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2화. 진정한 인류의 악 (1)
공간과 공간 사이를 넘어가는 감각에는 익숙해진 지 오래건만 드물게도 멀미가 났다. 현기증이 둔기가 되어 머리를 묵직하게 치고 가 관자놀이를 짚는다.
사방이 암흑이다. 천지 구분이 안 되도록 온 공간이 새카맸다. S급이 자랑하는 뛰어난 신체 능력마저도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 보이는 것이 없어 본능적으로 손이 움츠러들었다.
힘이 들어간 손에 타인의 온기가 느껴진다. 한건주의 것임을 알아차린 사윤이 안도를 삼켰다.
그래도 떨어져서 들어오진 않았네.
간혹 일행들을 뿔뿔이 흩어 놓는 악질적인 게이트가 있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그 수를 피해 간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시스템창을 본 사윤은 삼켰던 안도를 다시 뱉어 내야 했다.
<특수 게이트 ‘진정한 인류의 악?’에 입장하셨습니다.>
<시련을 클리어해 파편을 획득하세요.>
<진실 파편(0/7)>
<파편을 모두 모을 경우 천기의 일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진실 파편…?”
한건주가 의아함을 드러내고 중얼거렸다. 같은 것을 봤나 보다. 사윤은 낯선 문장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익숙한 것에 시선을 꽂았다.
천기.
이재희 덕에 이젠 낯설거나 새삼스럽지 않은 것이었다.
뭐가 됐든 저 파편이란 걸 모으면 이재희가 자기 혼자 보고 치운 미래를 나도 볼 수 있게 된다, 이거지.
마침 궁금한 게 많은 참이었으니 잘되었다. 왜 하필 자신이었는지, 혹은 어떻게 해야 이 생활을 청산하고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알게 된다면 어떤 값을 치러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처음 보는 형식이고 또 처음 겪는 구조의 게이트였지만 클리어하지 못할 거란 예감이 들지 않았다. 무슨 시련이 나오든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혹독한 고난 속에서 생존한 덕인가 보다.
이럴 때는 또 험하게 살아온 게 도움이 되지.
입꼬리 끝에 자조가 걸렸다. 한건주만 지켜 낼 수 있다면 설령 L등급의 몬스터가 나온다고 한들 처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뒤따라왔다.
그렇게 잠시 어둠 속에 가만히 있었다. 알림창이 떴으니 슬슬 뭐가 나타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추측과 달리 어둠을 가르고 등장하는 몬스터 같은 건 없었다. 뒤통수를 맞은 전적이 있어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어도 그 시간이 10분쯤 되자 지루해졌다.
“뭔 게이트가 이따위야.”
나오는 적도 없고, 펼쳐진 풍경도 없고. 그저 지독한 어둠과 적막뿐이었다. 불길한 낌새라든가 불온한 기운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아 도리어 섬뜩했다. 신경이 날카로워져 짜증을 토하니 손을 맞잡은 상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일단 탐색이라도 해 볼까요.”
“그래야 할 것 같다.”
긴장이 풀리기 전에 뭐라도 맞닥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의견에 동의하고 걸음을 떼었다. 천장인지 바닥인지 모를 곳을 걸었다. 앞뒤 구분이 안 되는 길을 마음대로 개척해 나가고 있으니 누군가 손을 끌었다.
“저쪽.”
간단한 지시를 따라 발을 옮기자 반짝거리는 빛이 보였다.
“…….”
주먹만 한 크기의 빛 무리가 어둠 속에서 부유하고 있다. 감성적인 누군가가 봤다면 아름답다 경탄했을지도 모르는 찬란한 빛이었으나 사윤과 건주는 침묵을 지켰다.
그도 그럴 게 그 빛은, 둘에겐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덮어 두었던 장면들이 짜깁기되듯 떠오르며 눈앞의 풍경에 오버랩된다. 멸망한 도시 리플레이로 들어가기 직전의 광경이 펼쳐졌다. 그때도 딱 저런 빛을 건드렸다가 그 망할 던전에 들어갔었다.
암시인가? 그때와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거라는?
욕이 절로 치밀었다. 순탄할지도 모를 거란 기대감이 단숨에 증발되고 그 자리를 심장을 쿵쿵 자극하는 불안이 메꿨다.
“…어떡할래요?”
“어떡하긴 뭘 어떡해.”
마찬가지로 불안했던 건지 조금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 정신을 다잡았다. 자신이라도 덤덤해야 했다.
대수롭지 않은 투로 답한 사윤이 빛을 향해 성큼 다가갔다.
“어차피 선택지도 없어.”
그러곤 건주의 체온을 놓고 빛 무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검지의 끝이 닿자 물방울이 터지듯 톡, 하는 맑은 음이 울려 퍼지며 파장이 번졌다. 고인 물 위로 새 물방울이 떨어질 때처럼.
직후 빛이 사윤을 집어삼킬 듯 달려들었다.
휘익!
반사적으로 휘두른 검은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하고 애꿎은 허공만 가른다.
“형!”
당황한 외침이 들리고 시야가 빛에 먹혔다.
* * *
「으….」
「왜 그러니?」
「이야기가 너무 찝찝하잖아요. 악당이 불쌍해 보여서 기분 나빠요.」
시발.
신음이 들렸을 땐 긴가민가했던 것이 투정 부리는 듯한 목소리에서 확실해졌다. 여전히 빛만 가득한 시야에서 목소리들은 LP 음반을 재생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꾸준히 이어졌다.
「악당은 불쌍하면 안 돼?」
「악당은 나쁘기만 해야죠. 나쁜 사람들인걸요. 불쌍한 과거가 있었다고 하면 괜히 측은지심을 품게 되잖아요. 그럼 찝찝해요」
「뭐야, 우리 사윤이 측은지심이란 단어도 알아?」
기특하다며 웃어 대는 목소리가 어둠을 밝힌다. 그래, 저런 웃음이었다. 저런 목소리였고 늘 저런 빛과 온기를 품고 있던 사람이었다.
딱 여기까지.
이 이상은 안 된다. 머리에 드릴을 꽂아 넣기라도 한 것처럼 두통이 닥쳐 신음한 사윤이 눈을 감았다.
「그럼 사윤이는 뭐가 좋은데?」
두 손을 들어 귀를 틀어막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이전까지만 해도 무엇이 닥치든 괜찮을 거라 자부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바닥을 뒹굴어 손끝이 떨렸다.
「저는 무자비한 악당이 좋아요. 그리고 전 악당을 물리치는 히어로가 되는 거죠.」
앳되기 짝이 없는 음성은 철없이 느껴졌으나 웃음소리는 그 철없음마저 기특함에 포함시키는 듯했다. 이윽고 빛으로 가득했던 시야에 안개가 피어오르면서 형상이 펼쳐졌다.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보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안간힘을 써 고개를 흔들었다. 시선을 바닥으로 깔았다. 그러다.
「장하네.」
그 목소리가 들렸을 때 움직임을 멈춘 사윤이 입을 달싹였다.
봐선 안 된다는 걸 안다.
보면 흔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간 떠오른 기억 속의 얼굴은 늘 검은 먹을 칠한 듯 시커멓기만 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햇살이 내리쬐는 소파 위에서 웃고 있는 모자가 보인다. 더없이 다정하고 또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 일곱 살 남짓 돼 보이는 소년을 품에 안은 여인이 더 바랄 게 없다는 듯 환히 웃고 있었다.
다정한 눈빛이 햇빛 사이로 스며들어 아이를 덮는다. 주름 하나 없는 얼굴을 마주 본 사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대로 세상이 뒤집혔다.
「키에에엑!」
평화로웠던 순간은 어디 가고 시끄러운 몬스터의 괴성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파열음과 함께 유리 파편이 튀었다. 혼란 속에서 두 명의 성인 남녀가 아직 어린 티가 나는 소년을 번쩍 들었다.
「나오지 마, 사윤아. 거기 있어야 해. 알겠지?」
소년을 옷장 안으로 집어넣은 여인이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그가 한 번 더 당부의 말을 전했다. 절대 나와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는 모습에 소년은 겁에 질린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끼익. 옷장의 문이 닫힌다. 한 번 더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늪에서 올라온 듯한 괴물이 방 안에 들이닥쳤다.
풍경이 서서히 좁아진다. 마치 조그마한 틈으로 엿보는 것처럼. 이윽고 펼쳐진 장면은 두 개로 나뉘어 옷장 안에 있는 소년과 옷장 밖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남성이 골프채를 과격하게 휘둘렀으나 단단한 철은 마치 얇은 철사라도 되는 양 타격당한 모양대로 형편없이 휘어졌다. 작은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한 공격에 남자의 얼굴로 절망이 드리웠다. 이윽고 거대한 주먹이 그를 벽으로 날려 보냈다.
「여보!」
놀란 여인의 음성이 그 뒤를 잇는다. 칼을 틀어쥐고 감행한 반격은 허사가 되었고 여인 역시 발에 차여 날아갔다. 그 방향이 옷장이라 커헉 하는 신음은 소년에겐 너무 크게 들렸다.
사윤의 눈이 떨렸다.
이럴 리가 없는데.
믿기지 않는다는 듯 시선이 한 장면에 고정된다. 장면 속 소년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옷장 틈 사이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옷장으로 날아갔던 여인은 이대로 있으면 제 자식이 위험하다는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늑골이 부러졌을 텐데도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 발버둥을 인지한 괴물이 여인의 발을 붙잡는다. 몸이 바닥에 끌리고 여인의 시선이 옷장으로 향했다.
틈새가 좁아 소년을 보지 못했을 게 분명한데도 여인은 꼭 눈이 마주친 것처럼 절망적인 탄식을 뱉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소년이 입을 틀어막았다.
「사윤아.」
질끈 소년이 눈을 감는다. 그대로 영상물처럼 재생되었던 장면도 암전되었다.
탕탕! 총소리가 들린다. 알 수 없는 소란이 한바탕 일어난 뒤 다시 켜진 화면에는 총을 든 남자가 숨을 고르며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소년은 흐느꼈다. 남자가 다가와 울음이 새어 나오는 옷장을 느리게 연다. 소년의 시야에는 혈흔이 낭자해 엉망이 된 바닥과 벽에 기댄 채로 꼼짝도 하지 않는 제 아버지가 놓였다. 그 모습을 멍하게 지켜보던 소년의 눈을 이름 모를 남자가 가렸다.
「…아저씨랑 가자.」
뚝.
모든 소리가 끊겼다.
“형!”
“허억!”
사윤은 물에 빠졌다가 건져진 사람처럼 숨을 거세게 들이켜며 기침을 내뱉었다. 빛이 가득했던 시야는 다시 검기만 하다. 쓰러졌던 건지 자신의 몸이 비스듬히 기울어져 있는 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손이 얼굴을 더듬고 그 얼굴 위로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진실 파편 1을 획득했습니다.>
<진실 파편 1/7>
<시련을 클리어해 파편을 획득하세요.>
잔인하게도 무뚝뚝한 문장이었다. 감전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잘게 떤 사윤이 저를 붙잡는 손길에 의지한 채로 눈을 감았다. 핏물인지 경멸인지 모를 것이 울컥 올라온다. 허리를 숙여 그것들을 뱉어 내고 목을 움켜쥔 사윤이 조금 전 자신이 건드렸던 빛이 있던 곳을 충혈된 눈으로 응시했다.
…못 봤던 게 아니다.
그날의 자신은, 옷장 속에서 아무것도 못 본 채로 숨죽여 있었던 게 아니었다. 그렇기에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던 거다.
제 기억은 왜곡됐다.
그 사실을 인지한 사윤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시스템 알림을 쳐다보았다.
<진실 파편 1/7>
<시련을 클리어해 파편을 획득하세요.>
이제는 저 파편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못 해 시발.
시간의 흐름대로라면 다음 장면이 무엇일지 예측이 가 손이 떨렸다. 눈동자가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릴 때 부드러운 손이 얼굴을 붙들었다.
“형. 저 좀 봐요.”
“…….”
“사윤 형.”
재촉하는 부름에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돌렸다. 저를 불안하게 내려다보는 눈빛이 그곳에 있었다.
“…괜찮아요?”
조심스럽기 짝이 없는 질문과 함께 옷소매를 들어 올린 남자가 입가를 닦아 주었다. 개 같은 풍경을 보고 온 건 자신인데 그가 더 힘들어하는 표정이었다. 대체 뭘 본 거냐는 물음을 애써 참고 있는 듯한 표정이 안쓰럽다. 자신이 무력한 상황이라는 걸 직감하기라도 한 것처럼 안절부절 초조해하는 모습에 사윤은 혀를 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래서 둘을 들여보낸 모양이지.
혼자였으면 안 하겠다고 배 째고 누웠을 텐데 한건주가 있으니 그리할 수 없었다. 저 혼자라면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이 게이트에 남아 있을 수 있겠지만 한건주는 아니었다.
그는 이미 지독한 게이트에 갇혀 있다 나왔지 않은가.
으득거리며 입술을 짓뭉갠 사윤이 비틀, 몸을 일으키자 건주가 곧바로 사윤의 팔을 붙잡고 제게 기대게 해 흔들리는 몸을 지탱했다. 호흡을 갈무리한 사윤이 천천히 발을 옮겼다.
아직 여섯 개의 파편을 더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