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빌런에게도 사연이 있다 (185)화 (185/266)

제185화. 꼬리잡기 (2)

눈꼬리를 사납게 치켜올리자 어깨를 으쓱인 남자가 아님 말고 식으로 가볍게 응수했다.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미정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 않냐며 웃음을 터트려 사람을 억울하게 만든다. 밤쥐가 범죄 길드가 아닌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쓰레기까진 아니었다. 우리 애들이 그래도 나름의 윤리… 는 없고, 도덕… 도 부족한 애들이긴 하지만.

“…….”

어째 생각할수록 변명이 빈궁해져 갔다. 감싸 주기가 민망할 만큼 미친놈들만 모인 길드라 멋쩍어진 사윤이 눈살을 찌푸렸다.

비록 할 말은 얼마 없긴 해도 억울한 건 억울한 거다. 정신이 나간 놈들이 태반이지만 그래도 얄팍한 도덕관념과 넘지 말아야 할 한계가 있는 게 제 길드원들이다. 스콜피언에 비하면 광기도, 똘기도 귀여운 수준인 애들을 어디 시궁창에서 기어올라 온 전갈 따위와 비교하고 있단 말인가.

종식이 들었다면 전갈보다는 쥐가 더 시궁창과 가까운 인연이지 않겠냐고 되물을 법한 생각이었다.

너는 융통성이 없어 새끼야.

상상 속 종식에게 화를 낸 사윤이 못마땅한 표정을 유지한 채로 미정과 건주를 흘겨보자, 그만 놀려야겠다고 판단한 건지 웃음을 거둔 미정이 먼지를 털어 주기라도 하듯 건주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말이 완전히 틀렸다곤 볼 수 없어. 밤쥐도 범죄 길드인 건 맞거든. 하지만 스콜피언은 밤쥐와 달라. 지독하고 질 나쁘기로 악명이 높지.”

“밤쥐보다요?”

“그래. 지금이야 밤쥐가 더 유명하긴 하지만 예전에는 아니었거든. 그 이유가 뭐겠어? 스콜피언 놈들이 강하고, 악랄하면서, 윤리 의식을 죄다 파괴하고 도시 하나를 폐허로 만들어서 그래. 그러니 지금 밤쥐의 악명이 높다고 해서 그때의 스콜피언만큼 질이 떨어지는 건 결코 아니지. 그랬다면 내가 쟤한테 알은척을 했겠니?”

미정이 사윤을 보며 턱짓했다. 그 신호를 따라간 건주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검은 눈동자.

저 컴컴한 흑안을 마주할 때마다 사윤은 한건주의 머리통을 갈라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알아내야 사라질 갈증이었다.

말없이 시선만 주고받고 있으니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미정이 말문을 떼며 사윤과 건주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아무튼 스콜피언 놈들은 범죄의 질부터 달라. 놈들이 활개 치고 다닐 땐 하루에 열 명씩 실종되는 게 일상이었다니까?”

미정이 다소 과장된 어투로 말했다. 사윤에게 못 박히듯 꽂혀 있던 건주의 시선은 그제야 여인에게로 느릿하게 돌아갔다.

“열 명씩이나요.”

“그래. 뜬소문에 의하면 열 명 중 다섯 명은 팔려 가고, 나머지 다섯 중 세 명이 장기 매매로 넘어간다더라.”

“남은 둘은요?”

“걔네는 뭐….”

말끝을 얼버무린 미정이 싱긋 웃어 보였다. 아무런 말도 얹지 않았지만, 그 웃음만으로 대답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윤은 살벌하게 눈꼬리를 휘는 여인을 보다 무심히 덧붙였다.

“나머지 둘은 스콜피언의 소유가 되어 험한 짓만 당했겠지. 두 달에 한 번꼴로 난자당한 시신 두 구가 그 길드 앞에 버려지더라. 이제 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예상이 가니.”

고문을 당하기도 했을 거고 착취당하기도 했을 거다. 여러 방면으로 말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놈들이었기에 그들의 길드 앞에는 항상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심하게 훼손될 때는 그것이 인간인지 짐승인지 알아채기 힘들 정도였다.

야만인.

딱 그렇게 표현하는 게 스콜피언을 설명하기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잔혹함을 증명하기 위해 인육을 먹는 것도 서슴지 않던 놈들이지 않은가.

사윤은 점점 파리하게 질려 가는 건주의 표정을 흥미롭게 관찰했다. 이제야 자기가 어떤 단체에 끌려갈 뻔했는지 감이 오는 모양이다.

그나마 다행이지.

스콜피언 놈들이 한건주를 탐내 자기 길드로 끌고 갔다면, 아무리 사윤이라도 바로 빼내 오는 게 불가능했다. 지금의 놈들이 어떤 전력인지, 간부들의 실력이 얼마나 성장했고 본거지가 어딘지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차라리 이 게이트로 버려진 게 천만다행이었다.

“생각보다 더 위험한 놈들에게 당했던 거였네요.”

“그런 셈이지. 뭐, 그래도 이렇게 살아 있으니 됐잖아? 문제는 스콜피언이 부활했다는 거지.”

미정이 현시점에서 가장 까다로운 사실을 꼬집었다. 사윤은 머리카락을 헤집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골치 아프게 됐어.”

다른 놈들도 아니고 스콜피언이라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대부분의 헌터들은 사윤에게 패배한 순간 넘을 수 없는 벽임을 인지하고 한풀 꺾이고, 그렇지 않은 이들 중 소수가 재도전을 하지만 스콜피언은 그런 보통의 부류와는 달랐다. 놈들은 꺾이지도 재도전을 하지도 않고 우선 움츠렸다. 그 상태로 지난 패배를 잊지 않고 몇 년을 기다리며 미래를 준비했을 것이다. 그들의 수장의 목을 베고 정상에 오른 자신의 목을 떨구고 다시 패권을 잡는 미래를.

그런 놈들이 가장 까다로운 법이다. 목표도 확실하고, 두려움이 없으며, 광기로 가득 찬 집요한 놈들 말이다.

하필이면 스콜피언이 딱 그 부류였다.

놈들에겐 자신의 협박도, 과시도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승리만이 통했다. 그것도 목을 베어 숨통을 끊는 완전한 승리만이.

“짐승 같은 놈들이 돌아오는구먼.”

사윤이 생각에 잠겨 있으니 호철이 한마디 했다. 그 말이 딱 제 심정을 대변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

잠시 정적이 흐른다. 이한도, 미정도 이제 웃음기를 지우고 석지환이란 이름을 가진 남자를 응시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거워진 걸 깨달은 남자가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갔어요. 스콜피언이란 게 그런 단체인지도 몰랐고….”

“그럼 이 게이트에는 왜 왔는데.”

“저야 상부에서 게이트에 들어가라고 명령하니까 일단 왔죠. S급 헌터 둘을 붙여 준다고 해서 게이트도 클리어할 수 있을 줄 알았고… 무엇보다 거절하기엔 너무 큰 돈이지 않나요. 클리어하고 돌아오면 10억을 준다는데….”

지환이 허둥지둥거리며 늘어놓은 변명에 사윤은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 종식과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한 말이 떠오른 탓이다.

내가 뭐라고 했냐, 종식아. 세상에는 돈만 준다고 하면 옥상에서 투신을 시도해 볼 돈에 미친 놈들도 수두룩빽빽하다니까.

한건주만큼 헌터 업계에 관심이 없는 놈들이 아닌 이상 헌터라면 누구나 아델리아의 무덤에 대한 소문을 들어 봤을 것이다. 그런데도 돈에 정신이 팔려 이곳에 들어왔다는 건 새로운 자살 시도밖에 안 됐다. 살려 달라곤 왜 빌었는가? 죽으러 온 거나 다름없는데. 입꼬리를 말아 올려 비웃음을 던지니 부끄러운 건 아는 건지 지환이 시선을 피했다.

“이 게이트가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었죠. 그런데 S급 두 명이잖아요. 클리어할 수 있을 줄 알았, 습니다.”

“걔네가 정상적인 S급이었겠니.”

보다 못해 입을 열자 지환이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들어 눈을 깜빡였다. 사윤이 이죽거렸다.

“손쓸 수 없을 만큼 마약에 중독됐거나, 어디 하나가 병신이 됐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니면 지독하게도 말 안 듣는 놈들을 처리하려고 보낸 걸 수도 있고. 뭐가 됐든 네 윗대가리들은 너를 비롯한 이곳에 온 전원을 죽이기 위해 명령을 내린 거야. 현실 도피 그만하고, 문제점 좀 직시하며 살지?”

“아….”

“…여길 공략하라는 명령 외엔 다른 말은 못 들었습니까?”

지환의 표정이 절망으로 물들어 갈 때쯤 이한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 상대가 패닉이 와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기 전에 어떻게든 정보를 빼내려는 작태였다.

거봐라. 내가 위선이라 했지.

사윤은 멍한 얼굴의 지환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옆에서 시선의 초점이 엇나간 남자가 희미하게 아무것도 못 들었다고, 이곳에 오고 나서야 저 사람이 납치되어 왔다는 것도 알았다고 설명했다. 예상했던 대로 말단이라 아무것도 몰랐던 모양이다.

“꼭 그렇게 말해야 해요?”

건주가 다가와 자그맣게 핀잔했다. 사윤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래도 저 사람 덕분에 저도 버틴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다 절 죽이려고 할 때 저 사람이 제게 전할 말이 있다고 잠시 빼냈거든요. 그사이 여기 사는 괴물이 나와 사람들 다 집어삼켰고요.”

“그래서.”

“저 사람 잘못이 없다는 건 아니지만 너무 몰아붙이진 말라는 소리였어요.”

속삭이듯 중얼거리는 말이 신경에 거슬렸다. 사람이 순진한 것도 정도가 있지. 저 죽이려 한 사람에게까지 선의를 베풀려 드나?

“허튼 생각 하지 말고 정신 똑바로 차려, 한건주. 이번에야 운이 좋아 게이트에 버려졌다지만 다음엔 스콜피언 놈들의 본거지로 끌려가는 수가 있으니까.”

“그 사람들이 왜 또 절 끌고 가요?”

“그야 네가―.”

“……?”

말을 하다 말고 흠칫 떤 사윤이 입을 다물자 건주가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래요? 아까 그 이어링 때문에 그래요? 그거 빼라니까, 왜 계속 끼고 있어서는….”

눈동자의 초점이 순간적으로 삐끗하니 놀란 건주가 사윤의 상태를 살폈다.

“진짜 이어링 때문에 그런 거예요? 세이렌이라고 했죠. 그 노랫소리 듣지 말고 제 말에 집중해 봐요. 아, 이건 왜 안 빠져?”

제 이어링을 빼기 위해 애를 쓰는 남자를 홀린 듯 지켜보던 사윤이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스콜피언 놈들은 자신과 한건주의 관계를 모른다. 그러니 그를 이 게이트에 버려둔 것이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한 정보가 퍼지고 나면, 자신이 한건주를 구하기 위해 곧바로 차를 타고 달려갔다는 사실이 일파만파 퍼져 스콜피언 놈들의 귀에도 들어갈 거였다. 그렇게 된다면 놈들은 또다시 한건주를 노릴 거다. 자신보다는 한건주를 건드는 게 더 쉬울 테니까.

그런 다음 그를 길드로 데려가 자신을 협박할 게 뻔했다. 다른 이를 납치해 그 짓거리를 한다면 통하지 않을 테지만 한건주라면 통할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갖고서.

왜냐면 그가….

“시발.”

사윤은 이곳에 오기 전 미정과 차 안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와 무슨 관계길래 이렇게까지 하냐고 했을 때 자신이 답한 말이 귓가에 맴돈다.

‘걘 나 없으면 안 돼.’

자각하지 못했던 사실이 파도처럼 밀려와 머릿속을 적셨다. 포말이 일어 머리를 죄 새하얗게 만드는 기분이다.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으니 기어코 한건주의 손이 제 볼을 붙잡았다. 그가 시선을 맞대 온다.

“괜찮은 거 맞아요?”

인상을 찌푸리며 걱정을 흘리는 목소리에 사윤은 휩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 없으면 안 되긴 개뿔.

눈앞에 그를 두고서야 알게 됐다. 여태껏 깊게 생각하지 못한 수많은 증거와 증명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상대 없이 버티지 못하는 건 그가 아니라 자신이다. 그렇기에 그가 보이지 않으면 찾는다고 오만 수를 다 쓰고, 화가 나는 거다.

분노는 불안을 표출하는 방식의 일환이었으니까.

“…괜찮냐고?”

사윤이 건주의 손을 쳐 내고 눈살을 구겼다.

심장이 빠르게 뛴다. 당장이라도 시스템이 새로운 강제 집행 퀘스트를 띄울 것만 같아 눈앞이 흐려졌다. 한 발, 뒤로 물러선 사윤이 욕을 지껄이며 건주를 바라보았다.

“한건주.”

“…듣고 있어요.”

“내가 괜찮아 보여?”

웬만해선 누군가에게 제 곁을 내어 주고 싶지 않았다. 소중하더라도 잃을 수 있는 사람들만 곁에 두었다. 종식이 죽어도, 경진이 죽어도, 찬희가 죽어도, 옌이 죽어도 자신은 몇 년 정도 슬퍼하다 말 거였다. 견딜 수 있는 죽음이다.

그러나 한건주는 달랐다.

그가 제 약점이 된 거다.

자각하지 못했던 걸 깨닫게 된 사윤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잊고 있던 감정이 몰아친다. 두려움, 불안, 긴장 같은 것들.

몇 년 만에 겪어 보는 그 감정은, 참 좆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띠링.

시스템 알림음이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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