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2화. 전갈 사냥 (5)
미친 새끼.
욕설과 함께 머리를 들이민 감정이 안도와 희열 중 무엇인지 모르겠다.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가볍게 전율하는 손끝만이 단서가 되어 울릴 뿐인지라 주먹을 그러쥐고 숨을 들이켰다. 장소도 잊고 일단 싸워 보고 싶다는 충동이 속에서 일렁거렸다.
완숙한 S급의 한건주.
얼마나 기다렸던 일인가.
무료할 틈이 없었던 얼굴에 가벼운 흥분이 얹어졌다. 그때 한건주의 그림자가 달려드는 스콜피언 조직 놈을 거칠게 후려쳤다.
“커헉!”
복부를 얻어맞고 날아간 놈이 벽에 처박힌다. 누군가 경악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비식. 사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간이 크다는 건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그림자 지배 스킬의 데뷔를 스콜피언으로 치를 줄은 몰랐다. 남들은 엄두도 못 낼 파격적인 행보에 적군이고 아군이고 할 것 없이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형?”
그런데도 저를 부르는 음성은 사고 친 강아지가 한 번 짖듯이 태연하기 그지없어 우스웠다. 제까짓 게 그림자 지배 하나 개방했다고 뭐 얼마나 강해질까 의심했던 사윤은 머리가 징 울리는 업보를 치러야 했다.
우습게만 봤던 남자가 어느덧 제 머리꼭지까지 올라가 있었으니까.
안대를 쓴 한건주의 어깨 위로 검은 기운이 넘실거렸다. 한건주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그것들은 그의 눈짓 한 번에 불처럼 길길이 날뛰었다가 호수처럼 차분해졌다가 했다. 이한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는 경지였다.
“저 새끼, 저 새끼부터 잡아!”
넋 놓은 사이 사방에 스콜피언 놈들이 깔렸다. 사실 경매에 참여한 선량한 사람들은 대부분 폭발과 함께 도망쳤을 테니 이 장소에 있는 사람은 아군 말곤 전부 스콜피언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중 절반이 사막의 형벌을 향해 달려들고 나머지 절반이 한건주를 향해 뛰었다. 자신이 철저히 무시당한 상황에 사윤이 웃었다. 시선을 가져오는 일은 숨 쉬듯 쉬웠다.
“끄으흑!”
달려가던 사내 중 한 명이 고개를 젖히더니 신음을 토했다. 성대를 꽉 짓누른 음성이 낮게 깔리며 사내가 고꾸라진다. 이어서 그 앞쪽에 있던 남자도 똑같은 현상을 겪었다.
두 명, 세 명, 네 명.
동일한 방식으로 순식간에 네 사람이 무너져 내렸다. 그제야 이상을 알아차린 선두 집단이 당황한다. 쓰러진 남자의 목 주변을 살핀 사윤이 단도를 고쳐 쥐었다.
“늦잖아.”
가벼운 핀잔에 천장에서 사람 하나가 떨어졌다.
“바깥 청소도 하고 왔는데 이 정도면 빠른 거지.”
이럴 땐 잘했다고 칭찬이나 해 주는 거야, 형님.
간드러지는 목소리를 덧붙인 푸른 눈의 남자가 두 눈을 길게 찢으며 웃어 보였다. 약효가 떨어진 건지 턱 끝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은 어느덧 본래의 은발로 되돌아와 있었다. 사윤은 머리 끈이 끊어져 속상하다는 소리를 늘어놓는 옌에게 스님으로 만들기 전에 정신 차리라는 충고를 가하곤 목을 뚝뚝 꺾어 풀었다.
대충 보이는 적은 서른 명 남짓이었다. 기세가 느껴지는 실력자는 열 명뿐이었으니 넷이서 서른 명을 못 잡을 것도 없다. 녀석들의 본부에 있는 놈들까지 몰려온다면 모를까.
뭐, 지금쯤이면 저놈들이 신호를 줘서 열심히 뛰어오고 있긴 하겠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있던 놈들을 소탕해 두면 단체 개죽음이 될 뿐이었다.
“몰아.”
그 말에 옌이 먼저 움직여 경매장 입구로 향했다. 경진이 저를 지키고 있던 재희를 끌어 오른쪽으로 이동했으며 사윤이 사막의 형벌 장소로 뛰어들었다.
“뭐…!”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저들끼리 똘똘 뭉쳐 사태를 파악하고 있던 스콜피언 놈들이 순식간에 사면에서 밀고 들어오는 사윤 일행에 기겁했다. 사윤은 그들 중 숨어 있는 토끼 가면의 남자를 확인하곤 눈을 휘어 웃었다.
“또 보네?”
지긋지긋했던 전갈을 사냥할 시간이었다.
“한건주, 넌 일단 사막의 형벌을 지키는 데 집중해. 혹시 모르니까 안대 빼지 말고. 유물 뺏기면 이 전투 모조리 말아먹는 거다. 알아들어?”
“네.”
“이재희 넌 사람 죽이는 건 못 할 테니 한경진이나 잘 지키고.”
“네.”
“옌 너는….”
“네에.”
“새끼야, 아직 말도 다 안 했다.”
지나치게 빠른 대답을 타박한 사윤이 스콜피언의 목에 처박은 단도를 빼내고 명치를 발로 찼다. 그 뒤에 있던 남자가 운이 나쁘게 휘말리면서 동시에 두 명이 바닥을 구른다. 진정한 일심동체의 현장에 만족하고 있자 기합을 내지른 이가 다음 타자로 달려들었다.
B급 정도인가.
경지를 파악한 사윤이 옆에 있던 테이블을 그에게 내던졌다. 갑자기 날아온 테이블은 각성자라면 쉬이 부술 수 있었지만 그 위에 씌워진 천은 그렇지 않았다. 하늘거리는 천이 남자의 시야를 가린 찰나 사윤의 손이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땅을 박찬 힘이 고스란히 남자에게 전달되며 머리가 바닥에 처박힌다.
콰아앙!
이쯤 되면 머리가 먼저 깨지지 않았을까 하는 소음이 울리고 이목구비대로 달라붙은 천이 붉게 물들었다.
“앞으로도 이 정도 실력이면 곤란한데. 너네 간부들 어디 있어?”
생각보다 허접한 실력인지라 실망의 빛이 사윤의 얼굴을 스쳤다. 그에 반해 1분도 안 돼 세 명을 처리한 사윤을 본 스콜피언 놈들의 얼굴엔 경악이 서려 있었다. 여기저기서 욕설이 들리고 또 비명이 들린다. 누군가는 사윤을 피하기 위해 뒤를 돌았으나 거기라고 안전하지 않았다. 곧바로 그림자가 날아와 놈의 목을 구속시키고 꿰뚫었으니 말이다.
뒤로 가면 그림자에 물리고 오른쪽으로 가면 소환수에게 물어뜯긴다. 그걸 보고 왼쪽으로 빠지려고 할 땐 이미 늦었다. 언제 날아온 줄도 모를 침이 목에 박혀 발을 떼기도 전에 숨이 꺼지는 놈들이 태반이었다.
사면이 지옥이다. 전진도 후퇴도 불가능한 상황에 스콜피언 놈들은 어느덧 중앙으로 점점 밀려나고 있었다. 남은 인원은 스무 명이다.
콰아앙!
“…윽!”
한건주가 갑자기 치고 들어온 사내에게 공격받으며 한 발 물러났다. 슬슬 실력자 열 명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건 사윤 쪽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왜 여기에….”
앞선 셋이 죽어 선두에 서게 된 남자가 신음하듯 읊조렸다. 한쪽 눈을 잃은 건지 이마에서 눈을 지나쳐 광대뼈까지 긴 자상이 남아 있었다.
“날 아나 봐?”
재밌다는 듯 물으니 굴욕적인 소리라도 들은 양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날 모르나?”
“너처럼 생긴 놈들을 한두 명 본 게 아니라서. 춘팔이니?”
서구적으로 생긴 남자에겐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이름에 상대방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는다.
“그래. 너도 눈 하나 잃으면 생각날지도 모르지.”
비웃듯 얘기한 남자가 칼을 빼고 달려든 순간 사윤은 그의 발아래로 폭탄을 굴려 넣었다. 그대로 몸을 뒤로 물리자 남자의 발이 정확히 폭탄을 짓밟는다. 휘청,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은 그가 옆으로 기울기 무섭게 폭발이 일었다. 고막을 뒤흔드는 굉음이 터지자 사윤이 움직였다.
아직 채 불이 꺼지지 않은 연기 안으로 서리의 기운을 두르고 뛰어갔다. 휘익! 그 폭발 속에서도 당연하다는 듯 살아남은 이의 칼이 목을 노리고 들어온다. 손날로 쳐 내고 단도를 날렸다. 이미 자리를 뜬 건지 아쉽게도 허공을 가르는 소리만 들리고 다시 절삭음이 퍼진다.
서걱.
늦지 않게 반응해 머리카락의 일부만 잘려 나갔다. 그와 동시에 남자의 위치를 파악한 사윤이 손을 휘둘렀다. 역수로 쥔 단도가 퍼억! 어딘가에 꽂힌다. 손의 높이를 가늠해 봤을 때 대략 얼굴이나 관자놀이쯤 될 거였다.
“끄윽!”
신음이 들려 처박은 단도를 아래로 긁듯이 내리며 앞으로 파고들었다. 거리가 가까워지니 유독 가스로 가득한 연기 속에서도 남자의 얼굴이 똑똑하게 보였다.
뚝뚝.
피가 흘러내린다. 예상했던 대로 제 단도는 그의 관자놀이에서 턱까지 내리긋고 있었다.
사윤은 단도로 놈을 압박하면서도 자유로운 한 손으로 소매를 뒤져 독이 담긴 병을 꺼냈다. 발악으로 휘둘러지는 검을 기꺼이 맞아 주며 엄지로 뚜껑을 땄다. 후각이 마비될 것 같은 맹독의 향이 먼저 올라온다. 남자의 눈에 대고 뿌리자 더티 플레이 스킬이 활성화되었다는 알림창과 함께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비열한 새끼가!”
“같은 범죄 조직끼리?”
웃으며 무릎을 가격해 남자를 무너트린 사윤이 서리의 기운을 퍼트렸다. 치명상을 입은 것도 모자라 독에 중독된 이는 저항할 힘 없이 차가운 냉기에 얼어붙었다. 그쯤 폭발의 여파가 가시며 안개가 잦아들었다. 사윤은 경악한 스콜피언의 일행 중 한 명을 붙들고 아래로 찍어 내려 한숨을 내쉬었다.
“너네 간부 어디 있니.”
조금 전 전투 상대도 A급 수준이었다. 스콜피언 놈들 중 S급이 없을 리가 없어 인상을 찌푸릴 때 실성한 것 같은 웃음이 들렸다. 제 앞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행방을 찾아 고개를 돌리니 그림자에 목이 뚫린 이가 피를 쏟아 내며 웃고 있었다.
“매물을 구할 수 없으면 묻으라 하셨다.”
치아까지 붉게 변한 이가 광기 어린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묻으라 했다고?
머릿속에 의문이 심어진 순간 삐, 삐. 어디선가 간헐적인 소음이 들렸다. 쉼 없이 이루어졌던 전투에 묻혔던 소음이었다.
그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듯해 사윤의 눈이 커졌다. 재빠르게 천재의 눈을 발동시킨 사윤이 안에 남아 있는 스콜피언 전원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C급, C급, B급, A급, A급, A급….
없다.
실력자라고 해 봐야 스탯이 S급에 견줄 놈들이 대여섯 명 있는 거지 등급이 S급인 놈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버림패다.
사실을 깨닫는 것과 함께 폭발음이 들리더니 패스파인더 경매장이 무너져 내렸다. 고개를 든 사윤의 머리 위로 집채만 한 콘크리트 잔해가 쏟아진다. 거대했던 2층 높이의 경매장이 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