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이 새끼 뭐야 (2)
“지금 뭐 하자는 거예요?”
가면이 삐끗 어긋난 남자가 차 안에서 구겨지다시피 한 채로 문에 기대 물었다. 신경질적인 어투에도 아무런 대꾸 없이 무표정을 유지한 사윤이 제가 끌고 온 남자를 물끄러미 응시했다가 길드원을 향해 턱짓했다. 몸은 여전히 건주 쪽으로 반쯤 기운 상태였다.
“길드로 가.”
“어느 쪽으로 갈까요?”
“밤쥐.”
제비는 노아의 일원이 된 자신의 이중생활을 위해 깔끔히 운영되어야 했다. 고문이나 서열잡이 등의 저열한 짓을 하기 적절하지 않았으므로 한건주를 제비로 데려갈 순 없었다. 말의 뜻을 이해한 길드원이 룸 미러를 통해 복잡한 눈으로 사윤과 건주를 번갈아 응시했다.
“…알겠습니다.”
느린 대답이 흘러나오고 차 머리가 밤쥐 길드 방향으로 돌아갔다. 사윤은 밤쥐라는 이름을 듣고 움찔거린 건주의 반응을 집요하게 관찰했다. 그때 앞에서 한숨 같은 침음이 흘러나왔다.
“뭐 하자는 거냐고.”
침투하듯 들린 목소리에 사윤의 눈썹이 까딱 올라갔다.
“한건주.”
대놓고 반말이라니. 못 본 사이 그의 간이 커지긴 커졌나 보다. 아니, 생각해 보니 간은 자신의 앞에서 당당히 도망쳤을 때부터 컸다. 지금은 그 컸던 간이 더 부은 것 같았고. 사윤은 건주를 차 안으로 끌고 들어오기 위해 붙들었던 팔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힘을 주었다. 강한 힘이었는데도 건주는 인상을 찌푸리는 등의 사윤이 달가워할 반응 한 번 보이지 않았다. 약한 모습 한 번 안 보여 주겠다는 것처럼. 그것이 괘씸했다.
바짝 엎드려 기어도 화가 풀릴까 말까 한데 당당히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저 모습이, 자신을 마주하는 저 눈동자가, 일부러 험악하게 기세를 퍼붓고 있는데도 이 악물고 버티려고 하는 저 반응이.
우드득.
기어이 틀어쥔 건주의 손목에서 험악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도 입술 한 번 씹고 말 뿐인 남자를 응시한 사윤이 그의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얼굴이 가까워지고 건주의 위로 사윤의 그림자가 옅게 졌다.
“한건주.”
무정함이 느껴질 정도로 표정 없는 얼굴을 유지한 채 부르는 이름에 남자가 반응했다. 꽉 쥔 손목이 아파서인지, 이제 와서 겁이 나기 시작한 건지는 몰라도 몸이 들썩이는 이에 사윤이 차가운 숨을 흘렸다. 억누른다고 억눌렀는데 저도 모르게 서리 기운을 끌어올린 모양인지 한기가 목 아래까지 치밀었다.
그 숨이 팔에 닿자 건주가 움찔거렸다. 사윤은 부러진 남자의 손목에는 관심도 주지 않은 채로 건주와 시선을 맞추었다. 짙은 흑색의 눈동자. 거짓이 아니다. 환시를 보는 것도 아니다. 눈앞의 남자는 명백히 제 앞에서 살아 있었다.
그것이 어떠한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살인 충동인지, 삶의 충동인지 잘 모르겠다. 사윤의 눈앞에는 오직 건주만 보였으며 그에 대한 의문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어 다른 생각을 오래 품을 여유가 없었다. 눈앞의 남자가 당장이라도 도망갈 것 같아서 그런가,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길을 모르겠다면 천천히 가라던데.
어느 날 재희가 했던 말을 떠올린 사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사윤의 앞에는 길 그 자체가 있었다. 길을 찾았다면 그때부턴 천천히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당장이라도 왜 떠났는지 따져 묻기 위해 입을 열려던 순간 재희의 목소리가 한 번 더 귓가를 울렸다.
‘사윤 씨는 목표가 생기면 너무 성급해요. 그러니 몸도 돌아보지 않고 무리해서 일을 그르치죠. 정확한 목표가 생겼으면 차츰차츰 단계를 밟아 가는 법도 키우세요. 무작정 들이받는다고 해서 다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잖아요.’
제비가 결성되고 난 후 파죽지세로 일을 처리하고 있는 사윤에게 재희가 전한 말이었다. 스쳐 지나가듯 내뱉은 말이었으나 사윤은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재희의 충고는 때때로 제게 도움이 됐기에.
무리해서 일을 그르친다고.
사윤은 자신과 건주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노력했다. 확실히 차 안은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 그리 좋은 공간이 아니다. 자신과 건주가 나눌 대화가 어디 짧은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지금의 장소는 한건주가 도망치기 너무 좋았다. 당장이라도 유리를 깨 탈출을 시도할 수 있었으니.
물론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짓은 미친 짓이었지만 자신이 아는 한건주라면 그 정도 미친 짓은 서슴없이 할 또라이였다. 계곡으로 뛰어들었던 그때 그랬던 것처럼.
그날의 일이 기억나자 머릿속이 명료해졌다. 한 번 뒤통수친 상대가 두 번이라고 못 할까? 한건주는 세 번 치고도 남을 놈이었다.
경각심을 갖기 시작하고 상대가 어떤 성향이었는지 제대로 파악하자 사위가 넓어졌다. 건주만이 비쳤던 시야에 차차 시트라든가 창문이라든가 다른 것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숨을 들이켠 사윤이 그의 손목을 놓았다. 이곳에서 대화하기엔 적합하지 않은 소재다.
“너도 나도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가서 얘기해.”
그리 말하며 몸을 바로 하려던 찰나 건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납치하는 버릇은 못 고쳤나 봐요?”
시팔.
정말이지, 제 속 긁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남자였다.
사윤은 무심코 숙였던 고개를 도로 들어 남자를 응시했다. 건주의 시선은 이 와중에도 평온하다 느껴질 만큼 흔들림이 없었다. 그게 같잖게 느껴져 혀를 찬 사윤이 몸을 바로 했다. 그는 자신을 더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괘씸하게 행동하고 있었으니 이 이상 동요하는 걸 보여 줘선 안 됐다.
괘씸한 놈을 만족시켜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므로.
“가서 얘기하자고.”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따라가요.”
“착각하지 마. 너보고 따라오라 한 적 없으니까.”
“아, 그래. 납치였지.”
빈정거리듯 대꾸하는 남자에 사윤의 고개가 모로 기울었다.
“한건주.”
이름을 부르자 말하라는 듯 쳐다본다. 사윤은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아 입을 열었다.
“못 본 사이 목숨이 하나 더 늘었니.”
“…….”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이리 까불지.”
뇌까리듯 말하곤 그의 부러진 손목을 붙잡았다. 이번에는 힘을 사용하는 데 그 어떠한 망설임도 없었다. 단번에 최대치로 움켜쥐자 부러진 뼈가 바스러지는 살벌한 소리가 났다. 비명을 참은 건주의 몸이 크게 들썩거리다 위축되었다.
“으….”
드디어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윤은 그제야 만족하고 남자의 손목을 놓았다. 사윤의 손아귀 힘으로 겨우 지탱되고 있던 손목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쯧.”
룸 미러를 통해 사윤과 건주의 대치를 지켜보고 있던 길드원이 안타깝다는 듯 혀를 찼다. 사윤은 그에겐 시선도 두지 않은 채 부러진 손을 꽉 붙들고 있는 건주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바들 떠는 꼴을 보니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이 치솟았다.
만족인 건지, 쓸쓸함인 건지, 욕망인 건지 모르겠다.
나머지 한쪽도 부러트려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은 감정이었다.
“건주야.”
“윽….”
“네가 그렇게 도망가고 나서도 내가 여전히 널 편애할 줄 알았니.”
치민 감정과 대조되게 차분한 목소리가 차 안에 깔렸다. 높낮이 없는 그 목소리는 서늘하다 느껴질 정도라 길드원이 어깨를 좁힌 채 운전을 이어 갔다.
손목을 틀어쥔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다만 마주한 눈빛에서 대략적인 감정을 읽은 사윤이 헛웃음을 흘렸다. 처음엔 작은 숨소리에서 시작된 그 웃음이 이내 조소가 되고 자조가 되어 크게 울려 퍼졌다. 미친놈처럼 웃어 댄 사윤이 콰아앙! 폭력에 가까운 손길로 건주 바로 머리 위에 있던 손잡이를 내려 움켜쥐었다.
“내가 얼마나 등신으로 보였으면.”
눈을 희번덕이며 읊조린 말에 건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사윤은 충동을 꾹 눌러 참아 내곤 천천히 제 자리로 돌아갔다. 몸을 바로 한 뒤 다리를 외로 꼰 사윤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룸 미러를 통해 시선이 마주친 길드원이 바짝 긴장해 구태여 말하지 않았는데도 차량의 속력을 올렸다.
“가서 얘기해, 죽기 싫으면.”
건조하게 덧붙인 목소리에 신음이 돌아왔다. 사윤은 손목이 부러진 그에게 포션을 건네지 않았고 잠시 뒤 건주가 알아서 포션을 꺼내 제 손목에 들이부었다. 이제 포션 하나는 알아서 벌어 쓸 정도로 자립한 모양이었다.
“하.”
그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어딘지 자조처럼 들리는 웃음에 사윤의 시선이 가늘어졌다. 그가 여기서 자조를 흘릴 만한 일이 뭐가 있단 말인가.
허탈함이 느껴지기까지 한 웃음은 그가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했다.
“…사연은 무슨.”
문득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건주의 어느 말을 떠올린 사윤이 이죽거렸다.
자신도 어지간히 글러 먹고 뇌가 녹은 게 분명하다. 그리 당하고도 이해해 보려 하는 제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한건주에 관해선 한없이 너그러워져서는.
무정하게 마음먹자 했는데도 몸에 밴 습관이라는 게 그리 빨리 털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럴 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상책이었기에 입을 다문 사윤이 창에 머리를 기댔다.
“…….”
당장이라도 불이 붙을 것 같은 한없이 건조한 분위기가 차 안에 깔린 채 침묵의 질주가 이어졌다. 사윤이 종종 건주를 힐끔 살폈을 땐 복잡한 눈을 한 남자가 어딘지 사연 있어 보이는 얼굴로 입술을 꽉 씹은 채 창밖만 응시하고 있었다. 혹여 그가 먼저 말문을 떼지 않을까 싶었지만, 정적은 검은 차량이 길드 건물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한건주를 만난 이래 가장 삭막한 분위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