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3화. 전갈 사냥 (6)
“쿨럭, 쿨럭!”
흙먼지를 들이켠 탓에 목 안이 깔깔했다. 얼핏 피 맛도 나는 것 같아 인상을 쓰며 주위를 둘러봤다. 콘크리트가 머리를 찍기 직전 스킬을 펼쳐 압사는 면했지만 상황이 좋지 않았다.
사방이 잔해 더미였고 일행들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거리가 너무 멀어 감지되지 않거나, 죽었거나, 콘크리트가 감각을 방해하고 있거나 셋 중 하나였다.
골치 아프게 됐네.
차라리 한데 모여 있었으면 편하겠는데 이런 식으로 홀로 떨어져 버렸으니 과감히 행동하기도 뭐했다. 네 평도 안 되는 곳에서 운신할 공간 좀 넓히겠다고 힘을 쓰면 2차 붕괴가 올 수도 있었으므로. 저 하나 살 순 있지만 일행들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는 거다.
이도 저도 못 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치민 분노는 고스란히 멀쩡했던 건물을 폭파시킨 놈들에게 향했다.
빌어먹을 놈들 같으니.
비열해? 누가 누구더러.
웃기지도 않았다.
경매에서 지면 어떻게든 사막의 형벌을 빼 가려 할 줄 알았는데 설마 길드원과 함께 매장시킬 줄이야. 데른을 위해서라도 목숨 걸고 유물을 챙기려 할 줄 알았는데 그 반대다. 유물이 놈들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아 포기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어지간히도 간절했나 봐.
제가 살아 그들의 조직을 와해시키는 게 겁났다는 걸 고스란히 보여 주는 선택이라 이죽거린 사윤이 아래를 바라보았다. 잔해 더미 아래 깔린 사람의 손이 보였다. 폭사당한 건지 압사당한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스콜피언 놈들의 사체였다.
으스러진 손을 보고 있으니 등골이 서늘해졌다. 사람 시체 하루 이틀 본 게 아닌데도 속이 울렁거리는 게 느낌이 영 이상했다.
안 좋은데.
이런 예감은 좋지 않았다. 일단 한건주와 이재희, 한경진, 옌을 찾아야 했다. 그런 다음 여기를 나가야 했는데….
“…밖으로 나가도 놈들이 포진해 있을 테지.”
시발.
사윤이 거칠게 머리카락을 헝클였다. 산 너머 산이다. 놈들은 이번에야말로 간부들과 함께 몰려왔을 텐데 기진맥진해진 상태로 싸우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체력을 소모하며 이 건물을 빠져나가는 게 중요했다.
손을 휘저어 흙먼지를 날리고 목을 울렸다. 이런 식으로 붕괴에 휘말린 적은 처음이었지만 설마 죽진 않을 거였다. 가장 허약한 경진이 위태롭긴 했으나 곁에 이재희가 있었으니 뭐라도 했을 거고, 옌은 알아서 잘 살 놈이었다. 한건주도 그렇다. 그런데도 계속 심장이 빨리 뛰었다. 독에 뒤늦게 중독당한 건가 싶을 정도로.
“한건주!”
이름부터 불렀다가 아차 싶어 페어링을 확인했다. 은색의 반지에는 어떠한 표식도 보이지 않았다. 페어가 위험하다는 알림창도 안 뜬 걸 보면 살아 있다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다른 경우도 배제할 순 없었다.
즉사는 알림이 뜨지 않았으니까.
“한건주!”
사윤이 발을 떼었다.
대답이라도 돌아오면 후련할 텐데 그렇지 않으니 조금씩 숨이 막혔다.
그렇게 지키려 노력했는데 만약 잃었다면.
내가 널 잃었다면.
두 손바닥 사이에 심장을 끼워 넣고 터질 때까지 짓누르는 듯했다. 그 느낌이 계속되었다. 빙벽이 된 콘크리트를 손톱으로 긁으며 주먹을 쥔 사윤이 다시 한번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한 번 더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기분 탓이 아니다. 정말로 숨이 조금씩 버거워지고 있었다.
“아.”
시발, 산소.
각성자이기에 숨 몇 분 못 쉰다고 죽지는 않았으나 그래도 10분이 넘어가면 위험했다. 각성자라 해도 일단 사람이지 않나.
안 그래도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하는데 갑자기 시간 제한도 걸린다. 인생이 재난인데 여기서 더 찍을 재난물이 있었나 싶어 자조적인 웃음을 흘린 사윤이 입술을 짓씹었다. 눈동자가 흔들리고 머릿속이 소란스럽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하던 순간 쾅! 벽이 울렸다.
“형님? 거기 있어?”
경진의 음성이었다.
“한경진!”
곧바로 이름을 부르며 소리가 난 벽으로 달려가 외치자 누군가 중얼거리는 음성이 희미하게 들렸다. 콘크리트 너머로 경진이 계속해서 벽을 쳤지만 그의 힘만으론 무리였다. 사윤이 칼을 빼 들고 벽을 깎기 시작했다.
망치질하듯 찍는 방법도 있긴 했으나 그 방법은 충격이 너무 컸다. 건물 전체를 얼릴 게 아니라면 붕괴의 위험을 피할 수 없었으니 지금처럼 주변만 얼리고 공략 부분을 깎아 내는 게 나았다.
한 번 깎을 때마다 한 덩이씩 벽을 긁어낸 사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힐 때쯤 벽에서 부서진 돌이 후두둑 떨어지며 좁은 구멍이 생겼다. 주먹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으로 경진의 눈이 보였다.
“한경진! 너 상태 어때. 멀쩡해? 주변엔 누구 있어.”
다급함에 말이 빨라졌다. 다행히 사람 피 말려 죽일 생각은 아니었던 건지 대답은 곧바로 돌아왔다.
“우리 쪽은 콘크리트 틈이라서 멀쩡해. 재희 형님이랑 같이 있고. 형님은. 형님은 괜찮아? 시발 그거 머리에 피 아니야?”
“아.”
경진이 얘기하고 나서야 콘크리트가 낙하하며 부서진 잔해에 타격당한 기억이 살아났다. 이마로 손을 뻗으니 축축했다. 손바닥이 온통 붉은색이라 혀를 한 번 찬 사윤이 뭘 새삼스럽게 놀라냐며 경진을 먼저 안심시키고 구멍을 확인했다.
“이거 넓힐 테니까 넘어와. 거기가 틈이라면 2차 붕괴 때 더 위험해.”
괜찮다는 말을 들어 조금은 안심됐다.
“이재희. 너도 도와.”
명령과 함께 다시 벽을 깎아 내기 시작하자 벽 너머에서 무언가 헥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숨소리의 규칙을 파악해 보니 라이였다.
짐승과 사람이 협력해 벽을 두들기고 깎으니 구멍이 서서히 넓어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람 한 명이 몸을 구겨 넣으면 빠져나올 수 있을 정도가 됐을 때 사윤이 손을 뻗었다.
“넘어와.”
“오케이.”
한경진의 능청스러운 음성은 붕괴된 건물에 갇히고서도 여전했다.
제일 약한 새끼가 폼 잡기는.
그게 괜한 걱정을 끼치기 싫어 태연한 척하는 것임을 알아 경진의 손을 꽉 잡은 사윤이 그를 안에서 빼냈다. 뒤를 이어 건너온 이재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산소가 부족할 겁니다, 사윤 씨.”
“알고 있어. 그러니 빨리 나가야지.”
일단 나머지 둘부터 찾고.
상황 파악이 빠른 이재희의 착잡한 표정 덕에 다시 한번 위험성을 인지한 사윤이 재차 한건주를 불렀다. 그때 오른쪽 뒤에서 반응이 왔는데 기대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형님. 거기 있으면 나 좀 꺼내 줘라. 반 정도 깔렸거든?”
웃음기 섞인 구조 요청은 내용과는 딴판이었다. 워낙 경박스럽게 얘기해 장난치는 줄 알았으나 흔들리는 말끝이 진실임을 알리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사윤이 신호가 난 곳으로 다시 칼을 휘둘렀다. 아이템이라 망정이지 일반 칼이었으면 이미 날이 부러졌을 거였다.
깎고 깎아서 벽이 얇아지고 마침내 옌이 깔린 곳까지 닿는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작은 틈으로 먼저 주의를 준 사윤이 얼음으로 천장이 된 잔해를 지탱시키곤 구멍 주변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켕!
라이가 돕는 동안 뒤쪽에서 들리는 숨소리가 조금씩 거칠어졌다. 식은땀이 머리카락을 적셨다. 슬슬 모두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있었다.
“여기서 다섯 명 다 죽으면 전설 되겠네.”
별 웃기지도 않은 얘기를 옌이 키득거리며 해 기가 막혔다. 이런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나 싶어 틈 사이로 노려본 사윤이 조금 긁히긴 하더라도 옌이 건너올 수 있을 만한 구멍을 만들곤 몸을 쑤셔 넣었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건 별반 도움이 안 될 듯해 이재희가 추가로 소환한 시로가 사윤을 도와 옌을 잔해 밑에서 빼냈다. 주변을 모두 얼리고 옌이 누워 있는 곳만 스킬을 거둔 까닭에 빼내는 과정에서 건물이 조금 흔들리긴 했으나 완전히 무너지진 않았다.
얼마 못 버틸 거다. 2차 붕괴가 시작되기 전에 한건주를 찾아야 해 옌에게 포션을 먹인 사윤이 다시 이름을 불렀다. 절반 마신 포션을 장난치듯 사윤에게 끼얹은 옌이 회복되는 이마의 상처를 확인하곤 뒤를 돌았다.
“형님 애새끼는 저 뒤쪽에 있던데.”
그 말에 눈을 홉뜬 사윤이 옌의 손끝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했다. 역시나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건 철근과 섞인 콘크리트였다.
하필이면 제일 까다로운 곳이다. 사윤은 옌을 일행에게 맡기고 힘을 주어 철근을 치우고는 안을 두드렸다.
“한건주!”
이름을 부르자 안에서 무언가 울리는 게 느껴지긴 한다. 제법 멀리 있는 듯해 다시 한번 칼을 휘둘렀다. 세 번째라고 요령이 는 탓에 스킬을 섞어 적당히 휘두를 수 있었다.
전보다 과감하게 벽을 파낸 사윤이 안쪽의 공간을 확인했다.
“형!”
흙먼지를 뒤집어쓴 한건주가 두 개의 철근이 삼각형으로 쌓여 만들어진 틈 안에서 밭은 호흡을 뱉어 내고 있는 게 보였다. 일단 꺼내야 한다. 그 생각에 손을 뻗자 한건주가 하얀 손을 맞잡았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잘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던 건물이 기어이 한 번 더 무너지기 시작했다. 얼음으로 지탱해 둔 구간이 우지끈 부서져 사윤의 눈이 커졌다. 마찬가지로 눈을 크게 뜬 건주가 붙잡은 손을 잡아당겼다.
쿵-!
체중이 기울면서 몸이 앞으로 넘어가고 머리 위의 공간이 풀썩 꺼졌다.
삐-!
“……!”
고막을 죄 울리는 굉음에 이명이 울린다. 몸의 일부가 잔해에 짓눌려 피를 토하는데 누군가 신음을 뱉으며 저를 꺼내려 하는 게 느껴졌다. 팔이 몇 번 들렸다가 다시 놓였고 욕을 씹는 소리가 들렸다.
“형!”
그 외침에 눈을 뜬 사윤이 미간을 찌푸렸다. 한 번 뿌옇게 변했던 시야가 다시 확보됐을 땐 무릎 아래가 철근에 깔린 저를 확인하는 남자가 보였다. 비스듬하게 미끄러진 안대 아래로 짙은 흑안이 일렁거렸다.
“형 괜찮아요? 시발 괜찮을 리가 없는데. 저게 생각보다 무거워서 안 꺼내져서 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다급하게 중얼거린 건주가 안절부절못하며 주변을 둘러보다 도로 시선을 내렸다. 걱정과 자책, 후회, 초조, 불안 등이 사정없이 섞인 눈을 마주하고 있을 때 불현듯 그의 눈에서 지독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사윤의 눈이 커졌다.
시발. 아니지?
“형….”
그러나 기대는 무너진다. 조금 전 보았던 게 착각이 아니라는 양, 제 이름을 부른 순간 더 강해지는 감정을 확인한 사윤이 숨을 삼켰다.
“형 일단-.”
불안에 떨리는 목소리가 중간에 끊어진다. 본능적으로 한건주의 눈을 덮어 자신을 못 보도록 가린 사윤이 입술을 씹었다가 그마저도 성에 차지 않아 건주의 뒷머리를 제 어깨 쪽으로 끌어안았다. 그리하여 그가 고개 자체를 들지 못하도록 막고 나서야 눈을 깜빡였다.
“형?”
산소가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