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밥 그릇 속 모래알 같은 존재 둘이 빠져 주니 자연스레 본래의 열기를 되찾아간 술자리의 소란스러움이 건물 뒤 골목까지 실려 왔다. 이번에 새로 페인트칠을 한 건물 벽에 한 뼘 정도 떨어져 서서 담배 연기를 후 불어내는 하준우의 웃음기 섞인 눈알이 정수리를 보이고 있는 후배님에게로 향해 있었다.
“꼰대들 헛소리 들어주느라 귀가 썩는 줄 알았습니다. 이거 고름 든 거 아닌가 몰라, 그렇다면 후배님이 빨아 주셔야겠는데요.”
그 앞에 무릎을 꿇어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침묵만 지키고 있는 희완의 관자놀이를 발로 툭툭 치면 고대로 밀리는 것을 재밌다는 듯이 보던 하준우가 허리를 숙여 빨아 당긴 담배연기를 면전에 대고 후욱, 불었다.
“귀 밑에 쪼가리 붙이고 다니면서 지금 내숭 떠는 겁니까. 연희완 후배님.”
크게 동요하는 대신 턱밑을 조금 당기는 모습에 입술 끝을 비죽 올려 웃는 하준우가 꽁초를 버리고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바 짝 엎드려 기어 들어왔다기에 뭐 좀 바뀐 거 있나 싶더니, 그 버릇은 여직 못 고친 모양입니다. 이번엔 누구 좆 빨아 주면서 비비적거리는 겁니까. 학정 단장이 병신 같이 굴긴 해도 한번 정 떼면 무섭게 군다던데 것도 아닌 것 같고, 그 집안 참 문제에요. 안 그렇습니까, 연희완 후배님.”
“말씀 편히 하십시오, 선배님.”
“그 말 언제 하나 했습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후배님, 이제 나 같은 건 선배로 생각도 안 하나 했다, 이 씹새야. 내가 너 꺼지기 전에 한 말 어따 씹어 먹고 기어 들어와 이 지랄염병이냐, 다리도 누울 자리보고 뻗는다고, 학정 그 병신 새낀 니 뒷구멍 맛이 그리 좋다디? 드런 새끼들, 개똥밭에 구르려거든, 니들끼리 해라, 괜히 똥 묻은 발로 바닥 더럽히지 말고 썩 꺼지라고 이 쌍년아.”
“학정 소속 아닙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냐?”
“아무 소속 아닙니다. 단장님 눈 한번 마주친 적 없습니다. 갈 데 없어 제가 붙은 겁니다. 사람새끼 취급 안 하세요.”
“눈물겨운 충성이다, 헌신짝만도 못한 새끼.”
“죄송합니다.”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고 꺼지세요.”
“죄송합니다.”
“후 배님 지금 내 앞에서 맷집 자랑하세요. 씨발, 깡패 새끼들이랑 붙어먹으면 다 그렇게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오는 모양입니다? 후배님 맷집 좋은 건 지나가는 똥개새끼도 아니까 좆 까는 소리 그만하고 진짜 맞기 전에 얼른 꺼지세요. 너 밟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놈들 일렬종대로 줄 세우면 그 알량한 똥구멍 걸레짝 되는 건 순간입니다.”
더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다문 채 고개를 푹 숙이는 희완의 눈으로 바닥에 떨어진 꽁초를 짓이겨대는 검은 흙발이 들었다. 그 흙발이 하나에서 여러 개로 증식되고 그 기억이 현재에서 과거로 뒷걸음 쳐지는 순간 눈앞이 아찔했다.
불 꺼진 어둠 속에서 가시처럼 쏟아지던 천 개의 눈이 뱅글뱅글 돌며 희완을 짓눌렀다. 조명을 받아 환히 켜진 무대 바닥을 뒤덮은 여러 개의 흙발이 웅크린 몸을 걷어차고 뼈를 부수고 머리통을 깼다. 피가 줄줄 흐르는 머리채를 휘어 잡힌 채 대롱대롱 매달려 양 뺨이 부어터지도록 갈겨 맞고 나서야 뛰어 들어온 스텝들로 인해 잠시나마 숨을 돌렸다가 다시 가운데로 질질 끌려나와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경악한 사람들의 숨죽인 시선은 그 긴 시간 내내 혼이 빠질 정도로 완전히 부서지고 망가진 몸뚱이에 주홍글씨를 새겼다. 머리채를 잡혀 끌려 나가면서 퉁퉁 부은 눈으로 선명히 박혀 들던 동료들의 표정이 생생했다. 그 순간,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했다.
“어이, 연희완이!”
불편한 걸음으로 골목을 빠져나오던 희완이 저를 부르는 소리에 흘긋 시선을 들었다.
노천카페 난간에 팔을 걸치고 앉은 성희가 허옇게 뜬 얼굴로 손을 해적이고 있었다.
“잘 잤냐.”
“밤샘?”
눈 밑이 퀭한데다 꼭두새벽부터 노천에 나와 있는 걸 보니 또 밤샘 작업을 한 모양이었다. 첫 공이었던 어제야 인사치레 차 많이들 좌석을 채워주러 왔을 테니 오늘부터가 본격적으로 성적표 열람하는 날일 것이다. 민감하게 솟아 있는 눈알의 혈관들이 느리게 굴러 희완의 엉덩이 부분을 훑더니 이내 자리를 권했다.
“방석 줄까?”
바로 어젯밤 일인데 그새 소문이 한 바퀴 돈 모양이었다.
“아니.”
“그래, 너 줄 방석도 없다.”
하며 손만 뻗어 안쪽으로 통하는 카페 문을 반쯤 밀어 젖히며 대뜸 소리를 높였다.
“야! 프레즐 두 개하고 완전 단 카페라떼 하나 추가!”
안에서 지갑을 꺼내 계산하고 있던 여자 하나가 힐끔 문밖을 살피더니 추가 주문을 하는 게 보였다.
그럴 거 없다고 가봐야 된다고 하는데 삭신이 쑤신다며 팔다리를 콩콩 두드려대는 성희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너가 갈 데가 어딨냐, 똥강아지 새끼.”
그런다고 학정 단장이 퍽이나 좋아라 하겠다.
말해놓고 좀 지나쳤다 싶은지 말를 돌린다.
“됐어, 쟤 돈 많아. 어디 졸부 집 외딸이라더라, 얻어먹어도 돼. 원래 돈은 있는 년들이 쓰는 거야.”
제 빈대 철학을 설파하며 이미 반 이상 비운 아이스커피를 마저 쪽쪽 빨아 먹는 성희가 기름진 머리카락을 성가시다는 듯 박박 문질러댔다.
“하준우도 그 강퍅한 성질 어디 안 간 모양이지.”
몽둥이찜질을 당한 엉덩이가 불편해 자세를 바꾸던 희완의 눈썹이 슬쩍 들렸다.
“꼰대들 비위 맞추며 잘 나가고 있다더니, 어쩐 일로 여길 다 납시나 했다.”
“기획 쪽으로 나간 거 모르고 있었다.”
“똥개새끼, 그러게 왜 자꾸 빨빨 거리고 돌아다녀. 하준우가 너 그만큼만 잡은 것도 학정 단장 눈치 봐서 그런 건데 뭔 배짱이냐. 이제와 정말 너 써 줄 데가 있을 거라고 기대할 머저리도 아닌 게.”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미련을 떠냐는 거다.
“백 날 청소해주고, 심부름 해주고, 몸종 노릇 해봐야 너 구제해줄 놈 없어. 고맙다, 니가 구세주다, 입 발린 소리, 딱 거기까지야. 니가 한 짓을 생각해라. 하긴 그런 염치라도 있었으면 행여 발붙일 생각일랑 하지도 않았겠지. 유별나게 잘난 낯짝이라 그런가, 징하게 두꺼운 게 내력이긴 한가봐.”
하 준우도 어제 비슷한 말을 했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눈길에 무어라 답을 하려던 성희가 입을 도로 닫았다. 한 쟁반 가득 먹을 거들고 낑낑대는 후배 녀석을 발견한 희완이 일어서서 문을 열어주는 걸 보며 눈살을 찌푸린다. 쓸데없는 친절.
“도우진도 복귀한다더라.”
“정말요?? ‘그’ 도우진?! 근데 저번에 마약사건으로 조사 받지 않았었어요? 일본 진출 한다더니? 여기로 온대요?”
희완이 빼어준 의자에 찰싹 앉으며 호들갑을 떠는 소영이 예쁘게 화장한 눈을 깜박이며 모자를 눌러 썼는데도 이목구비가 도드라지는 희완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이쪽 분은 누구에요, 성희 언니?”
사람 앞에 놓고 저한테 묻는 소영을 어이없는 눈초리로 쳐다보던 성희가 프레즐을 입에 물며 대충 답했다.
“도우진 동생.”
“네에? 정말요??”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오바 육바를 떠는 소영의 입으로 먹다만 프레즐이 밀어 넣어졌다. 꺄아- 언니! 화장 번진다고 말은 못하고 오두방정만 떠는 소영을 웃겨 죽겠다는 눈으로 보던 성희가 힐끗 희완의 눈치를 봤다.
동 생은 무슨, 첫눈에 홀딱 반해서 도우진 바라기를 자처하며 그 뒤만 졸졸 쫓아다니던 희완의 별명이 충견이었다. 도우진 똥개. 그러고 보니, 이제나 저제나 똥개 새끼였군. 멀쩡하게 생겨 갖고. 꾹 닫고 있으면 갈매기 모양의 탐스런 입술이 더욱 도드라져 묘하게 야해지는 희완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왜 자꾸 그를 두고 더러운 뒷소문이 도는지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뭐, 이제는 그런 것들이 죄다 기정사실이 된 것도 같지만.
“한 물 갔다더니, 결국 돌아올 데가 여기 밖에 없었나 봐요?”
사실여부를 떠나서 방금 전 도우진의 동생이라는 소리를 듣고도 저리 지껄이는 소영의 무신경함에 박수를 보낸 성희가 의식적으로 인상을 썼다.
“여기가 재활용센터냐, 한 물 간 놈들만 여기 와? 그게 무슨 말이냐, 똥이냐?”
“아 아, 그래요. 여긴 완전 잘 나가는 빅 스타 중의 빅 스타들이 스스로 굽어 살피사 강림해주시는 초 로열 라운지에요. 하여간 예술 한다는 사람이 똥 되게 좋아해. 언니 며칠 날밤 까더니 엄청 까칠해진 거 알아요? 오빠도 그렇게 생각하시죠?”
언제 봤다고 대뜸 오빠라냐, 이 불여시 같은 것.
설사 저가 나이가 더 많더라도 부득불 오빠라 부를 것 같은 기세로 생글생글 웃는 소영의 예쁜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손도 대지 않은 커피 컵만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희완이 문득 고개를 들었다.
“학정 선배, 아니 단장님도 알고… 계시겠지. 그래.”
“일전에 맥주병 깬 날, 그 전화 받고 핸드폰 박살냈다더라.”
지난 가을.
석 달이 넘어가고 있는데도 모르고 있었다.
갑자기 속이 갑갑해진 희완이 벌써 미지근하게 식은 커피 뚜껑을 열고 단번에 반 이상을 비워 냈다.
“그날 학정 선배 속이 말이 아니었을 걸.”
배 신 때리고 뒤통수 후려갈긴 두 놈 중 한 놈은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들한테 깔개 취급당하며 여기저기서 밟히고 다니지, 한 놈은 제작사 하나 돈으로 매수해 이 바닥 얼굴에 똥칠을 하면서까지 기어코 돌아오겠다고 악을 써대지. 바람 불면 날아갈 새라 애지중지 키운 놈들한테 공개적으로 뒤통수 까인 것으로도 모자라 두고두고 그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하는 학정 선배야 말로 인복도 지지리 없는 불쌍한 인간이었다.
아무리 명문이면 뭐해, 거기서 난다 긴다 하는 두 놈이 다 저 모양 저 꼴인데.
“커피 잘 마셨습니다. 얘기 잘 들었다. 담에 보자.”
“그래, 몸조심해라.”
보아하니 모르고 있었던 모양인데 정신 챙길 여유 없는 놈 치고 깍듯하게 인사 할 건 다 하고 가는 희완의 절룩이는 다리를 힐끔 훑던 성희가 낮게 혀를 찼다. 왜 저러고 사는지 모르겠다.
“유 명한 사람이에요? 이름 한 번 못 보고, 얼굴 기억 안 나는 거 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저 얼굴에 저 키에 학정 이름 나오는 거 보니까 명문 출신인 것 같은데 배우 생활 안 해요? 아니, 그 스펙 가지고 왜 여태 배우를 못 했대요? 학정이면 인맥 쩔 텐데, 연기가 거지같은가?”
“무슨 소리- 오디션도 없이 다이렉트로 주연 꿰차면서 데뷔한 게 저 놈인데. 무대 내리기 전까지 이례적으로 매진 행렬이기도 했었다고.”
“근데요?”
“뭐, 인생 더럽게 꼬인 거지.”
돌 아왔다는 소릴 들었을 때 헛소리 지껄이지 말라 했고, 학정 드나든다는 소릴 들었을 때 미쳤냐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재주 있고 빽 없는 꽃들만 모인 곳이다 보니 물밑으로 알게 모르게 오가는 모종의 딜은 알고도 모른 척 눈감아 주는 게 이 바닥 미덕이었지만 희완이 벌여 놓은 난장은 더럽게 지독하고 무섭게 고약했다.
도우진의 배신에 잇따른 희완의 잠적 이후에도 별일 없이 지내는 것 같던 학정의 속을 누가 알겠는가. 그러니 희완의 복귀에 가타부타 말없이, 저지도 지지도 하지 않는 학정의 애매한 태도에 누구도 반발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대신 추저분하게 괴롭히긴 했지.
맥 주병 약발도 다 떨어져가는데 하준우 라. 기획 진출 후 실세 역할 톡톡히 해내고 있는 그가 손수 각목 잡고 휘둘렀으니 아닌 게 아니라 희완이 몸 건사하는데 앞으로 더 신경 쓸 필요가 있었다. 당장 성희부터가 말이 곱게 나가지 않질 않는가.
그러고 나갔으면 아무데서나 엉덩이 비비고 대충 살 것이지. 대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여길 다시 기어 들어와서 지 몸 축내고 여러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잠겨 있어야 할 문이 열려 있었다.
학정 간판을 열고 계단을 오른 희완은 어쩐 일인지 연습실 문을 열어 놓고도 안으로 발을 딛지 못하고 있었다.
어 젯밤 각목 두 대를 부러뜨리고도 분이 안 풀려 차 트렁크에서 골프채를 꺼내오던 하준우가 체벌을 빙자한 폭력을 멈춘 건 순전히 그의 핸드폰으로 걸려온 전화 한 통 때문이었다. 거꾸로 쥔 골프채를 바로 잡으며 통화를 마친 하준우가 언제까지 버티나 보겠다고, 웃는 얼굴로 머리를 툭툭 치며 희완을 놔줬었다. 움직이기 어려워 근처에서 가장 가깝고 구석진 벤치를 찾아 들어가 그대로 엎드려 날을 새우고 동이 트는 걸 보며 학정으로 가는 길에 성희에게 잡힌 것이었다.
출 입구 왼쪽 벽을 터서 조그맣게 낸 사무실 창으로는 단원인 듯한 시커먼 형체 하나가 소파에 구겨져 코를 골고 있었고 오른쪽 낡은 책장과 스테레오, 책상 등 정리되어 있지 않은 물품은 지난밤 연습의 열기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출입구 맞은편 창문 위쪽 빈 벽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역대 단원들의 사진들 속엔 그도 있었고 학정도 있었고 도우진도 있었다. 그 싸구려 액자들 사이의 정 가운데엔 굵은 글씨로 대충 써 붙인 단훈이 멋없이 덜렁 걸려 있었다. 연기할 기회가 계속 주어진다 생각하지 말라. 학정이 거기 있었다. 새끼들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
희완에게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형, 나는 형이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여전히 저 높은 곳에서 홀로 빛을 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감히 형을 찾아볼 생각도 못하고 살았어요. 형이 내는 빛에 환히 밝혀질 내 치부를 정면으로 직시하는 게 무서워서, 일부러 형을 잊고 살았어요.
학정 형에게 너무 잘못했어요.
여길 떠나고 싶은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형도, 나도 돌아오면 안 되는 건데.
가는 길을 모르겠어요.
그 방법을… 모르겠어요.
우두커니 서서 악필로 남긴 단훈을 한참 올려보고 있던 희완이 기어이 돌아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지나온 인생도 이처럼 되돌아나가는 게 쉬웠다면 사는 게 이리 힘겹진 않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