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반쯤 가려진 창을 통해 꺾어지는 밝은 빛살이 불 꺼진 병실의 반쪽을 비췄다.
멀리서 복도를 넘나드는 적막한 소음과 이따금씩 부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 울림 외에는 그저 높고 낮은 숨소리뿐인 곳에 희완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마 치 느리게 뛰는 제 누이의 맥박처럼 천천히 떨어지는 수액을 한참 담아내고 있던 희완이 문득 손을 들어 제 눈을 문질렀다. 별로 쉬어 본 기억이 없는 눈은 피로감과 메마른 공기에 찌들어 붉게 충혈 되어 있었다. 빡빡한 눈에서 눈물이 조금 샐 때까지 문지르다 한결 나아진 감각에 꿈벅꿈벅 눈을 깜박이던 희완이 다시 시선을 들었다.
누 이의 발작은 불규칙하고 간헐적이었고 위험했다. 기분이 좋을 땐 산책을 하며 보고 있는 것들을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희완에게 이야기 해주기도 했다. 바람이 좋다, 해가 비친다, 눈이 온 것 같아, 나무가 여러 그루 있는데 아직 옷을 안 벗었어, 사시사철 푸르대, 눈이 내리면 그때서야 비로소 한숨 돌리는가 봐, 빗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잤어, 꿈을 꿨는데 기억이 안 나, 희완아, 내가 없어지고 있었어. 그러다 울기도 하고 미치기도 했다.
사 고의 충격을 이기지 못해 광증을 앓기 시작한 누이는 두 번의 큰 수술을 이겨내고 나서야 이곳으로 옮겨 올 수 있었다. 자동차 전소로 남편과 네 살 난 아이를 잃고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누이를 대신할 상주가 없어 친족을 찾던 중 병원 측에서 군으로 연락을 넣었지만 사기저하를 염려한 군 측에서는 사실을 함구했다. 복무 내내 의무 휴가를 제외하곤 단 한 번도 군 밖으로 나간 적 없고 면회 오는 사람 하나 없던 희완은 주의가 요구되는 보호 관심병사였고 군에서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다.
전 역을 보름 남겨두고 면회 온 업자에게서 비로소 누이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들었다. 희완을 무대에서 끌어내렸던 업자는 군 입대로 행방이 묘연했던 희완을 잊지 않고 끈질기게 쫓아 기어이 병원을 통해 찾아내었다. 충격으로 얼어붙은 희완에게 빙그레 웃으며 악수를 청했었다. 군에 보낸 서류가 누락된 것으로 처리되어 피붙이 없이 병원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누이를 돌본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업자들이었다.
「이런 식의 발작이 반복되면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정신적 발작은 육체적 발작으로 이어져 두 번의 수술로 겨우 이어 놓은 누이의 목숨을 위협했다.
사근사근 이어지던 누이의 목소리를 떠올리던 희완이 시선을 꺾었다.
꽃 같았던 얼굴에 열꽃이 피어 흉하게 일그러진 누이를 내려다보다 듬성듬성 돋아난 머리카락을 매우 조심스레 매만졌다. 그 위에 기대듯이 뺨을 묻었다.
가지 마, 누나… 가지 마.
흐렸던 하늘이 도시로 진입하자마자 먹구름으로 바뀌며 거센 비바람을 휘불었다.
버 스에서 내린 희완이 후드를 뒤집어쓰고 빠르게 내달렸다.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5분 거리를 단숨에 뛰어가 처마 밑에 숨어 그 사이 흠뻑 젖은 후드 점퍼를 벗어 빗물을 꾹 짜내었다. 살갗이 찢어질 것 같은 추위에 절로 이가 갈렸다. 처마 밖으로 점퍼를 최대한 다 짜내고 몇 번 털어낸 희완이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늦 지 않게 도착해 대기실에 들러 인사를 하고 작업에 임하려는데 분위기가 유난했다.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를 일회용 도시락이 예쁘게 포장되어 대기실 벽 한 쪽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과일과 음료까지 후식도 살뜰하게 챙긴 것으로 보아하니 배우 팬클럽 측에서 보낸 선물인 듯 했다. 그 정성이 때때로 팽창된 긴장감으로 살벌하기도 하던 대기실 분위기를 훈훈하게 완화시킨 모양이었다.
저 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라 안쪽에 꾸벅 인사를 하고 대기실을 돌아 나가 무대 뒤로 향하던 희완이 걸음을 멈추었다. 막 담뱃불을 붙이던 연출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니 반갑게 받아준다.
“어어, 자네로구만.”
“네, 안녕하십니까.”
건물 안, 특히 무대 뒤에서는 금연이었지만 일개 알바 주제에 연출의 담배를 끌 수는 없는 일이기에힐금 주변을 살피던 희완이 먹다 만 음료 병을 발견하곤 그 앞으로 공손하게 내밀었다.
“하하, 이 몹쓸 것이 안 들면 도통 대가리가 안돌아서 말이지. 그래, 도시락은 먹었는가? 유준이 팬클럽에서 보낸 거라 하더구만. 맛이 좋아.”
무 안해 할 법도 한데 사람 좋게 웃으며 희완에게서 음료 병을 받아 바로 재를 떨어뜨리는 연출이 자연스럽게 말을 붙이며 희완을 대기실로 끌고 들어갔다. 마침 제 몫의 도시락을 펼쳐 놓고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던 배우들이 연출의 등장에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고 뒤따라 들어온 희완을 발견하곤 조금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스 텝 머릿수도 맞춰서 보냈다지? 팬서비스는 잘 해서 보냈나? 자네, 팬들이 아주 지극정성이구만, 얼굴 박은 스티커까지 붙여 보냈어. 인물 훤하구만- 아 참, 이 친구도 좀 챙겨주지 그래, 맛이 아주 좋더라구. 이런 걸 조공이라고들 한다구? 아니, 이쪽에서 조공을 해도 모자른 판에 참 고맙구만 그래.”
허 허 웃으며 희완의 손에 음료와 과일까지 들려준 연출이 바쁠 테니 어서 나가보라 어깨를 툭툭 털어 보내고는 이내 대기실 분위기를 다른 쪽으로 이끌어 갔다. 얼결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쥐어 보내게 된 사람들의 관심도 곧 연출에게로 모아졌다. 그 사이 어렵지 않게 대기실을 빠져나오게 된 희완이 무대 뒤 인력들이 임시 휴게실로 사용하는 공간으로 향하였다. 마침, 그들 몫으로 나눠진 도시락을 들고 허겁지겁 공복을 채우는 다른 인력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희완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그들 틈에 섞여 도시락을 빠르게 비워내었다. 며칠 전부터 뭘 먹은 기억이 별로 없었다.
팬 클럽에서 단체로 관람을 온 것인지 객석 반응이 굉장히 열광적이었고 커튼콜의 환호성도 대단했다. 특히 주연을 맡은 유준이 대사를 칠 때마다 절제된 침묵 속에서도 후끈한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졌고 자연스레 몰입도가 높아진 객석분위기도 무척 좋았다. 특정 인물의 팬 밀집도가 높은 공연이라기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공연이었다.
이런 공연을 흔히 겪는 게 아니라 무대에 내려오고 나서도 모두들 굉장히 흥분해 있었다. 이런 날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회식을 주선한 연출이 배우 이하 모든 스텝들을 모아 근처 횟집으로 향하였다.
중 극장에 올리는 공연임에도 출연 배우와 스텝들이 대극장 인원에 준할 정도인 공연팀이 들어서자 횟집은 금세 떠들썩한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가는 길에 빠지려다 마침 건물 뒤 공원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던 연출에게 붙들려 같이 오게 된 희완도 구석을 차지하고 앉아 제 몫으로 돌려진 술잔을 받았다.
연 출을 시작으로 단장, 부단장, 무대감독, 주연배우 순으로 이름이 연호되고 원샷, 원샷이 줄지어졌다. 작년 가을 공연을 올린 뒤부터 쉴 틈 없이 오픈 런으로 달리게 되는 동안 산전수전 다 같이 겪어 돈독해진 사람들의 팀워크는 가끔 삐걱거릴지언정 기쁨과 좌절의 순간을 뜨겁게 맞이했다. 그 비현실적인 열기가 가득한 공간에서 마치 그들과 동색인양 부푼 심장을 공유하면서도 그 감정이 낯설어 말없이 술잔만 비우던 희완의 앞으로 회 몇 점이 밀어졌다.
“허허, 그렇게 술만 비우다간 속 다 버린다네, 혹시 요절하는 게 로망인가?”
젊은 예술가 중에는 더러 요절을 꿈꾸는 몽상가들이 있기도 한 법이었다.
한 창 물이 오른 술자리는 흥청망청 왁자지껄 누가 오가는지도 모르게 각자의 흥과 신명에 겨워 한껏 달떠 있었다. 무엇에도 관대해지는 시간이었고 무엇에도 무관심해지는 시간이었다. 이미 희완 같은 껄끄러운 존재 따윈 만전에 휩쓸려가 매사 그들 관심 밖이었다. 그 소외감이 기꺼운 것인지 섧은 것인지 희완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젊은 나이에 그러는 건 도리가 아니지, 꽃 같은 청춘 아닌가, 자 한 잔 받게.”
저 질식할 것 같은 순수의 열기에서 혼자 동 떨어져 있던 희완이 술을 받은 잔을 얼른 비우고 다시 연출에게 잔을 올렸다. 예 사람들은 주도가 참 밝아, 허허. 하면서 잔을 받은 연출도 단번에 술을 비운다.
“삶 이란 게 다 제 뜻대로 된다면 그것을 왜 살아감이라 하겠는가. 예쁜 얼굴 그리 죽상 짓고 있으면 오던 복도 달아난다는 옛말이 다 틀린 게 아니야. 살다보면 볕 뜰 날이 있기도 한 게 인생이고 부대끼다 보면 서서히 열리기도 하는 게 사람 마음이란 게야. 개 같은 난장이라도 이미 봄바람에 간질여진 신세 어쩌겠나, 빈 주먹이라도 한번 휘둘러 악이라도 써보고 툭툭 털고 일어나 하하하 웃어 버려야지.”
얼큰하게 술이 오른 것 치고 꽤 형형한 눈으로 희완을 바라보며 제 개똥철학을 읊던 연출이 못내 멋쩍은 듯 허허, 하고 웃는다.
“행불행이 모두 상대적이듯 살아감에 있어 공과도 그리 절대적인 것만은 아니니 그리 주눅 들어 다니지 마시게.”
위 로였던 모양이었다. 벌게진 얼굴로 제게 술을 권하며 어깨를 툭툭 치는 연출의 부드러운 손짓이 한겨울 훈풍마냥 여겨졌던 건 희완의 착각만이 아니었다. 뱃속이 뜨끈해졌다. 잠자코 받은 술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연출에게도 술을 올리며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어느새 문밖의 비바람이 잠들어 있었다. 희완의 가슴속에 불던 바람도 마찬가지였다.
부 슬부슬 안개비만 떠다니는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고 비틀비틀 서로 하나씩 어깨를 걸친 사람들이 각기 제 갈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지막까지 남아 처마 끝에 맺힌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 것을 올려보고 있던 희완의 곁으로 우산을 둘러 쓴 연출이 붙어 섰다.
“어디, 오늘 하룻밤 비 피할 곳은 구하셨는가.”
빙그레 웃으며 우산을 기울여 주는 연출의 곁이 넉넉하게 비어있었다.
부 인과 자식을 프랑스 몽마르뜨 언덕에 떨어뜨리고 홀로 날아온 외로운 기러기 아빠라는 연출의 아파트는 펜트하우스가 무색할 정도였다. 성공적이라던 삶이 거짓은 아니었다. 갈아입을 옷과 세면도구를 내어주고 그쪽에서 씻으라 하던 연출은 아직 기분이 남았는지 장식장에서 양주 한 병을 꺼내 잔에 따르고 있었다. 술 상대를 해주어야하는 것인지 고민하던 희완을 돌아본 연출이 수더분하게 웃으며 어서 들어가 씻으라 손을 휘휘 저었다.
꾸벅 고개를 숙인 희완이 그제야 욕실로 들어섰다.
아파트만큼 넓은 욕실을 어색하게 한번 둘러본 희완이 받아 든 것들을 선반 위에 내려놓고 거울 앞에 섰다.
모 자가 벗겨져 훤히 드러난 얼굴은 상처투성이였다. 두경이 사정 봐주지 않고 내지른 주먹에 빗겨 맞은 왼쪽 눈썹 옆 관자놀이는 찢어진 곳을 꿰매야 했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피를 많이 흘려 응급실에 두어 시간 누워 있어야 했다. 새로 소독도 하지 않고 방치한데다 비까지 맞아 반창고를 붙인 곳이 느슨했다. 젖은 상의를 벗어 던진 희완이 거울에 얼굴을 더욱 가까이 붙여 상처를 살폈다. 꿰맨 곳 외에는 특별히 부러지거나 상한 곳 없이 가벼운 타박상과 자상이 전부였다. 붓기와 멍도 아침보다는 훨씬 상태가 좋았다.
물에 적신 수건으로 대충 상처를 닦아내다 불현듯 거울 속에 비친 제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엉망이었다. 볼품없었고 초라했다.
제 생김을 말하는 것인지 삶을 말하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이 그 둘은 흡사했다.
고단함 외에는 아무 것도 담긴 것 없이 텅 빈 얼굴은 이제 낯설지 않고 익숙했다.
손바닥으로 눈가를 덮는 희완의 입매가 미세하게 일그러졌다.
어디서라도 구겨져 이 한 몸 의신 할 수 있었으나,
두려웠다.
오늘만큼은 혼자이고 싶지 않았다.
저 찬비를 맞으며 이 빈한한 몸을 껴안은 채 홀로 추위에 떨며 긴 밤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별 거 아닌 연출의 위로 한 마디가 희완의 식은 심장에 뜨거운 온기를 불어 넣었다. 그게 기껍고 따뜻했다. 감사했고, 허전했고, 사무치게 서글펐다.
신세를 지는 것이다. 평소라면 결코 연출의 호의를 받지 않았을 테지만 이는 바람이 칼이었다.
제 존재 자체가 누구에게든 누가 된다는 것을 정확히 인지하면서도 희완은 제게로 기울어지던 연출의 우산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것은 위로였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덮은 손을 내려놓고 우두커니 쏟아지는 물줄기만 쳐다보고 있던 희완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
언제 들어와 있는지도 몰랐던 연출이 바로 등 뒤에 서 있었다. 희완과 비슷한 높이의 희끗한 머리카락이 거울 속 제 얼굴 바로 뒤로 선명하게 비쳐지고 있었다.
“사실인 게군.”
희완은 볼 수 없었지만 연배에 맞지 않게 보드라운 연출의 손이 더듬던 자리엔 누군가 공들여 새겨놓은 잇자국이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잠자리를 제공하여 주거나, 먹을 것을 물려주거나, 머리만 잠깐 쓰다듬어 줘도 주인 만난 개새끼마냥 발발거리며 쫓아 들어온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네.”
날갯죽지를 쓸던 손으로 붉게 솟아오른 유두를 문지르는 연출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는 투로 작게 혀를 찼다.
“자네도 참 딱한 인사로구만.”
발치에 툭 떨어진 점퍼를 주우려 허리를 굽히던 희완의 무릎이 탁 꺾였다.
잠잠해졌던 바람이 다시 거세게 불기 시작하며 흐트러진 희완의 머리칼을 엉망으로 휩쓸어갔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점퍼를 주워 들고 기운이 빠진 몸을 애써 일으켜 세운 희완이 맨 살을 죄다 드러낸 상체에 점퍼를 끼워 입고 지퍼를 턱 끝까지 채워 올렸다.
연 출을 밀쳐낸 손이 미치도록 시려웠다. 무슨 정신인지도 모르고 뛰쳐나오느라 점퍼 하나만 달랑 챙겨 나온 희완의 어깨가 왜소하게 굽어졌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 손끝을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움켜쥐며 점퍼 주머니 깊숙이 찔러 넣는다. 휘청휘청 걷는 걸음이 위태위태했으나 희완은 단 한 번도 멈춰서거나 돌아서지 않았다. 그저 불안한 걸음걸이로 무엇에 쫓기듯이 삭풍의 밤길을 걸었다.
불 켜진 소줏집엔 일행 두어 셋이 각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실 내의 불빛이 닿지 않는 거리에 서서 그 안의 정경을 응시하고 있던 희완의 창백한 뺨으로 날카로운 바람이 지났다. 한 발 뒷걸음질을 친 희완에게 성큼성큼 다가서는 주인이 그대로 팔을 낚아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드륵 열렸던 문이 쾅- 유리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세게 닫혔다.
“…….”
제 앞에 내밀어진 뜨끈한 국밥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는 희완의 젖은 머리카락 새로 발개진 귓등이 비죽 솟았다. 점퍼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도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만 있는 희완의 어깨가 흔들리는가 싶더니 꽉 다문 턱 끝부터 해서 온 몸이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희완이 등장하고서부터 은근히 그를 주시하고 있던 시선들이 멋쩍게 떨어져나가는가 싶다가도 힐긋힐긋 들러붙기를 멈추지는 않았다.
일단 희완을 밥상 앞에 앉혀 놓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 주인이 멀리서 보기에도 확연한 온몸의 떨림을 보고선 왈칵 인상을 구겼다. 빌어먹을, 씹할 새끼들.
희완은 유령이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과거의 뒤안길을 정처 없이 떠도는 산 귀신이었다.
누구도 반기지 않고 누구도 그리지도 않는, 역병- 철저히 부정 쓰인 존재였다.
국밥엔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바들바들, 비 맞은 강아지처럼 움츠린 몸만 와드득 떨고 있는 희완을 모른 척 고개를 돌린 주인이 빈 담뱃갑을 콰직 구겨 쥐곤 쿵 뒷문을 차고 나갔다.
희완은 추위에 떨고 있었다. 소줏집의 따뜻한 온기로도 이길 수 없는 극심한 한기였다.
두 툼한 살코기와 흰 면발이 둥둥 떠다니는 국밥을 코앞에 두고서도 허기를 느끼지 못하는 희완은 그저 춥기만 했다. 달달달 떨리는 몸을 의식조차 하지 못한 채로 희끄멓게 마른 얼굴로 고개만 숙이고 있던 그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 하나가 울컥 드리워졌다.
“…….”
“…….”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학정이 부리부리하게 뜬 눈으로 희완을 노려보고 있었다.
미처 고개를 다 들기도 전에 멱살을 잡혀 위로 끌어 올려졌다.
불에 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뜨겁게 일렁이는 학정의 눈을 마주보며 희완은 그것이 불이라 생각했다. 자신이 꺼뜨리고, 우진이 꺼뜨리고, 또 재를 흩뿌려도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뜨거운 불길.
“대체 왜…!”
왈칵 무언갈 뱉어내려던 학정의 입술이 굳게 다물렸다. 엉망으로 짓이겨진 희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늘 잔잔하게 고여 있던 검은 눈망울이 느슨하게 벌어지며 그 주변으로 운무와도 같은 습기가 번지고 있었다.
무엇도 뱉어낼 수 없었다.
울 것 같은 얼굴로 학정을 올려보던 희완이 제 멱살을 잡은 학정의 손에 제 손을 겹쳤다. 마디가 굵고 단단한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떨어뜨려 놓곤 비척비척 몸을 세워 소줏집을 빠져나갔다.
복잡하게 얽힌 골목길을 정신없이 빠져나와 큰길로 들어서고도 보폭을 줄이지 않던 희완이 우뚝 멈춰 섰다.
“…….”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장대비였다. 순식간에 흠뻑 젖어버린 희완의 눈알도 비에 젖었다.
대체 왜,
“돌아왔어.”
고개를 완전히 뒤로 젖혀 온몸으로 비를 맞는 희완의 주머니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툭 떨어져 발치에 채였다. 밝게 빛을 내며 울어대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그것을 주우려 허리를 숙이던 희완이 그대로 엎어졌다.
갈 곳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