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8화. 아델리아의 무덤 (5)
“아직 호흡 한 번 맞춰 본 적 없는 사람들과 미지 클리어라니. 무모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태석이 의견을 내었다.
미지. 단 한 번도 클리어되지 않는 데다 공략을 시도했던 이 중 살아 귀환한 이가 없어, 풀린 정보가 거의 없기에 붙은 이름으로 현재 세계에는 총 세 개의 미지 게이트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저 아델리아의 무덤이었고.
“어느 정도 동의는 해요. 오죽하면 그 게이트에 아델리아의 무덤이란 이름이 붙었겠어요. 준비는 필요할 거예요.”
태석이 운을 떼자 미정 역시 참고 있던 염려의 목소리를 뱉었다. 이한과 호철, 배동주까지 그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섯 사람이 반응을 보였으니 협회장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 어떤 의견도 내놓지 않은 사윤과 건주에게로 닿았다. 흐음, 사윤은 의자를 뒤로 쭉 끌었다가 한 바퀴 돌렸다.
헌터들이란 으레 명예와 유명세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지난 수년간 수백의 S급 헌터가 미지를 공략했다는 훈장을 따기 위해 달려들었다가 실패했다. 아델리아의 무덤이 그런 이름이 붙은 것 역시 유명한 S급 헌터이자 7년 전 최강 소리를 듣던 아델리아가 미지 게이트에서 죽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델리아 스탯이 어느 정도라고 했더라.
능력치를 총합해 평가했을 때 약 S+급이라고 들었던 것 같다. 헌터들이 나타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7년 전이란 걸 생각해 보면 경이로운 수치였다.
“어떻게 생각해요?”
건주가 남들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낼 듯 말 듯 속삭이는 것에 가까운 음성에 가면 속 흑안을 마주한 사윤이 눈꼬리를 길게 뺐다.
“글쎄.”
여태껏 수많은 미공략 게이트를 클리어해 왔으나 미지 게이트만큼은 손대지 않았다. 종식과 경진의 반대도 있었고 미지 게이트 하나를 클리어하기 위해 들이는 시간보다 다른 미공략 게이트 둘을 클리어하는 게 더 효율적인 까닭이었다. 사윤은 명성을 위해서가 아닌 부를 위해서 미공략 게이트를 도장 깨고 다녔으니까.
그렇다 보니 미지의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사윤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미공략 게이트가 다른 S급 게이트들보다 난이도가 두 배 이상 뛴다는 걸 생각하면 미지 게이트는 S급 게이트 평균 난이도의 다섯 배 이상은 뛴다고 보면 될 거였다.
L급에 가까우려나.
호기심이 생겨 시선이 건주를 향해 흘렀다. 고민하다 말고 자길 바라보는 사윤에 건주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왜 그래요?”
전음 같은 걸 배워야 하는데.
개인 메신저를 보낼 수 있는 스킬이나, 전음 같은 걸 얻어야 했다. 미지에 들어가게 되면 클리어하고 왔다는 L급 게이트랑 비교해서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해 보라고 말하려 했던 사윤은 주위 헌터들의 눈이 신경 쓰여 고개를 절레 저었다.
다시 고민을 이어 갔다. 한때는 모든 헌터의 목표가 되었다가 이젠 모든 헌터가 기피하게 돼 버린 게이트. 악명이 높은 만큼 노아의 멤버들이 클리어를 망설이는 이유는 이해 갔다.
그래도.
“그러니까 더욱 클리어해야지?”
듣는 이에 따라 다독이는 말투로 혹은 조롱하는 어투로 들릴 수 있는 말이었다. 사윤이 뭘 하든 탐탁지 않아 하는 태석이 자동 반사라도 되듯 얼굴을 구겼으나 사윤은 민철만 바라보았다.
“아델리아의 무덤이 나온 지 벌써 10년째인데 10년간 아무도 클리어하지 못한 미지 게이트를 노아가 클리어하면 세상이 얼마나 떠들썩해지겠어? 유명세와 실력에 대한 의심, 해외 협회 견제까지 셋 다 잡으려는 게 영감 계획이잖아.”
안 그래?
비웃듯 덧붙인 웃음에 영감이라고 불린 민철이 시선을 가라앉혔다. 사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테이블 끝을 붙잡은 채 몸을 뒤로 쭉 빼었다. 의자 바퀴가 도륵 굴러가고 사윤이 테이블에서 멀어졌다. 두 발을 의자 위로 올려 딛은 사윤의 눈동자가 가늘게 휘어졌다.
“아무도 못 했으니까 우리가 잡아야지. 댁이 괜히 날 여기에 불렀겠어.”
이런 거 하라고 부른 거잖아.
입꼬리가 뱀처럼 올라가 호선을 그렸다.
최상위권 헌터들 내에서 사윤의 명성은 자자했다. 그런 상황에서 통제가 불가능해 방치를 택했던 협회가 자신을 다시 불러들인 목적이 뭐겠는가? 협회의 회장인 배민철은 해외 길드와 한국 간의 국력 차이를 보여 주고 싶은 거다. 조금 더 정확히는 협회 위에 있을 정부의 윗대가리 분들이.
S급 헌터의 보유 수가, 상위권에 위치한 헌터를 스카우트하는 능력이 곧 국력이 된 사회다. S급 헌터 하나가 웬만한 전쟁 무기를 대신하는데 이제 와서 무기 개발이고 뭐고 하며 신경 쓸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전쟁이 나면 헌터를 투입하게 된 세상이다. 협회와 정부가 사윤을 양지에 끌어올린 것도 그러한 변화 때문이었다.
제 능력을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강대국이란 타이틀을 얻고 싶어 하는 거였다.
그러니 첫 공략부터 이런 무리수를 뒀겠지.
저를 불러다 두고 말이다.
모든 헌터가 무리라고 말할 때 하겠다고 대답할 성격의 사람은 노아 내에서 자신뿐이었으니까.
이한은 수더분한 성격이었고 태석은 군인 같은 마인드가 있었으며 배동주는 고지식하고 보수적이었고 미정은 안정을 추구했다. 호철은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걸 좋아했으나 몸을 사릴 줄 아는 성격이다. 이러한 노아 멤버 중 격정적이고 몸을 사리지 않는 건 오직 사윤뿐이었다.
영악하기는.
멤버 선정 안에 담긴 협회의 뜻을 알 것 같아 입꼬리를 비식 끌어 올리고 있으니 사윤을 빤히 살피던 건주가 따라서 입을 열었다.
“저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
최연소이자 가장 증명한 게 없는 이에게서 찬성의 말이 흘러나오니 남은 헌터들이 눈을 부릅떴다. 대개 이 경우 보이는 반응은 두 가지다.
“애새끼가 뭘 안다고.”
저기 비웃는 태석이나,
“하하. 젊은이들이 이렇게 나오는데 내가 뺄 수가 있나. 그래, 한번 공략해 보자고. 좋지 않나? 공략에 성공하는 순간 세상 모두가 우리 이름을 부르짖게 될 건데.”
뒤늦게야 껄껄 웃으며 나서게 된 호철처럼 딱 저런 반응을 보였다. 어리다고 비웃거나 어린놈보다 못했다는 생각에 자극받아 나서거나. 모두 사윤이 본 적 있는 반응이었다.
옛 생각 나네.
한건주가 성장하는 단계며 그 배경이 옛 생각을 떠올리게 했다. 사윤이 필드에서 막 나와 헌터로 활약했을 때 세간의 반응이 딱 이랬다.
누군가는 어리다고 비웃었으며, 누군가는 저를 이기려 들기 위해 아득바득 따라붙었다. 사윤은 비웃고 무시하고 얕보는 그 모든 이들을 짓밟아 올라가며 이 자리에 섰다.
“하.”
그리고 그건 옆에서 재밌다는 듯 웃고 있는 한건주도 비슷할 거였다.
하여튼 얌전하진 않아.
한건주에게도 은근히 싸움닭 같은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 사윤이 미정을 향해 눈짓했다. 시선을 받은 여인이 움찔거린다.
“최상급 포션 거래 1년간 선독점.”
“나도 괜찮은 것 같네.”
속 보인다, 속 보여.
뼛속까지 상인 마인드인 미정이 황금알을 낳는 거래를 받아들이며 과반수가 찬성 쪽으로 넘어왔다. 배민철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올라갔다.
“결론이 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의도한 대로 흘러가 아주 좋다는 반응이었다. 하기야, 무를 순 없었겠지. 그는 이미 언론에다 노아에 대해 발표했으며 첫 행보가 아델리아의 무덤 클리어일 거라고 일을 벌여 둔 상태일 거였다. 이제 와 헌터들이 위험할 수도 있으니 공략 취소하겠습니다, 라고 하거나 공략 시일을 무르겠습니다, 라고 하면 비난하라고 먹잇감을 내주는 꼴밖에 안 됐다.
최악의 상황을 면해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가 이한과 태석, 동주를 바라보았다. 이한이 먼저 한숨을 내쉬며 승낙했고 배동주가 귀환석을 전원에게 두 개 이상 지원하는 걸 조건으로 걸며 승낙했다. 미지에서 살아 돌아온 각성자들이 없는 걸 보면 귀환석이 사용되지 않는 게이트거나 아니면 들어가자마자 귀환석을 쓸 새도 없이 즉사했거나 둘 중 하나라는 소리인데 알뜰하게도 챙겼다.
일이 이렇게 되니 남은 건 태석밖에 없었다. 분명 처음에는 세 명의 아군이 있었는데 그들을 모두 잃게 된 호철이 이를 으득 갈며 사윤을 바라보았다.
“권사윤.”
“왜, 너도 생각이 바뀌기라도 했나 봐?”
쉽게 대답하지 못하도록 일부러 한 번 더 속을 긁어 주자 태석이 파들거리며 떨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게 재밌어 사윤이 낄낄 웃자 누군가 툭툭 허벅지를 두드렸다. 건주였다. 왜. 그리 물었는데 남자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고개를 돌려 버렸다.
뭐야?
이해할 수 없는 반응에 사윤이 의아해할 무렵 수치심을 이겨 낸 태석이 의견을 번복했다.
“다수가 원하니 따르기야 하겠습니다만, 조금만 삐끗하면 모두를 잃게 되는 겁니다. 협회장님께서 신중한 판단을 하시길 바랍니다.”
폼 잡기는.
사윤이 코웃음을 치며 손톱으로 테이블을 두 번 툭툭 두드렸다.
“여태껏 아델리아의 무덤을 공략 시도한 팀 중에서 전원이 S급이었던 팀은 노아밖에 없지. 5인 이상으로 들어간 팀의 경우 대부분 A급이 섞여 있었고 S급만으로 도전한 팀은 4인이 최대였다. 7인 전원이 S급인 데다 대부분이 최상위권 헌터인 이 팀이 아델리아 공략에 실패할 확률이 어느 정도일까….”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가 흘러나오자 모두의 시선이 사윤에게로 돌아갔다. 스포트라이트 같은 시선들을 받으며 사윤이 픽 웃었다.
“뭘 걱정하니, 태석아. 그렇게 겁이 많으면 게이트 구석에서 꼬리 말고 엄마 찾으며 울고 있기나 해.”
“…….”
“공략은 내가 할 테니까.”
다들 꽤 우스운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 팀의 최대 전력은 자신이었다. 그 사실을 못 박는 듯한 한마디에 헌터들이 인상을 구긴 채 조용해졌고 민철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이어서 민철의 입에서 아델리아의 무덤에 대한 주의 사항과 공략 방법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왔다. 풀린 정보가 워낙 없었기에 속이 빈 강정 같은 설명이었다.
사윤은 듣든 말든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 설명을 귓등으로 흘려듣다 이야기가 끝날 기미를 감지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협회장은 설명하는 내내 무력이 가장 강한 한 사람을 필두로 나머지가 그를 보조하면서 안정적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 한 명이 누구인지 너무 뻔했다.
“가자, 권사윤과 들러리들.”
아, 미정이 누나랑 예쁜이는 끼고.
사윤이 제 좌우를 한 번씩 살피며 말한 뒤 테이블을 벗어나자 등 뒤에서 욕설과 한숨, 비난 등이 들려왔다.
“너 그렇게 적 만들고 다니면 뒤에서 칼 맞는다?”
미정이 사윤을 따라오며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경고했다. 사윤은 어깨를 으쓱였다.
칼 꽂아 죽여 주면 좋지, 뭐.
제발 한 놈쯤은 성공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칼이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향할 줄은 몰랐다.
“한건주!”
회의실을 나와 모두가 차를 타고 이동하려던 그 순간, 일행의 끝에 있던 건주의 뒤로 검은 포탈이 열렸다. 공간의 흐름이 이상하게 변했음을 감지한 사윤이 뒤를 돌았을 때는 이미 포탈에서 뻗어 나온 검은 손이 한건주의 목을 움켜쥔 뒤였다.
남자의 눈이 커졌고 거대한 손이 그를 포탈 안으로 쑥 끌고 갔다. 한건주가 본능적으로 손을 앞으로 뻗었다. 다급한 손이 그를 붙잡기 위해 따라갔으나 사윤의 손끝이 건주의 손가락 끝에 걸리려는 그 찰나의 순간, 목이 졸려 얼굴이 창백해진 한건주가 뒤로 풀썩 넘어가며 포탈 안으로 사라졌다. 성인 남성을 집어삼킨 포탈은 곧바로 닫혀 버렸다.
“…….”
1초도 안 되는 짧은 순간 벌어진 일이다. 순식간에 열렸다가 재빠르게 닫힌 포탈에 노아는 물론이고 협회의 사람들까지 어안이 벙벙해져 건주가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았다.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도 멍하게 서 있다가 뒤늦게 놀라 플래시를 터트리고 질문을 쏟아 냈다.
“방금 뭐가 어떻게 된 거죠?”
“다른 길드로부터 습격이 온 겁니까?”
“협회장님! 질문에 대답 부탁드립니다!”
“이한 씨!”
콰아앙!
기자들의 머리 위에서 서리의 기운이 폭발했다.
“크헉!”
폭발에 휘말린 기자들이 바닥을 나뒹굴며 카메라를 떨어트렸다. 사윤은 제 앞까지 굴러온 카메라를 거칠게 짓밟으며 파편을 기자들 쪽으로 걷어찼다.
“입 닫아, 새끼들아.”
머리가 지끈 울린다.
직전에 봤던 포탈은 분명 3년 전 경매에서 고액으로 낙찰되었던 일회용 연결 포탈 ‘브릿’이었다. 지정된 좌표와 사용자가 있는 장소를 연결하는 포탈. 그게 한건주를 삼켰다는 건 누군가 브릿을 사용해 한건주를 채 갔다는 걸 의미했다.
탐이 나서 채 갔든 죽이려고 채 갔든 중요한 건 제가 있는 데서 그를 가져갔단 사실이다.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시팔 진짜.
도망간 새끼 잡아 왔더니 이젠 납치를 당하고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