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2화. 아델리아의 무덤 (9)
즉사 부위는 아니었다.
물어볼 게 있었으므로.
“커헉!”
단도가 박히자마자 환각에서 벗어난 건지 남자의 눈빛이 명료해졌다. 비명을 내지른 남자가 어깨를 더듬어 칼을 붙잡고 미간을 좁혔다. 자신을 붙든 상대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은 그가 뒤를 돌아보던 순간, 사윤은 놈의 목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상대의 얼굴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숨통이 붙들린 남자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끄으윽….”
죽일 생각으로 목울대를 압박하며 들어 올리자, 구두 신은 발이 애꿎은 허공을 이리 차고 저리 차 댔다.
“뭐야? 진짜 스콜피언이네?”
“세상이 말세로구먼.”
뒤늦게 따라붙은 호철과 미정이 이한과 함께 홀로 있는 망령부터 빠르게 처치한 다음 합류해 사윤이 붙잡은 남자의 얼굴에 새겨진 전갈 문신을 보며 놀랐다. 반면 사윤은 미심쩍은 눈길로 상대를 살폈다.
무언가 이상한데?
스콜피언의 일원이라고 하기엔 터무니없이 약했다. 5년 전 놈들과 처음 부딪쳤을 때 상대한 말단도 이보단 재빠르고 까다로웠기에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자신의 실력이 그만큼 오른 건지, 놈들이 형편없이 약해진 건지 아니면 스콜피언이 아닌 광신도들이 흉내만 내는 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뭐,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정체는 나중에 심문해도 된다. 그리 생각하던 순간 버둥거리던 남자가 입 안을 움직였고 사윤의 눈이 섬뜩하게 빛났다.
“커헉!”
사윤의 다른 손이 남자의 볼을 거세게 움켜쥐었다. 어금니를 부러트릴 듯이 살벌하고 강한 압박을 가하자 남자의 입이 강제로 벌어졌다. 붉은 입 안에는 척 보기에도 수상한 작은 독단이 있었다. 사윤의 입꼬리가 비식 올라갔다.
“누구 앞에서 수작질을 부려.”
싸늘한 말과 함께 서리의 기운이 퍼져 나가며 주변 지대를 일부 얼렸다. 드드득! 가벼운 진동과 함께 남자의 뒤로 얼음벽이 생겨났다. 그 벽으로 사내를 밀어붙인 사윤이 쾅! 쾅! 목을 움켜쥔 채 남자를 두 번 벽에 갖다 박아 입 안에 있는 독단을 떨구게 했다.
투두둑.
떨어진 게 비단 독단뿐만은 아닌 건지 하얀 것 네다섯 개가 함께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이가 나간 남자가 어어, 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한건주 어디 갔어.”
“나는, 커헉! 모, 모르….”
“몰라?”
상대가 대답하기 전에 그 답을 미리 점지한 사윤이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모르면 안 될 텐데.”
직접 대화를 나눠 보니 알 것 같았다. 실력이며 대응하는 태도며 척 보아 하니 노련한 놈은 아니다. 범죄 길드답지 않게 뒤 한 번 잡혀 본 적 없는 초짜처럼 벌벌 떨고 있지 않은가.
사윤이 아는 스콜피언이라면 제게 목이 붙들리고도 미친놈처럼 웃으며 얼굴에 침을 뱉어야 했다.
어쩌면 진짜로 스콜피언인 척하는 허접이거나, 스콜피언이 밤쥐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야금야금 세를 불리고 있어 새로 들어온 신입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둔 사윤이 단도를 꺼내 손목 스냅으로 한 바퀴 돌렸다.
“크흑, 컥! 사, 살….”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다가 도리어 더 강한 압박을 느낀 남자가 고통스러워했다.
“한건주 어디 갔어.”
“모, 모른다고!”
“말했잖아. 모르면 안 될 거라고.”
그게 네가 살 유일한 방법인데.
나직이 지껄인 사윤이 남자와 시선을 맞댄 채 얼굴을 바투 붙였다.
<스킬, ‘공포 유발’이 발동합니다.>
“끅… 흐으….”
“네 시체에서도 정보를 얻을 방법은 있으니 봐줄 때 불어.”
엄지의 위치를 옮겨 남자의 목울대를 꾹 누른 그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끄아아악!”
어디선가 굉음이 들리더니 누군가 비명을 내지르며 멀리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 폭음이 들린 것과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빠르게 반응한 사윤이 상황을 파악했다.
제일 먼저 날아가는 남자를 살폈다. 한건주는 아니다. 자신이 붙잡아 둔 이와 같이 수상한 스콜피언인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으니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진 남자가 욕설을 지껄였다. 놈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자 누군가가 신형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쓰러진 남자의 앞에 도달했다.
[개새끼가!]
영어로 욕을 내뱉으며 이성이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눈을 뒤집어 사납게 달려드는 남자의 손목을 가볍게 채 간 이가 추진력을 실은 몸을 제 쪽으로 한껏 끌어당겨 속도를 부추겼다가 복부를 걷어찼다. 커헉! 달려들던 남자가 기침을 토했다. 두 번 더 상대의 복부를 걷어차 멀리 떨어트린 이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에 묻은 진흙을 닦았다.
“다 튀었네.”
멀찍이서 들리는 그 목소리가 익숙했다. 순간적으로 포획해 둔 스콜피언의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뺀 사윤이 예민한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손을 털고 있는 사람을 돌아보았다. 뒤늦게 인기척을 느낀 상대 역시 사윤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시선이 마주친다.
“…쟤 네 예쁜이 아니니?”
미정의 목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한건주?”
먼저 입을 뗀 사람은 사윤이었다. 목을 움켜쥐고 있던 스콜피언으로 추정되는 남자를 호철에게 내팽개치듯 맡긴 사윤이 건주가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발, 한 발 거리가 가까워질 때마다 긴가민가 싶었던 눈에 확신이 깃들었다.
한건주가 맞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사윤은 자리에서 뛰어 건주의 멱살을 붙잡았다.
“또 왜…!”
멱살이 붙들려 습관적으로 눈을 질끈 감은 건주가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사윤은 그의 얼굴을 꼼꼼히 살핀 다음 팔과 다리, 배 등 다친 곳이 없는질 확인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멀쩡하다. 긴가민가했는데 역시 납치를 시도한 쪽은 진짜 스콜피언은 아닌 모양이었다. 맞다고 하더라도 놈들 중의 정예는 아닌 것 같았고.
그리 생각하니 더 화가 났다.
정예도 뭣도 아닌 인원으로 제 것을 건드렸단 말인가.
밤쥐와 제 이름이 아주 바닥에 떨어져 진창을 구르고 있었다. 제비 길드에 신경 쓴다고 한동안 별짓 안 하고 얌전했더니 세력이 떨어진 줄 아는 머리 빈 놈들이 많은 듯했다.
그러니 이렇게 어중이떠중이가 기어오르지.
사윤은 이를 으득 갈며 건주를 제 쪽으로 바짝 당겼다.
“넌 시발 납치당할 놈들이 없어서 이런 허접들한테 납치당해?”
“오자마자 하는 말이 그거예요? 그리고 허접 아니었어요.”
“너한테 얻어맞고 있는데 허접이 아니야?”
“무슨 말이 그래요? 제가 허접이에요?”
사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건주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가 사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며 흙먼지 묻은 옷을 털었다. 진흙투성이 신발 아래에 펼쳐진 서리 지대를 내려다본 남자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비슷한 사람들이 더 있었는데, 싸우는 도중에 잡아먹혔어요. 허접이 아니라 그중에는 진짜로 강한 사람도 있었고. 대충 뒤의 두 사람이랑 비슷한 실력으로 느껴졌어요.”
“우리?”
미정이 손끝으로 자신과 호철을 가리켰다. 한건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잡아먹혔다고?”
태연하게 이어지는 말에서 의문스러운 점을 포착한 사윤이 물었다. 잡아먹히긴 뭐에 잡아먹힌단 말인가. 그것도 스콜피언 놈들이.
미정과 호철 수준의 실력을 지닌 놈이 있다는 한건주의 말이 사실이라면 전갈 문신을 한 놈들의 정체는 하나로 좁혀진다. 스콜피언이 다시 나타나 어중이떠중이라도 주우며 세를 늘리고 있단 뜻이었다.
언젠가 다시 활동하기 위해.
그 도약의 계기를 이번 납치 사건으로 삼은 듯해 비상하려던 놈들을 삼킨 녀석이 무엇인지 묻자 건주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갔다.
정확히는 옆이 아닌, 서리 지대가 끝나는 곳 저 멀리를 응시하는 것 같았다.
“…몬스터?”
확신하지 못하는 어투였다. 더 자세히 말해 보라는 듯 시선으로 재촉하니 그가 기억을 더듬듯 눈썹 사이를 좁혔다.
“아파트 1층 크기만 한 괴물이었어요. 온몸에 늪을 두르고 있었고, 녀석이 입을 벌리니 사람 비명 소리 같은 게 뭉쳐서 들렸어요. 그놈한테 전부 잡아먹혔고요.”
“너는 용케 안 잡아먹혔네.”
“저야 숨었죠.”
그 과정에서 귀찮은 놈이 달라붙어 지금 치우고 있었고요.
남자가 바닥에 널브러진 전갈 문신의 사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사윤은 숨을 들이켰다.
정리해 보면 한건주를 납치한 놈들은 진짜 스콜피언이 맞고 그들 중 대부분이 이 망령의 늪에 사는 괴물한테 잡아먹혔다는 말인 것 같았다.
못 보던 사이 스콜피언 놈들의 대가리가 더 가벼워졌나.
다른 곳도 아닌 왜 미지 게이트에 와 전멸을 초래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몬스터는.”
“다 먹어 치우곤 늪 안쪽으로 이동했어요. 이 소란에도 나오지 않는 걸 보면 잠든 것일 수도 있고, 배불러서 움직일 생각을 안 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마도 전자일 것이다. 수준급 각성자들을 순식간에 먹어 치운 놈이 있는 곳이라고 하기엔 기운이 지나치게 잠잠했기에 속으로 결론을 내린 사윤이 마지막으로 한건주의 상태를 점검했다. 시퍼런 눈길이 온몸을 샅샅이 살피니 건주가 멀쩡하다며 한 걸음 물러났다.
“놈들이 별짓을 안 했나? 멀쩡하네.”
납치당한 것치곤 얼굴에 난 작은 생채기 말고 말끔한 상태였다. 이렇게 되면 더더욱 스콜피언 놈들의 목적을 알아내야 했기에 사윤은 바닥에 기절한 남자의 머리통을 걷어찼다. 뻐억! 소리가 들리자 건주의 눈이 커졌고 이한이 혀를 찼다.
“일어나야지.”
사윤이 허리를 숙여 기절한 남자의 멱살을 들어 올렸다. 얼굴이 성하다.
누구는 생채기가 났는데 누구는 멀쩡하고.
아주 꼴사나운 상황이다. 속이 뒤집어져 한건주를 찾아 반쯤 가라앉았던 노기가 다시 머릿속을 집어삼켰다. 뇌리에서 울려 퍼지는 세이렌의 노래가 충동적인 감정과 분노의 감정을 더 부추기고 있었다.
흉포한 기운이 어깨 위로 넘실거렸다. 이상함을 감지한 건주가 사윤의 어깨를 붙잡았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꼴사납게 납치까지 당해 놓고 보복이랍시고 소꿉장난을 하고 있는데 내가 괜찮게 생겼니.”
기다렸다는 듯 타박을 흘린 사윤이 기절한 남자의 손가락을 우드득 부러트렸다. 이로 손톱을 잘근 씹어 반쯤 분질러 놓으니 통증에 눈을 뜬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고통을 호소했다. 사윤은 심문도 하지 않고 깨어난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냅다 꽂았다. 남자의 코가 부러지며 픽, 피가 사윤의 얼굴로 튀었다.
“저거 또 성질 나오네.”
미정이 등을 돌렸고 이한이 한숨을 내쉬었으며 호철이 쯧쯧 혀를 찼다. 익숙하다는 듯 서 있는 세 각성자들은 사윤을 말릴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이미 과거에 사윤을 말리려 했다가 분노 조절에 문제가 생긴 사윤에게 얻어맞거나 죽을 뻔한 전적이 있었다. 목숨이 아깝다면 얌전히 지켜봐야 했기에 모두가 시선을 거두니 결국 사정없이 폭력을 휘두르던 사윤을 말린 건 그의 팔뚝을 붙잡은 건주였다.
“그러다 죽겠어요. 심문 같은 거 안 해요?”
“뒤지라고 패는 건데 죽어야지. 심문할 놈은 저기에도 한 명 있어.”
사윤이 호철에게 맡긴 스콜피언의 잔당을 눈짓하며 한 번 더 남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세이렌의 노랫말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힘이 다한 전등이 깜빡거리듯 사윤의 눈동자에 초점이 잡혔다가 풀렸다가 했다. 그 분노가 평소보다 이상하다는 걸 깨달은 건주가 미간을 좁혔다.
“길드장님.”
콰앙! 쾅!
입 밖으로 내 본 모든 소리가 사윤의 광기에 씹어 먹혔다. 무슨 말을 하든 들어 먹지 않을 듯한 태도에 건주가 한숨을 내쉬며 사윤의 손목을 공중에서 낚아챘다.
“형.”
사윤의 손이 공중에서 멎었다.
“그만해요. 지금 상태 이상한 것 같으니까.”
나직한 목소리에 사윤이 고개를 돌려 건주를 바라보았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러다 죽는다며 손을 뻗어 건주를 말리려 했던 노아의 세 각성자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왜 안 패지?”
“그러게나 말이다.”
말리다가 얻어맞은 경험이 있던 사람들의 눈에 억울함이 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