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8화. 전야제 (7)
“헛소리하지 말고 제대로 말해. 길드 애들이 너보고 뭐래?”
“예쁜이라고 물어본 거 말곤 별거 없죠. 다만 뒤에서 들리는 말은 제가 어떻게 안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니까요.”
뻔뻔하기는.
씨알도 먹히지 않는 변명이었다. S급 정도 되면 감각이 예민해져 일상생활에서 사소한 스트레스를 너무 자주 받기에 전투 때가 아니면 일부러 감각을 제한하는 사람이 많았다. S급이었을 때의 사윤도 그랬고 말이다.
그러니 이재희는 그들의 뒷말을 안 들으려면 안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겠지.
아주 작은 속삭임 하나까지 듣기 위해 바짝 신경 쓰고 있었을 거였다. ‘아는 것’에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계속 말해.”
“특별한 건 없었고 그냥 여러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사윤 씨가 한건주 씨를 데려왔고, 성심성의껏 키워 줬는데 한건주 씨가 도망갔다는 것 정도 말입니다.”
“그것들로 추측한 게 있으니까 나한테 물어본 거 아니야.”
질질 끄는 것도 슬슬 짜증 났다. 이 순간 재희의 화법이 왠지 모르게 건주를 떠올리게 해 신경질적으로 되묻자 이재희가 목소리를 낮췄다.
“한건주 씨가 열쇠였습니까?”
“…….”
아주 이상적인 결론이다. 주워들은 단어 몇 조각으로 다다를 수 있는 사실 중에서 가장 완벽한 것을 묻는 남자에 사윤은 눈을 감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는 물음이었다.
이건 근원에 다가가기 위해서가 아닌, 이재희 개인의 호기심을 채우기 위한 물음 같았으니까. 대답하지 않아도 딱히 협력 관계에 금이 가진 않을 터였다.
“…길드 애들이 입이 가볍고 대가리가 비어서 헛소리를 자주 하는데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지 마.”
“마냥 헛소리는 아닌 것 같던데요. 제 추론이 틀렸습니까?”
그러나 이재희는 이쪽이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천둥이 치는 날 이미 그 집요함을 경험해 봤지 않은가.
탁, 탁.
사윤의 손이 불쾌감을 담아 테이블을 두드렸다. 그때쯤 가시방석에 앉은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종식이 슬그머니 나가 있겠다 얘기하곤 자리를 비웠다. 사윤은 순간적으로 그가 있었다는 사실도 까먹고 있던 스스로가 당혹스러워 입매를 매만졌다.
“아닙니까?”
이 와중에도 이재희는 자신이 도달한 추측에 대한 답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연이어 묻는 것으로 사람 성질 긁어 대는 솜씨가 일품이라 헛숨을 흘린 사윤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뭘 그리 집요하게 물어, 재희야. 왜, 예쁜이 자리가 탐이라도 나?”
비꼬듯 묻자 침묵이 이어졌다. 남자의 흑안이 끔뻑거린다. 신경전이 이어지는 상황에 지친 사윤이 도로 서류를 들었을 때였다.
이번에는 재희가 웃었다. 그건 냉소나 조소라기보단 자조에 가까운 웃음이었다.
뭐야?
사윤은 분위기와 맞지 않는 그 웃음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쉽게 됐습니다. 5년만 빨리 물어봤다면 제 대답이 바뀌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이재희가 늦어도 한참은 늦은 대답을 내놓았다. 사윤은 보던 서류를 아예 치워 두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말이야?”
“저한텐 이미 마음에 담아 둔 사람이 있으니 예쁜이 자리가 애인 자리라면 포기해 달라는 소리죠.”
“…뭐?”
마음에 담아 둔 사람이라니.
연인이 있던 건가?
경진이 정리해 준 보고서에선 보지 못한 정보였다. 밤쥐가 알아내지 못한 연인이라니. 사윤은 그가 거짓말을 하는 건지 표정을 통해 의심해 봤다가 이내 사실이라고 확신했다. 이재희가 여태껏 보지 못한 낯선 표정을 짓고 있는 탓이었다.
무언가를 지독하게도 그리워하는 표정을.
그리고 후회하는 듯한 표정을.
“…연인이 있는 거라면 여기 있을 게 아니라 그 사람 곁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연인보다 대의를 더 중시하는 타입인가. 그의 성격을 생각해 보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판단하고 있으니 이재희의 시선이 데굴, 테이블 위를 기었다.
“아.”
꼭 목구멍이 꽉 막혀 있다가 이제야 뚫린 사람처럼 외마디 음성을 낸 남자가 목 전체를 한 번 매만지곤 입을 열었다.
“죽었습니다. 게이트 안에서.”
그리 대답하는 목소리는 아주 미약하게 떨렸으나 차분했고, 이재희의 표정 역시 미소를 그린 채 덤덤했다. 사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침묵의 시간에 입을 달싹였다.
시발 이놈의 주둥아리.
쓸데없이 자유분방한 이 입이 문제다.
이 분위기를 어쩐단 말인가.
이건 마치 부모님의 안부를 물어봤다가 어제가 장례식이었다는 얘기를 듣고 숙연해진 분위기와 닮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지독했다. 대처할 방법이 없는 까닭이었다. 그도 그럴 게 사윤은 아버지는 뭐 하시고, 하고 물었을 때 죽었다는 대답을 들으면 태연히 반응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었다.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고 ‘괜찮아, 나도 죽었어.’ 하면 끝이니까. 그러나 연인은 달랐다.
‘애인 있어요?’ 하고 물었을 때 누군가 죽었다고 대답하면 저도 죽었어요, 하고 답할 애인이 없었다. 그러니 이 어색하고 삽시간 만에 무거워진 분위기를 해결할 방도가 없는 것이다.
삐질.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괜찮냐고 물어도 이상했고 괜찮다고 위로해도 개판이었다.
이 새끼는 왜 갑자기 애인 얘기를 꺼내서는.
결국 어색한 분위기를 만든 책임의 화살이 재희 본인에게 돌아갈 때쯤 남자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심각하게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의외로 여리시군요.”
“이건 여린 게 아니라 도리 아니냐.”
“뭐, 그런 걸 수도 있고요.”
나직이 말한 남자가 도로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는 한결 풀렸지만 사윤은 무슨 말을 하면 좋을지 몰랐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가 건주에 대해 캐묻고 있어 기분이 불쾌했는데 이젠 제가 죽은 애인에 대해 캐묻는 몹쓸 놈이 되었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음에도.
요즘 들어 자주 억울한 심정을 느낀다 생각하고 있으니 아무것도 묻지 않았는데 이재희가 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3년 전 게이트 브레이크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그래.”
그건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국민 중에서 열 살이 넘는 사람들은 전부 기억하고 있을 만한 사건이었다.
게이트 브레이크.
알 수 없는 이유로 공략 완료된 게이트가 포화 현상을 일으키면서 온갖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 사건. 당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다른 게이트 포화 때와 달리 사람을 해치기보단 한곳으로 뭉치는 걸 선택했다. 그렇게 백 마리, 이백 마리, 삼백 마리. 수천 마리의 몬스터들이 모이자 그 자리에는 거대한 게이트가 새롭게 생성되었다.
아니, 그건 게이트의 생성이라고 볼 수 없었다.
결합이라고 봐야 했지.
놈들이 튀어나온 게이트가 전부 합쳐서 하나가 된 것이다.
이야기로만 들으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지만 당시에는 무척이나 끔찍한 사건이었다.
그 게이트가 바로 한국에서 나온 세계 최초의 등급 측정 불가 게이트였으니까.
그 후로 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등급 측정 불가 게이트는 그 게이트 하나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이례적인 재앙이었다.
사윤은 당시 시스템 퀘스트를 수행하는 중이라 들어갈 수 없었는데 그 게이트 하나를 클리어하기 위해 전 세계 헌터 협회가 동맹을 맺어 뛰어난 헌터 삼천 명을 투입시켰다.
그리고 백 명이 살아 돌아왔다.
삼천 명 중에서 천 명도 아닌 백 명이.
다행히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전 세계가 울음바다가 된 날이었다.
“저는 그날, 제 연인과 함께 측정 불가 게이트에 들어갔습니다.”
“용감하네.”
“세상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랑 연이 모두요.”
애인이 연이라는 이름을 가졌나 보다. 사윤은 선하고 정의로운 사람들끼리 만났다 싶었다.
“그 선택은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누군가는 들어가야 했고 저희는 기꺼이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으니까요. 다만 후회가 있다면, 그 안에서 연이가 저를 지키다 죽을 만큼 제가 나약했다는 거였고….”
말을 흐린 남자가 손가락을 매만졌다. 사윤은 처음으로 재희의 손가락에 관심을 가졌다. 그의 왼손 약지에는 은색의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결혼하기로 했는데, 못 했죠.”
“…….”
“게이트를 성공적으로 공략하고 나면 결혼하기로 했거든요. 연이는 그때 게이트 안에서 아기 이름도 지었어요. 아직 아기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죽어 가는 그곳에서 홀로 생명을 피워 낼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 모습이 정말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반했고 나가면 바로 식을 올리자고 계획도 세웠는데 아쉽게 됐죠.”
그가 손가락에 낀 반지를 이리저리 돌리며 얘기했다. 덤덤한 어투에 묵은 슬픔이 있어 인상을 찌푸린 사윤은 이런 신파는 제 감성과 맞지 않는다고 속으로 중얼거리다가 불현듯 자신의 손을 확인했다.
반지라면 제 손에도 하나 있긴 했다.
팔실로의 인연 페어링.
한쪽이 매정하게 끊어 냈는데도 버리지 못한 그 반지가 시야에 들어와 질끈 눈을 감은 사윤은 이상한 구석에서 저와 이재희가 닮은 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 자신이나 반지를 벗지 못하는 처지가 똑같았으니까.
다만 이재희는 추억하고 그리기 위해서 끼고 있는 거라면 자신은.
…왜 아직도 벗지 못한 걸까.
작게 중얼거리고 있으니 이재희가 재차 물음을 던졌다.
“그래서, 제 연인은 그런 사람이었는데 한건주 씨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제 얘긴 끝났으니 이제 사윤 씨 얘기가 듣고 싶은데.”
“…….”
하여간, 솜씨가 좋았다.
그가 먼저 죽은 애인에 대해 그렇게 털어놔 버리면 자신이 이 이야기를 피해 갈 명분이 없지 않은가.
약았다고 생각한 사윤은 이재희가 오해하고 있는 것부터 정정했다.
“…애인 같은 건 아니야.”
“그렇군요.”
“그냥, 네 말대로 키였지.”
삶의 방향을 전환시킬 수 있었던 처음으로 발견한 키.
저항하는 자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게 만들어 준 사람.
그게 한건주였다.
사윤은 어느덧 반년 전이 되어 버린 첫 만남의 순간을 떠올렸다. 이재희가 먼저 스스로의 비밀을 밝힌 것에 대한 영향인지, 그냥 어딘가에라도 털어놓고 싶었던 건지 의외로 이야기를 시작하자 건주와 있던 일에 대한 얘기는 술술 잘도 나왔다.
이재희가 제 비밀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진짜 괘씸한 놈이지.”
어떻게 만났는지 시작해서 어떻게 놓게 됐는지까지 간략하게 털어놓은 사윤은 끼고 있던 페어링을 매만졌다.
“상심이 컸겠네요.”
“그래.”
사윤은 순순히 긍정했다. 상심하지 않았다면 건주가 떠나고 나서 그렇게 행동할 까닭이 없었으니까.
여러 가지로부터 비롯된 상심이었다.
희망이 사라졌다는 것에 대한 좌절감.
끊어진 관계에 대한 허탈함.
사라진 의지에 대한 공허함과 길을 잃어버린 듯한 불안감.
그 모든 것이 상실되어 상심으로 덮쳐 온 것이다. 사윤은 한참이고 톡톡 테이블을 두드렸다. 이재희는 별다른 말 없이 그저 침묵을 지켰다.
마치 먼저 말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사윤은 한참을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재희야.”
“네.”
“내가 어디서부터 실수했을까.”
결국 사윤은 자문을 구했다.
현시점에서 가장 그럴듯한 대답을 들려줄 수 있을 법한 남자에게 꽤 긴 시간 품어 온 의문을 풀어놓으며.
S급이 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기에 길을 찾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