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26화 (26/123)

별이 머무는 계절 (Just Smile)

물이 다 식을 때까지 희완을 품에 안고 추운 가슴을 여며주던 승도가 가볍게 재채기를 하는 것을 욕조에서 끌어내었다. 딱히 거부도 동의도 않는 희완의 몸을 닦아주고 옷을 입혀주고 침대에 눕히니 얼마지 않아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폼 잡고 보내줘 놓고 몇 달을 그 근처에서 서성였다. 병실에 우두커니 앉아 하릴 없이 시간을 보내던 희완을 지켜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일같이 제 집 드나들듯 병원을 드나들던 김학정이 아니었다면 승도는 그 때 희완을 도로 낚아채어 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행복 하라 보내준 것이 아니다. 말 한마디에 모든 걸 잊고 전처럼 살 것이라는 희망을 걸 정도로 순진하거나 낙관적이지도 않다. 한번 흠집이 난 것은 깨끗이 복구시켜도 그 흠이란 것이 남는다. 언제 균열이 생겨 산산조각이 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것을 제 곁에 둔다면 그마저도 낫지 않을 것을 알았다.

처음과 끝을 같이했다. 희완이 머물렀던 그 지옥의 처음에서 승도는 흥미를 대신했고 그 지옥의 중간에서 그 주변에 바글바글하던 발정 난 돼지들처럼 그를 탐하였으며 그 지옥의 끝에서야 겨우 망가진 것을 건져주었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그 지옥을 떠올릴 것이다. 살갗이 닿을 때마다 소스라치며 그 시커먼 구덩이에 끌려들어가는 환각에 시달릴 것이다. 너를 내 곁에 둔다면 너는 결코 다시는 그 구덩이에서 빠져나와 홀로 설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너를 삼킨 지옥 그 자체다.

과거를 뒤적일 때마다 반복되는 과오에 승도는 검은 운무처럼 퍼져나가는 악기를 지켜봐야만 했다.

스물의 희완이 스쳤고, 비슷한 나이에 돼지들의 노리개가 되어 짐승이 된 누이가 스쳤다.

같이 끌려들어갈 수 없다. 네가 나의 발목을 잡는다면 나는 너를 없는 듯이 취급하겠다. 살려 달라 애걸하는 누이를 매몰차게 내치면서 단 한 번의 후회도 하지 않았다. 그 누이의 주검이 악몽으로 되돌아와서, 산 채로 난도질이 되어 제대로 남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검시의의 말을 들으면서, 저 살자고 동생을 죽인 살인귀라며 달려드는 부모에게 살이 뜯기면서, 승도는 발밑에 스미는 검은 악기를 보았다. 누이의 시신을 수습하고, 모친의 시신을 수습하고, 부친의 시신을 수습하며, 그는 발밑에 고인 악기가 제 몸 전체를 삼킨 것을 절감했다. 어차피 들어올 수렁이었다면 누이의 주검을 끌어안기 전에 들어왔을 것이 나았으리라. 그런 생각이 부질없다는 것을 안다.

한 줌 누이의 단자를 끌어안고 바닥을 기며 통곡을 하는 희완을 안아 올리며 스물의 그를 떠올렸다.

승도가 매몰차게 내쳤던 그 손을 뿌리치지 못해 함께 그 절곡으로 질질 끌려가던 스무 살 청년의 절박한 몸짓을 그려내었다. 업소에서 눈을 마주한 그 날 그대로 끌고 와 품었다면 적어도 푸줏간 돼지 꼴은 면했으리라. 그러나 그것 역시 자신할 수 없다. 당시의 승도는 보다 더 비이성적이었고 비인간적이었으며 자기 파괴적인 분노에 전신을 내맡기고 있었다.

차갑게 식은 내면의 저 깊은 골짝에선 그리 피를 쏟아 붓고서도 해소되지 못한 야만적인 갈증이 심심찮게 발작을 일으키고 있었다. 거의 짐승에 가까웠고, 쓰고 있는 탈이 벗겨지면 그 짐승이 튀어나와 살아있는 것들의 목을 물어뜯었다. 간신히 가라앉아가던 격랑에 던져진 돌멩이였다. 해사한 얼굴에 사로잡힌 내면은 더할 수 없이 추잡하고 잔악하고 지독했다. 무대 위의 배우를 끌어다 몇 번이고 부수고 으스러뜨려 갈가리 분해하여 삼키고픈 욕망과 그래선 안 된다는 일말의 이성이 충돌하며 비산하길 반복했다. 내 것이라 명명할 무엇을 없다고 생각하며 손에 닿는 모든 것을 단번에, 아무 거리낌 없이 소진하며 살아왔다. 스물의 그도 가볍게 먹어 치웠을 것이다. 그러고도 눈 하나 깜짝 않는 비열한 말종이 백승도였다.

연고를 묻힌 손끝이 닿자 찡그려지는 눈가를 혀로 핥았다. 하던 걸 집어치우고 남은 걸 모조리 빨아주고픈 욕구를 누르는 승도의 얼굴로 미세한 균열이 생긴다.

“주변 정리를 좀 합시다.”

보내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이 바닥에 들여 놓았다는 흔적을 모두 없애고 원래 속한 곳으로 돌아갈 수 있게 공들여 길을 닦아 놓았다. 일어서야 한다면 그 혼자 해야 할 일이었고, 굳이 남의 손을 빌려야한다면 그건 제 역할이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그 곁에는 그가 돌아오길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바란다면 기꺼이 손을 내밀어줄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승도에게 주어진 역할이 아니었다.

절곡에서 헤매던 희완을 다시 주워들었을 때, 승도는 제 안에 꿈틀대는 짐승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가라 했다. 나는 분명 뒤도 돌아보지 말고 이곳에서 빠져나가라 했다. 너를 보내주었다.

이성이 자취를 감추어가는 걸 방관했다. 그를 잊지 못해 그 주변을 서성거려 놓고,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누이마저 잃고 절절 끓는 마음을 가누지 못해 헤매던 희완을 낚아채며 그리 자기 합리화를 시켰다. 끌어안으니 울며 매달리는 몸짓에서 사무치는 한기가 스몄다. 속에서 타오르는 열을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몸부림치고 신음하는 것을 끌어안고 차게 식은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저항 없이 빨아올려지는 살덩이가 달았다. 괴로워 삭아가는 희완을 끌어안고 승도는 기뻐 날뛰는 본능을 틀어 쥔 고삐를 놓았다.

젖은 몸에 엉겨 붙은 옷가지를 벗겨내는 손이 희열하고 있었다. 오랜 만에 맛보는 살을 빨아들이는 혀가 뱀처럼 희완을 휘어 감았다. 추적추적 내리는 이슬비로 젖은 수풀에 희완을 내려놓고 아무 전희 없이 그대로 비좁은 곳을 파고들어갔다. 춥다고 매달리는 팔이 등 뒤에서 진저리를 치며 살을 파고들었다. 그마저도 희열이었다. 할 수 있는 곳곳을 핥았다. 핥은 곳곳을 빨았다. 빨았던 곳곳을 당겨 씹고 문지르며 승도는 할 수만 있다면 희완을 이대로 삼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절절한 욕구였다.

더 붙을 곳 없이 바짝 밀착된 가슴이 부딪치며 열을 내었다. 그 온기에 이끌려 아프다고 고개가 넘어가면서도 등과 허리를 감은 팔을 더욱 조이는 희완의 눈을 빨았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눈물 역시 달다 느끼며 입술을 삼켰다. 벌어지는 살덩이를 가르고 들어가며 희완이 토해내는 숨결과 울음과 신음을 모조로 삼켜내었다. 타는 듯한 굶주림에 풀어 놓은 짐승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희완을 뼛속까지 씹어 삼키고 있었다. 그렇게 또 가진 것 없이 빈한한 몸을 원 없이 짓밟았다.

“미안합니다.”

더는 견딜 수 없겠다 했다. 너를 홀로세우지 않고 내가 없으면 안 되는 몸으로 만들어 저 시커먼 구덩이에서 산 채로 썩어 들어가는 걸 봐야만 직성이 풀릴 것도 같았다. 눈알이 파이고, 피부가 벗겨져나가고, 내장을 통째로 도둑맞아 빈껍데기가 되어서야 돌아온 누이의 시신을 수습하며 뚝 떨어져 나간 내면의 무언가를 차지하고 들어앉은 어두운 욕망이 대가리를 들이밀며 희완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것을 완벽히 감지하고 제어하면서도 갈등하고 있었다.

“연희완 씨를 가져야겠습니다.”

멀쩡하게 생겨 먹질 못한 놈이라 앞으로 연희완 씨가 고생을 많이 할 겁니다.

그래도 아프게는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구석에 기어 들어가 혼자 발발발 떠는 꼴은 면하게 합니다.

“재밌게 놉시다.”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씻고 나온 희완을 끌어다 앉히고 작은 생채기 곳곳에까지 약을 발라주고 반창고를 붙여준 승도가 룸서비스를 시켜 아침까지 든든히 먹인 뒤 그를 놓아주었다. 방을 나서기 전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한 얼굴로 저를 돌아보는 희완을 빤히 쳐다보다 우진의 소재를 밝히고 별 탈 없다 알려주니 그제야 꾸벅 고개를 숙이곤 방을 나선다. 철진을 시켜 가져오게 한 두툼한 외투를 입혀 놓으니 그나마 밖에 돌아다니게 할 만 하다는 생각을 하는 승도가 담배를 꺼내 물며 인터폰 불을 밝혔다.

“도우진 줄이 어디까지 닿아 있는지 봅시다.”

데스크에 걸터앉아 담배 연기를 뱉어내며 흘긋 뒤를 돌아본다. 날이 흐리다 싶더니 나풀나풀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시계를 내려다본다. 희완을 내보낸지 채 3분이 되지 않았다.

“됐습니다. 제 발로 오게 만들면 됩니다.”

의준의 소재를 전하는 철진의 말을 끊고 기댔던 몸을 세우는 승도가 담배를 눌러 끄며 재킷을 찾아 걸쳤다.

“눈 옵니다.”

-아, 그렇습니까? 네, 네, 옵니다.

승도의 말에 창밖을 내다보기라도 했는지 연이어 나오는 답에 오전 일정은 미룹시다. 하는 승도가 인터폰을 끄고 방을 나섰다. 바래다주기까지 하면 기껏 먹인 밥을 얹히게 할까봐 얌전히 보내주었는데 하늘이 돕지 않는다. 복도를 걸어 모퉁이를 돌던 승도가 미간을 좁혔다. 엘리베이터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긴 쭉정이 하나가 열린 문이 닫히는 것도 모르고 발치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 여문 머리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푹신한 카펫을 깔아 놓아 발소리가 흡수되는 복도를 마저 걸어가 그 옆에 서니 한참 후에야 승도를 돌아본다.

“눈, 좋아합니까.”

“……차가워서, 싫습니다.”

“마침 잘됐습니다.”

다시 열리는 문 너머로 성큼 들어서는 승도의 움직임을 물끄러미 쫓던 희완이 눈썹을 들었다. 어서 타지 않고 뭐 하느냐는 시선에 곧 귓가를 문지르며 따라 들어가는 희완이 멈칫했다.

“덧납니다.”

하는 소리에 관자놀이를 문지르려던 손을 내리고 지하 1층을 누르는 손을 의아하게 쳐다본다.

“차 타고 갑시다.”

“…….”

“밖에 눈 옵니다.”

그제야 승도가 하는 말을 이해한 희완이 습관적으로 입가를 문지르려다 또 멈칫했다. 빤히 응시하던 시선이 만족스러운 듯 떨어져나가는 것을 보고 짐짓 이상스럽다는 생각을 지우지 못한다.

따악-!

들려오는 소리에 문고리를 잡아 돌리려던 희완이 멈칫, 손을 놓고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외부인의 출입이 극히 제한된 특실로 이어지는 복도엔 오가는 사람 한 명 없었고 분주한 오전 시간대임에도 쥐 죽은 듯이 조용한 곳으로 새어드는 문안의 소리는 희완의 기척을 죽이기에 충분했다.

“정신 차려, 도우진. 이제와 못한다고 하면 그게 다 없던 일이 되나? 그러게 그 잘나신 몸뚱이 굴리기 전에 심사숙고 하셨어야지. 저 좋을 땐 꽃노래가 절로 나오더니 이젠 고작 그걸 못 참고 어린애처럼 떼를 써? 명색이 톱스타씩이나 되는 놈이 그러면 쓰나. 더 우스운 꼴 보이지 말고 이만큼이라도 몸값 유지하고 있는 게 다 누구 덕인지 잘 생각해보고 알아서 기어. 구제 못할 약쟁이에 푼돈으로도 안 팔리는 몸 걸레를 사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도 모자랄 판에, 이러면 곤란하지, 우진아.”

뺨을 갈겼던 손으로 맞은 곳을 부드럽게 매만져주는 하준우의 목소리가 달래듯이 달곰해졌다.

“형 말 잘 들어야, 너 좋은 약도 주고, 쓸 만한 물주도 물어다 주고, 헤픈 엉덩이도 빵빵하게 채워주지. 얌전히 굴었으면 어제처럼 그런 데도 안 보냈을 거 아니야. 또 그 놈한테 찾아갔었다면서? 그 능력도 없는 놈이 행여 너를 구제나 해줄까봐? 헛된 꿈꾸는 건 이제 관둔 줄 알았는데, 이리 멍청하게 굴면 내가 열 받겠냐, 안 받겠냐. 응?”

“…역겨운 손 치워.”

철썩, 철썩, 철썩. 연거푸 우진의 뺨을 갈긴 손으로 턱을 콱 움켜쥔 하준우가 얼굴을 들이밀며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예쁜 얼굴에 흠집 내는 거 질색이다. 몸값 올릴 생각으로 머리를 굴려도 시원찮을 마당에, 내 성질 돋워서 얻는 게 뭐 있다고 이 깜찍한 주둥이를 함부로 나불거리는 거냐, 한 번만 더 그 놈 집에 기어들어가. 내가 가진 모든 걸 총동원해서 니 놈, 그 알량한 커리어 따위 당장에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버리는 수가 있으니까. 니 좆도 아닌 인생, 아주 비참하게 만들어준다고.”

“해. 내가 나만 거꾸러질 것 같아? 좆도 아닌 내 인생, 발정난 개새끼마냥 쑤셔대던 놈들, 내가 기억 못할 것 같아? 내 입 열리면, 적어도 한 둘은 거꾸러지는 놈이 있겠지. 재밌을 것 같지 않아?”

희뜩하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우진을 쏘아보던 하준우에게서 하-! 비웃음이 터졌다.

“이래야, 도우진이지. 깔개 짓을 해도 좆도 고매하신 배우 나으리 프라이드 정도는 세워주셔야 까는 맛이 있다고 한창 잘 나가던 때가 있었지. 왜, 반나절 제정신으로 있어보니 주는 약도 마다할 것 같으냐? 밤이면 제 발로 기어들어와 엉덩이부터 들이미는 놈이, 이제 좀 살만하니 그 싸구려 같은 자존심이 고개를 드밀더냐? 약에 쩔어 가랑이 벌리는 꼴을 김학정이한테 보이겠다고, 씹질에 환장해 좆이란 좆은 온갖 구멍에 다 물고 있는 꼴을 연희완이한테 보이겠다고. 좆도, 휘황찬란한 금의환향이 따로 없겠고만, 괜히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 굴린다고 애쓰지 말고 똑똑히 들어, 도우진. 동영상, 푼다. 한 번만 더 이따위로 건방지게 굴면, 너 은퇴시켜서 본격적으로 굴리는 수가 있어. 이 예쁜 얼굴로, 예쁜 생각만 하라고, 예쁜 생각만.”

툭, 툭, 우진의 머리를 미는 하준우가 숙였던 허리를 폈다.

“어제 보니 연희완도 꽤 소질이 보이더라.”

하긴, 진작부터 알아보기야 했었지. 그 깡패새끼들만 아니었어도 그 놈 굴린 값 먹어치우는 건 이쪽이었을 거다.

“정 힘들다면, 그 놈이라도 데려다 놓든가.”

움푹 꺼진 눈으로 저를 노려보는 우진의 뺨을 툭툭 가볍게 치는 하준우가 재밌다는 듯이 눈을 빛냈다.

“김학정 그 놈이 확실히 보는 눈은 남달라. 어쩜 이리 끼 부리는 놈들만 골라서 갖다 바치는지. 이번에 석주라는 놈도 쓸 만하던데, 그 놈하고 연희완 패키지로 넘기면 어제 같은 곳은 참아줄 테니까, 한번 잘 생각해보라고.”

낄낄거리며 턱을 쥐고 가볍게 흔드는 하준우의 손을 뿌리치는 우진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그걸 같잖다는 듯이 내려다보던 하준우가 흐트러진 재킷을 매만지며 본론을 꺼내었다.

“오늘 퇴원하고 바로 거기로 와. 내 물건에 김학정이 손 타는 꼴 볼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알아서 처신해.”

한마디 쏘아 붙이고 병실을 나가는 하준우를 핏줄 선 눈으로 노려보던 우진이 발작적으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질금 새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눌러 닦으며 제기랄, 욕지기를 뱉어낸다.

담배를 피워 물며 엘리베이터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하준우의 뒷모습을 보다 문가로 다가가는 희완의 시선이 침대 위의 우진에게로 향하였다. 쉼 없이 터지는 기침을 겨우 가라앉히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대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안 들어가고 뭐하냐.”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시선을 드는 희완이 입술을 문지르던 손을 내렸다.

생수를 옆구리에 끼고 다른 손엔 김밥 몇 줄을 싼 검은 봉지를 든 학정이 인상을 쓰고 있었다.

“쌈박질이라도 하고 다니는 거냐.”

“…아, 아닙니다.”

“싸움에 말려들었다더니, 무슨 놈의 회사가 잔업에 특근도 모자라서 이젠 쌈질까지 해? 거기 제대로 된 회사 맞는 거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면서 하는 소리에 뒤따라 들어가던 희완이 재차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전해들은 모양이다. 하면서 우진을 보니 그새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등을 돌리고 있었다.

“밥 먹어라, 자식아.”

“…….”

“안 자는 거 다 아니까 일어나 밥 먹으라고. 희완이 너도 여 와서 앉고.”

의자를 끌어다 자리를 마련해주는 학정의 강권에 엉덩이를 깔던 희완이 다시 몸을 일으켜 종이컵과 휴지를 챙겨 근처에 내려놓았다. 식탁을 세워 그 위에 봉지에 든 것을 펼쳐 놓은 학정이 등을 돌리고 있는 우진의 어깨를 흔들어 깨웠다.

“일어나, 주제에 영양실조라는 게 쪽팔려서 그러는 거면 신경 쓸 거 없다.”

“…….”

“너 좋아하는 참치김밥이랑 야채김밥 사왔다. 떡볶이랑 순대는 안 팔더라. 어묵국물도 싸 왔으니까 얼른 일어나서 먹어라.”

“…….”

“야, 인마. 도우진.”

“그쪽이나 쳐드세요.”

“안 먹고 싶냐?”

“…….”

“됐다, 그럼. 버리면 된다. 희완이 나가서 뭐 좀 먹자. 너도 얼굴이 영 박하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기껏 깔아 뒀던 먹거리들을 죄다 쓸어 쓰레기통에 밀어 넣으려는 학정의 팔이 탁 붙잡혔다. 상체를 일으켜 세운 우진이 퀭한 눈으로 학정을 가볍게 쏘아 보았다. 하준우에게 맞은 자리는 발갛지만 눈에 띌 정도는 아니었다.

“돈도 없으면서, 무슨 사칩니까.”

“너 먹든가, 그럼.”

“……희완이 앉아라.”

둘의 신경전을 말없이 보고만 있던 희완이 뒤늦게 마련해준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김밥 이런 걸 누가 먹는다고.”

“김밥 먹고 싶어서 연습 때마다 소풍 가자던 놈이.”

“언제 적입니까.”

“얼마 안 됐다. 희완이 단무지 먹어라. 국물도 먹을 만하다.”

“요즘도 단무지 몇 조각가지고 면박 주고 그럽니까. 구질구질하게.”

“선배도 안 건드린 거에 손댔다고 애들 잡는 사람, 없다.”

“그 집, 기강 한번 죽여주겠습니다. 희완이 밥알 떨어진다.”

“…네, 네. 조심하겠습니다.”

서로 한마디씩 주거니 받거니 하며 희완에게도 먹을 걸 넘겨주는 걸 주거니 받거니 하는 걸 보던 희완이 들고 있던 김밥 하나를 입에 밀어 넣었다. 단무지도 넣고, 국물도 마시며 또 김밥 하나를 집어 드는데.

“석주, 라는 아이. 있습니까.”

툭, 묻는 말에 막 어묵국물을 국밥국물처럼 들이키던 학정이 대수롭잖게 대꾸한다.

“쓸 만하지.”

“하준우가 탐내고 있습니다.”

“그 놈이 탐낸 게 한둘이냐.”

“그래서 이번에도 뺏길 겁니까.”

“내가 빼앗긴다고 너희들이 빼앗겨지는 물건이냐.”

물끄러미 응시하는 학정을 쏘아보듯이 마주하던 우진이 얼굴을 찌푸리며 잔기침을 하였다.

“성격이 지랄 맞아서 그러는 거다.”

희완이 내민 물을 입가에 대어주니 신경질적으로 밀어내는 우진이 이불에 얼굴을 박고 거세게 기침을 하였다. 굴곡이 도드라지는 등이 격렬하게 들썩여졌다.

“건드리지 마. 질색이니까.”

가라앉지 않는 기침에 안 되겠다 싶었던지 등을 쓸어주려던 학정의 손짓이 날 선 한마디에 덜컥 멈추었다.

“가. 피곤해. 잘 겁니다.”

도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돌아눕는 우진을 내려다보는 학정의 얼굴이 일순 사나워졌다.

“희완이, 집에 들어가 있어라.”

돌아보지도 않고 던지는 말에 우두커니 서 있던 희완이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열었다.

“밖에 있겠습니다.”

대꾸도 않는 둘을 안에 남겨두고 병실을 나온 희완이 문을 닫으며 맞은편 복도 창을 건너보았다.

날리던 눈발이 그치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병원 로비 앞에 차를 대어주고 우산을 건네주던 남자의 무심한 얼굴이 창밖으로 비추어졌다. 그 위로 투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곧 뭉개지며 주륵 미끄러졌다. 하준우가 뱉어내던 말들이 뇌리에 선명히 남았다. 그것은 우진을 휘어감은 속박의 굴레였다.

* * *

김학정 - 아버지

도우진 -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 집 나간 첫째

연희완 - 아버지한테 폐 끼치기 싫었어! 집 나간 둘째

백승도 - 둘째한테 반한 먹물 출신 동네 건달. 나쁜놈.

하준우 - 성매매 전문 브로커. 족보 없는 동네 양아치. 야비한 놈.

이철진 - 건달 졸개 1 그리고 업소 사장.

성의준 - 건달 졸개 2 그리고 재벌 2세.  

감사합니다. ^^

* 수위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