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7화. 사막의 형벌 (7)
창밖을 멍하게 응시하고 있는데 어깨 쪽으로 무게감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검은 머리통이 먼저 보인다. 젊어서 그런지 빈 곳 없이 빽빽한 정수리가 시선을 앗아 갔다가 척 보기에도 결이 부드러워 보이는 머리카락을 따라 내려가면 콧대가 보인다. 손가락으로 선을 따라 그려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 만한 외관이었다.
고개를 살짝 틀어 바라보는 시선의 각도를 달리한 사윤은 곱게 닫힌 눈꺼풀을 확인했다. 길게 내려온 속눈썹이 장막 같다. 저게 올라가면 연기가 펼쳐지고 내려가면 이토록 순한 얼굴이 된다. 신기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눈 뜨고 있을 땐 그렇게 여우 새끼 같더니.”
차라리 스탠스를 하나로 고정하든가. 이럴 때는 애새끼 같고 저럴 때는 서글서글하게 구니 도통 따라가기 힘들었다. 지 좆대로 구는 데는 세계 1등일 거라 생각하며 이죽거린 사윤이 괜한 심술에 손을 뻗었다.
아니, 뻗으려고 했다.
들어 올리려던 손이 누군가에게 붙들려 있지만 않았다면.
여전히 잡고 있었네.
자각도 하지 못했는데 아래로 처진 손 위엔 다른 이의 손이 얹어져 있었다. 손가락끼리 틈을 파고들어 미약하게 얽혀 있다. 사윤은 손끝을 움찔거렸다가 한건주가 깰까 싶어 다시 몸에 힘을 뺐다. 대신 붙들리지 않은 남은 손으로 건주의 이마를 꾸욱 꾹 밀었다.
“잠이 오냐? 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비행기 너머의 풍경을 보며 제법 신기해하더니 그새 잠들었다. 게이트 안에서 어지간히 잠을 못 잔 모양이었다. 하긴, 밥도 못 먹었다 했으니.
두세 번쯤 더 밀고 잠투정을 부린 한건주가 이마에 주름을 만드는 걸 지켜보다가 손을 내렸다. 아수라장이 될 곳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은 우습게도 이렇게 평화로웠다.
그래서 생각할 틈이 주어졌다.
옌도, 경진도, 재희도 잠든 건지 모두가 잠들어 고요한 비행기 안에서 사윤만이 눈을 깜빡였다. 그 상태로 건주와의 대화를 복기하던 사윤은 그가 이재희와 둘이서 게이트로 홀랑 떠났을 때의 심정을 기억해 냈다. 그때 느낀 불안감과 복수심에 제작한 우리는 여전히 인벤토리 안에 있었으나 막상 한건주를 보니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언제 꺼내면 될지도 몰랐고 어떻게 활용하면 될지도 몰랐다.
수억을 주고 만들었건만 사용해 보지도 못하게 생겼다.
한건주가 그 우리를 보고 질색할 거라서 못 꺼내는 건 아니다. 자신이 그것도 예상 못 하고 만들었겠는가. 오히려 아주 칠색 팔색을 하라며 바닥을 거머리로 도배할까 싶기까지도 했다. 그러니 단순히 한건주가 싫어해서, 는 사윤이 우리를 활용하지 못한 이유로 알맞지 않다.
사윤이 시도조차 하지 못한 건, 그 우리마저 한건주를 곁에 붙잡아 두지 못했을 때의 상황이 두려워서였다.
특수 제작된 우리는 사윤 나름대로 최후의 보류다.
그런데도 한건주가 그 우리를 빠져나가 제 곁에서 도망친다면, 자신은 다시 그를 붙잡을 수 있을까?
또 곁에 둘 수 있을까?
우리를 꺼낼 생각이 들 때마다 불쑥불쑥 그 불안이 치밀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그저 상황이 안 된 척하며 어물쩍거리며 넘겼으나 내면의 진실을 사윤은 알았다.
그래서 꺼내지 못한 거다.
아니, 않은 거다.
우리를 꺼내지 않으면 이걸 꺼낼 만큼 이 관계가 위태롭고 악화되진 않았다는 위안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쫄보 다 됐네.”
자신이 언제 이런 꼴사나운 핑계쟁이가 됐나 싶어 시선이 흘러간다. 탑승한 건 비행기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배를 탄 것처럼 출렁거리듯 흐른 시선의 끝이 심란하게 만든 남자에게 닿는다.
그가 늘 하는 말이 생각났다.
자신이 그를 꼴 받게 한다고 했던가.
한건주는 늘 자신을 꼴사납게 만들었다.
남들이 보면 저게 권사윤이 맞냐고 수군거릴 정도로. 아니, 이미 다들 수군거리고 있긴 했다.
한건주에 대한 소문은 이미 퍼질 대로 퍼졌을 것이다. 아마 다음번 축제에 한건주를 데리고 가면 모든 인파가 관심을 보일 거였고 또 많은 이에게 위협을 받을 거였다. 그 미래를 그려 본 사윤은 건주의 손을 더 꽉 잡아 쥐었다.
모든 우려를 뚫고도 만족스러움이 더 커서.
전에는 같이 가지 못해 내심 불만이 있던 그 화합의 축제에 한건주를 옆에 끼고 가면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울 거였다. 해외에 잘 나가지 않았다는 그를 데리고, 평범한 대학생들은 상상도 못 할 장소에 그를 데려다주고, 유명한 헌터들을 만나게 해서 연줄을 맺게 하고.
그렇게 출세의 길을 트게 해 주고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을 배치시키면….
한건주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웃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 사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별로 그렇게 해 주고 싶지 않았다. 그의 곁에 있는 건 자신이면 충분했고 더 나아가 봤자 밤쥐 길드원 정도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되지.”
…주워 왔으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사윤은 내키지 않아도 모든 걸 해 줄 생각이었다. 그가 단순히 대학생 신분이었다면, 일반 헌터였다면, 혼자서 S급까지 성장한 헌터였다면 누리지 못했을 모든 특혜를 그에게 보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쥐여 줄 생각이다.
그렇게 하고 나면 당장 해 줄 때는 마음이 불편하더라도 일을 마치고 나선 편안해질 것이다.
한건주에게 자신은 그 모든 걸 해 준 사람으로 기억될 테니까.
최고로 기억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최악만 아니면 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제게 부채감을 느끼게 한 다음, 계획을 실행하는 거다.
그의 손에 죽고자 하는 계획을.
손끝이 저릿하게 저렸다. 목 안쪽이 콱 틀어막혔다가 심장 부근이 묵직해진다. 억누르느라 힘들 정도로 희열이 차오른다. 단순히 상상만 했을 뿐인데.
과거의 사윤은 아주 오랫동안 죽음을 그려 본 적이 있었다.
자신의 마지막이 어떨지 아주 많이 그리고 또 바라 왔다.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는 끝도 있었고 제게 원한 싸인 이들에게 감금당해 건물째로 불타 죽는 죽음도 있었으며 암살도 있었고 익사도 있었다. 그렇게 많은 죽음을 그렸고 그중에서 꺼려지는 결말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들을 만족할 만큼 상상하고 나면 거대한 방에 홀로 남겨진 듯한 공허가 묵직하게 머리를 때렸다.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이란 걸 알아서.
그 짓을 몇 번 하고 난 뒤 사윤은 죽음을 상상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건주를 만나고 나서부턴 매일같이 그런 시간을 가졌다.
그 덕분에 죽게 되는 자신의 미래를 그렸다. 과거에 그린 미래의 사윤은 모두 처참한 몰골이었는데 한건주가 엮이면 자신은 제법 괜찮은 꼴로 죽었다. 상상 속 자신은 늘 웃기만 했다.
그건 사윤이 평생토록 본 제 표정 중 가장 행복한 표정이었다.
그걸 매일같이 보는데 포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인정하자. 그를 되찾고 사윤이 손에 쥔 건 단순한 삶의 재미만이 아닌 끝을 향한 희망이었다. 그렇기에 한건주가 저를 살리고 싶다 했을 땐 무저갱으로 추락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될지 몰라 혼란스러웠는데 이제 사윤은 길을 알았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
그 모든 걸 보장해 준 다음 죽여 달라고 하는 거다.
사람은 물질에 쉬이 흔들리고 또 우울한 감정을 지닌 사람에게 쉬이 흔들린다. 한건주에게 부와 명예를 약속하고 죽여 달라고 애원에 가깝게 간청하면 은근히 정이 많고 마음이 약한 그는 자신을 죽여 줄지 모른다. 그가 죄책감을 덜 수 있을 만한 장치는 얼마든지 마련해 놨다.
첫째로 자신이 먼저 그에게 죽여 달라고 빌었으며, 둘째로 살아 있는 자신의 삶은 비극이었고, 셋째로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한건주는 자신을 죽이고 그 세 가지 핑계를 대며 죄책감을 덜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겠지만 사윤은 그의 곁에 종식을 붙여 줄 생각이었다. 충직한 종식은 든든하다. 무너지는 한건주를 몇 번이고 받쳐 줄 수 있을 것이다.
제게 그랬던 것처럼.
경진도 붙여 줘야지.
찬희도 애가 성실하니까 참 괜찮아. 붙여 주면 일 잘할 거고.
옌은… 미친놈이긴 한데 길드원 중에 그만한 또라이는 한 명 있어야 기 싸움에서 안 밀리지. 옌까지 붙여 주자.
그렇게 제게 귀중한 이들을 가장 귀했던 이에게 모두 넘기고 나면 안 그래도 황홀할 마음이 더 편안해질 것 같았다. 사윤은 입꼬리를 올리고 그 미래를 그렸다. 숨소리가 차분해져 간다. 너무나도 달콤한 미래라서 가끔은 덜컥 불안하기도 했다.
전부 이루어지지 않을까 봐.
실제로 가능성이 낮은 미래였다.
사윤은 그가 자신을 죽이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 결말을 뒤집고 싶었다.
눈을 뜬 사윤은 건주를 돌아봤다. 색색거리는 숨소리를 규칙적으로 흘리는 그의 모습은 1년 전을 떠올리게 한다. 사윤은 1년 전 그가 있는 방에 들어갔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의 풍경이 지금과 겹쳐진다. 달라진 점이라곤 지금은 한건주가 제게 기대 잠을 청하고 있다는 거였다.
그래. 많이 돌아왔지만 제법 가까워진 사이다. 계획이 실패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았지만 과거에 비해선 가능성이 올라갔다.
사윤은 맞잡은 손을 한 번 더 쥐었다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누가 이기는지는 해 봐야 알겠지만….”
손가락 마디가 페어링이 끼워진 부위를 몇 번 덜그럭거렸다. 사윤은 날카롭기도 한 그 감촉을 눈을 감고 만끽했다가 숨을 들이켰다.
“난 질 싸움은 안 해, 예쁜아.”
그가 자신을 살릴 생각이라면 반대로 자신은 그에게 저를 죽일 이유를 충분히 제공해 주면 되었다.
방향키를 잃고 헤매던 건 잠시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이재희에게 상담했던 때도 과거다. 갈 길을 확정한 사윤이 한건주의 손을 맞잡은 채로 잠을 청했다.
들이켠 숨에 익숙한 체향이 섞인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잠에 든 사이, 비행기는 착실히 목적지를 향해 날아갔다.
사막의 형벌이 있는 곳.
스콜피언 놈들의 본거지.
경매 날 최악의 아수라장이 될 스콜피언이 있는 곳으로.
도착은 금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