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3화. 전야제 (2)
끼엑! 꾹꾹!
거대한 그리폰이 좁은 창으로 들어오기 위해 제 몸을 힘껏 움츠렸다가 이리저리 뒤틀었다가 했다. 노력해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는데 퍽 열심이었다.
사윤은 척 보기에도 오버사이즈인데 어떻게든 몸을 꾸겨 넣으려는 그리폰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얘는 지능이 조금 부족한가?
이것저것 시도해 보다가 다 안 되니 고개를 쳐들고 엉엉 울어 대는 걸 보면 확실히 다른 소환수들보다 멍청한 것 같기는 했다.
“창이 네 몸보다 세 배는 작은데 어떻게 들어오려고.”
안간힘을 써 들어오려는 그리폰의 머리를 밀어 내며 얘기하자 녀석이 날개를 퍼득 떨고 역정을 내었다.
꿰에에엑!
울음 봐라. 이게 그리폰인지 돼지 새낀지 모르겠다.
“포기해.”
딱밤을 때리며 무모한 시도를 만류하니, 그리폰이 재희를 돌아보며 울었다. 잠시 제 소환수와 사윤의 대치를 감상하고 있던 남자가 창틀을 붙잡고 몸을 숙였다. 턱, 그의 발이 창문에 걸쳐진다. 그제야 그리폰에게서 몸을 떼어 내 창으로 중심을 옮긴 재희가 날고 있는 소환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고했어.”
화악!
빛이 반짝이더니 그리폰의 모습이 사라졌다. 사윤은 소환을 해제하고 태연히 제 방 창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는 이를 보며 턱을 매만졌다.
한두 번 창 넘어 본 솜씨가 아닌데.
사람이 살면서 창을 넘을 일은 지극히 적었다. 해 봤자 학창 시절 선생님들께 들키지 않기 위해 몰래 나갈 때나 남의 집 털 때가 전부다.
번듯하게 생겼는데 의외로 양아치 같은 삶을 살았나 보다. 역시 밤쥐에 들어올 만한 상인데 안타깝게 됐다며 혀를 찬 사윤이 침대에 앉았다.
“제정신입니까?”
이재희의 첫마디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타박이었다.
“으음.”
종식에게 잔소리를 듣는 것과 비슷한 느낌에 사윤이 허밍을 흘리며 시선을 피했다. 종식이나 이재희나 쓸데없이 오지랖이 넓었다.
“경진이한테 들어 보니까 너 내가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는 거 알고 있었다며. 그때 너 없었을 텐데 어떻게 알았지?”
뻔뻔하게 화제를 전환하자 사윤을 흘겨본 남자가 침대 앞 의자에 걸터앉으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말투가 사근사근하고 거의 웃고 있어 몰랐는데 저렇게 정색한 표정을 보니 의외로 이재희는 서늘한 인상이었다.
무정해 보인다고 해야 하나.
태연히 감상하고 있자 한숨을 내쉰 남자가 뒤늦은 대답을 뱉었다.
“소환수가 보는 광경은 소환사도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라이가 기억을 공유해 줬는데 모르면 바보겠죠.”
“오.”
듣고 보니 소환사들은 소환수의 통각을 제외한 모든 것을 공유받는다던 얘기가 생각났다. 소환사 자체가 워낙 희귀해 만날 일이 거의 없다 보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정보였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조금 더 주의 깊게 들어 둘 걸 그랬다.
그랬다면 이 귀찮은 질책의 시간을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무슨 생각으로 그 게이트에 뛰어든 겁니까? 게이트 포화가 끝난 곳은 리셋이 시작된다는 걸 모를 경력도 아니잖아요.”
“당장 언노운을 막을 방법이 그것밖에 없더라고.”
“사윤 씨가 생각해도 빈약한 이유라고 느낄 것 같은데요.”
“너무 충분해서 놀랍다고 생각하긴 하지.”
“…….”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내뱉은 거짓말에 재희가 어이없단 시선을 던졌다. 사윤은 어깨를 한 번 으쓱이며 능청스럽게 굴었다.
“결과적으로 멀쩡히 잘 돌아왔으니 된 거 아닌가.”
이재희가 헛웃음을 흘렸다.
“잘됐다고요.”
“……?”
“사윤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놀라우리만치 냉소적인 반응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차가운 반응이라 놀란 사윤은 재희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무언가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걱정과는 달랐다. 밤쥐 간부들이 제게 지어 보이는 표정이 걱정이라면, 이재희의 저 표정은 조금 더 냉정하고 짜증스러웠다.
꼭 계획이 일그러진 사람처럼.
“저한테 거짓말이 통할 거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알고 있지 않습니까.”
제 능력 말입니다. 직시하는 눈동자가 꼭 그리 덧붙이는 듯했다. 사윤은 침대를 짚고 몸을 기울인 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계속 말하라는 듯 턱을 까딱이자 갈색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흐트러트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죽으려고 했던 거죠?”
“뭐….”
보아하니 변명이 통하진 않을 것 같아 정확히 대꾸하는 대신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러나 상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남자가 아니었다. 얕은 수작은 통하지 않는다는 듯 혀를 찬 재희가 한쪽 무릎을 꿇고 바닥에 자리 잡았다.
그가 손가락을 짓씹어 피를 내곤 소환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얘기하다 말고 웬 소환진인가 싶어 지켜보고 있으니 재희가 입을 열었다.
“게이트 리셋에 휘말리면 죽을 수 있을 줄 알았습니까?”
“…….”
“사윤 씨. 제대로 생각해야 합니다. 정말로 죽고 싶은 건지, 살고 싶은 건지.”
이어지는 말에 사윤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대로 생각하라고?
우스운 말이다. 그는 꼭 자신이 충동적으로 죽을 결심을 했다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 당시 게이트 리셋에 휘말리겠다는 계획은 충동적이었던 게 맞았다. 하지만 그 계획을 실행하기로 마음먹은 근간에는 지독하게 오랜 세월 동안 품어 온 염원이 있었다.
제 판단이 경솔해 보였나?
그렇다면 자신이 아닌 그가 경솔한 것이다. 천기를 꿰뚫는 자로 무언가를 봤다고 해서 그가 제 일생을 전부 지켜본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과 함께한 자신의 유년을, 옆집 남자와 보냈던 쉘터에서의 시간을, 시스템이 나타나 빌런으로 살았던 10년의 일을 모두 알고 있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즉 그가 이해하고 있는 자신은 터무니없이 얄팍했다.
감히 자신이라고 얘기하지도 못할 정도로.
그 정도의 이해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만큼 우스운 일은 없었다. 그 상대가 저라면 더더욱 말이다.
제가 어디 좀 범상치 않은 삶을 살았던가.
“재희야. 가르칠 사람을 가르쳐.”
사윤의 입에서 차가운 음성이 흘러나왔다. 유들유들한 태도를 고수했던 사윤이 어투를 바꾸자 분위기는 삽시간 만에 싸늘해졌다.
“왜. 네 눈에는 내가 장난으로 죽으려고 한 것 같아?”
“그렇게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화살의 방향을 제대로 보고 시위를 당기라는 소립니다.”
“뭔 말이야?”
“정말로 죽고 싶은 겁니까?”
“…….”
이 새끼 말이 안 통하는데.
사윤은 이죽거리듯 말한 자신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전과 똑같은 태도를 고수하는 남자에 눈썹을 들어 올렸다. 이재희는 뭔가에 꽂혀도 단단히 꽂힌 것 같았다.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들어 보기나 하자는 의미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있자 소환진을 완성시킨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말은 죽고 싶은 건지,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건지 확실히 판단하라는 소리였습니다. 제가 도와드리면,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함부로 행동하지 마세요.”
“하….”
조금 전 재희가 그랬듯 이번에는 사윤이 바람 빠진 웃음을 흘렸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그의 기분이 상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는 저를 통해 세상을 꿰뚫고 위에서 노닥거리고 있는 신들에게 한 방 먹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엉망이 되어 버린 이 세계를 되돌리고자 하는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있어야 했다.
그가 이 판을 바꿀 조커라면, 그에게 자신은 판을 바꿀 방향을 제시하는 이정표쯤 되는 것이다. 그런 자신이 죽으면 이재희가 세우고 있는 계획도 당연히 엉망이 된다. 그는 그것을 원치 않는 거였다.
그리고 있던 그림이 망쳐지므로.
미묘하게 기분이 불쾌했다. 찝찝한 심정에 인상을 찌푸린 사윤이 침대에 드러눕고 숨을 들이켰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너도.”
“죽겠다고 게이트 리셋에 몸을 던지는 사람만 하겠습니까? 전투 때도 그러더니. 몸 좀 조심히 다루십시오. 그 몸에 당신 하나의 목숨만 달려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독하리만치 바른 말이었다. 사윤은 옳은 소리가 듣기 싫어 귀를 막아 버렸다.
이재희의 말이 맞았다. 자신에겐 저 하나의 목숨만 달려 있는 게 아니었다. 제 생사에 따라 밤쥐 길드원의 안전이 달려 있었고 밤쥐와 연관 있는 고위 인사들의 신변이 달려 있었다.
경진의 말에 의하면 곱게 다뤄야 하는 몸이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제 인생이 곱지 않은 것을.
죽고 싶은지, 이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건지 판단하라고 했던가.
사윤은 재희의 말을 곱씹으며 제 생을 돌이켜 봤다. 모처럼 해 본 삶에 대한 고민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과거를 돌이켜 본 순간부터 모든 건 결론이 나 있었다.
죽어야 한다.
시스템만이 제 죽음의 이유가 되는 건 아니었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 이유에는 살아온 생도 포함되어 있었다.
너무 많이 죽였지 않은가.
뒤에서 온갖 비리를 다 저지르고 다니는 사람들 목숨이야 자신이 알 바 아니었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이 너무도 많이 죽었다.
특히, 제게 선량했던 사람이.
살 가치가 있나?
던져진 물음에 사윤은 푸시시 웃으며 베개를 집어 던졌다.
그럴 리가 있나.
역시 자신은 죽고 싶었다.
그리 결론을 내릴 때였다.
캉!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난다 싶더니 돌연 백색 펜리르가 나타나 사윤을 향해 달려들었다.
“윽!”
사윤은 그 커다란 덩치로 땅을 박차고 제 위에 내려앉는 펜리르에 압박당한 복부를 감쌌다. 놀란 나머지 기침이 튀어나왔다. 인상을 찡그리며 캑캑거리고 있으니 펜리르를 소환한 주범이 다가왔다.
“라이, 조심해야지.”
부드러운 손길로 백색 털을 매만진 재희가 황당한 얼굴을 한 사윤을 돌아보았다.
“당분간 라이를 데리고 다니세요.”
“명령조로 얘기하지 말지?”
인상을 찡그린 사윤이 제 볼을 핥는 라이를 쓰다듬었다. 쓸데없이 잔정이 많은 타입인 건지, 백색 펜리르는 그새 사윤이 좋아지기라도 한 것처럼 애교를 부려 댔다.
게이트로 사라진 제 모습이 여간 충격적인 게 아니었나 보다.
“빌려드리는 거니 함부로 막 던지지 마시고요. 저한테도 피해가 옵니다.”
소환수가 다쳐 역소환되면 소환사가 그만큼의 피해를 입는다. 그 사실을 짚어 주는 남자에 언제 한번 날을 잡고 역소환시킬까 생각하던 사윤은 애교를 부리는 라이에 못 이겨 그의 턱을 살살 간지럽혀 주었다.
이재희가 갑자기 라이를 빌려주는 이유야 뻔하다.
보호 겸 감시의 목적으로 붙이는 거였다. 라이가 제 곁에 있다면 허튼짓을 하지 못할 테니 말이다.
보기보다 속이 시커먼 남자다. 사윤은 쉽지 않은 상대에 혀를 차며 펜리르를 쓰다듬었다.
“이번만 봐주는 줄 알아, 재희야.”
“소환수를 빌려주고도 이런 취급을 당하는 건 처음이라 신선하네요.”
“어쭈. 남한테 소환수를 빌려준 적은 있고?”
“음.”
대답이 없었다. 사윤은 피식 웃으며 제 옆에 누운 라이의 배를 만졌다.
소환수를 빌려주는 건 웬만큼 신뢰하지 않고서야 좀처럼 하지 않는 짓이었다. 장시간 소환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 부담이 되니까.
물론 이재희는 신뢰라는 호의적인 이유만으로 빌려준 게 아니긴 했으나 소환수를 유지할 때 힘이 드는 건 똑같았다. 그 정성을 생각해 받아 주기로 한 사윤은 머물 곳을 알려 달라는 재희에 아래층 방을 내주었다.
“너도 미친놈한테 걸려서 고생이 많다.”
헥헥.
안쓰럽다는 듯 얘기하니 라이가 혀를 빼고 헥헥거렸다. 사윤은 제가 말한 미친놈이 저를 얘기하는 건지, 이재희를 얘기하는 건지 스스로도 모르겠어 고민하다가 눈을 감았다.
그날 밤은 푹신한 펜리르의 털 덕분이었을까. 간만에 편안히 잠든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