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9화. 꼬리잡기 (5)
“권사윤! 너 제정신이야?”
팔랑팔랑.
분개한 노성과 함께 수십 장의 서류들이 마치 바람에 휘날리는 꽃잎처럼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녔다. 흥분했긴 했어도 겁까지 상실한 건 아닌 모양인지 용케 제 얼굴을 피해서 서류를 집어 던지는 협회장을 바라본 사윤이 들어오자마자 저를 반기는 서류들을 힐끗거렸다가 그중 한 장을 주웠다. 뭔가 싶었는데 제 인터뷰가 나가고 난 뒤 돈 기사와 댓글 반응을 출력해 모아 둔 모양이었다.
“누가 보면 내가 진짜 연예인이라도 된 줄 알겠네. 권사윤 계 탔어, 범죄 길드 수장인데 연예인 취급도 받아 보고.”
“크윽.”
“혼잣말로 한 건데 왜 네가 찔리고 그러니.”
순도 100퍼센트 혼잣말이었는데 범죄 길드 수장을 노아에 영입하겠다는 미친 계획을 추진한 사람이 제 발 저려 얼굴을 붉혔다. 사윤은 프린트된 댓글들을 쭉 읽어 봤다. 생각했던 것과 그리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열광하는 사람이 반, 욕하는 사람이 반.
이 정도면 양호한 거 아닌가?
인터뷰를 그따위로 했는데 이 반응인 거면 자신이 이룬 성과 때문에 잘났으니 참는다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듯했다. 그러나 그런 이들의 반응과는 별개로 백 개의 선플 중에서도 협회의 평판을 해치는 한 개의 악플을 견디지 못하는 멘탈 개복치 민철이 책상을 짚어 몸을 일으킨 자세 그대로 사윤을 노려보다 이마를 짚었다.
“내가 말년에… 앓느니 죽어야지.”
“죽을 때가 되긴 했지?”
“이 건방진…!”
발끈한 민철의 미간에 힘줄이 섰다. 헌터들의 평균 수명은 짧다. 이론적으로 헌터는 일반인의 세 배가 되는 수명을 누릴 거라 했지만 대부분의 헌터들이 반백 살도 못 살고 요절했다. 못해도 백오십 살에 죽어야 할 이들이 반도 못 살고 죽었으니 충분히 요절이라 할 수 있으리라.
사망 요인은 비단 게이트뿐만이 아니었다. 게이트 때문이 아니더라도 헌터들은 일찍 죽는다. 여태 자연사한 최고령 헌터의 나이가 예순이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어느 정도 신뢰성 있는 정보였다.
전문가들은 헌터들이 신의 축복을 받아 늘어난 수명에 비해 단명하는 이유로 과도한 능력 사용을 뽑았다. 심장에 지속적으로, 장기간 무리가 가 신체 노화가 빨라지고 리듬이 무너져 죽는다는 거다. 그 정보를 들었을 때 사윤은 이죽거렸다. 이론상의 수명만 늘리고 실제 수명은 깎아 먹는 능력이 어떻게 축복이냐고 말이다. 나이가 어려, 빌런 삶에 적응하지 못해 신에 대한 반감이 최고조일 때의 일이었다.
“내가 말을 말자, 말을 말아. 왜 이딴 걸 노아에 들이겠다고 생각해서.”
오랜만에 과거의 기억을 반추하고 있는데 협회장이 앓는 소리를 냈다. 헌터로 살아왔으면 이보다 더한 일을 몇 번이고 겪었을 텐데 심약한 척하는 것이 같잖았다. 사윤은 협회장이 권유도 하지 않았는데 소파에 앉아 등받이 너머로 팔을 넘겼다. 거만하게 건들거리는 사윤을 민철은 부정 탈까 쳐다보지도 않았다.
“인터뷰하라며? 그래서 해 줬더니 해도 지랄, 안 해도 지랄….”
“혓바닥 좀 곱게 써먹게.”
“얼굴이 고운데 혀까지 고와야 하나.”
뻔뻔한 발언에 민철은 반박하지 못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윤의 얼굴이 고운 건 사실이었으므로.
화를 내는 대신 애꿎은 서류만 구깃구깃 구기고 있을 때 픽 웃으며 민철을 놀리는 행위의 막을 내린 사윤이 상체를 앞쪽으로 기울였다.
“사막의 형벌, 정말로 얻어 왔더라?”
“네놈이 그걸 내놔야 인터뷰한다며?”
“난 언제나 최악의 수를 가정해 두거든. 당연히 우리 협회장님이 에이든을 설득하지 못하는 경로도 염두에 두고 있었지. 그런데 정말로 약속을 지켰으니 일이 수월하게 됐어.”
“내가 에이든을 설득하지 못했으면 어쩌려 했나.”
“일단 그 자리에 앉은 사람부터 바뀌었겠지. 약속 하나 못 지키는 사람이 대한민국 협회장을 어떻게 해? 어깨 무거울 테니 짐 좀 덜어 드려야지.”
바람에 날리듯 가벼운 음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었다. 면전에 대고 자신을 갈아 치울 생각이었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사윤에 헛웃음을 흘린 협회장이 이마를 짚었다. 건방진 작태에 노기가 치밀었지만 입 밖으로 뱉을 분노는 없었다.
사윤이 정말로 마음먹고 협회장을 갈아 치우고자 하면 그리될 것이었으므로.
애초에 그가 지금껏 회장을 할 수 있던 것도 사윤이 협회에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아서다. 민철이 악명에 비해 사윤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민철은 사윤의 살인을 직접 목도한 적이 없으며, 민철 앞에서의 사윤은 늘 속 썩이고 사고만 일으키는 사고뭉치에 불과했다. 그래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그를 노아에 넣었다. 내심 그의 성정이 지독하게 나쁜 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 양지로 나서면 저 빌어먹을 성격 또한 좋은 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받아 희석될 것이라 생각한 탓이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아니다.
저건 버릇부터 글러 먹었다.
범죄자로 오래 살아 도덕적 관념부터 어딘가 어긋나 있는 이를 복잡하게 보던 민철이 다시 끙끙 신음을 냈다. 사윤은 자기가 저를 노아의 일원으로 만들었으면서 이제 와서 퇴출이 어쩌고 그렇게 되면 언론 반응이 어쩌고 하며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민철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게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왜 했나?
지금이야 적응하긴 했지만 처음 협회에서 새로운 길드를 만들어 노아에 가입하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황당함은 아직도 잊히질 않았다. 그때 제가 느낀 황당함이 지금의 민철에게 아주 잘 전해지고 있는 듯해 뿌듯하다.
역시 세상은 인과응보인 모양이다.
뭐, 사실 정말로 그런 세상이라면 자신의 노후도 평탄친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만 찡찡거리고 이거나 봐.”
협회장이 과거의 실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친히 다른 화젯거리를 던져 주자 민철이 책상 위로 던져진 봉투를 확인했다. 미심쩍은 눈으로 사윤을 흘낏거리다 봉투 안의 서류를 꺼내 든 협회장의 표정이 굳었다.
“스콜피언 놈들이 다시 활동한다고.”
그에게 던져진 서류에는 스콜피언에 대한 정보와 한국에 있던 스콜피언 추종 단체의 족적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스콜피언 본부 놈들에게 정리당해 찾을 수 없는 단체였다.
내가 있는 곳이 한국이니 가장 먼저 정리했겠지.
한국 단체가 사라진 타이밍이 자신이 아델리아의 무덤에 들어간 시간과 정확히 일치했다. 손끝을 몇 번 딱딱 부딪쳐 튕기던 사윤이 소파 등받이 위쪽에 뒷덜미가 닿게 각도를 바꿔 고개를 젖혔다.
“사막의 형벌이 전갈자리 신의 유물이니 스콜피언 놈들도 경매에 참여할 거야. 물건의 급이 급인 만큼 이번처럼 허접하게 일을 처리하려 들지 않을 거고. 최소한 간부급은 보내겠지. 스콜피언 본부 추적과 몰살 계획 시작은 거기서부터야.”
“필요한 게 뭔가?”
“이래서 눈치 빠른 협회장님이 좋다니까.”
주머니에 신비한 물건이 다 들어가 있는 도X에몽이 따로 없었다. 말만 하면 필요한 걸 서슴없이 딱딱 내놓는 민철에 눈을 휘어 접어 웃은 사윤이 허밍과 함께 입을 열었다.
“제비의 사윤, 노아의 사윤 신분으로 스콜피언을 잡아 실적 올릴 거야. 변장 아티팩트 하나 발견해서 그거 차고 갈 거니 신분증은 그 외관으로 하나 만들어 줘. 나는 내 거 훔치려는 놈들 잡고, 한국 협회는 세계 헌터 협회 공적을 잡아 명성 올리고 일석이조잖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계획이니 이번 샌프란시스코행에 필요한 모든 경비, 아이템, 명분까지 다 마련해 줬으면 하는데….”
이쪽은 몸만 갈 테니 그 외 부가적인 건 모두 알아서 처리하라는 말이었다.
기분이 좋아 발끝을 흔들며 얘기하자 사윤의 말이 이어질수록 표정을 굳히던 협회장이 파르르 입술을 떨었다.
“몇 명 데리고 가나?”
“글쎄. 정확히는 못 정했는데 세 명? 네 명? 다섯 명일 수도 있고.”
“…기간은.”
“경매 일주일 전부터 동태를 지켜봐야 하고 경매 이후 또 일주일은 스콜피언 놈들 처치하러 다녀야 하니 최소 2주 최대 한 달.”
“그럼 지금 협회더러 신분증 조작부터 시작해 최대 다섯 명의 경매장 입장권과 경비, 한 달 동안 사용할 아이템을 지급하라는 말이군.”
“아, 내 티켓은 따로 준비해 뒀으니 비즈니스석으로 네 장이면 돼. 감동받을 필요는 없고.”
품에서 미정이 건네준 검은 티켓을 보이며 말하자 협회장이 부르르 입꼬리를 올렸다. 사윤도 마주 환히 웃어 주었다. 이윽고 책상 위에 있는 모든 서류를 사윤에게 내던진 협회장의 입에서 집무실의 방음 아티팩트도 뚫을 만한 고성이 튀어나왔다.
“나가, 이 찰거머리 자식아!”
옥이야 금이야 키운 딸자식과 결혼하겠다고 하는 양아치 사위를 보듯 쳐다본 협회장이 눈을 부라린다. 사윤은 저렇게 말해도 세계 헌터 협회 안에서의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면 제게 천억도 갖다 바칠 준비가 돼 있는 게 민철이란 걸 알아 낄낄 웃음을 터트렸다.
준비된 노예란 그를 보고 하는 말이었다.
뭐 어쩌겠는가. 넝쿨째 굴러들어 온 호박이 협회에 부와 명예 좀 가져다주겠다고 하는데 잠깐의 손해 정도는 견뎌야지.
다만 그 호박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달려 있을 뿐이다.
위험 요소는 정말로 그뿐이라 민철은 제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노발대발하는 그의 집무실을 나온 사윤은 지잉, 하고 길게 울리는 진동에 핸드폰을 꺼냈다. 일반 알림보다 진동이 길다는 건 전화라는 뜻이다.
“무슨 일이야?”
좀처럼 전화를 하지 않는 경진이 전화를 걸었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스콜피언 놈들의 행적 중 수상한 것이 발견돼 빠른 확인이 필요하거나, 한건주나 이재희 관련 소식이거나.
내심 후자이길 바랐던 사윤은 이어지는 경진의 말에 미소를 지었다.
-한건주랑 이재희 나왔어. 형님. 옌이랑 찬희까지 갔고 스무 명만으로 붙잡는 데 성공했다더라. 일단 저기도 잘못한 건 아는지 별 반응 없이 잡혀 줬다는데 이대로 별장까지 데려가? 아니면 형님이 올래?
“우리 챙겨 갈 테니 기다리라 해.”
안타깝게도 아직 우리에 집어넣고 인벤토리에 들어가지는지 실험을 못 해 봤지만 그건 가는 길에 적대 길드 길드원 한 명 주워다 하면 될 듯했다.
아니, 아니지.
“민철아! 집행 유예 범죄자 한 명 넘겨라!”
마침 협회에 와 있었으니 도로 민철의 집무실로 들어가 그리 부탁한 사윤은 쉽고 빠르게 사흉수 엇비슷한 사람 하나를 얻고 싱글벙글 길드로 돌아갔다.
스콜피언의 꼬리는 밟혔고 이제 추적만이 남았다. 그럴 때 마침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이가 나왔으니 저답지 않게 운이 좋았다. 모든 일이 참 잘 풀리고 있다고 생각한 사윤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기분이 좋을 때만 나오는, 자장가를 닮은 콧노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