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3화. 아델리아의 무덤 (10)
“뭐가 이상해?”
“가만히 좀 있어 봐요.”
사윤이 다시금 주먹을 휘두르려 하자 그 힘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어떻게든 손목을 붙들고 본 건주가 푸른빛이 감도는 흑안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사윤의 눈이 점멸하듯 깜빡거렸다.
“…이상한 거 맞네.”
엄지손가락으로 사윤의 눈 아래를 짚어 동공을 살핀 건주의 미간이 좁아 들었다.
“눈이 왜 이래요?”
“뭐가.”
“초점이 이상하고 홍채 색이 변했잖아요. 무슨 이상한 거라도 넣은 것처럼.”
새파래요.
작게 덧붙인 건주가 엄지손가락 끝으로 사윤의 눈물점을 매만져 보곤 어디 불편한 곳은 없냐고 물었다. 사윤은 지나치게 가까운 지금의 거리가 조금 이상한 것 같지 않냐고 말하려다가 제가 왜 불편해해야 하나 싶어 입을 다물었다.
“진짜 이상한데.”
건주는 뭐 아는 거 있냐고 물어보기 위해 미정과 호철, 이한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몸을 움찔거렸다. 협회에서 봤을 때의 위압감 넘치는 모습은 어디 가고 세 사람 모두 놀란 표정으로 입술만 달싹이고 있었다.
“…쟤, 쟤가 지금 뭐 하는 거니.”
“그러게요.”
“…기가 허해졌나.”
눈앞의 장면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 세 사람이 뭔가에 홀리기라도 한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그 셋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건주가 다시 사윤을 보았다. 역시 이런 건 당사자에게 묻는 것만큼 확실한 게 없었다.
“오는 길에 이상한 거한테 당하기라도 했어요?”
당하긴 무슨.
제 얼굴을 반죽이라도 할 생각인 건지, 자꾸만 매만지며 쓸데없는 말을 해 대는 건주의 손을 붙잡아 쳐 낸 사윤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상한 거에 당한 건 자신이 아니라 그였다.
납치당한 놈이 주제넘게 걱정하긴 누굴 걱정해?
“내 걱정 할 시간에 네 걱정이나 해, 건주야. 납치까지 당한 주제에 뭘 걱정하고 있어?”
“…딱히 길드장님을 걱정한 건 아닌데요. 걱정할 거면, 길드장님 손에 죽어 가는 저 사람부터 걱정해야지.”
건주가 피떡이 된 남자에게로 시선을 흘렸다. 중간부터 다시 기절한 남자는 엉망이 된 얼굴로 숨만 가느다랗게 색색 내쉬고 있었다. 중간에 말리지 않았다면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뭐 때문에 그리 화가 나서 무식하게 때렸냐는 물음을 듣던 사윤은 별안간 깨달은 사실에 눈을 크게 떴다.
그러고 보니 가라앉았네?
한건주와 대화하는 사이 조금 전 머릿속을 장악했던 분노가 사그라들었다. 희한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건주의 시선이 세이렌의 이어링에 닿았다.
“이건 뭐예요?”
그가 이어링을 툭 매만지며 묻자 사윤이 작게 탄성을 뱉었다. 눈 색이 이상하다고 한 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이제 짐작 가는 것이 생겼다. 어쩐지 세이렌의 노래가 크게 들리는가 싶더라니 아무래도 이어링의 부작용을 한계까지 견딘 모양이었다.
세 번 정도인가.
고통을 느끼지 못해 바닥난 마나를 강제로 쥐어짠 게 세 번이었다. 부작용이 심할 만도 해 이어링을 감싸 쥔 다음 포션을 꺼냈다. 안에 담긴 약을 벌컥벌컥 들이켜니 건주가 무슨 포션을 맥주 마시듯 들이켜냐고 물었다. 사윤은 괘씸해져 빈 포션병으로 건주의 가슴팍을 툭 쳤다.
“너 때문이잖아, 애새끼야. 네가 납치만 안 당했어도 내가 이 고생을 안 했지.”
꾸짖는 어투로 중얼거린 사윤이 제 손에 웬 남자가 달려 있는 걸 확인했다.
“아.”
내려놓는 걸 까먹었다. 죽어 가는 남자를 바닥에 쿵 소리 나게 떨어트린 사윤이 얼굴에 튄 피를 손등으로 닦고 있으니 한건주가 인벤토리를 뒤적여 손수건 같은 걸 꺼내 건넸다. 자기 얼굴에 튄 흙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등에 닦더니 피는 또 손수건으로 닦으라며 건네주는 게 어지간히도 유혈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건 뭐예요?”
끈질기기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긴 줄로만 알았는데 그는 아직도 제 귀에 찬 이어링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이템.”
“무슨 아이템인데요.”
“뭐긴 뭐야, 무통 아이템이지. 이런 데 들어오려면 하나쯤은 필요해. 나가면 너도 하나 구해 줄 테니 챙겨 다니고.”
한건주의 정신 상태는 척 보기에도 나약했으니 효과가 조금 떨어지더라도 부작용이 없는 걸 구해다 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믿었던 이한테 배신당한 건 그때였다.
“단순한 무통이 아니지. 통증을 없애고 서리 스킬의 공격력을 올려 주는 대신 세이렌한테 정신 공격을 받는 아이템이야. 그래서 저거 끼고 있는 동안 무리하면 위험한데 우리가 온 길을 봐, 싹 다 서리 지대지? 다 쟤가 한 거야. 너 빨리 찾겠다고.”
별거 아니었기에 가볍게 넘기려고 했는데 미정이 또 대화에 끼어들어 쓸데없는 설명을 덧댔다. 사윤은 다른 사람도 아닌 미정이 제 뒤통수를 때렸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한건주가 사윤의 눈동자를 확인했다가 눈살을 구기며 되물었다.
“…정신 공격을 받는다고요?”
“그래. 살다 살다 세이렌의 이어링을 끼고 이만치 날뛰는 애는 처음 봤다. 눈동자 색이 이상한 이유가 뭐겠어? 가랑비에 옷 젖듯 정신 공격에 반쯤 먹혀서 색이 변하고 충동을 못 참은 거지. 그래도 지금은 꽤 괜찮은 것 같아 다행이네. 그렇지?”
미정이 싱긋 웃으며 동의를 구했다. 사윤은 기가 막혀 허, 웃기만 했다.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뭐 하기는. 네가 한 일로 내가 생색 좀 내고 있는 거지.”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여인의 말에 옆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건주였다.
“아티팩트가 그런 것밖에 없어요?”
“이런 것밖에 없는 건 아니지.”
“근데 왜 항상 그런 식의 아이템만 써요?”
“효율이 좋으니까.”
“그러다 몸이 먼저 바닥나는 거 몰라요?”
“어어, 그래.”
잔소리해 대는 건 종식이나 이재희만으로 충분했다. 한 사람을 더 늘릴 필요가 없어 대충 대답한 사윤이 화제를 넘기기 위해 건주의 손수건을 받아 얼굴에 튄 피를 닦았다. 피의 양이 꽤 됐던 건지 손수건이 더러워져 그냥 바닥에 버리자 건주가 그걸 왜 버리냐고 한마디 했다. 투덜거리는 모습 위로 종식이 겹쳐 보였다.
“왜, 너도 설마 빨아 쓰게?”
“뭘요.”
“손수건.”
“…….”
끔뻑거리는 눈동자가 ‘그럼 버려요?’ 하고 묻는 듯했다. 생긴 건 달랐지만 이런 성격은 리틀 종식이 따로 없었다.
죽이 잘 맞겠네.
둘의 성향이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윤은 대화가 이어질수록 요동치던 맥박이 안정되며 머릿속이 진정되는 걸 깨닫고 묘한 기분을 느꼈다. 세이렌의 노랫말이 잦아든다. 한건주가 곁에 있을 때의 자신이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라 생각했는데 세이렌의 이어링이 가져다주는 부작용의 정도를 파악하니 그가 곁에 없을 때가 오히려 더 심한 것 같았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나.
누가 곁에 있든 말든 착실히 미쳐 살았는데 이재희고 한건주고 별 희한한 것들이 곁에 붙어 사람을 제정신으로 만들려 하고 있었다. 곤란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으나 그게 또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묘하다. 무어라 정의하기 애매했기에 얼굴을 구기고 있으니 한건주가 왜 또 그런 표정을 짓냐고 어이없어했다.
“손수건 하나 아껴 쓰는 거로 되게 뭐라 그러네.”
작게 투덜거린 그가 기어코 떨어진 손수건을 탁탁 털어 인벤토리에 넣었다. 뭐라 핀잔할 새도 없이 순식간이었다.
“궁상맞게 진짜.”
돌아가면 손수건 이천 장을 사 주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됐으니 마음대로 하라고 얘기한 사윤이 눈동자의 초점을 맞추곤 호철에게 맡겼던 전갈 그림 문신을 새긴 남자를 확인했다. 한건주의 증언에 따르면 그에게 붙어 있던 한 명을 제외한 모든 잔당은 괴물에게 먹힌 듯했으니 정보를 캐낼 구석은 이제 자신이 붙잡아 둔 저 허접밖에 남지 않았다.
슬슬 할 일을 해야지.
만담도 다 나눴겠다. 이젠 심문을 할 생각이었다. 한 발, 앞으로 걸음을 내디디니 눈앞의 남자가 움찔거리며 반응했다.
“힉!”
조금 전 사윤이 사람을 죽일 기세로 두들겨 패던 모습을 직관해 꽤 겁에 질린 모양이었다.
사윤은 호철에게 눈짓해 놓으라고 신호를 주었다. 그가 남자를 놓아주자, 다리에 힘이 풀린 건지 남자는 바닥에 주저앉으며 사윤을 올려다보았다.
엉덩방아를 찧고도 아프지 않은 건지 주춤주춤 두 손으로 시린 얼음을 짚어 가며 몸을 물리는 이에 사윤이 다가갔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남자는 힉! 헉! 윽! 등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별 희한한 새끼를 다 봐 남자의 머리채를 붙잡은 사윤이 자꾸 아래로 내려가려는 이의 시선을 고개를 젖히게 해 강제로 들도록 만들었다. 사윤과 눈이 마주친 남자가 울상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스콜피언치곤 영 엉성한데…, 어디서 왔어?”
“히익, 살, 살려….”
“살고 싶으면 대답을 해야지.”
사윤이 그의 머리를 가볍게 흔들며 채근했다. 신음을 흘린 남자가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스, 스콜피언은 맞아요!”
“스콜피언‘은’ 맞아?”
“네, 예! 맞긴 한데….”
“…잠시만요. 이 사람 왜 한국인이죠?”
이한이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갑자기 제시된 의문에 사윤이 눈꺼풀을 슴벅거렸다.
듣고 보니 그렇네.
스콜피언 놈들의 규모가 크긴 했지만 녀석들의 근거지는 미국이었고 당연히 길드원들도 대부분 서양인이었다. 5년 전에도 녀석들 중 동양인을 몇 명 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은 사윤이 간파 스킬을 사용했다.
“거짓말했니.”
“아, 아니에요!”
스킬 반응 역시 참이었다.
그렇다는 건 진짜로 스콜피언이란 얘긴데.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진짜 스콜피언이거나, 스콜피언을 사칭하는 사이비 단체에 저 남자가 영문도 모르고 가입해 진짜라고 믿고 있거나. 확실한 건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 수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기에 자리에 쪼그려 앉은 사윤이 남자를 툭툭 치며 곱게 죽고 싶으면 아는 걸 다 불라고 얘기했다.
“안 죽인다는 말은 안 하네요.”
건주가 떨떠름하게 중얼거렸고,
“어유, 누가 보면 우리가 악당인 줄 알겠어.”
미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혀를 내둘렀다. 호철과 이한 역시 너무 과격한 방법이지 않냐고 물었지만 사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만의 길을 걸었다. 남자의 발목을 분질러 정보를 캐냈다는 얘기다.
“난폭하다, 난폭해.”
미정이 적을 덜 만들려면 그 과격한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충고했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 거 지키려면 범죄 길드 안 세웠지.
자신은 노아이기 이전에 제비 길드였고 그 전에 밤쥐 길드의 수장이었기에 정보를 알아낼 의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