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천기누설 (3)
“혈색 좋네. 푹 잤나 보지?”
“기절한 것도 잠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예, 그렇습니다.”
일어나면 이것저것 물어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단조로운 대답이었다. 사윤은 제 예상보다 훨씬 이른 속도로 깨어난 남자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적어도 반나절은 더 누워 있을 줄 알았다. 아무리 C급의 공격이었다지만 정확히 급소를 찔렀고 치명상을 입혔으니 최소한 하루는 누워 있을 줄 알았더니 괴물 같은 생명력이다. 하긴, 소환사들은 무력이 떨어지는 대신 생명력이 좋다는 평이 전반적이었으니. 하물며 이재희는 S급 소환사니 어지간한 각성자들보단 회복력이 좋을 터였다.
쉭쉭!
사윤의 뱀이 재희의 곁을 맴돌며 새로 온 사람을 탐색했다. 경계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고 흥미를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딸랑이 흔들듯 꼬리를 좌우로 마구 흔드는 저 꼴 좀 봐라. 만물에 사랑을 받는다더니 제 뱀한테도 사랑을 받는 모양이었다.
소환사란 것들은 다 이런가?
소환사가 동물 친화력이 강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라 눈앞의 광경이 다소 생소했다. 사윤이 기른 뱀들은 모두 사윤에게 맹목적이면서도 경계심이 많아 밤쥐 길드원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보면 공격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길드원이라고 해도 간부급이 아니면 종종 무는 녀석도 있었으니 말 다 한 수준이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보는 이재희한테는 저리 꼬리를 흔들고 있다니.
애들이 알면 난리 나겠군.
알게 모르게 밤쥐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아 길드원들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있는 뱀이었다. 사윤은 배신이라도 당한 얼굴로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뱀들을 부여잡고 뺨을 비벼 댈 길드원들의 모습을 떠올리고 작게 웃었다.
“편하게 웃는 모습은 처음 보는군요.”
아차 이 녀석이 있었지.
상념에 좀 잠긴다고 이재희를 잠시 잊었다. 사윤은 지척에 있는 의자 하나를 끌어 이재희 앞에 가져다 놓았다. 녀석이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사윤이 의자를 향해 턱짓했다.
“앉아.”
갑작스러운 명령에 눈을 한 번 끔뻑거린 남자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로 이동했다. 천기누설을 쓸 땐 지지리도 말을 안 듣더니 이럴 때만 고분고분하다. 별장에서 그만하라고 외쳤을 때도 지금처럼 말을 잘 들었으면 좀 좋았냐고 생각한 사윤은 이재희가 있었던 침대에 털썩 소리 나게 주저앉았다.
어색하다기보단 건조한 침묵이 방 안에 흐른다. 이재희의 눈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곧은 시선으로 사윤을 직시하고 있었다.
“…….”
사윤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벌렸다가 다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동등, 동등, 동등. 뇌리를 맴돌고 있는 그 단어는 사윤이 생각하기에 너무 어려운 말이었다. 여태껏 누군가를 동등하게 대해 본 적이 있었던가? 있다고 해도 까마득한 어린 시절이 전부였는데. 이제 와서 어떻게 동등하게 대하지? 애초에 별장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데 저와 이재희 사이에 동등이란 말이 가당키나 한가?
종식의 앞에서는 호기롭게 폼을 잡았지만 막상 이재희를 상대할 때가 되자 머릿속이 복잡했다. 생각할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야 했는데 녀석이 제 예상을 웃도는 속도로 몸을 회복하는 바람에 계획이 꼬였다. 머릿속을 정리할 새도 없이 천안(天眼)을 가진 사람을 상대하게 됐으니 여간 골치 아픈 일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몸은 괜찮으십니까?”
“……?”
화제를 고민하고 있으니 이재희 쪽에서 먼저 입을 열었다. 뜻밖의 물음에 사윤은 헛웃음을 흘렸다.
“칼에 찔렸다가 깨어난 건 넌데.”
“어제 피를 흘리시던 걸 봐서 물어봤습니다. 지금은 괜찮아 보이시네요.”
아, 천재의 눈.
확실히 어제는 평소보다 많은 피를 흘리긴 했다. 성향 보유자를 찾겠다고 두 발로 뛰어다녔을 때보다 더 쏟아 낸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던 사윤은 제게 말을 건넨 상대가 온 구멍으로 피를 쏟아 낸 사람이었다는 걸 떠올리곤 피식 웃었다. 나란히 피 칠갑이 되었으면서 안부를 묻는 상황이 제법 우스웠다. 그러나 아쉽게도 생산성 없고 우스꽝스럽기만 한 대화에는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럴 만한 상황도 아니었고 말이다.
“이재희.”
이름을 부르자 잠시 제게 치대는 뱀의 머리를 만져 주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사윤은 그의 손에 머리를 비벼 대고 있던 뱀을 잠시 노려보았다. 주인의 시선을 받은 뱀이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녀석이 아양 부리듯 제 다리에 달라붙는 걸 무시한 사윤은 용건을 꺼냈다.
“목적이 뭐야?”
“네?”
“나한테 접근한 목적이 뭐냐고. 생각해 보니 별장에선 못 들은 것 같단 말이지. 단순히 호기심만으로 접근하진 않았을 거 아니야. 그랬다면 넌 카페에서가 아닌 그날, 포항의 네 집에서 날 붙잡았어야지. 그때도 나와 언노운이 비슷한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
생각해 보니 수상했던 부분이었다. 이재희가 단순히 언노운의 정체를 캐내고 자신과의 연관성을 알고자 접근했던 거라면 이재희의 집에서도 대화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비록 치고받고 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최소한 카페에서 그랬던 것처럼 언노운이라는 말을 꺼내 제 흥미를 끌어내는 수단은 사용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재희는 그날 자신의 공격을 막기 급급하다가 떠나는 저를 말없이 보내 주었다. 붙잡지도 않았고 언노운의 ‘언’ 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을 붙잡고 수명을 사용해서까지 천기누설을 쓴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았다.
그것도 하필이면 자신이 C급으로 랭크가 떨어진 지금에 와서 말이다.
필시 무슨 목적이 있을 거라 묻자 이재희가 하얀 손으로 제 목을 더듬었다. 몇 번 큼큼하고 목을 가다듬은 남자가 이내 멋쩍은 듯 작게 웃었다.
“목이 마르네요.”
쯧. 사윤은 혀를 차며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그에게 던졌다. 아주 상전이 따로 없었다.
“됐지?”
“네.”
거칠게 날아든 물병을 무리 없이 받아 든 이재희가 목을 축였다. 병에 담긴 물을 반이나 해치우고 나서야 입가를 닦은 남자가 숨을 내쉬었다. 후우, 한숨을 닮은 숨결이 사윤의 방에 깔렸다.
“접근한 이유는 전에 말씀드렸던 거랑 같습니다. 누군가 덮어 둔 진실을 파헤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적성이니까요.”
“겨우 그 정도 이유로 수명까지 바쳐 가며 스킬을 사용했다고?”
“수명을 사용한다는 말은 한 적이 없는데요.”
“…….”
“사윤 씨가 가진 스킬은, 상태창에 적힌 것들의 상세 정보까지 확인할 수 있나 봅니다.”
빌어먹을.
정보를 캐낼 생각이었는데 역으로 정보를 제공한 꼴이 돼 버렸다. 이래서 입이 방정이다. 낭패라는 기색을 일순 표정에 띠었다가 지운 사윤은 이왕 들킨 거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
“그래. 그러니까 너도 잔말 말고 네 목적을 말해. 어쭙잖은 변명으론 네가 수명까지 써 가며 스킬을 사용한 것에 대한 이유가 되지 못하니까.”
“아무래도 그렇겠죠.”
웃어?
빈말로도 편안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살가운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었고 웃을 만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재희는 살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마치 가벼운 말장난이라도 치는 것처럼.
역시 또라이다.
이재희는 성향 보유자만 아니었다면 밤쥐의 길드원이 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똘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쯤 되면 또라이만 꼬이는 특수한 페로몬이라도 있는 거 아닐까? 밤쥐 길드원들에 이어 건주, 그리고 이재희까지. 만나는 사람이 죄다 미친놈이라 합리적인 의심을 품고 있자 그가 입을 열었다.
“저는 사윤 씨한테도 물론 흥미가 있습니다만 본질적으론 조금 더 위의 것을 탐구하고자 합니다.”
“…무슨 말이야?”
미친놈이라서 그런가, 말을 어렵게도 했다. 꼭 자기만의 공상 세계에 빠져 있는 사람처럼 구는 이에 인상을 찌푸리고 반문하자 이재희가 물병을 내려놓고 사윤을 응시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윤의 눈동자 너머 무언가를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윤은 제 속이 꿰뚫리는 것 같은 느낌에 저도 모르게 무기를 빼 들고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예민하게 곤두선 신경이 눈앞의 상대를 주시하라 경고한다. 집요함을 품은 이재희의 시선은 오싹하기 짝이 없었다.
살기를 품은 것과는 다르다. 그저 마주치면 모든 것이 까발려질 것만 같은 그 섬뜩한 감각이 오싹했다.
“당신의 랭크가 떨어진 걸 보고 접근했다는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지금처럼 약해진 때가 아니면 쉬이 접근할 수 없었을 테니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무례였다면 죄송합니다.”
“사과나 하라고 물어본 게 아닌데.”
“알고 있습니다. 목적을 얘기하라 하셨죠.”
칼을 들고 있는 상대 앞에서도 이재희는 태연했다. 태연하다 못해 여유로웠다. 마치 자신의 검이 그를 죽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는 듯이. 역시 속내를 꿰뚫린 것 같아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자 이재희가 입꼬리를 올려 싱긋 웃었다.
“권사윤 씨.”
그가 사윤의 이름을 부르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가까이 다가오는 이에 사윤은 단도의 칼날을 세웠다. 훅, 다가온 이재희에 칼끝 역시 그의 목을 향했다. 한 걸음. 한 걸음만 더 다가오면 칼이 이재희의 목을 꿰뚫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남자가 몸을 기울였다.
칼날이 그의 목을 스친다. 그 상태로 사윤이 앉은 침대를 짚은 이재희가 눈을 똑바로 마주친 채 입을 열었다.
“권사윤 씨. 저는 근원을 꿰뚫고자 합니다.”
“근원?”
“네. 이 모든 일의 근원을 말입니다. 가령 시스템이라든가.”
시스템. 그 말에 사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이재희는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게이트나 몬스터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상위.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현상의 근원으로 추정되는 존재.”
“…….”
“신.”
미친놈.
“제 최종 목표는 그들입니다.”
그 순간 창밖으로 벼락이 쳤다. 번쩍! 하고 섬광이 일었고 이어서 광포한 천둥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비가 오지 않는데도 쏟아진 벼락은 마치 하늘의 노함을 알리는 듯했다. 사윤은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기묘한 전율이 휩쓸고 가는 느낌에 눈앞의 이재희를 바라보았다.
제 앞의 남자는 저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 벼락이 친 창밖을. 마치 환희라도 하듯 입꼬리를 미약하게 올리며 창밖을 응시하는 이를 본 사윤은 입을 달싹였다. 이재희의 시선은 한참 후에 돌아와 다시 사윤에게 닿았다.
“그러기 위해선 당신이 필요합니다. 제가 본 그 어떤 각성자보다 당신이 이 시스템에 복잡하게 엮여 있으니까요. 당신이 가장 많은 비밀을 소유하고 있고, 가장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당신을 곁에 두면 많은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당신을 찾았고 약해진 때를 노리고 접근했습니다. 제 계획에는 당신이 필요하니까요.”
“하.”
“그리고 당신 역시 내가 필요하죠.”
확신이 깃든 말투다. 아니라고 변명해 봐야 소용이 없을 만큼. 사윤은 기가 차서 웃음을 터트렸다. 방 안을 뒤흔드는 듯한 사윤의 웃음 속에 이재희의 목소리가 섞여 들었다. ‘권사윤 씨. 우리가 협력하면 당신의 운명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병들어 가고 있는 이 세계도 구할 수 있을 테고요.’ 그리 말하는 목소리는 올곧다 못해 광적이었다.
지고지순한 선.
그리고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천안의 보유자.
그 사람이 다른 누구도 아닌 진정한 인류의 악이란 성향을 가진 제게 협력을 구하고 있었다. 필시 제 성향을 알고 있을 텐데도 저리 말한다.
제 운명을 구해 주겠다고. 자신은 신들마저 꿰뚫어 볼 거라고, 신들의 농간에 미쳐 돌아가고 있는 현 세상을 구하겠다고.
오만하고 무모하기 짝이 없는 말이었다. 사윤은 한참을 웃다 말고 가늘어진 눈으로 이재희를 바라보았다.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재희가 가진 ‘흐름을 비트는 자’ 성향의 의미를.
그는 이 판을 뒤집는 조커다.
거봐. 아무래도 미친놈만 꼬이는 페로몬이 있는 게 맞는다니까.
세상은 넓고 또라이들은 많은데 그 또라이들이 전부 제 곁에 모여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신은 또라이 중에서 상또라이였다.
“재밌겠네.”
사윤은 이재희가 건네는 손을 잡았다.
동등인지 협력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함께해서 나쁠 건 없을 듯했다.