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4화. 저항하는 자 (3)
숭배하듯 위로 뻗은 손바닥에 옷깃이 닿는다. 추락하는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며 사윤의 몸이 아래로 내려앉았다. 놀란 신음이 새어 나옴과 동시에 나룻배가 기울었다.
“아.”
상황을 인지하기도 전에 검은 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질끈, 건주가 눈을 감는다. 나룻배가 완전히 엎어지면서 물소리가 들렸다. 공기 방울이 보글보글 올라왔다.
“허억!”
거친 숨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얼굴이 물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내가 별일을 다 겪지.
사윤은 콜록거리는 건주의 팔을 끌어당기며 나룻배를 붙잡아 도로 뒤집었다. 근육이 보기 좋게 붙은 팔에 핏줄이 솟는가 싶더니 쫄딱 젖은 몸이 수면 위로 주욱 올라온다. 삼킨 물을 뱉어 내며 기침한 사윤이 배 위에 자리 잡은 다음 건주를 끌어당겼다.
“아!”
물 때문에 미끄러워 서로를 놓칠 뻔했다. 그 순간 건주가 내지른 비명에 부지불식간 힘을 준 사윤이 우악스럽게 남자를 끌어 올렸다. 철퍽거리며 젖은 천이 나무에 내쳐지는 소리가 나고 두 사람이 배 위에 나란히 널브러졌다. 어두운 저승의 하늘을 마주하는 입에서 물과 숨이 질서 없이 마구잡이로 흘러나왔다.
“이런 씹….”
현기증이 돌아 미간을 홱 찌푸린 사윤이 건주를 흘겨보았다.
“넌 잡지도 못할 새끼가 그걸 왜 버티고 있어?”
“그럼 그걸 그냥 떨어지게 둬요?”
반박은 곧바로 되돌아왔다. 이젠 물에 빠져도 그 성질머리가 고쳐지질 않나 보다.
수용성이던 성깔이 여전히 남아 있어 눈을 마주한 채로 잠시 침묵을 유지했다. 할 말을 고르는 사이 젖은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넘긴 건주가 사윤의 얼굴을 눈에 담고 입을 달싹였다. 불만스럽게 꾹 눌렸던 입술이 열리며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어떻게 얼굴 보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거예요?”
올 게 왔다.
“그리고, 어떻게 절 거기서 내보내고 혼자 남아 있을 생각을 해요? 제가 어떻게 될 줄 알고 그렇게 함부로 막 공간을 찢고… 내가 분명 같이 가자고… 내가…. 와….”
아직 물에 빠졌다 나온 여파가 가시질 않은 건지, 그저 감정이 차올라 말문이 막힌 건지 몰라도 한건주가 답답한 얼굴을 했다. 한 템포 쉬어 가며 인상을 쓴 남자가 헛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억누르는 게 보여 사윤은 눈살을 구겼다. 물줄기가 흘러내리는 얼굴을 아무렇게나 쓸어 닦았다.
“야. 그래서 네가 나가고 얌전히 있었어? 시발 어디서 뭘 하길래 체력이 닳아? 그리고 네가 왜 여기에….”
“왜 여기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럼 제가 거기서 그렇게 내팽개쳐지고 가만히 있어야 해요? 무력하게 형만 기다리면서?”
말끝에 스스로를 향한 조롱이 따라붙었다. 사윤은 기막혀 목소리를 낮췄다.
“내가 너보고 기다리라 한 적 있니.”
“저도 형더러 거기서 내보내 달라고 한 적 없어요. 오히려 같이 있자고 했지. 그런데 형이 멋대로 내보냈으면서 내가 멋대로 굴면 버릇없는 건가?”
“버릇없는 건 반말하고 있는 지금이 버릇없는 거고.”
“지금 그게 중요해요?”
이게 무슨 저울도 아니고. 한쪽의 목소리가 무거워질수록 한쪽은 격양됐다. 머리를 헝클이며 뉘었던 몸을 벌떡 일으킨 건주가 배 위에 앉은 채로 사윤을 노려보았다. 힐난이 담긴 눈빛은 표독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어 괜한 처연함을 맛보게 했다.
“형 진짜 웃기는 사람인 건 알아요? 그런 식으로 내보내면 내가 납득할 것 같았어요? 내 성격 뻔히 알면서? 왜요. 제가 무섭다고 그것 좀 말했다고 내보내고 싶어서 안달 났나 보지?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서. 형은 절 위해서 그런 거라고 하겠지만 절 위한 게 아니잖아요. 그건 그냥, 형이 절 내보내고 싶었던 거죠.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으니까, 드러내는 게 싫으니까. 여러 상황이 얽혀서 내린 판단이면서 형을 위한 조치에 저를 위했다고 핑계 대지 마세요. 도망치지 말고 좀…!”
숨은 쉬고 말하는 건지 궁금할 정도로 한꺼번에 말을 쏟아 낸 남자가 힘든지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들이켰다. 뒤집어쓴 물을 뚝뚝 흘리면서 얘기하는데 그 물이 강물인지 눈물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눈시울이 조금 붉은 것만 인지됐다.
손등으로 얼굴을 닦은 이가 고개를 숙였다.
“좀, 솔직하게 얘기하면 안 돼요?”
쇠진한 목소리가 젖은 나무 위로 내려앉았다. 천천히 머리를 든 이가 복합적인 감정이 뒤섞인 눈빛을 드러냈다. 화가 난 것 같으면서도 서러움도 얼핏 보이고 연민도 보이며 죄책감도 보인다. 마주하자마자 제 감정을 들이받는 이에 사윤은 당황 말고 그 무엇도 내비칠 수 없었다.
물에 젖은 채로 몸이 굳는다.
분명 하려던 말이 많았는데.
얼굴을 보면 미친 거냐며 화를 낼 생각이었는데 선수를 뺏겨도 제대로 빼앗겼다.
한참을 말없이 침묵 속에서 시선 교환만 하고 있으니 어느 순간 돌연 한건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제가 그런 거래요.”
“뭐가.”
“형이, 그렇게 된 게. 저 때문이래요. 제가 사람을 죽였는데, 형이 그걸 떠안았다고….”
둔기로 머리를 가격당한 기분이었다. 사윤은 다급히 건주의 어깨를 붙잡았다. 거리가 가까워진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코앞에 놓였다.
“너 그 말 어디서 들었어.”
무언가를 확신한 듯한 물음에 건주의 눈동자가 도리어 커졌다.
“알고 있었어요?”
“…….”
“알면서도, 알면서도 절 거기서 내보냈던 거예요?”
흥분이 녹아든 숨소리가 음성에 섞인다. 배신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을 벌리는 이에 사윤은 혀를 차며 그의 어깨를 한 번 흔들었다.
“뭔 헛소리야? 게이트 보상으로 알게 된 건데.”
“…그 난리를 치면서 얻은 보상이, 제가 말한 이 기억이라고요?”
“네가 뭘 들었는지는 몰라도 내가 왜 이 꼴이 됐는지는 봤지. 그래서 넌 어디서 들었는데.”
게이트는 분명 저 혼자 클리어했다. 그 정보가 공유되는 게 아니라면 자신만 알고 있어야 했는데 왜 한건주의 입에서 저 말이 나왔을까.
정보의 출처가 불분명하다. 어디서 들었는지 그 경로를 따라가야 했기에 도끼눈을 뜨고 되묻자 잡힌 어깨를 빼낸 이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누가 알려 줬어요.”
“그러니까 그게 누구냐고. 애초에 너 어떻게 여기 있어?”
질문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서로 대답하지 않고 교묘하게 피했더니 결국 또 쳇바퀴를 도는 거다. 그 사실을 상대도 느꼈던 건지 이번엔 제대로 된 반응이 돌아왔다.
“…퀘스트를 받았어요.”
“또?”
사윤의 언성이 높아졌다. 한건주가 덩달아 신경질을 냈다.
“제가 형이 내보낸 공간에서 여기로 돌아오려면 퀘스트를 받는 수밖에 없었는데 또라는 말이 나와요?”
“시발! 네가 여길 다시 오는 것부터가 이상하지. 거기서부터 잘못됐다는 생각은 안 해? 너 그럼 체력 떨어진 것도….”
말하다 말고 머리가 아파 눈을 감았다.
이거 어떻게 된 건지 일이 뻔히 보이네.
불 보듯 뻔했다. 분명 시스템을 협박해 게이트로 돌아올 수 있는 퀘스트를 받아 개고생하며 여기로 돌아온 거다. 전적이 있는 놈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었고 또 능력이 되었다.
그럼 체력이 떨어진 것도 결국 내 탓인 거네? 그것도 죽기 직전까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시발 그러라고 내보낸 게 아닌데.
휘둘리지 말고 네 인생 좀 살라고 내보냈더니 저 찾겠다고 다시 쫄래쫄래 목숨 바쳐서 들어온 새끼를 어떻게 대하면 될지 모르겠다. 27년을 넘게 살면서 그 누구도 이런 사람을 대하는 방법을 알려 주지 않았다.
무엇 때문에 목이 막히는지 모르겠다. 이름도, 목적도 불투명한 무언가 기도고 식도고 가릴 것 없이 목구멍 전체를 꽉 막고 있어 한건주의 어깨를 놓고 힘을 빼자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게 왜 절 거기서 내보내요? 공동 퀘스트잖아요. 같이 클리어해야 하는 퀘스트였는데 왜 형만 고생하고…. 그 고생도 저 때문에 하게 된 거잖아요. 제가 전생에 잘못해서….”
“입 안 다물어? 너 그래서 지금 뭔데. 네가 신이야? 아님 내가 천사고? 둘 다 인간으로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데 전생이고 현생이고 따질 게 뭐 있어? 그거 따져 봤자 뭐가 달라져?”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해요? 저 때문에 그렇게 된 건데 모른 척해야 하고, 형이 절 내보내도 찾아오지 말아야 하고, 그냥 죽든 말든 지켜보고 그래야 해요?”
“차라리 그러는 게 낫지. 너 나랑 엮여 봤자 여기서 더 좋아질 게 뭔데. 내가 아니라 너한테 좋아질 게 있긴 하니.”
단호히 뱉은 말에 한건주가 입을 다물었다. 턱에 힘이 들어간 게 보일 정도로 이를 꽉 물었다가 주먹을 쥔 이가 고개를 돌린다. 그가 강 너머 검은 숲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천천히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었다.
“싫으면요.”
“뭐?”
“제가 말했잖아요. 전 형을 살리고 싶다고. 돕고 싶다고. 이젠 왜 그렇게까지 형을 돕고 싶어 했는지 이유도 나왔네요. 그러니까 그냥 제가 주겠다는 도움 좀 받고 살면 안 돼요?”
답답하다. 사윤은 눈앞의 남자를 관찰했다. 흥분을 삭이고 보니 꼴이 엉망인 게 보인다. 바닥 쳤던 체력을 어떻게 다시 끌어올린 건지는 몰라도 죽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는데 죽음의 문턱에서 헤매다 넘어온 건 보였다. 모를 수가 없었다. 온 삶이 죽음과 가까웠으니까.
전생은 전생이고 현생은 현생이다. 설령 전생의 선택이 현생에 영향을 끼쳤다 한들 그 선택을 감당하는 건 제 몫이어야 한다. 그가 구태여 함께 감당하려 들 필요가 없어 파문이 이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네가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어.”
“제가 형을 돕고 싶다는 감정이 필요의 이유가 되면 안 돼요?”
어리석은 말이다. 아집에 가까운 말이라 저도 모르게 웃은 사윤이 어느새 제게로 고개를 돌린 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네가 왜 날 돕고 싶어 하는데. 네가 가진 감정, 그거 너 때문에 이렇게 됐다는 죄책감에서 비롯된….”
거 아니니.
내뱉으려던 말이 끊겼다. 셔츠 자락이 형편없이 구겨지는 소리와 함께 몸이 홱 앞으로 끌려갔다. 미처 감지 못한 눈이 깜빡거린다. 시야가 암전되듯이 일순 어두워졌다.
말을 내뱉던 입술 위로 온기가 내려앉는다.
“…….”
광대 위로 손바닥이 올라왔다. 곧게 뻗은 손가락이 볼을 감싸 쥐자 뺨에서 미약한 떨림이 느껴진다. 맞닿은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서서히 온기가 멀어진다. 사윤은 그제야 저도 모르게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방금, 뭐가.
사고를 관장하는 기관이 굳은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못 하고 있는데 흔들림 없는 시선이 꽂혔다. 꼬챙이에 꽂힌 듯 굳어 피하지 못하고 있자 한건주가 다시 한번 몸을 기울였다. 뺨에 닿는 떨림은 그대로다. 이번에도 사윤은 눈을 감지 못했고, 입술 위에는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비누 향인 건지 향수인지 모를 서늘한 향이 훅 끼쳐 온다. 델 듯 뜨거운 숨결이 닿으며 아랫입술을 찍어 누르는 감각이 느껴졌다.
살짝 벌어지고 눌린 입술에 축축한 것이 닿았다. 조심스러운 힘이 살을 빨아 당겨 뻣뻣하게 굳어 있자 틈 사이로 밀고 들어오려 했던 살덩이가 주춤거리다가 물러났다. 맞닿았던 구순이 떨어지고 잔열이 남는다. 천천히 올라가는 속눈썹에 진득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
정적이 이어졌다. 한참을 빤히 주시하던 남자가 귀를 붉히더니 사윤의 어깨 위로 푹 고개를 숙였다.
이마가 어깨에 닿고, 충동을 잔뜩 참은 듯 떨림이 스며든 숨결이 목덜미에 번졌다. 작은 헛웃음 소리가 바람처럼 들렸다.
“이래도 제 감정이 죄책감에서 비롯된 거예요?”
그가 작은 목소리로 묻는다.
“솔직히 저도 긴가민가했는데….”
속삭이듯 얘기한 건주가 숨을 들이켜 사윤의 체취를 맡더니 작게 앓는 소리를 냈다.
“…저 형 좋아하나 봐요.”
져 달라는 항복 아닌 항복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