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9화. 아델리아의 무덤 (6)
술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핸드폰을 꺼낸 사윤은 신경질적인 손길로 버튼을 눌러 경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두 번 울리고 통화 대기 화면이 바뀐다.
“한건주 위치 추적해 봐.”
상대가 전화를 받자마자 용건부터 꺼냈다.
-뭐야, 그 자식 또 도망갔어?
“아니.”
-그럼 왜?
“납치당했다.”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뒷골이 당겨 목덜미를 꾹꾹 누르며 말하자 전화기 너머의 경진이 헛웃음을 흘렸다.
-걔도 참….
혀를 찬 남자가 안타깝다는 듯 중얼거렸다. 음성 사이로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섞여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진이 건주의 위치를 알려 주었다. 꽤 뜻밖의 장소다.
“아델리아의 무덤?”
사윤은 불확실한 목소리로 반문하며 핸드폰 화면을 힐끔거렸다. 경진의 폰이 맞았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경진이 이런 일에서 실수하는 일은 잘 없는데.
-어. 거기 앞까지 좌표 잡히다 끊긴 걸 보이니 게이트에 들어간 것 같은데?
“확실해?”
-나 못 믿을 거면 정보 팀 팀장 자리에는 왜 앉혀 놨어?
그것도 그렇지.
그냥 믿기 싫어 한 번 더 확인해 봤다. 경진이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면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했기에 목덜미를 잡고 고개를 젖힌 사윤이 하늘을 응시했다. 한쪽 입꼬리가 삐뚜름하게 치솟는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비소인지 탄식인지 모를 숨소리가 샜다.
그러니까, 지금.
상도덕도 없는 납치범 새끼가 내 앞에서 한건주를 채 간 것도 모자라 내가 갈 게이트도 선수 치고 들어갔다고.
목을 잘라 머리통을 열어 보지 않고서야 이해할 수 없는 사고다. 기껏 납치했으면 멀리 도망치기라도 하든가 왜 남의 게이트까지 멋대로 노려 사람의 신경질을 툭툭 건드리는 건지. 한번 해 보자는 거다. 사윤은 경진에게 납치범 관련 조사를 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까지도 사람들은 사윤만 바라보고 있었다. 기자들은 딸꾹질을 연신 해 댔다. 협회에서 너그럽고 자애로우며 성자의 현신인 것처럼 언론 플레이 해 댄 제비 길드의 수장이 이런 성격일 줄은 몰랐을 테니까. 사윤은 그들의 얼빠진 얼굴을 보며 코웃음을 친 다음 차를 향해 몸을 틀었다. 그러곤 차 위로 손을 얹어 허리를 숙였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협회 직원과 눈이 마주친다.
“힉!”
딸꾹질 전염병이라도 있는 건지 기자들에 이어 운전사까지 숨을 헐떡여 댔다. 사윤은 긴말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나와.”
“…네?”
“나오라고. 가야 하니까.”
냉기를 폴폴 날리며 말하자 협회 직원이 덜덜 떨다 내렸다.
“어디 가는 거지?”
태석이 단독 행동을 하려는 사윤의 팔을 붙잡았다. 그가 기자들 쪽을 턱짓했다. 눈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속보를 띄울 수 있는 기자들 좀 보라는 신호였다.
기사가 뜨든 말든.
그게 내 알 바인가?
귀찮다는 표정으로 태석의 팔을 쳐 낸 사윤이 차에 올라탔다.
“한건주 잡으러 갔다 온다.”
“어디 있는지는 알아?”
“알지, 그럼.”
“같이 안 가도 되겠어?”
긴박한 상황인데도 미정의 목소리는 나긋했다. 여유를 잃지 않는 것도 상인의 미덕이지. 언젠가의 미정이 어린 사윤을 앞에다 앉혀 두고 설명했던 말 중 하나였기에 잠시 진정한 사윤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자들은 여전히 공포와 호기심이 뒤섞인 눈으로 저를 바라보고 있었고, 노아의 팀원들은 눈살을 찌푸린 채 어떻게 행동할지 보겠다는 듯 굴고 있었으며 마지막으로 민철은 눈에 힘을 주고 사윤을 직시하고 있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신호도 주지 않았지만 사윤은 그가 제 행동을 석연치 않아 하고 있음을 알았다.
이대로 가면 족히 한 달은 감시가 따라다니고 추궁이 붙겠지.
사윤이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최근 4년간 협회가 감시를 포기해 느슨해져 있었는데. 한국 협회는 능력은 없어도 집요한 건 쓸데없이 집요해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결국 사윤은 나름의 타협을 하기로 했다.
어차피 아델리아의 무덤은 가야 할 곳이다. 협회장이 원하는 건 노아의 멤버들이 아델리아의 무덤을 클리어하는 거였고 그 점만 들어주면 적어도 귀찮게 굴진 않을 거였다.
그렇다면 뭐 어쩌겠는가.
이번 한 번은 맞춰 줘야지.
“야.”
사윤이 차창을 내려 고개를 빼었다. 직전에 서리의 기운을 써 아직 얼핏 푸른 기운이 감도는 검은 눈동자가 동주와 호철, 이한, 태석, 미정을 바라보았다.
“타.”
차 뒷좌석을 향해 시선을 던지며 말하자 미정이 피식 웃으며 탔다.
“어딜 가는 줄 알고 타?”
태석은 예상했던 대로 반발심부터 드러냈다. 다른 때라면 어울려 줬겠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사윤은 그를 상대하지 않고 시선을 굴렸다.
“아델리아의 무덤으로 가시는 건가요?”
이한이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협회장을 한 번 바라보았다. 민철과 눈빛을 주고받은 남자가 뒷좌석에 올라탔다. 호철은 살다 보니 권사윤이 운전사를 자처하는 날도 온다며 낄낄 웃다가 세 번째 탑승자가 되었다.
남은 일행은 둘이다. 배동주를 빤히 쳐다보자 중년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수치심도 모르는 금수 같은 자식이라고 중얼거리며 발을 딱 붙이고 있는 게, 탈 생각이 없어 보여 시동을 걸었다.
“안 탈 거면 기어서 오든가, 걸어서 오든가 알아서 하고.”
“…….”
“공략 갔다 온다.”
사윤은 전개되는 상황을 따라가느라 애쓰고 있는 기자들에게 기삿거리 하나를 던져 주곤 차를 출발시켰다.
“간다고? 야, 야!”
권사윤!
자존심을 태우느라 버스를 놓친 태석이 뒤늦게 사윤을 불렀지만 이미 늦었다. 사윤은 일체의 망설임도 없이 속도를 올리며 아델리아의 무덤으로 향했다.
“게이트에 네 꼬맹이가 있는 건 확실해?”
떠보는 듯한 물음이다. 사윤은 룸 미러를 통해 미정과 시선을 마주치곤 픽 웃었다.
“내가 누구로 보여?”
요즘 하도 제비 길드의 수장으로만 있었더니 오만 곳에서 능력을 검증하려 들고 난리다. 여기에 있는 모두가 용을 쓰고 발악해 봐야 밤쥐 애들이 클릭 몇 번으로 알아내는 정보를 못 따라갈 것이다. 앞에 범죄가 붙어 얕잡아 보인 건지는 모르겠으나 밤쥐는 명실상부한 국내 최대 규모의 정보 조직이었다.
자신이 확신할 수 없다면 누가 한건주의 위치를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오만하게까지 느껴지는 대답에 미정이 기분 좋은 허밍을 냈다.
“잘 자랐네.”
격세지감이라며 중얼거린 여인이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한 명을 조용히 시키니 이젠 다른 한 명이 또 입을 열었다.
“한건주 씨가 아델리아의 무덤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아무리 밤쥐라도 그렇게 빨리 확인할 수 없을 텐데요.”
정보력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하는 일이니 한계가 있는 법이다. 알아낸 속도가 지나치게 빠르다며 의문을 내놓는 이에 사윤은 대수롭지 않게 입을 열었다.
“칩 하나 넣어 놔서.”
“…….”
나직한 답변에 차량 안이 조용해졌다.
“…칩을 넣어 놨다고?”
이한이 한참은 늦게 반응했다. 제가 들은 말이 농담인 건지 진담인 건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다 온 듯해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리 물은 건 미정이었다. 사윤은 차선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도망친 적이 있어서.”
눈앞에서 허무하게 놓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험은 두 번도 많았다. 한 번도 충분했는데 두 번이나 그런 식으로 잃었으니 이젠 자신도 대비란 걸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한건주에게 건네준 가면에 위치 추적이 가능한 칩을 박아 놨다. 마음 같아선 손목에 집어넣고 싶었으나 이재희가 알면 또 폭풍 잔소리를 해 댈 게 분명해 나름 타협한 방식이었다.
인체에 심은 것도 아니니 딱히 숨길 필요가 없어 솔직하게 밝히자 일행들이 떨떠름한 시선으로 사윤을 보았다. 미정이 괜히 자기 손목을 휙휙 돌리며 살폈다.
“어우, 나한테도 그런 거 심어 둔 거 아니지?”
“누나한테 왜 심어.”
미정이 도망친다 한들 자신이 입을 타격은 없었다. 무슨 뜬금없는 소리를 하냐는 듯 쳐다보자 여인이 눈살을 구겼다가 혀를 찼다.
“매정하게도 말하네. 나는 필요 없다 이거지.”
“예쁜이 자리는 꽉 차서.”
누나는 들어오기에 나이가 많지 않나.
문득 떠올라서 한 말인데 미정은 못 하는 말이 없다며 웃었다.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사윤은 과속이라고 알려 주는 차량 내비게이션의 음성을 모조리 무시한 채 속도를 올렸다.
아델리아의 무덤이 있는 곳은 베를린이었으므로 서둘러 가야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놓치면 전용기라도 한 대 띄우고.
핸들을 손가락으로 탁탁 두드리며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문득 뒷좌석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호철도 이한도 사윤과 그다지 친근한 사이가 아니었기에, 이번에도 말을 건 건 미정이었다.
“그래서 그때 그렇게 화를 냈니? 도망간 놈이 돌아온 거라서?”
그가 말하는 날이 언제인지 짐작이 갔다. 룸 미러를 통해 확인해 보니 호철과 이한이 풍경을 보는 척하면서 사윤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들도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나 보다.
“뭐….”
대충 긍정하니 미정이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네가 그렇게 사람한테 집착하는 애가 아니었는데.”
그건 그렇지.
과거나 지금이나 인연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건 변함이 없었다.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건지 여인이 의아한 음성을 흘렸다.
“보기엔 그리 특별해 보이진 않던데.”
무슨 사이야?
그 물음은 계속해서 아델리아의 무덤만 생각하고 있던 사윤의 머릿속을 일순 정지시키는 말이었다. 호기심 섞인 시선이 제 뒤통수를 찌르는 게 느껴졌다. 사윤은 숨을 들이켰다가 직전에 본 한건주를 떠올렸다. 브릿에 빨려 들어가기 전 눈이 휘둥그렇게 커진 채 자신을 붙잡으려던 그 남자를.
“글쎄….”
그와의 관계를 정의할 만한 용어가 없었다. 침음성을 흘린 사윤은 일단 확실한 것 하나를 얘기했다. 미정이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옅게 웃었다.
“진짜로 많이 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