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빌런에게도 사연이 있다 (253)화 (253/266)

제253화. 조력자 (3)

각오하지 않고 온 건 아니다. 시스템도 경고했고, 애초에 예정된 탑을 경험해 봤기에 무슨 일이 닥치든 쉽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다. 그렇지만 초장부터 목숨을 내놓으라 얘기하는 건 아니지.

…제압할 수 있을까?

사고의 흐름에 따라 눈길이 뱃사공을 훑었다. 노의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운 건지 바들바들 떨리는 손, 왜소한 체격과 살짝 굽어 있는 등. 제압하고자 하면 이기지 못할 것도 없었다. 건주가 인벤토리에서 무기를 꺼내 들려던 때였다.

스으윽-.

사공이 노를 한 번 크게 젓자 썩은 나무로 만들어진 것 같은 색상의 노 아래가 얼핏 보였다.

낫…?

찰나의 순간이긴 했지만,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은 노의 아래는 분명 낫이었다. 그것도 노인이 타고 있는 배보다 더 큰 날이 달려 있는. 100년 넘게 살아온 고목도 단번에 베어 버릴 정도로 거대했고 날카로웠다. 인벤토리를 터치하던 손동작이 그대로 멈췄다.

제압은 안 되겠다.

본능적인 깨달음이었다. 사윤 정도가 와서 부상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겨루면 모를까 자신은 무리였다. 게다가.

<체력이 1만큼 하락합니다! 남은 체력 79. 이동 속도가 –10만큼 느려집니다.>

체력도 깎이고 있어 평소의 실력이 나오리라 장담할 수 없었다.

S급이 되면 뭐 하나. 혼자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게 없는데. B급일 때도 들지 않았던 자격지심이 S급이 되고 나선 종종 들었다. 강해진 만큼 주변의 환경도 너무 변화해 활약해 볼 틈이 없다. 그러나 한탄은 오래가지 않았다.

“언제는 쉬웠나….”

사윤을 만나고 나서 쉬웠던 일이 단 하나도 없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더니 사람 하나 이해하는 것도, 헌터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몬스터를 죽이고 살아남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S급이 되었는데 이게 뭐 별거인가. 애초에 삶이 힘들다며 투덜거리기엔 이미 너무 힘든 사람을 보았다. 구태여 그와 비교하자면 약과인 시련이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으니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시스템은 여전히 잠잠했고 결국 건주는 손을 내밀었다.

…통과.

노인이 건넨 손을 맞잡더니 배에 올라타라는 듯 고갯짓했다.

이게 끝인 건가?

생명을 대가로 내놓은 것치곤 별 타격이 없었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아 미심쩍게 여기며 손을 빼냈을 때였다. 매끄러웠던 손등이 순식간에 노인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변했다. 손목 위부터는 괜찮았으나 딱 손등까지는 영락없는 100세 노인 수준으로 노화되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아 잠시 당황하고 있으니 시스템창이 떴다.

<경고! 영혼 수치가 5만큼 하락하였습니다. 육신의 균형이 무너집니다!>

<영혼 수치가 80 이하로 하락할 경우 저승이 당신의 육신의 ‘제어권’을 갖게 됩니다. 조심하세요!>

<경고! 균형이 무너진 육신은 작은 충격에도 영혼 수치를 잃을 수 있습니다.>

조심해야 할 게 하나 더 생겼다는 알림이었다.

체력과는 또 다른 건가. 속으로 중얼거리며 배 위로 올라타니 시스템이 알림창 하나를 더 띄워 보냈다.

<영혼 수치가 모두 하락할 경우 당신의 영혼은 소멸합니다.>

꽤 중요한 설명인 건지 드물게도 굵은 글씨로 소멸이 강조되어 있었다. 체력이 모두 하락해 영혼이 저승에 귀속되는 거랑은 확실히 다른 루트인가 보다.

정리해 보면 체력이 모두 하락하면 죽어서 저승에 머물게 되고 영혼 수치가 모두 떨어지면 아예 소멸한다는 건가.

사실 죽게 되면 거기서 거기가 아닐까 싶었지만 무조건 부활 능력을 지닌 아이템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뭔가를 잃게 된다면 되도록 체력이 잃는 쪽으로 해야 했고, 그보다 더 안전하게 가려면 전투 등의 불필요한 체력 소모가 있을 일은 피해야 했다. 시스템도 그걸 노리고 균형이 무너진 몸은 작은 충격에도 위험하다며 경고창을 띄운 듯했으니 마음에 들진 않아도 이번만큼은 놈들의 의도대로 따라 줄 수밖에 없었다.

두 발을 완전히 배 위로 올리자 사공이 노를 저으며 출발했다. 그래도 5만큼 가져가서 다행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행을 불러왔다.

생명.

얼마 가지도 않았는데 노인이 다시 뒤를 돌더니 뱃삯을 요구했다.

“오를 때 드렸지 않습니까.”

안 낼 거면.

끊어 말한 노인이 길게 자란 손톱의 끝으로 강둑을 가리켰다. 내리라는 말이었다.

노망이라도 났나.

미간을 찌푸려 봤으나 건주를 바라보는 노인의 눈빛은 무생물을 바라보듯 차가웠다. 노인이 손을 들어 올린다. 삯을 내지 않으면 쫓아낼 듯한 기세를 심상치 않게 풍기는 이에 마지못해 손을 내밀었다. 바가지 씌운다고 해도 뭐 어쩌겠나. 지금 상황에서는 이쪽이 철저한 을이었다.

<경고! 영혼 수치가 10만큼 하락했습니다. 남은 영혼 85.>

<죽음의 통솔자가 당신의 영혼에 눈독을 들입니다!>

체념하면서 냈다가 이어 뜬 알림창에 눈을 크게 떴다. 눈 뜨고 코 베이는 게 이런 건가. 노인은 무려 조금 전 낸 양의 두 배를 삯으로 가져갔다.

그냥 제압하고 노를 차지할까 생각도 해 봤지만 불리하다. 시도할 거면 영혼 수치가 하락하기 전에 해 봐야 했는데 지금 싸우면 십중팔구 꼴사납게 진 다음 배에서 쫓겨나고 영혼 수치는 영혼 수치대로 깎일 게 분명했다.

판단을 잘못 했다. 이럴 때 사윤이 곁에 있었다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헌터는 가오에 죽고 사는 거라며 한번 달려들어 봤을지도 모르겠다.

한숨을 내쉬며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에 주저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꿈도 희망도 없이 우중충했으나 빛은 있었다. 사윤과 갇혔던 공간과는 여실히 달랐다.

당신은 그 안에서 뭘 하고 있을까.

자신처럼 무력하게 앉아 있을 수도 있었다. 안 그런 척 보여도 속은 많이 썩은 사람이었다. 옆에서 자극해 주는 무언가가 없으면 뛸 생각이 없을 만큼 지친 상태로 보였으니 충분히 가능성 있다. 혹은 세월이 만들어 낸 그 집요한 광기로 어떻게든 혼자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후자였으면 좋겠는데.

어떻게든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려 했지만 후자일 가능성은 미약하다. 시체처럼 누워서 멍하게 있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당장 그 곁으로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최근에는 나아진 것 같았는데.

건주가 보기에 사윤은 지독한 우울증 환자였다. 아무렇지 않아 보여서 안심하고 잠시 자리를 비우면 그사이 자살 시도를 할 사람. 이럴 땐 사윤이 불사의 능력을 갖게 된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불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어서 그런지 솔직히 조금은 다행이라 생각되었다. 사윤을 앞에 두곤 결코 말할 수 없는 얘기였다.

‘네가 뭐라고 예상했는진 모르겠는데 그거 나도 알고 있는 이름 맞아, 건주야.’

‘시스템이 강제로 부여한 내 성향이 딱 그런 이름을 하고 있는데 모를 수가 없지.’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가령 환영회의 밤에서 모든 걸 다 가졌을 사람이 왜 순간적으로 속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해 보였던 건지, 일인 군단이라 칭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의 무력을 갖췄으면서 왜 필드에서 밤잠을 이루지 못해 앓는 소리를 냈던 건지, 보여 주기 식의 소비 말고는 왜 식욕도 물욕도 크게 드러내지 않아 모든 욕구가 거세된 것처럼 생활하는 건지.

사윤은 사윤 그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사는 일이 드물었다. 과장되듯 소비를 하는 것도 오로지 보여 주기 위함이다. 과시욕이 아닌 아직 내가 이렇게 건재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표현과도 같아 가끔은 마음이 술렁거렸다.

어떨 땐 그가 속죄하며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않고 사흘 내리 공복 상태로 있는 경우도 심심찮게 잦았고, 게이트 등을 들어가지 않을 때면 몸을 쉬게 하지 않으려는 듯 일에 매달렸으며, 종식 등의 주변 인물들이 그걸 못 하게 만들면 방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하루 쉬는 날이 있었을 때 건주는 사윤의 방 문을 열고 그의 상태를 눈에 담은 적이 있었다. 오전에 창밖을 보고 있던 이는 밤이 깊은 시각에도 변함없는 자세로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꼭 주변의 모든 것만 흐르고 그 혼자 멈춰 있는 것처럼. 사윤은 종종 전투 중일 때의 자신이 미쳤다 칭하지만 건주가 보기엔 그때만큼 사윤이 제정신이 아니게 보인 적이 없었다.

다른 의미로 오싹했고 두려웠다. 그대로 사라질 사람 같아서.

살아 있을 때는 요란하게 구는 그 사람이 정작 휴식을 취할 때는 죽은 듯 고요해, 그의 죽음 역시 아무도 모르고 저렇게 고요하게 이루어질 것 같아서.

그래서 처음으로 사윤을 보며 겁이 났었다.

이제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안다.

환영회의 밤에 왜 그런 표정을 지었고, 왜 잠에 들지 못해 불면증을 달고 사며, 왜 남들의 눈앞에서는 멀쩡한 척을 하는지. 왜 자신을 보면 그렇게 갈구하는 듯한 시선을 보내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혼자서 체념하는 건지, 왜 간간이 정신이 오락가락해 혼잣말로 이름 모를 사람들을 부르는 건지.

이제는 알았다.

그러니 그를 살리려 이렇게 애를 쓰는 것이다.

그가 여태껏 살아온 것은 제대로 된 ‘삶’이 아니었으므로.

지은 죄가 있다고 한들 그는 만들어진 악이다. 근원이 따로 있었는데 그가 그렇게 형벌을 짊어지고 살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사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로 죽지 못해 숨을 이어 가고 있는 것과 다를 거 없었으니. 그렇기에 죽음을 갈망하는 그의 심정을 이해한다. 하지만 당신이 한 번쯤은 제대로 살아 봤으면 좋겠다.

내가 알던 악과 당신은 다르니까. 필드에서 봤던, 스스로 추락한 사람들과는 달랐으니까.

이 옹호마저 죄라면 함께 죄를 짓고 죽는 날 벌을 받으러 가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불쑥 강가에서 솟은 손이 비명을 내지른다. 건주는 그 풍경을 외면하지 않고 지켜보다가 삯을 달라는 노인의 손동작에 한 번 더 값을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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