 찢어발길 거야. 당신이 꺼내어 가기 전에 내가 갈기갈기 찢어서 개새끼들한테 물려줄 거라고! 짐승새끼도 이렇게는 안 해! 하다못해 똥구덩이 속을 기는 버러지도! 끔찍해, 당신의 사랑 타령 따윌 듣느니 차라리 개새끼 앞에서 똥구멍을 벌리겠어! 개 짖는 소리가 적어도 당신의 그 메스꺼운 지껄임보다는 나을 테니까!”

악에 바쳐 소리치던 희완의 멱살이 잡히며 몸이 바짝 세워졌다. 다른 손으로는 희완의 입술을 덮어 누르는 남자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그렇게도 개새끼와 붙어먹고 싶습니까. 그렇게도, 벌어진 음부 취급 받는 게 간절해서. 좋습니다. 이걸 가질 수 없다면, 바라는 대로. 이 몸뚱이를 갖겠습니다. 이 몸뚱이 밖에 줄 수 있는 게 없다면, 바라는 대로 싸구려 좆통 취급해주겠습니다. 다리 벌리고 엎드려.”

희완의 멱살을 쥐었던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듯이 문지르다 가볍게 툭 밀어내는 승도가 차갑게 말을 뱉었다. 부릅뜬 눈으로 부들부들 떨어대기만 하는 희완을 무심히 훑는 시선이 싸늘했다.

“맞습니다. 원래 하도급 좆통은 사람 말귀 따윈 알아듣지 못합니다.”

하며 희완의 팔을 당겨 세워 상체를 밀어뜨리곤 협탁에 바짝 엎드리게 했다.

“잘 교육받은 좆통은 이깟 천 따윈 몸에 두르지도 않습니다.”

바지와 팬티를 한 번에 당겨 쑥 끌어내리려는데 눈에 띄게 떨던 희완이 꽉 바지춤을 붙들었다. 그걸 가만 쳐다보던 승도가 입을 열었다.

“개새끼와 붙어먹는 것도 마다 않겠다던 주제에. 산송장 하나 옆에 있다고 가리는 겁니까.”

“맘껏 쑤셔도 상관 안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립니다만.”

“질릴 때까지 박아대는 건 당신 마음입니다. 다신 날 붙잡지 마십시오. 실컷 굴릴 대로 굴려 내가 질리면 다른 곳에 팔아넘기는 대신 날 놓아주십시오. 그러면 ,광장 한복판에서도 기꺼이 옷을 벗고, 밑을 벌리겠습니다.”

온몸을 벌벌 떨면서도, 이를 악물고 모질게 말하는 희완의 메마른 등을 쏘아보듯 내려다보던 승도의 눈으로 스산한 빛이 스쳤다. 바란다면. 기꺼이.

희완의 뒷덜미를 잡아 바로 세운 승도가 그대로 병실 밖으로 끌고 나갔다. 복도를 지나 맞은편 병실로 향하는 동안 한마디 말을 않던 그가 빈 병실 속으로 희완을 밀어 넣으며 등 뒤로 문을 닫았다.

“어디, 얼마나 훌륭한 좆통인지 열어나 봅시다.”

매고 있던 넥타이를 툭툭 당겨 푸는 남자의 건장한 육체가 벌어지는 셔츠 사이로 완곡히 드러났다. 때때로 서슴없이 맹수로 돌변하기도 하는 거친 것이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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