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7화. 꼬리잡기 (3)
‘이 일만 잘 해내면 성과급이다.’
헌터 일보의 사회부 기자 나조영은 상체에 사각형 박스를 집어넣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뻣뻣하게 세우고 식은땀으로 흥건한 손을 그러쥐었다. 어째서 1년 차 신입인 제게 이런 취재 건이 넘어온 건지, 그 속사정은 알 수 없었으나 이번 취재와 인터뷰 죽 쑤고 돌아가면 직장에서 제 일자리가 없어지리란 것쯤은 알고 있다.
제일 먼저 자리가 없어지고 회사 눈치 보다가 제 발로 걸어 나오게 되리라. 그런 사람을 1년간 한두 명 봐 왔던가.
반대로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시 사 측에서 성과급을 지급해 주겠다고 했다. 단영 선배가 잘만 해내면 승진도 보장될 거라 했으니 이거야말로 자신이 그토록 바라고 찾았던 기회다.
일생일대의 기회다. 삶의 흥망성쇠가 나뉠 타이밍인지라 목을 가다듬고 있으니 문이 열리며 녹발의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인터뷰하기로 했던 사람인가 싶어 화들짝 놀랐다가 얼굴을 보고 아님을 깨달은 조영이 머쓱하게 앉았다. 쟁반을 들고 왔던 남자가 그런 조영을 보며 웃었다.
“죄송해요. 길드장님이 조금 바쁘셔서. 지금 협회장님 만나 뵙고 오신다고 하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아무래도 이런 인터뷰를 독단으로 진행하기에는 길드장님이 노아 소속이라 협회와 협의가 필요하거든요.”
바람결에 목소리가 실려 와도 이보다 산뜻하진 않을 것이다. 살랑살랑이란 부사가 그 누구보다 잘 어울리는 듯한 남자에 잠시 멍해졌던 조영이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찻잔이 내밀어진다. 제비 길드라는 한국식 이름에 걸맞게 찻잔에도 꽤 고풍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찻잔인데?’
헌터 일보에 들어오기 위해 공부할 당시 봤던 잔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1세대 길드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이름이 뭐였더라, 무슨 호였던 것 같은데….
긴가민가한 기억에 고개를 갸웃 기울이고 있으니 녹발의 남자가 눈을 감듯이 휘어 보이곤 회의실을 나섰다. 여유로운 태도와 달리 신입인 걸까. 그가 회의실을 나가자마자 옌! 하며 여기저기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 잠시 너른 등으로 시선을 보냈던 조영은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쿵쿵 뛰는 심장을 달랬다.
여기 길드는 길드원을 무슨 외모 보고 뽑나.
들어올 때부터 느낀 건데 하나같이 얼굴이 수려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진짜가 있다.
곧 자신이 인터뷰하게 될 사람을 떠올린 조영이 손끝을 가볍게 떨었다가 혹여 깨트릴까 싶어 잔을 내려놓았다.
헌터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아니, 아델리아의 무덤 클리어로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으면서 대뜸 잠적한 헌터.
노아의 사윤.
풀린 정보가 워낙에 없어 알려진 것도 겨우 이름에 불과했다. 빠르게 올라왔다가 삭제되었던 사윤의 얼굴을 조영 역시 알고 있었기에 그 미모를 정면에서 마주 보면서 어떻게 말을 안 더듬고 얘기할지 고민한 조영이 마치 배우라도 된 양 하얀 종이에 적힌 글들을 뇌까리기 시작했다. 원래 인터뷰가 이런 식으로 대본까지 다 맞춰 진행되나 싶었지만, 이쪽이야 취재에 응해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으니 저기가 내미는 조건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대본을 읊고 있었을까.
“열심히 하시네요.”
부드러운데 어딘지 음험한 기색이 있는 목소리가 회의실을 울렸다.
“……!”
화들짝 놀란 조영이 종이에 박고 있던 시선을 들었다.
“어, 어떻게….”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문이 열리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기에 당황하고 있으니 어느덧 조영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아주 미세하게 까딱거렸다.
“오늘 잘 좀 부탁드릴게요.”
들리는 목소리는 여전히 비현실적이었다. 조영은 이전 녹발의 남자 때보다 더 정신을 못 차리고 남자를 바라보았다가 고개를 홱홱 저었다. 성과급, 권고사직, 성과급, 권고사직. 상반되는 두 단어를 머릿속으로 계속 중얼거리니 눈이 번쩍 뜨인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헌터 일보의 나조영입니다!”
기합이 바짝 들어간 인사에 남자가 다정한 미소를 선보였다. 그런데도 어째서인지 원초적인 공포가 자극당하는 듯한 묘한 꺼림칙함이 있어 식은땀을 흘린 조영이 힐끔, 눈동자를 굴렸다.
세계를 달군 뜨거운 이슈, 사윤.
과연 얼굴만으로도 화제가 될 법하다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외형의 남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심호흡을 반복한 조영이 떨리는 목소리를 숨기기 위해 애쓰며 녹음기를 켰다.
인터뷰가 시작됐다.
* * *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싱글벙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짝 굳어 애국가도 제대로 못 읊을 것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던 여인이 지금은 홀가분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내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반복하다가 문 앞까지 배웅해 주고 나서야 갈 생각이 든 건지 반으로 접혔던 몸을 편 그가 뵙게 되어 영광이었다는 말을 끝으로 조심스럽게 제비 건물 길드를 나섰다. 입가에 쥐가 날 때까지 웃고 있던 사윤은 길드원들이 문을 닫고 보안 유지를 위한 커튼까지 친 후에야 낯설기 짝이 없는 웃음을 지웠다.
“아오, 턱 당겨.”
그냥 웃는 거면 모를까, 세상에 둘도 없는 의인처럼 선량한 미소를 짓고 1시간을 버티니 깽판 치고 싶어 참느라 죽는 줄 알았다. 살짝씩 경련하는 입꼬리를 매만지며 표정을 구기자 옌이 다가와 웬 마사지 볼을 건넸다. 뭐냐고 물었더니 얼굴 관리하라고 준 거란다.
“이제 형님도 얼굴 알려지고 연예인 되는 거잖아? 예쁜 얼굴 더 예쁘게 나오게 관리해야지.”
말끝을 늘어트리며 너스레를 떠는 이에게 마사지 볼을 집어 던져 준 사윤은 옌의 고운 얼굴 위에 새파란 작품을 남기고 격식을 차리기 위해 입었던 정장 재킷을 벗었다. 셔츠 단추 세 개를 풀고 나서야 숨이 트인다. 맞고도 정신을 못 차린 옌이 꺄악, 같은 비명이나 내지르고 있을 때 저 멀리서 좀비가 걸어왔다.
“뭐야, 벌써 끝났어? 생각보다 일찍 끝났네. 이거 방금 인터뷰했던 기자 정보. 형님이 원했던 대로 언론 쪽 썩은 물이랑은 연줄 하나 없는 청정수고 유복한 집에서 자라진 않았더라. 조실부모하고 맡아 주겠다는 친척이 없어 고아원에서 자란 모양인데 저렇게 밝은 거면 잘 컸지.”
“네가 키웠니. 쓸데없는 정보 말고 헌터 일보 쪽 반응은 어때.”
“헌터 일보야 축제지. 단독 속보로 인터뷰 확보했다는 기사 나갈 테고 화제성이 물오를 오후 6시쯤 인터뷰 풀릴 텐데. 서버 걱정이나 해야 할걸.”
좀비. 아니, 그나마 본판이 꽤 돼 간신히 사람 꼴에 턱걸이한 경진이 뻐근한 목을 왼쪽으로 뚝 오른쪽으로 뚝 꺾다가 인상을 구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월급이 부족해.”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많이 구르는 거 아니냐고 중얼거리는 그에 사윤이 헛웃음을 흘렸다.
“세상 어디에도 너만큼 일하면서 월급으로 억 단위를 받아먹는 직원은 없을 텐데.”
심지어 최근에는 연봉 협상을 해 월급의 앞자리도 바꿔 주었다. 밤쥐에서 가장 몸값이 비싼 놈이 할 말은 아니라 황당무계하게 쳐다보니 아무튼 부족하다며 생떼를 쓴 그가 품에 안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이건 스콜피언 이전 자료 중에 죽은 놈들 자료 추가. 이쪽한테 꼬리 밟힌 걸 인지한 건지 생각보다 정리 속도가 빨라. 늦어도 다음 달 초에는 블랙 지역으로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놈들이 작정하고 청소를 마친 뒤 숨어 버리면 아무리 자기라고 해도 추적하기 힘들다고 토로한 이가 눈두덩이를 문지르다 하품했다. 사흘은 못 잔 표정이었기에 사윤은 너른 아량을 베풀어 고생한 경진에게 반나절의 휴식 시간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한건주는.”
일단 이것만 묻고 말이다.
벌써 보름째 똑같은 질문을 받은 경진이 진저리 난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이지러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무소식. 스킬 하나 열고 나온다며? 그럼 늦어지면 석 달은 걸리니까 참을성 좀 길러 봐. 아니면 이참에 뭐, 종교라도 가져서 기도 하나 해 보든가.”
스킬 떠야 나올 거 아니야.
이렇게 매일같이 소식을 물어봐야 그들이 게이트를 나오지 않으면 알려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건 변함없다 투덜거린 경진이 비틀비틀 걸어갔다. 아직 가라는 말도 안 했는데 기계처럼 움직인 그의 입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이제 정보팀 애들이 올린 자료 확인하고, 그거 다시 분류하고 스콜피언이랑 연계돼 있을지도 모른다고 추정되는 해외 범죄 길드 행적 조사하고 해외 여론 살피고. 아, 무슨 자료가 있었는데….”
피곤해서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말은 무슨 흑마법사가 악독한 주문을 읊는 것 같았다. 밤쥐의 간부라곤 생각도 못 할 초췌한 꼴이었기에 혀를 찬 사윤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알랑거리며 옆에 서 있던 옌이 재빠르게 사윤의 의도를 읽고 마사지 볼을 건네주었다.
그것을 허공에 던졌다가 받은 사윤이 어깨를 뒤로 열어 푸른 마사지 볼을 경진의 머리로 내던졌다.
빠아아아악!
묵직한 타격음이 제비 길드 로비를 울린다. 과연 머릿속에 든 게 많아 터어엉 따위가 아닌 꽉 찬 소리가 들려 만족한 사윤은 날아간 공을 맞고 엎어진 경진을 향해 턱짓했다.
“저거 침대에 눕혀 놔. 반나절 되면 알아서 일어나니까.”
일이 많을 때의 경진은 사윤이 쉬라고 말해도 지금 쉬면 일이 더 밀린다며 쉬지 않는다. 유능한 직원을 과로로 요절시킬 생각은 없었기에 강제 휴식을 선사하니 일개미처럼 움직인 길드원들이 경진을 옮겼다.
참된 수장이다.
이보다 더 친절할 순 없다고 스스로의 다정함을 칭찬한 사윤은 문득 핸드폰을 쥔 손이 지잉, 하고 울리는 걸 느끼고 손목을 틀었다.
‘미정 누나’
“이 누나가 웬일이래?”
생전 전화 한 통 안 하던 인간이 무슨 바람이 들어 전화질인가 싶었다.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가 통화 연결을 누르자 곧바로 경쾌한 웃음이 들렸다.
-꼬맹아. 너 네 예쁜이한테 바람맞았다며?
“…….”
시발 또 이건 누가 소문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