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별빛달빛-5화 (5/123)

05

소 줏집으로 가는 길에 부스스한 몰골로 어슬렁어슬렁 골목을 누비던 성희를 만나 그대로 업혀 갔다. 무대에 올릴 소품용 소방차를 놓을 데가 없어 잠깐 밖에 내놓은 사이 어떤 빌어 처먹을 새끼가 전 부치고 오줌 갈겨 영역표시 한 것도 모자라 아주 반 쪼개 놓은 걸 밤샘 연습 끝나고 나오는 길에 발견했단다. 오늘이 첫 공이라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밤새 연습 하느라 관이라도 뜯고 들어가 눕고 싶은 심정인데 그 개자식 덕분에 다들 쉬지도 못하고 소방차 만드느라 정신이 없다는 소리였다.

도와달란 말도 없이 희완을 끌고 가 비좁은 연습실에 처넣자마자 한참 소품과 씨름 중이던 녀석들이 거품을 물고 환영했다. 워낙 막일에는 인이 박힌 녀석들뿐이라 시작한지 얼마 안됐다는 거 치고는 얼추 모양이 만들어져 있었다.

“그나저나 어디 가던 길이었냐?”

“위장 채우러.”

망치를 건네주며 무성의하게 묻는 말에 대꾸하니 이번엔 초코파이 하나가 내밀어진다. 오는 내내 성희의 팔에서 달랑거리던 비닐봉지에서 꺼내어진 거였다.

“리허설 몇 시 부턴데?”

“12시.”

포장을 벗겨 초코파이를 한 입에 털어 넣은 희완이 빵빵해진 입을 우물거리며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7시. 당장 배우며 스텝이며 일인 다역을 해야 할 사람들이 잠 한숨 못 잔 채 좀비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각자 망치며 톱이며 나무판자며 하나씩 손에 들고 입에는 초코파이 하나 물고 쿵쾅 거리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단 원들 입에 초코파이를 다 물려주고 페인트 색을 맞추던 성희에게 배우 먼저 골라내라 했다. 그들 먼저 숙식실로 대용되고 있는 사무실 골방으로 들여보내고 남은 이들 중에서 솜씨 좋고 제일 상태 멀쩡한 녀석 둘을 골라 남겨 놓고 나머지 역시 안으로 쓸어 보냈다.

이 런 게 대체 어디 숨어 있다 이제 나타났을꼬. 단장 주제에 너무 피곤해서 안 돌아가는 머리로 좌절해 있다 구세주처럼 짠- 하고 나타나 척척 알아서 교통정리해주는 희완을 그렁그렁한 눈으로 보는 성희를 그냥 두면 달려들어 키스세례라도 할 태세였다. 길에서 주운 요강이 진품명품 1억짜리 고려청자로 밝혀지는 기분이 바로 이런 기분일 거야. 거의 감격 직전의 성희를 별 감흥 없는 눈으로 보던 희완이 스윽 내민 손바닥을 활짝 폈다.

이 게 무어냐고 짐짓 모른 체 하던 성희가 결국 그 크고 아름다운 손바닥에 올려놓은 것은 진열대에 딱 하나 남았던 참치 마요 삼각 김밥이었다. 그것도 마저 한 입에 털어 넣은 희완이 우물우물 하며 그대도 어서 꺼지시라고 훠이훠이 손짓을 하였다. 나머지 두 녀석도 마저 재우려면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공짜표 주겠다는 성희에게 시간대가 안 맞아 다음에, 공연 잘 하라, 하고는 학정으로 향하였다.

소방차 만드느라 시간을 보냈더니 12시 무렵에 학정 연습실에 말단 단원들이 죄다 나와 있었다.

“형!”

“선배님!”

만날 붙어 다녀 석주경이라고 불리면서도 곧 죽어도 비밀연애 한다는 녀석 둘이 이산가족 상봉하는 마냥 희완을 반겼다. 차례대로 꾸벅꾸벅 인사하는 다른 단원들에게도 같이 맞인사를 하며 안으로 들어서는 희완이 사무실 안쪽을 살폈다.

“아직 안 오셨어요, 들.”

“남극에 잡혀 있었다면서요? 황 언니가 연락 주셨어요.”

어 디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런 데서 까다로운 성희가 알아서 한 모양이었다. 사무실 소파 대여비를 청소로 퉁치려 했는데 오늘은 글렀군. 이미 막내들이 말끔하게 치워 놓은 연습실을 흘긋 훑은 희완이 석주가 내민 대본을 얼결에 받아들었다.

“단장 형이 이거 받으라세요.”

어디서 굴렀는지 꽤 너저분한 대본 표지 상단엔 극단 ‘명성’ 로고가 정자로 박혀 있었다.

“멀티맨 대사 다 외우라세요. 빵구 나면 땜방 들어가시라구요.”

멀티맨이 소화하는 역이 총 12역이었다.

“성경에 나오는 12사도도 아니고, 웃기죠?”

“연습은?”

“연락 준대요.”

항시 대기하고 있으라는 소리였다. 언제까지 남의 뒤치다꺼리만 하고 다닐 거냐는 호통소리가 절로 들리는 듯 했지만 희완은 얼른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나 무대 뛰는 건 알고 계시지?”

“네, 그거 언제 끝나냐고 물으시던데요?”

“다음 주 로테이션 돌아.”

그렇게 되면 땜빵이었던 희완은 자연히 잘리게 되는 셈이었다.

“단장님 핸드폰 언제 개통한신대?”

“몰라요, 우리도 성가셔 죽겠어요.”

지난 가을, 술 먹고 턴 돌다 하수구에 빠트리고 나서 영 소식 없는 개통 알림에 울화통이 터진다는 석주 곁에서 열심히 귤을 까고 있던 주경이 예쁘게 까인 알 하나를 희완 입에 통째로 쏙 밀어 주었다.

“선배, 내일은 그냥 가지 마세요.”

“이거 뇌물이었어?”

“전부터 아침 같이 먹으려고 제가 몇 번을 별렀는데요.”

“석주 녀석이 시원찮은가 보구나.”

“그건 그래요- 저 놈이 글쎄… 선배!”

잠시 방심한 사이 어느새 문턱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희완이 우물거리던 귤을 꿀꺽 삼켰다.

“남극, 오늘 5시 첫공이라더라.”

“선배는요?”

“담에 가기로 했어.”

싱긋 웃고는 계단 아래로 훌쩍 내려서는 희완의 머리 위에서 석주가 형! 저 손 말짱해요! 붕대 감은 팔을 붕붕 흔들어 보였다.

중 간에 성희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은행 들를 새가 없었던 희완이 점퍼 안쪽 깊숙이 밀어 넣었던 수표를 나오는 길에 대출계좌로 바로 송금시켰다. 입금 확인증을 가방에 넣고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김밥 두 줄로 점심을 때웠다.

이 동하는 길에 누나와 통화를 하고 중극장에 도착하니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 구석 벤치에 앉아 대본을 펼쳐들고 술술 읽어 내려갔다. 첫 작이라는데 주제, 구성, 문체, 모두 흐린데 없이 뚜렷한 수작이었다. 거기다 대중적인 재미가 분명 있었다. 대본보고 골냈을 학정 단장을 떠올린 희완이 빙그레 웃었다.

괴 팍하고 변덕스러워 친한 동기들도 무서운 똥 취급을 하는 학정 단장이 발붙일 데 없이 쫓겨난 똥개새끼마냥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희완을 이나마 붙여 놓은 장본인이었다. 복귀 초반엔 면전에서 욕질 받으며 부러 끼얹은 막걸리로 세수도 해봤는데 있던 술자리에서 단장이 웃겨 준다며 맨손으로 맥주병 열 댓개를 깬 기행을 보인 이후로 그런 일은 눈에 띄게 줄었다.

잘 돌아왔다, 왜 돌아왔냐, 꺼져라 새끼야. 개중 아무 말도 않은 단장은 다음날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희 완이 한 마디 말없이 사라져 결국 제적당하고 실종 소문까지 돌았을 때도 그를 찾지 않았던 단장은 그 새끼, 올해 군대 상병 달았다더라고요. 소식 들었을 때 홱 돌아 전봇대에 머리 박고 한동안 붕대를 감고 다녔다고 했다. 이 새끼, 물건이고만. 하며 낄낄 웃던 단장은 다시 돌아온 희완과 조우했을 때, 잊고 있던 물건 어쩌다 우연히 찾은 마냥 아무 감흥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게 왜 그리 목에 탁 메이던지.

“일찍 왔습니다?”

“네, 안녕하세요.”

백스테이지로 들던 음향팀 중 한 명이 희완을 알아보곤 인사를 건넸다. 슬슬 다른 스텝들도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 공연 시작까지 세 시간이 채 남지 않았다.

한 주 막공 날이라고 막창 집에 뒤풀이 잡아놨다는 알림에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무대감독이 연출과 배우들을 먼저 데리고 가는 동안 거의 땜방 들어온 일용직들이 마지막 뒷정리를 했다. 일전에 먼저 인사를 건넸던 음향스텝이 같이 안 가느냐고 형식적으로 묻는 말에 감히 거기가 어디라고, 눈치 빠르게 다음에 갑니다, 발을 뺀 이들이 각자 뿔뿔이 흩어졌다. 희완도 가방을 둘러메고 가려는데 음향스텝이 어깨를 잡았다.

“같이 가시죠. 연출 몇 다리 건너 후배라면서요?”

친근하게 붙여오는 말에 희완이 속으로 그랬던가? 성민 선배가 그렇게 붙여 놨다보다 하며 얼결에 눈가를 접었다.

전 화 한 통 하고 가겠다는 음향을 뒤에 두고 안으로 들어간 희완이 통째로 세를 놓아 공연팀으로 시끌벅적한 공간 구석에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뒤집어 쓴 후드를 벗고 대신 야구 모자를 꾹 눌러 쓰곤 아무렇게나 툭툭 뭉쳐져 있는 물수건을 하나 뜯어 손을 닦았다. 기분 탓인지 원래 이 팀 회식 분위기가 그런지 평소보다 더 방방 뜨고 초반부터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였다.

“화 무십일홍이 괜한 말이 아니라니까요. 그 난다 긴다 하는 놈들 죄다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 되는 거 봐요. 씹할- 반반한 얼굴 하나 믿고 그만큼 해 쳐 먹었으면 그것도 감지덕지로 알아야지, 목 뻣뻣하게 세우고 돌아다니는 거 봐요. 이 바닥이 허섭스레기, 오물처리반인 줄 아나.”

“그 인물들이 오면 빈손으로 오나, 마소 여물 주듯 물주 하나씩 끼고 오니 그 탓만 할 수도 없지. 받아주는 놈도 한 몫 하는 건 사실이지.”

“거 상도라고는 쥐뿔도 모르는 개쌍놈의 새끼들이라니까요. 기껏 키워 놓으면 데려다가 사람 병신 만들어 놓고 물건 물리듯이 던져 놓고 또 딴 놈 채어가고. 덜 된 놈, 표 잘 팔면 무대 깽판을 치든, 멀뚱멀뚱 서서 국어책 읽고 나오든 아이고, 내 새끼 이쁘다- 똥구멍이나 빨아주고 있으니.”

연출과 극단 단장의 대화에 매끈한 목소리 하나가 끼어들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아무렴- 선생님들도 얼굴 반반한 쪽이 더 좋죠?”

“하 선생 정도만 돼준다면야- 우리가 이러고 비싼 술 들이키며 노가릴 깔 이유가 없지.”

“그래도 말 들어보면 이쪽이 단장 선생님 말씀만큼 빡빡한 것도 아닌 모양이던데요.”

“예끼, 이 사람이 어디서 그런 몹쓸 소리를 듣고 와서 엄한 소릴 늘어놓는가?”

“영 엄한 소리만도 아니던데요, 누구는 가난한 극단 뻥 걷어차고 억대 계약금 챙겨 토끼고, 누구는 깍두기 깔 노릇하다 공연 도중 난입한 놈들한테 질질 끌려 나가고, 관객 앞에서 하도 당당하게 후려 패서 처음 잠깐은 스텝들도 실제상황인 줄 몰랐다면서요?”

“설마 그랬을라구-”

“아무튼 단장 선생님 말대로 그런 허섭스레기 오물만도 못한 놈들도 이번에 다 받아줬다더만요? 말씀 틀리게 관대하기가 창천대해만 하더라고요.”

“아 무나 다 그러는 줄 아는가? 거 학정 그 놈이 복도 지지리도 없는 놈이지. 재주 있어도 빽 없는 놈들 끌어다 지 팬티 살 돈 꿍쳐다 밥 해 먹여가며 키워 놓으면 뭐해, 다들 지 혼자 잘난 줄 알고 천방지축 염병 떨다 끈 떨어진 신세 되고서야 슬금슬금 기어들어 오는 거지. 그놈이 또 생겨 먹고 알려진 거 마냥 괴팍 모질지가 못해서 그리 미련 떠는 건데 그 마음이야 예전만 하겠나? 잡아 족치지 못해 두는 거지.”

“그런 거 치고는 꽤나 살뜰하게 챙기는 모양이던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연희완 씨.”

그 제야 무언가 분위기가 요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서로들을 돌아보며 연희완? 연희완이 누구야? 수근 거렸다. 아무리 좁다, 좁다 해도 각 사이클 마다 분명한 선이 있고 구분이 있어 알음알음 사건만 알 뿐 정확한 인물은 모르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어느 순간 딱 멎었다.

한 결 다르게 느껴졌던 분위기가 기분 탓이 아니었다. 공연팀에 다른 인물 하나가 귀빈마냥 상석에 끼어 있었다. 테이블 구석에 앉아 연출과 단장의 대화 사이에 젊은 목소리가 끼어든 후부터 푹 눌러쓴 모자에 가린 눈을 물 잔에 고정시켜 놓고 있던 희완이 마른 침을 삼켰다. 목이 마르는 것 같았다. 챙을 더 깊숙이 내리다 저를 향해 정확히 꽂혀 있는 시선을 느낀 희완이 결국 시선을 들었다.

“격조했습니다. 하준우 선배님.”

쓰고 있던 모자를 벗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허리 숙여 인사를 하는 희완의 입술이 바싹 말라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연희완 후배님. 여러 선생님 앞에서 그리 깍듯하게 인사하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저게 누구기에? 하는 연출의 시선을 읽은 하준우가 그의 잔에 술을 채워주며 친절히 일러주었다.

“집 나간 탕아 중 한 명입니다, 연출 선생님. 학정 단장이 새끼 때부터 그리 애지중지 했더랍니다. 덕분에 무대에서 깍두기 썰리는 뒤통수 쳐 맞고서도 여직 정신 못 차린 것 같습니다마는.”

개중에는 희완을 알아본 사람도 있었고 영 못 알아본 사람도 있었다.

기울이던 술잔을 내려놓으며 사람들 눈총 받이로 세워 놓은 희완 쪽으로 힐긋 눈길을 주었다.

“잘 지내신 것 같은데, 후배님도 이쪽으로 오셔서 술 한 잔 받으시지요.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단장, 연출 선생님들.”

“아, 뭐.”

“하하- 둘이 동문이셨구만. 저쪽은 여태껏 한 팀이었는지도 몰랐네만.”

“그 러게, 하도 쥐새끼처럼 숨어 다니는 바람에 저도 이제 알았습니다. 아 참, 얼굴 반반하기로는 저 친구만한 인물도 없지요. 오디션 보러 다녀갔었다면서요, 후배님? 거기가 어디라고 감히 빌붙을 생각을 다 했을까요. 낯짝 두꺼운 것도 저 친구들 속성인가 봅니다.”

그새 다가온 희완에게 옆자리를 내주며 술잔을 내민 하준우가 가득 술을 따랐다.

“그래, 요즘도 맷집은 예전만 합니까?”

아 래, 위 어디든 말입니다. 사근사근 덧붙이는 말에 술잔을 들어 올린 희완이 흘긋 눈을 들었다. 마침 쥐 죽은 듯이 조용해진 곱창집 안으로 들어서던 음향스텝과 슬쩍 눈길을 주고받고 보란 듯이 웃어 보이는 하준우의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마주한 희완은 납득했다. 오늘로 날을 잡았구나. 툭, 목구멍으로 털어 넣어지는 소주가 선뜩하게 속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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