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손에 쥔 돈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알량하다. 그리고 처량 맞다.
지난밤 화대를 가불 받아 남자에게서 받아낸 돈이었다.
장례비용을 병원에 맡기면 알아서 처리해준다고 했었다.
그래서 들고 온 돈이었는데,
원무과를 들르기 전 병실을 찾은 희완은 정말 어찌해야 좋을지 하나도 모르겠었다.
희수가 버티는 데까지는 희완도 버텨보려 했다.
누이가 이리 만든 인생이었어도 어떻게든 살려보고자 한 목숨이기도 했다.
그리 생각해서 악착같이라도 살아 보려 했다.
하지만, 이제 더는 버텨야 할 이유를 모르겠었다.
죽으려고 했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발 딛는 구부 구부가 저 때문에 허물어지고 으깨어지고 일그러져가는 것만 같았다.
마음 붙일 곳이 없었다.
산 채로 서서히 시들어가는 누이를 끌어안고 희완은 다른 생각을 해보려 했지만 도통 그럴 수가 없었다.
누이의 잘못이 무엇이었던가. 저는 또 무슨 잘못을 했었던가.
혼란스러운 머릿속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머문 채 생각이란 것을 제대로 뱉어 놓지 못했다.
너무 미웠다.
헤어나갈 수 없는 지금이 너무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가 두려웠다.
그래, 너무 미웠다.
현 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탕 꿈에 빠져 집안을 풍비박산 낸 성환도, 그런 성환을 버리지 못해 미련을 떨던 희수도, 그들의 족쇄가 되어 희완의 족쇄까지 되었던 네 살 난 조카도, 그 어린 조카마저도 밉고 원망스러웠던 희완 자신도. 숨통이 떨어져나갈 것만 같았다. 사람이 아니었다.
군 휴게실에 앉아 업자에게 희수의 소식을 전해 들으며 희완은 발밑으로 검은 구멍이 크게 뚫려 있는 것을 보았었다.
벗어날 수 없어. 살아서는 벗어날 수 없어, 그렇지? 누나, 그렇다는 걸 알리려 했던 거야.
그 래도 그러지 말지, 나만 두고 그러지 말지, 가려면 나도 같이 데려갔어야지, 왜 나만 혼자 두고… 그 때 잘못했던 거야. 아무리 등을 떠밀어도 가지 말았어야 했어. 내가 미웠던 거야. 그렇지? 누나도 내가 미워서, 그 개 같은 곳에 나만 밀어 넣고 그리 달아나 버린 거야.
아무 대답도 없이 침대 위에 죽은 듯이 누운 희수를 내려다보며 희완은 붉게 오그라붙은 손을 가볍게 쥐어 잡았다.
한 줌, 한 줌의 무게였다.
희 완이 걸쇠에 매달려 곤죽이 될 때 성환과 그 누이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못할 짓으로 변제금을 충당하고 있었다. 몸에 마약을 담고 긴 시간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던 성환은 손과 발끝이 모두 썩어 들어가고 있었고 원양어선과 대형선박을 번갈아가며 오가던 누이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는 날이 더 많았다. 그 때는 그 정도만으로도 하루 변제금은 다 채울 수가 있었다.
두 번이나 도망가지 않았다면 희완이 그리 끌려오는 일도, 평범한 노동만으로도 변제할 수 있는 금액이었지만, 그들은 그랬었다. 그래놓고도 희완을 원망했다. 원망할 수 있는 모든 걸 원망했다.
때 때로 충혈 된 눈에 광기가 스미는 날이면 성환은 사지가 늘어진 희완의 멱살을 붙잡으며 울부짖었다. 이 녀석을 보내라고! 차라리 내가 여기 매달려 죽어도 좋으니 이 녀석을 대신 내보내라고! 그럼 업자들은 성환을 걷어차고 그 누렇게 황달이 낀 얼굴에 소변을 갈기며 낄낄댔다.
병 신, 너 같은 하자품을 어디 내놓기라도 하겠냐고, 컨테이너로도 수명이 다해가는 게 꿈도 크지, 너 같은 건 통나무 장사로도 쓸모가 없는 물건이라며 조롱하길 서슴지 않았다. 힘없이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 아랫도리를 추스르며 일어서던 업자 하나는 눈이 풀린 희수의 뺨을 사정없이 갈기다가 침이 질질 흐르는 얼굴에 퉤 가래침을 뱉으며 걸쭉한 욕지기를 됫박 쏟아내었다. 그러다 창고 구석에 처박혀 질질 짜고 있는 성환을 발견하곤 마침 잘 됐다는 듯이 툭툭 건드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너 이 새끼, 저 새끼 대용이라는 게 뭔지는 알기나 하고 지껄이는 거냐,
각 상품마다 쓰임새가 있는 법이고, 니 놈 새끼가 운반용 컨테이너, 저 갈보년이 어잡이 냄비로 쓰이는 것처럼 저 놈도 긴히 쓸 용도가 있다는 게다. 씹새, 니들이 언제까지 버틸 런지는 내 알 바 아니지만 두 번이나 토껴서 뺑이 치게 한 놈들 이렇게나마 목줄 붙여 주고 있는 건 다 저 새끼, 니들 아새끼 덕분인 줄 알고 바짝 엎드리란 말이다. 돈도 안 되는 헛것들이, 몸이 깨끗해 통나무 장사를 할 수 있나, 얼굴이 반반해 물총 장사를 할 수 있나, 디질 거면 빨리 빨리 디지라고 이 잡것들아, 니들이 빨리 디져야 니 새끼 전 세계 못 가는 곳 없이 하나하나 다 구경시켜 주고, 저 새끼 꿈이라는 무대에 올려 짭짤하게 재미라도 보게 할 게 아니냐.
네 살 난 자식은 장기를 떼어 곳곳에 다 팔아먹고 저 때문에 멀쩡한 인생 종친 처남은 대대적으로 깔개로 굴리겠다는 소리를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그저 제 말에 귀를 기울여 준다는 사실 하나에 제발, 제발 저 자식과 절 좀 바꿔 달라고 애걸하는 성환을 더럽다는 듯이 걷어차던 업자가 낄낄 웃으며 까짓 알았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모름지기 저 같은 전문가들 사전에 담보 없는 거래란 없다며 구명줄이라도 붙든 듯이 희번득거리던 성환에게 조건 하나를 내 걸었다.
비명이 터져 나온 건 희수의 입에서였다. 걸쇠에 매달려 의식이 흐릿했던 희완은 온몸에 가시가 서는 것처럼 산 채로 살이 뚫리는 것 같은 고통에 작게 신음했다.
돼 지새끼와 붙어먹으면 그리 해주겠다 했다. 저 새끼 용도는 그런 것이라며, 니 놈 소원이 정 그러하다면, 우리 앞에서 소질을 보인다면, 까짓 못 해줄 것도 없지 않느냐, 악마처럼 속삭이는 업자를 홀린 듯이 올려보던 성환이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겠다고, 정말 나 대신 저 자식을 그리로 보내주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한 짓도 하겠다고. 매달리는 동안 이상한 소리를 내던 희수가 바닥을 기어 성환에게 갔다. 툭탁 힘이 들어가지도 않는 손으로 그의 등을 치는데 짐승 같은 소리가 흐느껴 나왔다. 희수가 아닌 성환에게서였다. 그 위로 업자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대는 소리가 겹쳐졌다.
그 무렵 희완은 한 가닥 쥐고 있던 의지마저 놓쳐 가고 있었다. 업자들이 전해주는 말이 정상적인 사고로 전환되지 않았다. 왜 희완은 묶어 놓고 복날 개 패듯이 팰 뿐 저들처럼 돈벌이로 이용하지 않는가, 왜 희완이 미약하게나마 저항을 할 때마다 사창가로 끌고 가 끔찍한 것들을 보여주고 귓속에 처절한 울음을 흘려 넣어 주는가. 왜, 왜 나만 그 끔찍한 것들을 보고 듣고 느껴야만 하는가.
희 완 역시 모든 것이 부당하게만 느껴졌다. 누이가, 매형이 당하는 짓들이 차라리 나을 것이라는 치 떨린 설움에 몸부림치며 삭아가고 있었다. 차라리 죽지, 차라리 죽어 없어져 버리지. 모든 것을 향한 살의에 시달리다가도 희완은 외려 미치게 몸을 떨며 토악질을 하듯이 울음을 게워내었다. 질기게도 산 목숨이라서, 살아지는 목숨이라서, 그리 또 버릴 수가 없었다.
희 완이 그럴 때마다 걸쇠에서 내려 마실 것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편히 쉬게 해주어 또 살아갈 희망을 안겨주는 업자의 인자한 눈이 저주스러웠다. 상처를 치료해주는 그 손을 찢어발기고 싶을 정도로 사무쳤다. 유일한 휴식이자 안식처였다. 희완은 그렇게 업자에게 의지했다. 업자가 뜯어 주는 빵조각을 입으로 받아먹을 때마다 영혼이 부서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병원 전경으로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지친 몸짓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던 희완이 창밖을 보았다.
누 이가 그리도 좋아하던 복사꽃이 내리는 것 같다. 오늘도 꿈에서 복사꽃을 보았다는 누이는 고이 잠들어 있었다. 제 손을 붙잡은 쭈글쭈글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전소하는 차 안에서 3도의 전신화상을 입은 누이는 살아 있는 것이 신기할 정도라 하였다. 두 번의 큰 수술을 마치고도 당시 입은 내상으로 인하여 누이는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언 제였더라. 수술실 문 밖에 우두커니 앉아 복도의 먼 소음만 듣고 있던 희완은 서서히 차오르는 수심에 빠져 호흡이 가빠지는 것 같은 착각에 시달려야만 했었다. 아마 희완을 찾은 이가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발작을 일으켰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누이 혼자서 8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는 동안 희완은 불려간 곳에서 남자의 것을 받으며 희락에 젖어 있었다.
혼 몽 중에도 벌벌 떨리던 누이의 곰팡이 핀 손이 자꾸만 눈앞을 흐리게 했다. 제 안을 치고 들어오는 남자의 성난 기세에 진저리를 치며 희완은 생각했다. 이 순간 혼자가 아니라 정말 다행이라고. 구겨진 만 원짜리 지폐 세 장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누이가 그 돈을 어찌 구했는지 희완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등을 떠밀던 누이에게 밀려 그리 혼자 달아나 버리면 남은 이들은 어찌 될지 추측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것도 밟히지 않았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 생각도, 아무 생각도, 아무 생각도,
그 밤 희완은 어둔 선착장을 달리면서 겁먹은 짐승처럼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당장이라도 흐느낌 비슷한 것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등 뒤에서 검은 손이 불쑥 튀어나와 희완을 잡아채고 그 창고로 질질 끌고 갈 것만 같았다. 비명이 터질 것 같은 입을 필사적으로 틀어막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거친 운무를 헤치며 어둠 속을 달렸다. 누이의 벌벌 떨리던 손 따위 전혀 떠올리지 못했다.
제 손에서 구겨진 돈 봉투를 발견하고 나서야 희완은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음을 깨달았다.
수액에 진정제를 투여하며 면회 시간이 다 되어 간다는 간호사의 안내에 흉측하게 일그러진 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희완이 잡혀 있던 손을 조심스레 빼내었다.
그렇게 이기적이었다.
성환이 이기적인만큼, 희수가 이기적인만큼, 희완 역시 이기적이었다.
눈을 떴는데, 더는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누이를 데리고 멀리 도망가려 했다.
딛고 있는 구석구석이 무너지는 느낌이었고 가끔은 숨을 쉬는 것도 힘들었다.
누이를 두고 가던 날도 그랬었다.
아무 것도 돌아보고 싶지 않았고,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도망가려 해도 갈 곳이 없었다.
살아서는 갈 곳이 없었다.
그래서 돈을 구걸 했다.
마지막 여비를,
절곡의 문턱 에서 건져 준 그에게 달라 했다.
죽으려고,
같이, 죽으려고.
그렇게 또 못할 짓을 한 거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누이의 말이 맞았다.
그러나 그들이 희완에게 요구한 것 역시 짐승들도 하지 않을 짓들이었다.
그거 하나 만은 움켜 쥐고 내어 줄 수 없었다.
그것마저 내어주면 희완은, 정말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완전히 으깨어져 다신 회복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으리란 희망 한 자락을 그렇게 움켜 쥐고 놓지 못했던 것이다.
이미 제 발밑에서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짐승처럼 기던 누이와 성환을 보면서도 끝까지 놓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도 모르겠었다.
정말 모르겠었다.
제 등을 떠밀던 누이의 절박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나만,
왜 나만,
살아주길 바랐던 건지, 살아서 고통 받길 바랐던 건지 희완은 알 수 없었다.
살아서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저를 떠밀던 누이의 그 떨리던 손끝을 떠올리면 이 절절한 미움이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어졌다.
차라리 죽이지.
차라리 죽이지.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면 차라리 나도 같이 죽이기라도 하지.
왜 나만,
왜 나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처럼 허망한 울림을 홀로 들으며 희완은 누이의 눌러붙은 눈꺼풀을 보았다.
그 눈에 얼굴을 묻고 애원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고 해 줘.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해 줘.
내가 살길 바랐다고 해 줘.
내가 도망가길 바랐다고 해 줘.
내가,
살아갈 수 있게,
내게도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고 해 줘.
눈을 떴는데,
발밑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버텨야 할 이유가 있을까 했다.
이렇게까지 버리지 못할 까닭이 있을까 했다.
아무리 그들이라도 죽고 없어지면 더는 어쩔 수 없지 않을까 했다.
그래서,
그래서.
후두둑 떨어지던 학정의 눈물이 시야를 가렸다.
골목골목을 휘돌며 애타게 희완을 찾던 성희의 부름이 자꾸만 발목을 채었다.
다시 오랬는데,
어디 가냐고, 가지 말라고,
같이 가자고…
잠바를, 잠바를 두고 왔어,
학정, 학정 형이, 울어서-
아무도, 아무도 묻질 않아서 말을 못했는데,
다 알고 있었어.
다.
누나…
다시 돌아가고 싶어.
다시 돌아가고 싶어.
다시,
다시 돌아가고 싶어.
나도…
살고 싶어.
버스에 몸을 싣고 오는 내내 희완은 뒤따라오는 겨울풍경에 시선을 놓고 있었다.
그러다 덜컹, 눈에 막힌 길을 멈춰선 버스 진동에 꽉 쥐고 있던 돈 봉투를 내려다보았다.
수 표 네 장이 든 것을 한참 들여다보다 한 장을 꺼내어 바지 주머니에 밀어 넣고 나머지는 뭉쳐 반대쪽 주머니에 우겨 넣었다. 잠바를 걸치지 않아 훤히 드러난 목덜미가 차창에 비춰졌다. 희미해진 자국 위로 덧대어진 흔적은 없었다.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던 남자의 손길이 서리 낀 차창에 비춰졌다. 반추하는 희완의 눈이 깊어졌다.
지장을 찍는 것만을 남긴 희완을 찾아온 남자는 내 것이 되겠느냐, 했었다.
너를 사 주겠으니 오로지 나만을 상대하는 것으로 하자고, 하룻밤 적정가로 얼마를 생각하느냐 묻던 남자를 희완은 아주 늦게 알아보았다.
목까지 차오른 수심이 점점 얕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남자의 호의에 의구심을 가질 여유도 없이 그의 제안에 고개를 끄덕였었다.
눈가를 문지르며 손바닥으로 입가를 덮는 희완의 숙여진 고개 위로 붉어진 귓불이 비죽 솟았다.
그 호의를 희완은 아직도 해석하지 못하고 있었다.
몸을 원한다면, 몸만 원한다면,
굳이 희완처럼 손이 많이 가고 돈이 많이 드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입가를 문지르던 희완이 두 손으로 귀를 덮듯이 머리를 누르며 앞좌석 등받이에 이마를 기댔다.
이상한 생각이다. 이상한 생각이야.
머리를 누르던 손으로 목덜미를 쓸고 입가를 쓸던 희완이 고개를 들었다.
멈 춰 섰던 차가 출발하고 있었다. 함박눈이 그쳐 있었다. 뿌옇던 하늘 새로 흰 빛살이 빠끔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귓등으로 떨어지는 그 연약한 햇살에 손끝을 문지르며 시선을 들었다. 따스한 그늘이 흰 얼굴 위로 복사꽃잎처럼 흩뿌려졌다.
심 장이 뛰었다. 학정이 보고 싶었고 구부 구부 진 골목 곳곳이 눈가에 선했다. 휘영청 뜬 달 아래 어지럽게 얽힌 전선줄이 아른 거렸고 기타를 동여 메고 소주 한 잔에 밤이 깊도록 구닥다리 고릿적 노래를 고래고래 불러 제치며 히득대던 시간들이 그리웠다. 희미하게 부푼 가슴에서 열기가 새었다.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새삼 심장이 들떠서 희완은 눈앞이 핑 도는 것도 같았다.
돌아가면, 잘못했다고 해야지. 열쇠도 잘 쓰겠다고 하고, 나 때문에 도둑맞은 것들도,
충분한지는 모르겠지만 따로 챙겨 둔 수표 한 장을 구겨 넣은 주머니에 손바닥을 댄 희완이 멋쩍은 듯한 웃음을 흘리며 입가를 문질렀다.
걱 정스런 얼굴로 저를 올려보던 성희의 단정한 얼굴이 떠올랐다. 아하하 웃으며 울상을 짓기도 하던 석주와 주경을 떠올렸다. 인상을 쓰며 담배 대신 막대사탕을 물려주던 학정이 떠올랐다. 뜨끈한 목덜미를 쓸던 그 손길이 선연했다. 희완은 활짝 펼친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서, 가고 싶었다.
희완은 저를 돌아보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적나라한 악의를 느꼈다.
찢 기고 깨지고 부서져 아수라장이 된 곳 한 가운데에 서서 걸쭉한 담배 연기를 길게 뿜어내던 업자가 싱긋 웃으며 희완에게 손을 흔들었다. 기다리기 지쳐서 바쁘신 몸 끌고 이리 행차하셨다는 그는 굵은 반지를 낀 손으로 툭툭 희완의 뺨을 두드리며 씨익 흰 이를 드러냈다.
“학정, 학,”
“아아, 그 곰 같이 덩치만 커다란 놈 말이오? 아까 지 똘마니들 틈에 실려 갔지 아마?”
느 물대는 목소리에 나오지도 않는 소리를 내겠다고 벌름거렸던 입을 꾹 다무는 희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건드리지, 손 대지 않는다고. 그걸 믿었냐고, 재밌다는 듯이 쳐다보던 업자가 친근한 표정으로 희완의 볼을 쓰다듬으며 작게 속삭인다.
“그간 재미는 좀 보셨소? 내가 반년은 두고 보려 했는데, 일 년은 너무 한 것 같아서 말이외다.”
노골적인 시선으로 희완의 몸을 샅샅이 훑으며 어깨를 당겨 안는다.
“그 쯤 됐으면 설 익은 엉덩이도 익을 대로 익었을 것 같고, 반품이 안 된다면 우린 수거도 마다하지 않소이다. 그쪽과 지장 찍은 것도 아닌데 이마안하고 이쪽으로 오는 게 어떻겠소?”
업자의 어깨 너머로 쪼개진 극단 간판을 올려보는 희완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발밑으로 가라앉았던 검은 운무가 스물스물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업자들에게 얻어 터져 피를 줄줄 흘리고 있는 단원들이 무릎을 꿇고 앉아 이를 악물고 있었다. 그 앞에서 위협적으로 각목을 휘두르며 낄낄대는 업자를 쫓던 희완의 눈이 충격으로 굳었다.
피 가 엉겨 붙은 머리를 붙잡은 채로 거의 바닥에 이마를 들이 받고 있는 석주가 눈에 띄었다. 난장이 된 연습실 내부에 붙잡혀 있는 건 거의 대부분이 단수 낮은 단원들이었다. 이제 갓 스물을 넘긴, 희완이 업자들에게 끌려갔던 때와 비슷한 나이의 단원들이 야만적인 폭력 앞에서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희 게 질린 손가락을 머리카락 속으로 밀어 넣었다. 두피가 뜯기도록 머리를 긁으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업자를 돌아보았다. 결국 더러운 창고 바닥에 엎어져 허물어진 희완을 만족스럽게 내려다보던 때도 그는 저렇게 웃고 있었다. 일그러져 가던 희완의 얼굴이 차츰 비워지기 시작했다.
아아, 업자는 개처럼 희완을 길들인 것이었다. 처음부터 놓아줄 생각 따윈 없었던 거다.
그 바닥에서의 용도변경은 큰 손해를 입기 마련이라며 처음부터 희완을 일회용으로 쓸 생각은 없었다고, 희완을 발견했을 때가 성환이 처음으로 쓸모 있어진 때라며 알아먹을 수 없는 소리를 지껄였던 업자는, 단지 이제 더 맞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광기와도 같은 안도감에 젖어들었던 희완을 어루만져 주고 먹을 것을 대어주며 안심 시켰었다. 이제는 더 아프지 않을 거요, 달래는 목소리를 들으며 희완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제 더 푸줏간 돼지가 되어 매달리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 욕지기가 치밀던 끔찍한 짓거리들도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을 쉬게 하고 식은 죽을 마시며 속을 게워내지 않았다면 희완은 그때 이미 순순히 업자의 손에 끌려 지장을 찍었을 것이었다. 업자들이 마시는 술에 숨겨온 마약을 섞어 취하게 한 희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희완을 깨웠다.
깨웠었다.
거기는 아니라고, 거기는 더 아니라고. 그러니 그만 가라고, 여기까지 오게 해서 미안하다고, 황폐해진 얼굴로 희완을 올려보며 어서 도망가라고, 어서… 가라고.
일그러졌다 비어지기를 반복하는 희완을 히죽거리며 구경하던 업자가 눈짓을 했다. 내내 희완의 시선이 걸려 있던 석주에게 각목이 휘둘러지는 순간 옷깃이 뜯기는 소리가 두둑 울렸다.
“그만…, 그만.”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업자의 팔뚝을 붙든 희완이 고개를 저으며 애원했다.
“가겠, 가겠습니다.”
잿더미 같은 음성에 유심히 희완을 살피던 업자가 다시 히죽 웃었다.
“거 내가 뭐랬소, 진즉에 따라올 것이지. 얌전히 말 들었다면 사람 여럿 피 보게 할 일 뭐 있겠수까. 일 년 했으면 할 만큼 한 거요. 몸도 알맞게 여물었을 테니 쓸 만한 가격에 잘 팔릴 게고, 변제금 탈탈 털어 줄 테니 연희완 씨는 우리랑 어엿한 사업 동지가 되는 게 아니겠소. 그 어여쁜 가랑이가 갈짓자로 쫘악 찢어질 때까지 말이외다.”
파안대소하는 업자를 멍하니 응시하던 희완의 얼굴이 본래대로 돌아왔다.
붙들고 있던 업자의 팔뚝을 놓으며 차갑게 식은 손끝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따뜻했던 것들이 억지로 뜯겨져 저 멀리로 떨어져나가고 있었다.
“다신, 다신… 이러지 마십시오.”
“연희완 씨가 엉뚱한 짓만 안 한다면 그럴 일이 뭐 있겠소만, 연희완 씨 입장이 그걸 따질 군번은 아닐 텐데 말이외다. 그렇지 않소이까.”
“안 합니다.”
주머니 깊숙이 밀어 뒀던 열쇠를 문지르는 희완이 다시 말을 맺었다.
“그쪽이 시키는 것만, 그런 것들만 합니다.”
“뭐든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장 찍겠소?”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온 말에 빤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던 희완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희수의 비명이 발밑으로 몰리는 것 같았다. 학정의 고함이 귀청을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다.
미 쳐가던 성환이 카카카카 폭소를 했다. 희수의 손에 칼에 찔리면서도 죽기 싫다 발버둥을 치던 성환의 충혈 된 눈이 악귀처럼 희번득거리며 희완을 노려보았다. 네 살 난 조카의 고사리 같은 손이 희완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저 어둔 구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희완은 웃었다.
좋아 웃소? 묻는 업자를 따라 더 진하게 웃으며 눈가를 문질렀다.
희수 손에 노잣돈을 쥐어 주지 못하고 떠나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전해주지 못한 열쇠와 알량한 수표 한 장이 바지주머니를 무겁게 했다.
헛돈 쓰게 한 남자에게 죄송하다 말 한 마디라도 하고 올 것을.
어느새 웃음기를 지운 얼굴로 발치를 내려다보며 계단을 걸어 내려가는 희완이 부푼 가슴을 비웠다.
돌아올 곳이 아니었다.
욕심내어서도 안 되는 곳이었다.
다시… 꿈을 꿔서도 안 되는 곳이었는데.
희 완은 한 번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업자의 손에 끌려 구부 진 골목을 떠났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