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24화 (24/123)

별이 머무는 계절 (Just Smile)

이틀 연속 같은 장소를 방문하게 된 희완이 입구를 지키고 선 어깨들을 발견하고 무의식적으로 제 꼴을 살폈다. 야상을 뒤집어 써 작업복이 보이진 않았지만 복장규격에 속할 것 같진 않았다.

오지 않으려 했었다. 아파트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 나오기까지 희완은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묵묵히 라이터만 돌리던 학정의 옆모습을 떠올렸다. 비좁은 아파트 골목을 돌아 나오며 끝내는 우진이 찾은 게 학정이 아닌 자신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둘둘 말고 있던 목도리를 백 팩에 접어 넣고 뭣하면 대리 핑계라도 대야겠다 하며 들어서는데 의외로 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어제와 다른 얼굴의 사내가 부리부리한 눈으로 모자를 푹 눌러 쓴 희완의 두툼한 야상과 물 빠진 청바지를 샅샅이 훑더니 무슨 용무로 왔느냐 물었다. 사실대로 답하니 인상을 쓰며 안쪽과 몇 마디 교신을 하는가 싶더니 군 말 없이 안으로 들여보내주었다. 다음부턴 뒷문을 이용하라는 말에 꾸벅 고개를 숙이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희완이 핸드폰을 꺼내어 걸려왔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입구 통로가 끝이 나기 전에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아까 전에 통화를 했던 목소리였다. 지하 3층 D구역으로 내려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통화를 마쳤다. 쿵쾅쿵쾅 본격적으로 울려대기 시작하는 커다란 음악에 귓불을 한번 문지르고 빠르게 걸음을 옮기는 희완이 웨이터에게 길을 물어 지하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목적지를 물으니 습관적으로 훑어오는 눈길이 꺼림칙했지만 이런 클럽의 지하층이 건전할리 없다는 사실은 희완도 알고 있었다.  

D구역은 굳이 헤매지 않아도 복도를 웅웅 울리는 음악소리에 쉬이 찾을 수 있었다. 차갑게 식은 손으로 목덜미를 한번 문지르고 무인카메라가 돌아가는 모퉁이를 돌아선 희완이 잠시 걸음을 멈췄다. 그를 멈추게 한 사내 한 명이 곧 고개를 끄덕이곤 가는 길을 열어주었다. 육중한 문이 열리며 웅웅 진동만 하던 음악이 연기처럼 나른하게 밀려 나왔다. 그곳으로 발을 딛자 등 뒤에서 바로 문이 닫혔다. 이토록 삼엄한 경비가 필요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터였다. 대부분이 비공개 파티였기 때문에 제재도 심하고 출입도 엄격했다. 희완은 파티 참가자의 용인이 있어 예외가 된 경우였다.

그걸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희완이 되도록 넓은 홀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시선에 담지 않도록 노력하며 남자가 언급한 물소 그림을 찾아 눈으로 벽을 더듬었다. 넓은 원형의 홀 중앙을 에워싸고 있는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여러 개의 칸막이는 가림의 용도보다는 그저 옆과 옆의 구역을 나누는 데에만 충실해 주변의 소리와 중앙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관음하기에 좋은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 천에 그려진 수어 개의 그림 중 황소 그림을 찾아낸 희완이 걸음을 옮겼다. 바로 옆에서 엉덩이를 드러낸 남자가 바닥을 기며 다리 사이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킬킬대는 소리에 이어 들려온 것은 귀가 썩을 듯한 음담패설이었다.

안이 고스란히 비치는 주렴 밖에 선 희완이 희게 굳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망설인다. 뒤돌아서, 가고 싶다는 욕구에 뒤채이는 눈에 망가진 것이 보였다.

황갈색 소파 중간쯤에 널브러져 멍한 눈으로 허공을 올려보고 있는 우진의 바지 앞섶이 풀어헤쳐져 있었다. 누군가 손가락에 흰 가루를 묻혀 우진의 앞에 내밀어 줬다. 초점이 흐린 눈으로 이채가 스치는가 싶더니 벌어진 입으로 그 손가락을 깊이 삼켜 묻은 것은 허겁지겁 빠는 우진의 상체가 들렸다. 유인하듯 여러 번 손가락에 가루를 묻혀 테이블까지 우진을 끌어낸 이들이 키득거리며 소곤거리는 게 생생하게 들렸다. 명백한 비아냥과 경멸과 흥분이 섞인 음성, 웃음소리들이었다.

테이블에 엎드린 우진이 가루가 떨어진 셔츠 깃을 올려 게걸스레 빨고는 천천히 고개를 드는 게 보였다. 진한 갈증을 보이는 그 앞에 내밀어진 검붉은 성기에 가루를 묻히니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벌려 크게 삼킨다. 맛있지? 좆도, 특별식이다 배우 나리, 이런 상걸레가 무슨 예술을 해. 크크크큭.

주렴을 걷고 안으로 들어선 희완이 두 손으로 우진의 허리를 감고 가만히 끌어 당겼다.

“뭐야, 넌?”

아랑곳 않고 힘없이 딸려 오는 우진을 빈 소파에 앉히고 그 앞에 몸을 낮춘 희완이 흐트러진 옷을 추슬러주었다. 떨리는 손끝을 쥐었다 펴고 다시 그의 바지 지퍼를 올리고 단추를 잠그고 입가에 흥건한 침을 닦아 주는데 충혈 된 눈이 굶주림으로 번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선배.”

우진을 부축해 일으키려는데 누군가 희완의 어깨를 잡아왔다.

“누구신데 이런 개매너를 보이시나, 지금 한참 재미 중인 거 안 보이시나.”

“안 보입니다.”

무뚝뚝하게 답하는 희완의 어깨가 그대로 당겨져 퍼억 얼굴이 갈겨졌다. 쓰고 있던 모자가 날아갔고 돌아간 턱이 얼얼한데 작은 숨만 짧게 토해낸 희완이 휘청한 몸을 바로 세우며 남자를 쳐다보았다. 입에 담배를 물고 클클 대는 남자가 툭툭 발끝으로 우진의 늘어진 발목을 찼다.

“이제 막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참인데 이러면 곤란하지, 들어올 땐 몰라도 나갈 땐 허락을 받아야,”

길게 담배 연기를 뿜으며 희완을 쳐다보던 남자가 미간을 좁히며 불쑥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넓어도 칸칸이 나누어진 공간 자체가 밀실구조라 답답한 공기에 자욱한 연기까지 합해져 바로 코앞에서 흩뿌려지는 담배연기는 그저 눈살이 찌푸려지는 정도였다. 흘긋 시선을 돌리는 희완을 따라 눈동자를 굴리던 남자가 빙긋 웃었다.

“새로운 플레이였나 보지? 하여간, 여긴 서비스가 좋단 말이야.”

동시에 내지른 주먹이 희완의 명치를 쳤고 헉, 굽어지는 등으로 여러 개의 손이 뻗어왔다. 대번에 테이블 위로 억눌러진 희완이 몸부림을 쳐 그 손들을 떨쳐내고 바닥을 굴렀다. 닥치는 대로 발에 채이는 것을 걷어차고 일어나 우진을 돌아보는데 담배를 물고 있던 남자가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뺨을 후려 쳤다. 눈앞이 번쩍했다.

“생긴 건 쓸 만한데 건방진 건 딱 질색이라, 내 취향은 저 걸레처럼 고분고분한 거라고. 이렇게 반항하다간 내장이 튀어나올 정도로 들쑤셔지는 수가 있어. 누가 보낸 거냐, 여기 사장이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할린 없고. 하준우? 석지향? 누가 보냈든 좀 더 교육을 받고 오는 게 좋겠군. 얌전히 다리 벌릴 거 아니면 꺼져, 난 저 놈하고 볼일이 있으니까.”

“오해…하신 겁니다.”

발갛게 부어오른 입술을 떨며 지껄이는 소리에 입꼬리를 비트는 남자가 구둣발로 우진의 정강이를 퍽 걷어찼다. 아윽. 약에 취해 고통을 쾌감으로 희석시켜 받아들인 우진의 입에서 야릇한 신음이 흘렀다. 동시에 일그러지는 희완의 관자놀이를 본 남자가 눈을 빛냈다.  

“너, 남창이 아니군?”

대번에 온몸을 샅샅이 훑어오는 시선을 감지한 희완이 턱을 당기며 주변을 살폈다. 눈앞의 남자도 희미하게 약과 술에 취해 있었는데 이 좁은 공간을 채우고 있는 대여섯의 남자와 여자들은 대부분 우진과 같은 수준으로 취해 있었다. 그제야 제대로 옷을 차려 입은 건 남자 하나뿐이란 걸 알아차린 희완이 마른침을 삼키며 뒷걸음질을 쳤다. 여긴, 이 남자만을 위한 장소였다. 통화로 들은 목소리도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불러낸 거지.

“저 놈 기둥서방이라도 되는 거냐?”

재밌게 됐다는 표정이었다. 긴장 된 얼굴로 아닙니다. 고개를 젓는 희완이 핸드폰을 꺼내 걸려온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저쪽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그걸 손에 쥐고 있는 다른 남자가 배시시 웃으며 보란 듯이 흔들어 보이다 곧 여자의 가랑이 사이로 밀어 넣었다. 벨소리가 작아지며 기다렸다는 듯이 터지는 여자의 간드러지는 웃음소리에 맞춰 넓은 핸드폰이 밑으로 꿀꺽 삼켜졌다.

잠시 혼탁해지는 눈으로 남자의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스쳤다.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빼는 희완의 두 팔이 등 뒤로 꺾여 그대로 테이블에 얼굴이 처박혀졌다.

“큭.”

언젠지 모르게 주렴을 제치고 들어선 덩치 둘에게 몸이 억류되어 테이블에 짓눌린 희완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들었다. 우진에게 성기를 들이밀었던 사내의 입을 벌리게 한 남자가 내밀어진 혀에 담배  꽁초를 비벼 껐다. 치직. 살갗이 타는 냄새에 절로 얼굴이 굳는데 혀를 지진 담배꽁초를 입에 넣어 목구멍으로 삼켜 재떨이를 자처하고도 배시시 웃는 사내의 코로 흰 가루가 빨려 들어갔다. 잘했다는 듯이 뺨을 토닥이고 흰 가루를 희완의 코앞, 테이블 위에 일렬로 뿌리는 남자가 싱긋 웃었다.

“부디 펌프라고 들어봤나?”

눈앞의 흰 가루가 그대로 제 콧속으로 빨려 들어올까 바짝 긴장한 희완을 눈치 챈 남자가 키득거린다. 정의의 사도치고는 너무 형편없다는 비웃음이다.

“저 상걸레가 특히 좋아하는 짓이지.”

스트레스로 확장 된 희완의 눈동자가 우진에게로 향하였다. 흰 가루가 묻은 손을 뻗으니 혀를 내밀어 그것을 달게 빠는 우진 스스로 아랫도리를 내렸다. 이지란 게 전혀 없는 얼굴을 올려보는 희완의 시선이 참담했다. 질끈 눈을 감으며 외면하려는데 억지로 턱을 붙들려 우진을 보게 만들었다. 속눈썹이 떨렸다. 메마른 눈이 뻐근하게 건조했다. 그런 희완을 관찰이라도 하듯 빤히 들여다보던 남자가 일렬로 죽 늘어놓은 가루 중 일부를 손에 묻혀 코앞에 내밀었다.

“이걸 엉덩이로 들이마시는 건데, 그 꼴이 아주 걸작이란 말이지.”

거의 코에 닿을 듯이 내밀던 가운데 손가락을 희완도, 우진도 아닌 핸드폰을 삼킨 여자의 항문에 문지른다. 잠시 후 바짝 흡수된 약효에 발정 난 암캐처럼 사지를 경련하던 여자가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성기를 스스로 꽂아 넣으며 미친 듯이 엉덩이를 흔들었다. 벌어진 입에서 쉼 없이 터져 나오는 신음이 비명 같고, 흐느낌 같고, 절락의 탄성 같기도 했다. 아아- 아아아, 아아-! 성급하고 광적인 허리짓에 미끄러져 나온 성기에 의해 뻥 뚫린 구멍이 숨을 쉬듯 벌름 거리는 게 고스란히 비쳤다. 바로 제 앞에서 펼쳐지는 광경을 보길 고통스러워하면서도 크게 동요의 빛을 보이진 않는 희완을 응시하던 남자가 더욱 흥미를 보였다.  

“남창은 아닌데, 이런 걸 보는 건 익숙하다?”

다시 테이블에 쏟은 흰 가루를 묻혀 바싹 들이대는 남자가 물었다.

“해본 적 있나?”

희미한 불안이 섞여드는 눈동자만으로 그에 대한 답은 충분했다.

“잘됐군, 이걸 처음 맛보는 연놈들은 아무리 밑 찢어진 걸레라도 숫처녀처럼 바짝 조여 대며 광란을 해대거든. 저 놈도 처음엔 그랬지. 지금도 썩 보기 나쁘지는 않아.”

희완의 시선이 닿은 우진을 가리키며 키득거리는 남자가 즐거워 죽겠다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볼래?”

“……보고 싶지 않습니다.”

“너, 밑으로 받아 본 적 있어?”

“…….”

“대답 잘 해, 저 놈 데리러 온 거 아냐? 얌전히 보내줄 줄 또 누가 알아?”

개소리였다. 그저 희완의 반응을 떠 보려고 지껄인 소리에 쉽게 넘어갈 정도로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랄 걸 깨닫곤 더 재밌다는 표정을 짓는다.

“보내 줄게.”

흰 가루를 묻힌 손가락이 눈앞을 왔다 갔다 했다.

“니가 이걸 밑으로 먹든지, 저 놈이 이걸 밑으로 먹든지, 날 꼴리게만 하면 둘 중 하나 정도는 얼마든지 보내줄 수 있어. 이래봬도 꽤 공평한 놈이거든.”

“그렇게, 대단한 관계 아닙니다.”

그를 위해 스스로를 내줄 정도로 대단한 관계가 아니라는 답변에 비식 웃음을 흘리는 남자다.

“확인해 보는 수가 있지.”

머리채가 잡힌 우진이 엉덩이만 내보인 채로 소파에 얼굴이 처박혔다. 우진에게 이런 짓이 처음이 아니라는 남자의 말은 헐어있는 항문으로 증명이 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기대감에 젖어 스스로 벌어지는 입구를 더 보지 못하고 두 눈을 질끈 감는 희완의 뺨이 갈겨졌다.

“보지 않고 뭘 증명하나, 이런 구경은 자주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라고. 별 거 아닌 관계라며? 꼴에 톱스타라고, 저 놈 딱가리 짓 하며 기회나 엿보는 배우 지망생 쯤 되나? 어리석긴, 아직도 늦진 않았어. 지금 내 손에 데뷔를 한다면 도우진 저 놈처럼 뜨는 건 순간이지. 말 잘 들으면 스캔들 따윈 얼씬도 못하게 해 줄 의향도 있다고. 말했지? 얼굴은 취향이라고. 어때, 찔러줄까?”

하며 우진에게로 향했던 손가락을 제게로 들이미는 남자의 비틀리는 입꼬리를 희완은 제대로 보고 있지 않았다.

그대로, 악몽이다. 제 발치에서 가랑이를 벌린 채 업자들의 남근을 받아내던 누이의 널브러진 꼴이 남자의 얼굴을 덮었다. 고개를 저어 떨쳐 보려 하지만 덩치들에게 꼼짝 없이 붙들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다가오던 손이 우진에게로 되돌아갔다. 벌어진 항문으로 삼켜지는 손가락을 보던 희완이 기이한 신음을 내었다. 이번엔 손가락이 아닌 양주병 주둥이가 항문으로 박혀 들었다. 반쯤 남은 호박색 액체와 뒤섞이는 흰 가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별 거 아니다. 업자들에게 끌려갔을 땐 이보다 더한 광경도 봐야했다. 사람 구실 못한지 오래 됐다고. 비탄에 잠긴 음성이 들리는 듯 했다. 학정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며 유쾌하게 웃던 우진의 과거가 눈앞에 흩뿌려졌다.

요상한 소리를 내며 발정 난 돼지처럼 궁둥이를 흔들어대는 우진의 우스꽝스럽기까지 한 모습에 폭소가 터져 나왔다. 바닥에 떨어져 짓밟히는 것이 우진의 얼굴짝인지, 누이의 얼굴짝인지, 그간 수없이 봐왔던 창부들의 얼굴짝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어쩌면 저것이 내 얼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순간 희완에게서 억눌린 신음 같은 것이 새어 나왔다.

목이 부러지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희완은 억지로 목을 틀어 제 목덜미를 누른 손을 콱 물어뜯고 그 틈을 타 느슨해지는 악력을 피해 왼쪽 팔꿈치로 덩치 하나를 찍으며 테이블을 벗어 나려했다. 발목이 붙잡혔다. 입고 있던 야상과 작업복이 통째로 뜯겨져 나가며 도로 끌어지는 것을 발버둥을 쳐 필사적으로 털어내고 바깥으로 달아나려하는데 그대로 허리를 붙잡혀 바닥에 처박혀 졌다.

“컥.”

반질거리는 구둣발이 목울대를 으깰 듯이 짓밟았다. 커지는 동공으로 짜증스레 입가를 일그러뜨리는 남자의 웃음기 어린 눈이 박혀 들었다.

“이래서 얼굴에 분칠한 것들이랑은 상종을 말라는 거다.”

우진을 남겨 두고 혼자 도망가려던 희완을 비난하는 말이다.

쯧, 혀를 차는 남자가 담뱃불을 새로 붙이며 우진의 엉덩이에 꽂혀 있던 양주병을 우악스럽게 빼어 들었다. 날아간 양주병이 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출렁거리는 액체 일부가 희완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찰칵, 벨트가 풀리고 희완의 바로 얼굴 위에서 남자의 성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붉은 속살을 보이는 우진의 구멍 속으로 그것이 단번에 파고 들어갔다.

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망가지는 건 내가 아니다. 나쁜 것들은 모두 두고 가라 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보고 싶지 않다. 그만해, 그만해, 그만해! 그러나 머리까지 눌려 꽉 고정된 희완의 입가로 위에서부터 길게 늘어진 걸쭉한 액체가 흘렀다. 사지가 붙들린 희완의 얼굴이 흐려지는 찰나였다.

시커먼 것이 튀어나와 남자의 목덜미를 잡고 그대로 벽에 찧었다.

우두둑. 코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팔꿈치와 무릎이 비틀리는 소리에 묻혔다.

희완을 붙잡고 있던 덩치들의 악력이 순식간에 떨어져나갔다. 우지끈, 무언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구속하던 힘이 풀렸음에도 억류당했던 그대로 뜨끈한 머리를 바닥에 대고 있던 희완에게서 낮은 신음이 간헐적으로 흘렀다. 와락 몸을 뒤집어 손등으로 얼굴에 묻은 것들을 닦아내는 희완의 고개가 들렸다. 하체를 드러낸 채 소파에 처박힌 우진이 헐떡거리며 입가에 흐른 것들을 허겁지겁 주워 삼키고 있었다. 아아. 그 옆으로 비명을 지르는 남자를 구석에 몰아넣고 퍽퍽 무식하게 발길질을 하던 시커먼 것이 그것으로도 성에 안 차는지 바닥을 구르던 양주병 주둥이를 잡고 높이 치켜들었다.

퍽! 퍽! 퍽! 세 번 만에 양주병이 깨어졌다. 아랑곳 않고 이번엔 크리스털 재떨이를 집어 들어 다시 기절한 남자의 머리를 가격하는 시커먼 것에 감히 다가서는 이가 없었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규칙적인 동작엔 아무 감정적 동요도 망설임도 없어 기계적이다 못해 무척 단조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잔인함이었다. 쥐 죽은 듯이 적막한 공간에 퍽, 퍽, 살과 뼈가 뭉개지는 소리만 울렸다. 벌레처럼 기며 꿀럭꿀럭 제가 쏟아내고 있는 피 웅덩이에 일그러진 얼굴을 박은 남자의 머리로 다시 붉게 번들거리는 재떨이가 세게 휘둘러졌다.

그 순간 느리게 뻗어 나온 손 하나가 시커먼 것의 등허리 어딘가를 붙잡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에 거칠거칠하고 억센 천이 휘감겨졌고 미약하게 당겨지는 힘에 막 남자의 두개골을 부수기라도 할 것처럼 마지막 일격을 가하려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죽, 죽습니다.”

“그럴 생각입니다.”

흘긋 시선만 돌려 희완을 내려다본 승도가 무심히 답했다.              

높이 치켜든 팔이 다시 휘둘러지는 것을 보던 희완이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구역질을 했다.

더 참지 못하고 왈칵 쏟아져 나오는 것들이 검붉은 바닥을 덮고 승도의 워커를 더럽혔다.

“우우욱.”

내장을 토해낼 듯이 고통스런 신음을 내며 속을 게워내는 희완의 허리로 돌덩이 같은 팔이 감겨졌다. 등을 두드리는 손바닥은 커다랬으나 남자를 무섭게 후려갈기던 것과는 달리 부드럽기까지 했다. 한참을 속이 시큰해질 때까지 오늘 먹은 것들을 죄다 토해내던 희완이 콜록콜록 잔기침을 하며 젖은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등을 두드려주던 손길이 천천히 문지르는 것으로 바뀌니 금세 뒤쪽에서 열이 났다. 그래도 찡그린 눈썹이 펴질 줄 모르자 희완이 진정할 때까지 계속해서 등을 문지르고 보살펴주던 승도가 바닥을 더럽힌 것들에 개의치 않고 바짝 무릎을 붙였다.

얼마 후에야 간신히 발작적인 기침이 멎자 등을 문지르던 손으로 희완의 턱을 붙잡아 저를 보게 했다. 허리를 감은 손은 조금 느슨해졌을 뿐, 거의 주저앉다시피 한 희완을 단단히 지탱하고 있었다. 희게 풀린 희완의 얼굴을 뚫어져라 들여다보던 승도가 피가 튄 손바닥으로 얼굴에 묻은 더러운 것들을 닦아내어 주었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라 했습니다.”

고저가 없는 음성엔 무거운 질책이 서려 있었다. 이윽고 부드럽고 세심한 손길과는 달리 사나운 눈이 희완을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 검은 눈동자가 사냥을 멈춘 짐승의 것처럼 위협적으로 숨을 죽이고, 뜨거운 호흡이 차게 식은 귓불을 간질였다.

“여기서,”

움찔 떨리는 눈이 애처롭게 승도를 찾아들었다.  

“뭘 하는 겁니까.”

빤히 올려보던 희완이 느리게 두 눈을 깜박였다.  

아무 것도,

쏘아보는 눈빛엔 따뜻한 것이 없었으나 희완은 무섭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젓던 희완이 참담한 몸짓으로 흰 목을 늘어뜨렸다. 제 목덜미를 부드럽게 쓸듯이 훑어 내리는 손을 가만 밀쳐내고 그의 팔과 가슴에 기대고 있던 몸도 애써 바로 세웠다. 쏟아지는 숨이 구역질하듯 뱉어졌다. 쏟아놓은 토사물이 온통 승도와 자신의 발치에 엉겨있었다. 그것을 뻐근한 눈알로 내려다보던 희완의 입술이 슬며시 벌어진다. 내가 무얼 했어. 기억이 희미하다.  

시뻘건 핏물이 선명히 잡힌 뺨을 감싸 쥔 승도가 다시 저를 보게 만들었다.

순순히 그를 응시하던 희완이 눈가를 이지러뜨렸다. 끝이 단단한 손가락이 환부를 누르고 있었다.

“연희완.”

“…….”

“연희완.”

부름에 반응하는 희완의 눈동자가 가까스로 회복되었다. 그러나 다시 흐려지는 눈동자를 어르듯이 덧그리던 손끝이 길게 생채기가 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미간을 찡그린다.

“내가 누굽니까.”

얼굴을 기울이며 바짝 눈을 들이미는 승도의 질문에 희완이 입술을 열었다.

“백, 승도.”

홀린 듯이 뱉어져 나오는 음성에 스치듯 희완의 눈가와 뺨을 쓸던 손이 눈가를 덮었다.

잠시 돌아 있었다. 표본실 개구리처럼 사지가 눌려 있던 희완을 보는 순간 일시적으로 정신이 나갔다. 오랫동안 야만적인 폭력에 무한정으로 노출되어 있었어도 그런 것에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 녀석이다. 멀쩡한 것 같아도 실제로는 그 속이 썩어 문드러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제 손으로 보냈어도 나아지는 것 없이 오히려 나빠지기만 하는 녀석이다. 손바닥 아래서 느리게 깜박여지는 속눈썹의 감촉에 눈을 덮었던 손을 치워내니 좀 더 또렷해진 눈동자가 물끄러미 승도를 올려본다. 이상하다는 듯이, 그러다 좀 전에 그가 보인 잔혹한 일면을 더디게 기억해내곤 알 수 없는 표정을 짓는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손이 승도를 밀어내고 바짝 당겨져 있던 몸이 뒤로 물러갔다. 제대로 서지 못하고 거의 기다시피 바닥을 옮겨간 희완이 소파에 널브러져 있는 우진을 챙겼다. 허벅지까지 끌어내려져 있는 바지를 올려 잠가주고 헤 벌어진 입가에 흐르는 침을 주섬주섬 닦아내어주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꽉 한 번 쥐었다 폈다.

낮췄던 몸을 일으켜 희완을 굽어보는 승도의 등 뒤로 우르르 몰려든 보안직원들이 뒤늦게 들이닥쳤다. 그 틈을 치고 들어온 철진이 아수라장이 된 공간을 한 번에 둘러보곤 인상을 쓴다. 재빨리 주변정리를 지시하며 승도의 뒤곁으로 서는데 말이 없던 승도가 철진을 돌아보았다.

보안카메라에 잡힌 소란을 보고 받고 모니터를 들여다본 철진은 시커먼 것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차가운 머리를 지녔지만 폭력을 행할 때의 승도는 야만을 넘어선 어떤 비상식적인 것을 휘두르며 살의와 악의로 점철된 무언을 날 것 그대로 내보이곤 했다. 그 흐름이 고스란히 남은 시선을 직선으로 받는 철진이 저도 모르게 근육을 수축시켰다.

“모두 치우십시오.”

당장 쓸어 보내란 소리였다. 즉시 알아들은 철진이 곧바로 홀을 비웠다. 환히 불이 켜지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직원들에 의해 버러지처럼 널브러져 있던 인간들이 단번에 휩쓸려나갔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은 승도가 그것으로 뒤에서부터 희완의 몸을 덮어 품으로 당겨 안았다. 흠칫 굳는 귓불에 입술을 바짝 붙인다. 거절하면 강제로 옮기겠습니다. 정확히 흘려지는 음성에 그를 밀어내려던 몸짓을 멈추는 희완이 제 가슴을 단단히 붙들어 안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위층으로 가겠습니다.”

그대로 희완을 당겨 일어서던 승도가 흘긋 밑을 쳐다보았다. 희완의 손에 붙들린 우진의 손이 힘없이 딸려왔다. 그것을 억지로 떨어뜨리고 희완을 돌려세워 두 팔로 제 목을 감게 한다. 손바닥으로 동그란 뒤통수를 덮어 어깨 너머로 얼굴을 묻게 하고 아이를 안듯 희완을 안아들었다. 제법 묵직하게 기울어지는 무게도 승도에겐 별 것 아닌 중량으로 뒤통수를 누르던 손으로 날갯죽지가 도드라진 등을 문질러준다. 움찔, 작게 소스라치는 몸짓이 외따로 떨어져 동그랗게 웅크린 상처 입은 짐승의 몸짓 같다는 생각을 한다. 가볍게 도닥여준다.  

“이러고 놀라고 그리 보내준 거 아닙니다.”

자꾸 우진을 돌아보려는 희완의 머리를 눌러 얌전히 제 목덜미에 붙이는 승도가 나직이 덧붙였다.

“나랑 놉시다.”

정 여기서 못 가겠다면, 그냥, 나랑 놉시다.        

  

* * *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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