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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에게도 사연이 있다 (124)화 (124/266)

제124화. 환상 극장 (1)

“그나저나 정말로 A급 게이트군요.”

“이놈이고 저놈이고. 무슨 평생 속고만 살았나.”

“네?”

“혼잣말이니까 신경 꺼.”

손을 내저은 사윤은 제 앞에서 일렁거리고 있는 게이트 입구를 바라보았다. A급 게이트 환상 극장. 난이도로만 따지면 A급 게이트 중에서도 쉬운 편이었으나 환상 극장의 악명이 높은 건 공략 주기를 놓쳐 게이트 포화가 일어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환상 극장을 공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게이트 내에 마련되어 있는 여러 개의 영화 중 하나를 선택해 관람하고 영화가 끝나면 해당 작품에 나왔던 모든 것들이 이레귤러로 변해 스크린에서 튀어나오는 걸 상대하면 되었다. 그렇기에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들을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전력을 데리고 가면 더할 나위 없이 간편한 게이트였지만, 게이트 포화가 일어난다면 얘기가 달라졌다.

환상 극장에 있는 영화는 총 스물두 개. 게이트 포화가 일어날 경우 그 스물두 개의 영화에 등장한 모든 것들이 몬스터가 되어 쏟아져 나왔기에 무서운 거였다. 환상 극장은 영화에 나오는 사람은 물론이고 나무, 풀, 심지어 벌레까지 몬스터로 바꾸는 게이트인지라 하나의 영화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만 해도 약 백 마리가 넘는다. 그런 게 스물두 개나 동시에 터지는 거였으니 환상 극장의 악명은 어지간한 S급 게이트와 맞먹었다.

실제로 게이트 포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수많은 사람이 죽고 도시 하나가 초토화돼 회복하는 데만 반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지.

그때는 헌터 체계가 자리 잡히지 않은 초기라서 피해가 더 극심했다. 과거의 상처는 독하게 남는 편이었으니 대부분의 헌터들이 환상 극장의 공략을 꺼렸고, 기피 던전으로 분류된 걸 밤쥐가 낙찰해 길드 소유 게이트로 관리하고 있었다.

A급 게이트지만 공략 방법은 그다지 어렵지 않고 난이도가 무지막지한 것도 아니었으니 밤쥐 내에서도 환상 극장의 선호도는 낮았다. 그렇기에 이번 일을 계획할 수 있었다.

S급이 버스 태워 준다는데 평범한 버스를 탈 순 없잖아?

낄낄낄.

사윤이 팔짱을 낀 채로 사악하게 웃어 대자 재희가 의문스러운 눈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윤은 게이트 옆 측정 장치를 통해 공략 주기를 확인했다.

30일.

그리고 게이트 포화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앞으로 30분 안에 환상 극장을 공략하지 못하면 게이트 포화가 일어난다. 원래라면 여섯 시간 남았을 때 길드 공략 팀이 움직여 관리했겠지만 이번에는 사윤이 그러지 말라 명해 둔 상태였다. 즉 이 모든 상황이 사윤의 연출이었다. 너무나도 완벽한 연출이라 자꾸만 웃음을 흘리자 의아한 눈으로 사윤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고개를 돌린 재희가 나직이 탄성을 흘렸다.

“타임 어택을 할 생각입니까?”

타임 어택.

일부러 게이트 공략 시간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공략을 시도해 압박감 속에서 기록을 세우는 행위. 일부 헌터들은 자살행위라 하기도 했고 일부는 만용이라, 일부는 과시라 얘기하기도 한 게이트 공략법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게이트 포화가 일어날 수 있는 공략법인 만큼 확실히 무모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도 타임 어택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했을 때 길드가 얻을 수 있는 명성과 길드원이 얻는 경험은 컸다. 그렇기에 쓸데없는 과시라는 말이 도는 와중에도 타임 어택에 도전하는 길드들은 꾸준히 있었다.

물론 대부분의 길드들이 최소한 두 시간 이상의 공략 시간을 남겨 두고 타임 어택 도전에 들어갔다. 만약 실수라도 했다가 게이트 포화가 일어나면 온갖 비난과 욕을 얻어들으며 사태를 수습해야 할 테니 타임 어택을 할 거면 최소 두 시간은 남겨 두고 들어가라는 말은 암묵적인 룰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환상 극장의 남은 시간은 30분에 불과했다. 범상치 않은 남자라곤 생각했지만 이토록 대담하게 나올 줄은 몰라 살짝 놀란 재희가 감탄을 흘리자, 사윤은 황당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개소리야?”

“네?”

“누가 그딴 쓰레기 방식으로 게이트를 공략해 대? 타임 어택 클리어는 허세에 찌든 애들이나 하는 법이지.”

“……?”

신랄한 비판에 재희의 얼굴 위로 물음표가 떠올랐다. 사윤은 제가 할 행위를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는 남자를 보며 입꼬리를 틀어 올렸다.

뭐? 인생에 위기가 없어? 위기란 그렇게 쉽게 오는 게 아니야?

웃기는 소리다. 밤쥐 길드가 어떻게 성장했는가. 사윤이란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내고, 사윤이 만들어 낸 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밤쥐의 길드원들이 유독 가파른 실력 성장을 보인 데는 모두 사윤의 지분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부터 이루어질 게이트 공략은 사윤이 자랑하는 밤쥐의 비밀 특훈 방식 중 하나였다.

특훈을 경험한 길드원 모두가 욕을 지껄이고 사윤을 한 대라도 쳐 보겠다고 달려들었다가 모조리 두들겨 맞고 쓰러진 그 방식.

“잘 들어, 재희야. 밤쥐는 그딴 찌질한 방식으로 공략 안 해.”

“무슨 말입니까?”

“판을 벌일 거면 크게 벌여야지.”

고작 타임 어택으로 되겠니.

허밍하듯 덧붙인 사윤이 주변에 있던 길드원을 곁으로 불렀다.

“말해 둔 건 준비 끝났어?”

“네. 반경 3킬로미터 내외 주민들은 모두 대피시켰고 4킬로미터 밖에선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공략 1팀과 2팀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바리케이드는.”

“완벽합니다.”

“그럼 됐네.”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거죠?”

사윤과 길드원이 나누는 얘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이재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윤은 제가 만났던 사람 중에서 한건주만큼이나 역대급으로 운이 좋은 남자를 향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너 좆 되는 얘기.

물론 그리 말할 순 없었다. 이건 동맹이지 않은가. 아무리 자신이 그를 극한으로 빨아먹고 버스를 타겠다는 계획을 세웠어도 형식상 동맹이란 관계를 내세운 만큼 곧이곧대로 말할 순 없었기에 나름 돌려 말했다.

“앞으로 네가 상상도 못 한 일이 일어날 거란 얘기 중이지. 곧 고생 좀 해야 할 테니 우선 거기 앉아서 쉬고 있어.”

거기?

사윤의 말에 재희가 뒤를 돌아보았다가 놀랐다. 어느새 철제 의자가 제 뒤에 놓여 있는 탓이었다. 떨떠름하게 의자에 앉은 남자가 사윤을 올려다보았다.

“게이트 공략은 안 합니까?”

“게이트 공략을 왜 하니, 재희야.”

“…그러려고 온 게이트잖습니까.”

“뭐, 처음에는 그럴 생각이긴 했지.”

사윤도 처음부터 이렇게 공략할 생각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첫 게이트 때부터 미친 짓을 하면 이재희가 보는 제 이미지에도 손상이 있을 테고 동맹 관계가 무너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재희란 패를 그냥 A급 게이트를 클리어하는 데 사용하는 건 아까웠다. 그는 소환사다. 소환사는 몸이 약하고 전투 능력이 조금 부실하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소환수를 다뤄 최소 3인분 이상을 해내는 히든 클래스였다. 거기에 이재희는 S급 소환사였다. 그것도 스탯 능력치가 최상급인 S급 소환사.

그런 이를 어떻게 단순한 A급 게이트 클리어에 써먹겠는가.

거기에 이재희는 생각보다 또라이였다. 진리와 진실에 미친 놈이었으니 자신이 무슨 짓을 하든 동맹을 깨지 않을 터였고 오히려 신기한 것을 보여 주면 흥미로워할 기색이 높았다. 제 이미지야 뭐, 첫 만남을 암살로 시작했던 만큼 더 나빠질 것도 없었고 말이다.

그러니 단순한 A급 게이트 클리어보단 더 난도 있는 것을 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S급 게이트에 들어가기에는 아무리 사윤이라도 버거웠다. 정확히는 많은 시간을 들여 몇 번 죽으며 공략해야 하는 것에 비해 효율이 안 나온다는 게 맞았다. 현재 상태에선 A급 게이트 세 개를 공략하는 것보다 S급 게이트 하나를 공략하는 시간이 더 오래 걸렸으니까.

그리하여 사윤이 선택한 방법은 이 특훈이었다.

“잠시만요. 설마….”

게이트 근처에 온 지도 어느덧 20분째. 사윤이 기다리라는 말만 반복하며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당황하며 게이트와 사윤을 번갈아 보던 이재희가 놀라 입을 열었다. 사윤은 그가 할 말을 눈치채고 눈동자를 휘어 웃었다.

“그래.”

띡.

게이트 측정 장치에 적혀 있던 시간이 10분에서 9분으로 줄어들었다.

“카운트다운 시작합니다! 바리케이드 최종 점검하고 2단으로 쌓으세요!”

주변에 있던 길드원들이 분주해지며 게이트 반경 2킬로미터에 쌓아 둔 장벽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20분 사이 완벽하게 만들어진 장벽 안에 갇힌 재희는 황당한 눈으로 사윤을 바라보았다.

“이런 방식이 있다곤 못 들어 봤는데요.”

“당연히 못 들어 봤겠지. 상식적으로 누가 하겠어?”

일부러 게이트 포화를 일으켜 쏟아지는 몬스터를 감당해 내는 방식의 클리어를 말이다.

그렇다.

사윤은 환상 극장 게이트에 몬스터 포화를 일으킬 생각이었다.

“슬슬 너도 준비해야겠다, 재희야. 진 그려.”

“네?”

“소환진 그리라고. 환상 극장이 터지면 적어도 2천의 몬스터가 나올 텐데 아무리 S급이라도 준비 없이 그 정도는 힘들잖아? 네가 가진 패 중 제일 강한 거 꺼내 봐.”

버스를 탈 거면 제대로 타야지.

사윤은 어처구니가 없어 할 말을 잃은 표정을 짓는 재희를 향해 그저 상냥히 웃어 주었다.

게이트도 공략하고, 등급도 올리고, 이재희의 전력까지 체크 가능한. 아주 일석삼조의 방식이라 흐뭇하게 웃고 있으니 5분대가 남았을 때 사윤이 장난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환진을 그렸다.

그가 그린 소환진은 총 다섯 개였다.

하나를 그리는 데 약 1분이 소모되어 소환진이 모두 완성되었을 때쯤엔 게이트가 쩌저저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게이트 포화의 전조 증상이라 사윤이 힘을 실어 소리를 질렀다.

“공략자 빼고 다 빠져!”

사윤의 외침에 길드원들이 장벽 밖으로 재빨리 도피했다. 쩌적, 쩍. 끝없이 갈라지던 게이트에서 기어코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온다. 앞으로 들이닥칠 재앙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환한 빛이라 밝게 웃은 사윤이 단도를 꺼내 들었다.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정말 제정신이 아니시군요.”

콰아아아앙!

이재희가 혀를 내두르는 것을 끝으로 굉음이 터져 나왔다. 게이트 포화의 시작이었다.

―그어어어어!

―키에에엑!

―시시식!

빛이 사라지자 순식간에 수많은 몬스터들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놈들이 게이트에서 하나둘 달려 나오는 걸 본 사윤이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그러게 말했지 않은가.

제일 미친놈은 자신이라고.

또라이들의 수장이라면 응당 그 수준에 맞아야 하는 법이었다. 사윤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재희의 소환수 하나의 목덜미를 낚아채고 쏟아지는 몬스터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왕!

늑대의 형태를 한 소환수가 당황해 컹 짖는다.

그래, 네가 탱커다.

사윤은 당황한 재희를 뒤로하고 남의 소한수를 몬스터 한복판에 집어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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