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화. 어라? (3)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제가 말해 주어야 할 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겪은 경험과 ‘사실’이었지 감정이나 생각 따위가 아니었다. 말이 길어지면 필수적으로 사적인 감정이 섞이게 되었으므로 사윤은 최대한 건조한 어휘를 사용해 아주 짧고 간략하게 설명했다.
사윤은 건주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또 얘기를 하면서 건주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저 건주의 허벅지 위에 얼굴을 묻고 있는 펜리르만 묵묵히 응시하며 얘기를 이어 갔다. 생소한 기분이었다.
일기를 쓰는 것 같기도 했고, 기록장을 남기는 것 같기도 했다. 말을 하다 보면 심장에 납이 올라간 것처럼 속이 묵직해졌다가 또 가벼워지기를 반복했다. 당최 헤아릴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러다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죽더라도 너를 남기고 가면, 너는 내 행적을 다 알고 있으니 내가 사람으로 살았단 증거 정도는 되겠구나 하는.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든 건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과거를 꺼내다 보니 센티멘털해진 게 분명했다.
사윤은 이성이 흐려졌음을 자각하고 잠시 말을 멈췄다. 기계적으로 움직였던 입술이 닫히니 머릿속이 멍해졌다. 순간 백지가 되어 눈을 한 번 끔뻑였다가 미간을 좁혔다.
어디까지 얘기했지.
열여섯 살에 시스템이 날 강제로 각성시키더라. 남들 같은 시스템은 아니었고, 좀 돌아 있는 놈이었는데 사전 동의도 없이 사람을 지구를 멸망시킬 인류의 악으로 선정하더니 난데없이 날 도와준 사람을 죽이라고 하더라고. 좀 저항하다가 영 방법이 없길래 죽였는데, 그게 끝일 줄 알고 그랬는데 알고 보니 끝이 아니더라. 오히려 시작이었지.
말끝에서 자신이 웃었는지 무표정이었는지 모르겠다. 여기까지 얘기한 건가? 사윤은 헷갈려 건주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짙은 흑안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를 평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함이 꼭 수심이 깊은 심해를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그 기분에 매몰돼 아예 바다에 있다고 생각해 버리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부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덕분에 사윤은 멈췄던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바다에 빠져 오직 혼자서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들었기에 그때부터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냥 혼잣말을 쏟아 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혼잣말을 하는 건 아주 쉽지.
사윤은 혼잣말 스킬이 생성될 정도로 혼자서 말하는 데 도가 텄다. 왜냐면 과거에는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었다. 차라리 게이트 등에 갇혀 사람이 없는 장소였다면 나았으리라. 그러나 그 당시에 사윤이 있던 곳은 게이트 안도, 아무도 없는 공간도 아니었다.
그저 길이었고 학교였다.
의식은 다시 깊은 곳으로 내려가 과거를 상기시켰다.
사윤은 진정한 인류의 악으로 선정되고 나서 저를 아는 모든 이를 잃었다. 시스템이 사람들의 기억을 지운 탓이었다.
주민 센터에 가면 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도 자신이 알던 사람들은 꼭 저를 잊어버린 것처럼 굴었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친구들을 찾아갔는데. 시스템이 지정해 악으로 살았던 시간보다 권사윤 석 자의 이름으로 16년을 산 시간이 더 길었는데 그 시간이 송두리째 뽑힌 것처럼.
세상에 제 이름이 지워지기라도 한 것처럼.
어쩌면 무서워서 그런 거였을지도 모른다. 그때 자신은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 수십을 죽인 살인자였으니까. 옷에 피가 묻어 있었을지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가 몸을 씻었고 옷을 갈아입었다. 다시 찾아갔는데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잊혔다는 걸 받아들이는 건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과정보다 더 힘들었다. 사윤이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사윤은 부모님과 살던 집을 나와 다신 들어가지 않았다.
그곳에는 권사윤의 흔적이 너무 가득했으니까.
내가 뭘 말하고 있지?
아차 하는 생각에 눈을 깜빡였다. 의식 없이 움직였던 입술이 또다시 말을 멈추었다.
“…대피소 사람들을 죽이고 집을 나왔다는 것까지 얘기했어요.”
한참을 멍하게 있으니 눈앞의 남자가 궁금했던 것을 설명해 주었다. 사윤은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온 지원에 작은 탄성을 흘렸다.
쓸데없는 얘기는 하지 않았네.
대피소 사람들을 죽이고 집을 나왔다고 바로 말했으면 그 사이에 낀 불필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안도하고 다음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시스템은 자신이 사람을 죽이는 데 조금 익숙해지자 저를 각성자로서 강하게 만들기 위한 특훈에 들어갔다. 게이트 포화만 지켜봐 게이트란 게 정확히 어떤 건지 몰랐던 사윤은 그때 처음 게이트를 경험했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던 건지, 놈은 처음부터 무지막지하게 S급 게이트에 집어넣거나 하지 않았다. 초심자 게이트를 경험시킨 뒤 B급 A급을 한 번씩 경험시켜 주곤 당시 D급이었던 사윤을 필드에 집어넣었다. 그곳에서 1년 정도 죽었다 살아나길 반복하니 등급이 세 단계나 뛰어 A급이 되었다.
“…….”
그 말을 할 때 앞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윤은 잠시 움찔거렸다가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필드에서 나온 후에는 오랜만에 강제 집행이 걸린 퀘스트를 받았다. 테러였는데 여태껏 역 하나 규모를 테러한 게 고작이었던 과거와 달리 새로 받은 퀘스트의 테러 범위는 시 하나였다. 부담스러워 두 달을 견디고 끌었더니 시스템은 기어이 페널티에 강제 집행과 함께 친구들의 사망까지 넣어 버렸다.
사윤을 잊은 그 친구들을.
시간이 꽤 지났지만 사윤은 여전히 그들을 잊지 않았다. 그래도 한때는 제 친구들이었던 이들을 무고하게 그것도 페널티 항목 중 하나로 허무하게 죽여 버릴 순 없었다. 결국 사윤은 움직였고 그 다음으로 받은 퀘스트가.
“…테러를 끝냈더니 시스템 그 미친 새끼가 이번엔 진정한 인류의 악은 과거의 인연에 매달리지 않는다면서 친구들을 죽이라더라. 아주 똥개 훈련이었지.”
그건 시스템이 사윤의 인간성을 마모시키는 과정이었다. 저항이 불필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간절히 발버둥 치고 무언가를 간절히 지키려고 할수록 더 처절하게 잃게 되는 법이다.
잃어도 괜찮은 것들을 곁에 두어야 했다. 그럴 수 없다면 혼자서 다녀야 했고.
더는 중요한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았기에 사윤은 모두를 죽이고 혼자 다니길 택했다. 그랬더니 시스템은 마치 그런 사윤의 솔로 플레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길드를 만들라고 했다. 도무지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지독한 녀석이었다.
그래서 길드를 만들었다. 몇 년이 지나니 선악의 경계가 슬슬 모호해져서는 범죄를 즐기던 때가 잠시 찾아왔다. 당시 사윤은 약을 했고 몽롱한 기분으로 현실을 잊었다. 머저리처럼 취해 널브러져 있으니 시스템은 진정한 인류의 악은 독에 당하지 않는다며 사윤이 독을 먹도록 종용했다.
도망치려고 한 퇴로는 다 그런 식으로 끊겼다.
약과 술 등으로 도망치려고 했더니 주기적으로 독을 섭취하게 만들어, 독이 듣지 않는 몸으로 사람을 바꾸었고 통증에서 쾌락을 느껴 보려 하니 주기적인 고문을 가해 그 어떤 쾌락도 느끼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도피할 방법이 다 사라졌으니 남은 선택지는 그냥 주어진 삶을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고, 시스템이 막지 않을 만한 자극적인 짓을 좇아가는 것밖에 없었다. 예컨대 살해나 게이트 클리어 같은 것들. 그래서 거기에 열중했다. 밤낮도 잊고 몰두하니 내로라하는 각성자들 사이에서 최강이란 소릴 듣게 되는 건 금방이었다.
그게 사윤의 삶이었다.
사윤은 제게 일어났던 일은 최대한 간단히 정리해 얘기를 끝마쳤다. 10분 정도 걸린 것 같았다.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렸을 수도 있고.
시스템과 함께 산 지는 이제 막 11년째가 됐는데 10분이라니. 1년에 벌어진 일을 1분 안에 축약해 얘기한 셈이었다.
이만하면 잘 줄였지.
만족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렸던 눈동자의 초점이 바로 잡히자 눈앞에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줄곧 혼잣말하는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누군가 제 방에 있다는 게 낯설게 느껴졌다.
“이 정도면 됐니.”
그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제 인생을 요약한 사윤은 아차 싶어졌다. 깜빡하고 중요한 것을 얘기 안 했다.
“그렇게 살다가 최근에 재밌는 퀘스트 하나를 발견했는데, 내 성향이 다른 게 또 있더라고.”
저항하는 자에 대해 얘기를 안 했지 뭔가.
그거야말로 한건주가 가장 궁금해할 이야기였다.
정신을 빼 놓고 산다며 스스로를 타박하듯 속으로 중얼거리고 혀를 찬 사윤이 상태창에서 저항하는 자를 발견하고 성향 보유자를 찾으라는 퀘스트를 받아 건주를 데려온 것까지 얘기했다. 그 퀘스트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까지 알리고 나니 정말로 모든 이야기가 끝이 났다.
더는 할 이야기가 없었다.
“이제 정말로 끝.”
혹시 몰라 기억을 한 번 더 훑어봤지만 더 얘기해 줄 거리가 없었다. 15분 정도 지났나? 혼자서 오래도 말했다. 이 정도면 혼잣말 스킬의 등급이 올라갈 만도 한데.
눈앞에 뜨는 시스템창이 없어 아쉬워하고 있을 때였다.
“…그 성향이 활성화되면 뭘 할 생각이에요?”
드디어 일방적이었던 기록이 대화로 바뀌었다. 사윤은 침묵 끝에 주어진 질문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뭘 할 거냐니.
“글쎄.”
아직 그 성향이 어떤 효과를 지녔는지 모르는데 그런 희망적인 생각을 품을 수가 있나? 사윤은 그저 그 성향이 활성화되면 시스템이 제 생에서 꺼지지 않을까 싶어 노력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답할 말이 없어 설렁설렁 질문을 넘기자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이참에 생각해 볼 걸 그랬나.
실수했나 싶어 고민한 사윤이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럴 때 라이를 쓰다듬으면 좋을 텐데, 하고 아쉬워하고 있자 어떻게 알았는지 건주의 무릎 위에 턱을 얹고 있던 커다란 소환수가 침대에서 내려와 사윤에게로 다가왔다. 달려들길래 의자가 넘어가지 않도록 다리로 지탱하며 하얀 펜리르를 안았다.
털이 여전히 복슬복슬하다.
슥슥.
사윤은 라이의 하얀 털을 쓸어내리며 익숙한 안정을 취했다.
“…그럼 저한테 원하는 건 뭐예요? 그냥 그 성향을 활성화하기만 하면 돼요?”
익숙한 손길로 라이를 쓰다듬고 있으니 또다시 물음이 들렸다. 그런데 전과 달리 질문자의 음성이 조금 떨리는 것 같아 펜리르에게 박혀 있던 고개를 들어 건주를 바라봤다.
“…….”
일순 숨이 멎었다. 펜리르를 매만지고 있던 창백한 손끝이 굳어 놀라움을 드러냈다.
…뭐야?
당황스러움에 그가 무얼 물었는지도 까먹었다. 예쁘장하다고 생각했던 얼굴이 엉망이었다.
투명한 액체가 건주의 얼굴을 적셨고 코끝과 목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선 생각에 잠겨 있느라 그를 똑바로 본 적이 없었는데 젖은 시선과 제대로 마주치고 나서야 그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언제부터 울고 있었던 거지?
짐작할 수 없어 입을 달싹이던 사윤은 눈만 깜빡였다.
어이가 없었다. 사람을 뭐 얼마나 봤다고 저렇게 울어 주기까지 하나. 저도 얘기하면서 울지 않았던 것을.
어떻게 반응하면 좋을지 몰라 머뭇거리던 사윤은 그를 따라 울 수도 없어서 픽 웃고 말았다.
이어서 그가 무슨 질문을 했는지 곱씹었다.
무얼 원하냐고 물었던가.
“글쎄….”
과거에는 네가 날 구해 주길 원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말끝을 길게 끌며 대답하니 남자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제 시선을 피했다. 눈동자를 바닥으로 굴려 우는 이를 보고 있으니 이재희의 성향이 제게 옮겨지기라도 한 건지 하나의 미래가 예측되었다.
어쩌면 이미 겪은 적이 있어 알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우는 건주의 위로 부서질 것 같던 미소가 인상적이었던 어린 소년이 오버랩되어 눈을 감았다. 저를 죽이지 못했던 노아가 떠올라 입꼬리가 허무하게 올라갔다.
언젠가 선택할 날이 와도 너는 나를 죽이지 못하겠구나.
노아가 그랬던 것처럼.
‘형이 안쓰러워요.’
왜 선한 사람들은 이토록 선해서 제게만 가혹한 걸까?
“…….”
방 안에서 침묵이 이어졌다. 사윤은 눈을 감은 채 천천히 숨을 들이켜 오묘한 기분을 느꼈다.
심장 부근을 꽉 채운 게 만족인지, 절망인지, 비통함인지 모르겠다. 제 감정을 정확히 분별하기엔 사윤은 너무 오랜 시간, 너무 많은 감정의 파도에 침식돼 한계치로 닳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