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빌런에게도 사연이 있다 (259)화 (259/266)

제259화. 잃을 수 있는 것과 잃을 수 없는 것 (1)

대한민국은 난리가 났다. 노아 소속의 헌터이자 아델리아 무덤 공략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다 해도 과장이 아닐 헌터 ‘사윤’이 패스파인더 경매장에 나타나 스콜피언과 부딪쳤다는 소식 이후로 행적이 뚝 끊겨 버린 바람에.

마치 그곳에서 증발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순간 사라져 연락도 닿지 않았고 위치 추적도 어려웠다. 패스파인더 경매 주최조차도 사윤에 대해 함구했기에 일각에선 그가 실종된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중간에 게이트가 열려 사윤이 휘말린 거다, 스콜피언이 사윤과 함께 동귀어진해 전멸했다더라, 미국 헌터 협회가 납치 감금하고 있는 거다, 스콜피언과의 전투에서 패해 타국으로 도망친 거다 등 여러 가설이 돌았다. 막무가내 인터뷰 이후로 이슈 메이커로 자리 잡은 까닭인지 부재로 인한 파장은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제일 먼저 소문이 참이든 거짓이든 기삿거리만 되면 좋아하는 언론이 날뛰었다.

‘사윤 미국에서 실종되다’, ‘한국 협회의 무례한 태도 탓? 사윤, 미국 헌터 협회와 계약 중인 것으로 알려져 한국과의 아쉬운 이별’ 같은 헤드라인으로 기사를 내니 뉴스 기사로 소식을 접한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필이면 사윤이 마지막 인터뷰에서 내놓은 답이 자극적이었던 탓에 불씨는 빠르게 큰불로 번졌다.

그야말로 온 국민이 협회에 책임을 묻고 알 권리를 주장하며 사윤의 실종에 대해 실토하라 횃불을 들고 있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 헌터 협회의 협회장은 일주일씩이나 직원을 들볶고 전화기를 붙잡았지만, 사윤과의 연락은 닿지 않았다. 밤쥐의 다른 간부들에게 연락을 취해 봐도 연결음은 세 번도 안 돼서 뚝 끊기기 일쑤였다.

“협회장님! 제비 길드 쪽 전원 휴가라고 한 달간 운영 중지한답니다!”

설상가상 국민들 앞에 나서기 위해 만들었던 제비 길드도 운영을 중단하고 말았다. 이 타이밍에 전원 휴가라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한 달씩이나? 수작이다. 모든 게 잘 짜인 하나의 계략 같기만 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뒤통수가 안 아릴 수가 있나.

“권사윤!”

협회장이 노기를 터트리며 책상을 내리쳤다. 뱀 새끼가 제 발꿈치를 물고 갔다. 처음부터 이럴 수작으로 들어온 건가? 엿을 먹이기 위해?

어쩐지 그 콧대 높은 사윤이 꽤 순순하게 노아에 들어온다 싶었다.

협회가 놈에게 밉보인 게 있었나.

한국 정부도, 협회도, 거대 길드도 밤쥐 건물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건들지 않았다. 일종의 불문율이었다. 건드리면 무는 놈이고 놔두면 적당히 심심할 때만 심하지 않은 선에서 노는 놈이었으니 자극하지 않는 게 최선이었기에. 9시 뉴스에서 아무리 밤쥐에 대한 얘기가 흘러나와도 입을 다물었다. 밤쥐가 쥔 막대한 정보력도 한몫했다. 잘못 건드렸다가 국가 기밀이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기라도 한다면 어쩐단 말인가.

계륵 같은 길드가 따로 없다. 품자니 독이 있고 남에게 주자니 남에겐 황금을, 이쪽엔 폭탄을 던질 놈이다. 그렇다고 잡으려면 전멸을 각오해야 했다. 그런 사정이 있어 누구도 밤쥐를 감히 건드리지 않았는데 그 배려가 왜 이런 식으로 돌아온단 말인가!

어쩐지 최근에는 얌전한가 싶더라니.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혈압이 너무 올라 실신할 지경이었다.

“어쩌다 한 번 말 들어주는 것도 좋다고 받아들여서 내가….”

나이도 젊은데 곧 죽을 때가 된 건지 저 멀리서 로브를 뒤집어쓴 해골 하나가 손 흔들고 있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책상을 내려치고 있을 때 전화가 걸려 왔다. 밤쥐에서 온 연락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애석하게도 비서의 연락이었다.

-협회장님. 밤쥐 길드 동태 조사 완료했습니다. 사윤이 따로 길드 내에 몸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닌 듯합니다. 밤쥐 길드의 분위기 자체도 흉흉한 게 어쩌면 정말로 실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허.”

밤쥐의 길드원들이 제 수장을 싸고돈다는 건 밤쥐의 수장이 사윤이라는 걸 아는 이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 놈들이 이를 날카롭게 드러낸 채 예민하게 굴고 있다면 보고대로 사윤이 정말 실종되었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왜 하필. 왜 하필 그를 노아로 끌어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단 말인가.

아직 노아로서 사윤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보고에 의하면 스콜피언은 무사히 처치했고 그들의 유물 역시 회수했다고 했는데 대체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리고 협회장님. 문자로 보내 드린 사이트도 한번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협회장, 배민철은 두통을 참아 내고 문자를 확인했다. 링크를 누르자 제목부터 혈압이 오르는 게시 글이 보였다.

[본인 패스파인더 경매장 관계자인데 사윤 한국 협회 때문에 실종됐다는 설이 그럴듯한 이유 알려 줌(인증 추가함)]

일단 지금까지 들린 정보 요약하면 사윤이 패스파인더 경매장에 나타났다가 스콜피언과 싸우고 실종됐다는 거잖슴. 내가 아는 선에서 정확히 설명해 줌.

1. 패스파인더 경매장에 나타났다.

찐임.

처음 경매장에서 딱 봐도 피지컬 좋고 잘생긴 남자 네 명이 같이 들어와서 다들 시선 쏠림. 그땐 누군지 몰랐는데 오늘 논란 뜬 거 보고 아 그 사람이 권사윤이었구나 싶더라. 사윤 얼굴 유명한 건 알아도 관련 사진 올라올 때마다 글 바로 썰려서 정작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는 애들 많잖아. 나도 그중 하나였는데 이젠 왜 그렇게 난리 떨었는지 이해 감ㅋㅋㅋㅋ 진짜 조오오온나 예쁘게 생겼더라. 보면 홀릴 것 같은 인상인 거 맞음. 근데 위험해 보이는 인상.

2. 스콜피언과 싸웠다.

이것도 찐임. 그때 경매장도 비상이었거든. 애초에 미국 거리 분위기 자체가 흉흉했음 ㅇㅇ. 툭하면 스콜피언 문신 한 애들이 길거리 돌아다니고 예전엔 블랙 지역이라도 따로 있었지 이젠 그것조차 없어서 그냥 길 걷다가 스콜피언한테 납치당할 법한 분위기였음. 돈 좀 있는 사람들은 다 경호 업체 고용해서 다니고.

근데 하필이면 이번 패스파인더 경매에서 사막의 형벌이 나왔단 말임. 스콜피언 놈들이 지들 성물처럼 여기던 그거. 그래서 다들 긴장하고 주변에 업체 쫙 깔려 있었는데 스콜피언 새끼들 사막의 형벌 낙찰에 실패하자마자 경호 업체가 나서기도 전에 독 퍼트리고 흉기 휘두르고 지랄 떨더라. 그래서 경매장은 당연히 아수라장 됐고 대부분이 도망치려 기를 씀. 관계자들도 그랬고. 안에 남아 있는 거 사윤 일행뿐이었음. 나도 도망치느라 자세히는 못 봤는데 안에서 싸우는 소리 들리더라.

3. 실종됨.

이게 진짜 의아한 게 사윤이 안에서 싸우고 있는데 경매장 건물이 무너졌거든? 그래서 다 죽었다 생각하고 옆에 난리 나고 그랬는데 갑자기 사윤이 어떻게 잔해 뚫고 올라와서 스콜피언이랑 존나 싸우더니 이기고 사라짐. 기자들이랑 헌터들이 다급하게 쫓아갔는데 못 찾았다더라. 그 뒤로 지금 실종된 거 ㅇㅇ.

근데 사윤이 스콜피언 나타났을 때 반응 개빨랐던 거 생각하면 스콜피언 나타날 거라는 거 미리 알고 있던 거로 보임. 그래서 지금 기사 난 거 토대로 궁예해 보면 협회장이 사윤더러 스콜피언 처치하라고 거기 내보냈다가 동료 다치니까 개빡쳐서 잠수 탄 듯? 그때 건물에 빠졌다가 나온 사윤 일행들 다 어디 한 구석씩은 성치 않아 보였음. 지랑 지 팀 애들 함부로 굴리니까 화나서 그런 듯 ㅇㅈ?

+

(직원증 사진)

인증은 이거면 될 거고 혹시 모르니 댓글 열 개 이상 달리면 바로 지움.

댓글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럴듯한 이유 알려 준다더니 결국 궁예냐? 지도 기레기랑 다를 거 없는데 뭔 씹ㅋㅋㅋ 이딴 어그로 게시 글 쓰는 애도 반응하는 애도 웃기다

└니가 한 건 반응 아님?

 └궁예인 건 맞는데 제일 먼저 침 흘리고 달려와 짖는 니도 정상 아닌 듯

-인증 없으면 뭐다?

└ㄱㅆ 추가함

-진짜 패스파인더 경매 관리자임? 연봉 개쎌 텐데 그런 사람이 커뮤를 왜 함ㅋㅋㅋㅋㅋ

└의사도 커뮤하는 마당에 그게 중요한가

 └아 헌터 정보는 커뮤해야 안다고ㅋㅋㅋ

-헐 혹시 사윤 경매장에서 뭐 샀는지 알려 줄 수 있냐

└ㄱㅆ 그건 말 못 하고 그냥 100억 이상 쓰고 갔다고 보면 됨

 └미친

  └과자 사 먹게 천 만원만 달라고 하고 싶다

   └난 1억

-아니 사윤은 대체 뭐 하는 애임? 저 얼굴이 연예인도 안 하고 갑자기 나타나서 미공략 게이트 클리어하고 경매장에서 100억 쓰고 스콜피언이랑도 싸워서 이긴다고? 이런 사람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서야 지금까지 안 유명했던 게 말이 되나ㅋㅋㅋㅋ

-잠수 탄 거 ㄱㅊㄱㅊ 지금 내 옆에서 함께 있음 우리 신혼여행 즐기느라ㅎ

└미친 건가

-근데 찐으로 사윤 이상하긴 함 대체 뭐 하다 온 사람임?

└나랑 연애하다가 온 사람

 └미치겠네 지독하다 너도

-새끼들 다 논점을 못 잡네ㅋㅋㅋㅋ 그래서 중요한 건 사윤 실종이 협회 탓이라는 거 아님? 소문 들으니까 경매장에 나타난 사람들 다 못 보던 얼굴이라던데 협회 인물은 아니라는 거잖. 인력 지원은 안 해 주고 사윤 혼자 미국까지 보내 사윤 팀 굴린 거 아니냐 나 같아도 빡칠 듯

-협회는 하는 게 뭐냐

-한국 협회의 비리를 파헤치기 위해 압수 수색 해라 그러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비리충이 또

-근데 협회도 진짜 이상하긴 하다. 협회에 이한도 있고 경력 있는 헌터들도 더 많지 않나? 왜 하필 사윤을 보냈지;;

└다른 애들은 스콜피언 못 이길까 봐 그런 거 아님?

 └이한 국내 1위인데ㅋㅋㅋㅋ;;

  └아델리아 무덤 공략 다 사윤 덕이었다고 이실직고함

   └그걸 믿음? 이한이 원래 예의 바르고 남들 공치사해 주고 자긴 뒤로 빠지고 그런 거 잘함

    └22 ㄹㅇ인성갑으로 유명했음

     └이한 국내 1위인 것도 언제 적 국내 1위냐ㅋㅋㅋㅋ 사윤 나오고 나서 랭킹 책정 다시 안 했지 않냐

      └가면남도 잘 싸울 것 같던데

       └미친 새끼들아 지금 이한이 강한지 사윤이 강한지가 중요하냐 달리 말하자면 이한급이 실종된 건데;; 존나 심각한 건데 여긴 분위기 왜 이럼?

        └여긴 원래 이럼 진지한 새끼들이 없음

-그래서 협회장 탓이라고?

-협회장도 진짜 뻔뻔하다 인터뷰 땐 그렇게 사윤 아끼는 척하더니 죽여라 굴린 수준이네. 이쯤되면 사윤 인성이 보살인 듯

└그건 아닌 듯

 └ㅇ?

  └가서 사윤 인터뷰 보고 오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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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0개 달리면 지운다더니 관종이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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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제된 게시 글입니다.)

“이….”

댓글이 달리는 것과 게시 글이 지워지기까지의 과정을 실시간으로 본 협회장이 얼굴을 노기로 붉게 끓었다. 스콜피언 잡으러 가겠다고 한 건 사윤과 자신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덕이었고, 그놈은 미국에 가서 제 카드를 쉼 없이 긁어 댔는데 뭐, 비리? 비리면 밤쥐인 걔를 노아에 들인 게 비리겠지!

“…이걸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인상을 찌푸린 채 앓는 소리를 낸 협회장이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래서 대체 어디 간 거냐.”

밤쥐에도 없고, 제비에도 없으며 미국 협회도 찾을 수 없었다. 정말로 실종된 거라면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손해였다. 화합의 축제에서 그 게이트를 막은 건 사윤이라고 했으니까.

“당최 악당인지, 그냥 성격 더러운 놈인 건지.”

행보를 보면 둘도 없이 잔혹한 놈이 맞는데 최근에는 또 모르겠다. 종잡을 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한 협회장, 민철이 한숨을 내쉬며 몸을 축 늘어트렸다. 일단 뭐가 됐든 사윤이 빨리 돌아오는 게 우선이었다.

그리고 그 시각.

사윤은 여전히 고요한 게이트에 누워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른다. 그저 서 있다가 앉아 있고 그러다가 누운 채로 하염없이 시간을 보냈다.

조용하다.

그래서 좋은 건지, 그래서 나쁜 건지 가늠이 안 가는 순간이었다.

<당신의 페어의 체력이 30% 미만으로 하락합니다!>

벼락이 내리친다.

“뭐?”

누워 있던 사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잘못 본 거거나 시스템 오류였으면 했는데 눈앞에 뜬 새빨간 경고창은 환각도, 오류도 아니었다. 손으로 만지니까 시스템창처럼 터치가 된다. 현실이라는 소리였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알림창을 자세히 확인하자 한건주의 남은 체력이 보였다. 28, 25, 24….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건지 거의 분 단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야.”

설명하라는 뜻으로 시스템을 불렀지만 대답이 없다.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그래, 원래 이런 놈이었다.

“…미치겠네.”

평온하다 못해 텅 비어 공허한 몸 안에 순식간에 불안이 차올랐다. 붉은 피가 흘러내릴 정도로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대다가 칼을 들었다. 다시 한번 일도계양단을 사용해서 나가 보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한건주를 내보낸 것도 기적이었다.

그 고생을 해서 내보냈더니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체력이 닳아.

몸을 함부로 굴리는 건 어디서 배워 처먹었길래.

몇 번 주먹을 쥐어다 펴길 반복했다. 한건주의 체력은 어느덧 20 이하로 떨어져 있었다.

시스템 짓인가?

모르긴 몰라도 놈들이 엮여 있지 않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좆같은 새끼들.”

무력했던 눈동자가 살기를 띤다. 건주의 체력이 기어이 18까지 떨어진 걸 본 사윤이 몸을 틀었다.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흔들리는 눈동자가 검은 공간 전체를 응시했다. 제 취향에 딱 맞게 조용하고, 사람 하나 없으며, 죽어도 시체조차 발견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곳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있어도 괜찮은 그런 곳. 그러나.

한건주가 없지.

멈춘 것 같던 심장이 다시 빠르게 맥동하기 시작했다. 사윤은 빛 무리를 찾아 걸음을 옮겼다.

어떻게 해야 할까.

줄곧 생각했으나 여전히 공란이었던 질문의 답이 이름 석 자로 채워진다.

한건주.

이치에 맞지 않는 오답이었으나 동시에 정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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